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화 시인의 작가 초대석 ] 천 겹의 울음을 위한 발라드, 박수현 시인의 『처녑』을 읽다

Interview / 이은화 작가 / 2025-11-03 10: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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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이은화
대담자: 박수현
▲ 박수현 시인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경북 대구 출생. 경북대학교 사범대 영어교육학과 졸업. 2003년 계간시지《시안》으로 등단. 개인 시집 『운문호 붕어찜』 『복사뼈를 만지다』 『샌드페인팅』 『처녑』, 연합기행 시집 『티베트의 초승달』 『밍글라바 미얀마』 『나자르본주』가 있음. 2011년 서울문화재단 작가지원기금, 201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창작기금 수혜. 2020년 「제4회 동천문학상」 수상. 2025년 서울문화재단 원로예술인창작기금으로 『처녑』 발간. 현재 한국디카시인협회 서울양천지회 회장.

 

● 이번 시간은 시집 『처녑』을 출간한 박수현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선생님, 그동안 『운문호 붕어찜』부터 『처녑』까지 네 권의 시집을 출간하셨는데, 시집마다 추구하신 주제가 궁금합니다.

▶ 첫 시집 『운문호 붕어찜』은 등단 5년 만에 2008년 발간했습니다. “실상과 허상 사이, 시간과 시각 사이”와 “삶의 간극 사이“에서 서성거림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 소설가들의 성장 소설처럼 유년과 가족에 대한 추억, 젊은 날의 꿈과 고뇌, 잡념과 실패, 부끄러움과 욕망, 환상의 현현(顯現) 같은 것이지요. 마음에 박힌 흑백사진 같은 기억을 대면·직시하면서 슬픈 사건의 언어를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끄집어낸 셈입니다. 시 「가위에 눌리다」는 다섯째 딸로 태어나 남아선호사상 때문에 받은 상처입니다. 시 「괄호( )」는 기간제 교사의 사회적 설움으로, 문화예술위 아르코 분기별 우수작(100만 원)으로 뽑혔고 계약직 사이트에 많이 인용되었지요. 시 「해거름」이 《한겨레 신문》과 지하철에 게시되었고, 시집을 2쇄 찍었답니다.

두 번째 시집 『복사뼈를 만지다』는 서울문화재단 작가지원금으로 2013년도에 발간했습니다. “서로 성가시게 하지 않고서는 피워낼 수 없는 빽빽한”(자서) 침묵과 풍경들에 대한 고찰이랄까요. 몸도 아픈 곳이 여기저기 생겨나고, 삶에 대해 제 시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이 많았던 때이기도 합니다. 해설을 쓴 이경수 평론가는 디아스포라적 상상력과 서정시의 발생 원리를 회감(懷感)으로 파악한 에밀 슈타이거의 관점이 연상된다며 “불길하고도 황홀한 몸의 울음“이라고 명하셨지요. 시 「호접란」이 《세계일보》와 지하철에, 시 「복사뼈를 만지다」가 《용인신문》에 실렸으며, 한국시인협회(오탁번 회장) 총무간사로, 계간시지《시안》의 편집장으로 나름 분주한 시기였네요.

세 번째 시집 『샌드 페인팅』은 아르코창작기금으로 2020년도에 발간했습니다. 시간의 간격에 따라 사물을 보는 시각, 서술 방식이 좀 변화했지요. 표제작인 「샌드 페인팅」은 티베트 여행 때 사원박물관에서 보았던 ‘모래 만다라 그림’을 겹쳐 쓴 시입니다. 스님들이 몇 년에 걸쳐 그린 오방색 만다라를 제의(祭儀)로 사용한 뒤 바람에 날려버리듯이, 제가 혼신을 쏟아 쓴 시들도 흔적 없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서로에게 출발이며 배후인 엉뚱한 질문과 어긋난 대답을 채록하는 일은 불가능해서 슬프고 아름답지요. 이숭원 평론가는 ”감성과 상상력을 방편으로 시간의 한계를 초월한 생의 비의(秘儀)를 탐색하는 순례자“라고 하셨고, 표4를 써 주신 오탁번 선생은 묘한 신비감을 지닌 환상적 리얼리즘이라 칭하셨지요.


