토끼는 잠들 수 없다
이원규
서울의 내 친구는 언제나 놀란 토끼
증권시세 널뛰는 출렁다리를 건너간다
내 친구가 충혈된 토끼눈으로 일할 때
나는 지리산 깊은 골의 얼레지 꽃치마를 바라본다
내 친구 토끼가 밤새 가상화폐 외줄 그네를 타면
나는 슬그머니 백 살 오동나무꽃에 내리는 별빛을 만진다
구름다리 무지개다리
동아줄 하나라도 툭 끊어지는 순간
가내 두루두루 목숨이 위태롭지만
내 친구 토끼는 실로 위대하다
알고 보면 야생화도 별나무도 위험천만한 짐승이니
지리산의 여덟 번째 집 쌀통에는 대출금뿐
나 또한 살아남아 신통방통 기묘한 토끼
토요일에 토끼 두 마리가 만나
서로 치하하며 응원하며
지글지글 삽겹살에 눈꺼풀이 빨간 소주를 마신다
일생일세 놀란 토끼는 잠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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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화 작가 |
가족들의 안위를 챙기고 대출금과 잔액을 확인하는 평범한 순간들, 이런 가운데 하루를 견딘다는 것 그 자체가 위대한 일이 아닐까요. 어쩌면 놀라운 기적일 수도 있고요. 친구를 만나 삼겹살에 술을 한 잔 또는 차 한 잔 마시는 일도 바쁜 일상에서는 귀하고 큰일이니까요. 불안과 피로 속에서도 서로를 위로하는 일. 이것이야말로 잠들지 못하는 현대인들이 찾아낸 ‘깨어 있는 쉼’일지도 모릅니다. 비록 돌아서면 다시 불면으로 뒤척이겠지만요.
“일생일세 놀란 토끼는 잠들 수 없다”는 이 각성은 이제 현대인의 일상이 되어버렸지요. 하지만 잠들지 못하는 이유가 불안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꿈꾸고 있기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이 불면의 시간은 삶의 가장 뜨거운 순간이 아닐까요. 세상의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뛰지만, 우리는 안정된 생활 안에서 즐기는 초원을 그리워하니까요. 숙면에 들기 위해 그리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사소한 웃음을 짓거나 눈시울 붉히며 잠시 숨 고르는 하루. 이렇게 우리는 오늘을 건너 내일로 나아가는 것이겠지요.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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