이 시기엔, 시인들과 티베트 미얀마 터키 등을(3권의 연합 기행 시집 발간) 여행했고, 미국과 독일에 거주했던 딸네 덕분에 길게는 석 달 정도 머무른 적이 있어서 자연스레 외국적 정취가 많이 담기게 되었네요. 단순한 기행이 아니라 어느 곳이든 사람들의 일상과 애환은 동일함에 주목했으며, 알지 못했던 저의 내면을 낯선 곳에서 적나라하게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 시가 나오더군요. 「가을의 음계」 「점등」 「당신」 「포도원」 「사과」 「부레옥잠」 등이 그러하지요. 「손톱」이 서울신문에, 「나팔꽃」이 지하철에 게재, 코로나19와 닮은 상황인 「비인칭의 봄」은 《뉴스 페이퍼》와 《영주일보》 신문에 평과 함께 게재, 「봄요일, 찻빛 귀룽나무」는 《울산신문》에 육필원고로 게재, 「초승달, 봄」 「어린 봄을 업다」는 CBS 배미향의 [저녁스케치], [성남 FM 김송포의 음악방송], [이온겸 문학방송] 전화 인터뷰와 시낭송 등에, 다양한 시들이 여러 신문과 블로그에 소개되었습니다. 이 시집으로 [제4회 동천문학상]을 받았습니다.


● 이전 시집들과 비교했을 때, 『처녑』에서 새롭게 시도하신 형식이나 주제 의식이 있나요?

▶ 사회적으로는 Covid19로 불가항력적으로 폐쇄된 상황과 다층적 불협화음에 내몰린 암울한 시기였고 개인적으로는 사고로 인한 2번의 수술과 재활 과정에서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혼돈을 겪은 때였습니다. 당면한 낯선 상황과 불안한 세계와 삶과 존재의 간극과 비의(秘儀)에 대한 사유와 상상력에 천착하게 되더군요. 또 연이은 죽음들이 가져온 상실감과 슬픔의 긴 터널을 통과하는 때였지요. 저를 관통한 이별의 아픔을 직시하면서 그것들이 단순히 무채색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지요. 표제작 「처녑」뿐 아니라 「미음」 「김치전」 「동지」 「김치밥국 끓이는 아침」 등의 시가 그렇듯, 함께 나누던 소박한 음식과 따스한 온기가 어렴풋한 무지갯빛으로 제 곁을 맴돌아 힘든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나 봅니다. 이처럼 시안에서 서사적 요소들이 녹아 있는 것도 나름 특색이라 할 수 있겠네요.


세상과 사물을 보는 눈이 좀 달라지니 시집 후반부에서는 저절로 치유의 과정이 담기더군요. 「창문 잎사귀들」 「나비국수나무」의 교감이나 해동된 「지금」 같은 작품들은 슬픔을 딛고 다시 걸어갈 수 있는 든든한 힘이 되었지요. 또 ”죽어가는 한국어를 되살리고자 하는 사명감과 열정으로 시의 본령을 지키고자 하는 시인“이라고 말한 이성혁 평론가의 해설처럼 고유어와 사투리에도 상당한 관심을 쏟았습니다.


 

▲ 디카인협회 창립식 기념사



● 신간 『처녑』이라는 제목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처녑'이라는 단어가 가진 특별한 의미와 이를 시집 제목으로 정한 이유가 있을까요?

▶ 시 「처녑」은 2020년 9월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에 발표, [경기신문]에 게재, [시 읽는 고양이]에서 낭송도 했지요. 2021년 《시와 함께》 가을호에 [이 시는 내게 어떻게 왔는가] 코너에서 여름나기 보양식인 처녑을 사 오면서 그것을 통해 ‘존재의 주름과 울음의 겹을 더듬는 시의 여정’을 산문으로 밝히기도 했습니다.


소의 세 번째 위인 처녑은 얇은 점막 주름 조직으로 마치 천장의 나무 잎사귀가 겹친 모양과 닮았다 하여 천엽(千葉) 또는 처녑(특히 식재료로 쓰일 때)이라 부릅니다. “천장의 이파리!” 이 낱말은 천 개의 흔들리는 잎새처럼 훅 가슴에 와 박혀 곧장 나를 여름날 고향의 언덕배기로 데려갔지요. 또 검정 비닐봉지에 싸인 처녑을 개수대에 펼쳐놓으면서 문득 인간사 위장 하나 다스리는 일이 첩첩산중, 만경창파를 넘는 일이라 “위장은 바로 그 존재의 중량”이며 “압축된 삶의 비의(秘儀)”가 아닐까 싶더군요. 그렇게 실체적 경험과 사유가 합쳐져 이 시를 끌고 가는 축이 된 셈이지요.


시대적 격랑기를 살아냈던 우리네 부모님들은 대개 소처럼 우직하게 삶을 견딘 분들이지요. 제 어머니 또한 40대에 갑자기 쓰러진 아버지의 30년 병시중과 팔 남매 먹이고 교육시키느라 “크고 순한 짐승의 위장 같은 / 울음의 겹” 안의 시간을 헤쳐나오셨기 때문입니다.


씨름하듯 치대고 빨아 장만한 처녑 한 젓가락을 기름장에 찍어 입에 넣자 오히려 알 수 없는 허기 같은 것이 울컥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지요, 유년에 대한 기억과 이젠 곁에 없는 육친의 모습이, 사람은 모두 울음의 겹을 통과하며 삶을 살아간다는 생각에 그만 쓸쓸하고 적막했지요.


● 이번 시집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핵심 메시지나 정서가 있다면 무엇인지, 그리고 시집을 읽는 독자들이 어떤 점에 주목하며 읽어주길 바라시나요?

▶ 시집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기억과 주름’의 메타포이지요. 애당초 우리네 사연 많은 삶과 세상은 온통 주름의 촘촘하고 슬픈 서사라 할 수 있겠지요. 시를 쓰는 행위 자체가 시간의 축과 지구라는 공간을 아코디언처럼 펼쳤다 접었다 하며 ‘여기’에서 ‘저기 혹은 거기’로 건너뛰는 작업이니까요. 주름의 메타포를 즐겨 사용한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는 이 주름을 ‘고원’(高原)으로 비유했고 헝가리 화가 시몬 한타이(Simon Hantai, 1922~2008)는 천을 구기고 펼치고 묶어서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 이어지고 겹지는 주름을 화폭에다 펼쳐놓지요. 시 「주름들」에서 지문은 일종의 피부주름인 [궁상돌기문]인 것처럼 움푹 팬 갯골은 물길이 만든 주름이며 해변의 파도는 물의 주름이고 산맥의 능선이나 계곡은 땅의 주름이며, 사막의 사구(沙丘)는 역시 바람의 주름이라 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천서봉 시인의 표4에서 말했듯이 슬픔이 어떻게 주름이 되는지, 그리고 그 주름이 어떻게 기어코 다시 우리를 일으키는 힘이 되는지를 알게 되었다고 할까요. 주름을 다룬 시들은 표제작인 「처녑」 「무한계단육면체」 「강릉」 「주름들」 「우산」 등 다수가 있습니다.


● 이번 시집을 준비하시면서 가장 고민하셨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책을 엮는 과정에서의 어려움이나 특히 애착이 가는 시집이 있다면 그 이유를 들려주세요.

세 번째 시집 출간 후 육친과 시단에서 가까이 곁을 내주던 몇 분이 떠나셨고. 남겨진 적막의 둘레는 넓고 깊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과 나누었던 소소한 시간과 따스한 마음들이 홀연 한오라기 햇살처럼 가까이 밀려오더군요. 그분들의 다 부르지 못한 노래 후렴구 같은 것을 희붐하게 받아 적은 시편들이 많아 사라지거나 잃어버린 것 쪽으로 너무 기울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도 있었지요.


”새들이 가지를 물어다 둥지를 쌓듯 시인에겐 영혼의 울음을 모아 만든 둥지가 시집인 게지요“(「시집詩集」). 그래서 시인에게 시집은 자식새끼 같은 존재입니다. 첫 시집이라 애틋한 『운문호 붕어찜』, 작가 지원금을 받아 뿌듯했던 두 번째 시집 『복사뼈를 만지다』, 창작기금과 첫 문학상을 안겨준 세 번째 시집 『샌드페인팅』 모두 소중하지요. 그러나 유미적인 색채가 짙은 앞의 시집과 달리, 이번 시집 『처녑』은 진정성 면에서 제 정서를 오롯이 드러낸 것이라 가장 애착이 갑니다. 낯선 숲속을 헤매다가 비로소 가고 싶은 소로를 찾은 것이라 할까요.


● 『처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을 꼽는다면 어떤 시인가요? 시집의 주제를 아우르는 시나 가장 애정이 담긴 대표 시 한 편 부탁드립니다.

▶ 아무래도 「처녑」이겠지만 많이 다루었으므로, 이 시집의 첫 번째 시 ‘내 청춘의 불온하고 아름다운 파일’인 「강릉」을 소개하고 싶네요.


강릉

편지는 일 년 만에 당도했다 작년 여름 바닷가에서 부친 편지였다 흰 봉투를 나이프로 뜯자 파도 소리 바람 소리와 함께 모래펄에 팬 낯선 발자국들이 동봉되어 있었다 내가 송부한 것은 눈부신 수평선과 수평선 끝에 눈썹처럼 걸린 흰 돛과 그보다 더 흰 팔월의 뭉게구름과 그 곁의 연필 밑그림 같은 낮달이었다 그런데 내가 평생 바다만 바라보는 해변의 낡은 우체통처럼 서서 받아 든 것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신새벽 꿈 같은, 해식애(海蝕崖) 너머 알 수 없는 곳으로부터 와서 괭이갈매기 무수한 울음 너머 알 수 없는 곳으로 사라지는 내 청춘의 휘파람 소리뿐이었다 파도에 닳아 조금씩 없어지는 모래펄의 낯선 발자국 같은 휘파람 소리뿐이었다 한때 누군가의 연인이었을 이의 뒷모습이 어느 황폐한 별자리처럼 자꾸 어두워지는 그해 여름 강릉 앞바다, 또는 내 청춘의 불온하고 아름다운 파일들

 

▲ 국보시 방짜징 서울전시회에서



● 선생님의 시에는 일상의 구체적 장면과 사물이 자주 등장합니다. 일상과 시를 연결 짓는 사유의 출발점은 어디인가요?

▶누군가 경험과 상상력을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려야 공중으로 이륙할 수 있는 관계로 표현했는데 공감이 가더군요. 일상에서 부딪친 크고 작은 경험들이 활주로가 되는 셈인 게지요. 「무한계단육면체」 「예후」는 사고의 경험을, 「이른 눈」은 작년 11월 117년 만에 폭설이 내린 풍경을 만나면서 촉발되었죠. 「앵두」 「쥐똥나무」는 실제 앵두를 따거나 밤에 쓰레기 버리러 갔다가 느꼈던 감정을, 「나팔꽃」 「꽃기린」 「보라를 헹구다」 「창문잎사귀들」은 직접 키우는 혹은 키운 식물에 대한 관찰에서 온 시입니다. 애정을 가지고 시선을 주고 키우다 보면 일상에서 만나는 사물들이 스스로 얘기를 건네더군요.


● 블로그 <수수꽃다리에 대한 기억>을 운영하고 계시는데, ‘기억’이라는 단어에 담긴 의미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어 블로그를 통해 독자들과 어떤 소통을 하고 계신지도 궁금합니다.

▶ 상상력을 제1, 제2로 구분한 영국의 시인이자 평론가인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는 시적 상상력은 인간의 지각(Perception)과 관련된 제1의 상상력이 아니라 무의식과 의식이 교차하며 새로운 이미지(Image)를 만들어내는 제2 상상력이라 했더군요. 단순한 기억의 회상과는 다르게 시를 펼쳐야겠지만 시인은 기억을 사랑하는 자이거든요. 기억엔 진정성이 담겨 있기에 이런 시들은 누군가의 마음 기슭에 가닿기가 쉽겠지요.
잡지에서 좋은 시를 읽었을 때 더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제 블로그에 소개하지요. 또 선후배 시인들이 새 시집을 보내왔을 때 마음 깊은 답례로 표지 스캔과 시인의 말, 약력, 시 3편을 소개합니다.


● 요즘처럼 빠르고 단편적인 언어가 소비되는 시대에 시의 언어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 포스터모더니즘 시대를 넘어 AI가 예술 전반에 개입을 시작한 시기입니다. 또 각종 서적이 너무 쉽게 출판되고 소비되는 경향이 있지요. 일상에서뿐 아니라 출판물에도 정제되지 못한 언어들이 범람하고 있습니다. 다양성도 중요하지만 시는 적어도 품격 있고 정돈된 언어의 카나리아(잠수함 속) 같은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앞으로의 시 세계나 새로운 시집 구상에서 『처녑』 이후 더 탐구해 보고 싶은 주제나 표현 방식이 있으신가요?

▶ 최근에 사진 기호와 5행 이내의 문자 기호로 이루어진 디카시를 시작했습니다. 함축, 반전과 전복에 집중하는 디카시의 덕목을 잘 배워 15행 이내로 가독성이 높은 시도 써보고 싶고, 한 잡지에 기고한 산문 연재 [박수현의 사람]을 중심으로 산문집도 꾸려볼까 합니다.


● 끝으로 젊은 시인들이나 시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 젊은 시인들의 시집을 많이 읽는 편입니다. 해체적이거나 실험적인 시는 또 그대로 매력이 있더군요. 마치 다른 별에서 온 존재들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그들의 독특한 시각이나 표현력엔 감탄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지나치게 특이한 소재보다는 더 큰 보편성으로 나아갈 때, 시가 어렵게만 느껴진다며 멀어지는 독자들과도 오래 함께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문학을 함께 나누는 복지관 수업을 진행하고 계시는데 이 수업이 인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지 들려주세요.

▶ 집 가까이 위치한 ‘Y 어르신종합복지관’에서 제 전공인 영어 강좌(10년째)와 힐링인문학(4년째) 맡고 있습니다. [노인학]과 [문학치료] 수강을 받은 것이 계기이지만 일종의 재능기부 같은 것이죠. 기관의 평생교육 프로그램에는 각종 운동 강좌, 적성과 취미를 위한 서예, 사진, 그림, 합창, 어학 등 유·무료의 70여 개 강좌가 개설되어 있지요. 연령은 60대 후반부터 90대까지, 남녀의 비율은 3:7 정도입니다. 교재가 있는 영어반과 달리 인문학은 매시간 다양하게 교안(일기, 수필, 시와 디카시, 시조, 지구환경, 자서전)을 짜고 PPT 자료도 만듭니다. 활기찬 분위기 도입을 위해 ‘노래가 된 시’를 중심으로 가곡이나 트로트도 들려 드립니다. 나이, 교육 정도, 수업의 이해도에서 개개인의 편차는 크지만 그분들이 제 수업을 통해 잃었다고 생각했던 감성이 되살아난다고 하실 때 보람을 느끼지요. 앞으로도 문학을 함께 나누는 일은 제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하려 합니다.


- 박수현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시가 지닌 공동체적 가치와 치유의 힘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복지관에서 어르신들과 문학을 나누며 “잃었던 감성을 되살릴 때” 보람을 느끼신다는 말씀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처녑’이라는 소박한 음식을 통해 어머니 세대의 삶을 “울음의 겹”으로 형상화하신 통찰은 우리가 잊고 있던 소중한 것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처녑』에 담긴 진정성 있는 시어들이 독자들의 삶 속에서 잊힌 온기를 되찾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선생님, 시와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은화 시인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일요주간 문화예술 전문 주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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