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의견과 사실이 뒤죽박죽일 때 민주주의는 병든다

People / 최철원 논설위원 / 2020-08-26 12:5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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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코로나 사태 와중에 집난리, 물난리까지 겹쳐 이래저래 힘든 요즘 신문을 읽기가 헷갈린다. 지난 몇 주 동안 벌어진 사건을 보면 이 시대는 차마 눈뜨지 못할, 귀에 담지 못할 정치ᆞ 사회적 언어 폭거가 홍수처럼 넘쳤다. 정부와 거대 의석을 가진 여당이 개혁을 앞세워 행해지는 그 언어가, 이 사회적 담론이 의견과 사실을 구별하는 능력을 상실한 지 이미 오래됐기 때문에,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정부인사, 정치인, 언론은 사회적 담론을 말할 때 자신들의 의견을 사실처럼 말하고 사실을 의견처럼 말한다. 그걸 뒤죽박죽으로 말하니까 이런 언어는 대중들 소통에는 기여할 수가 없고, 이런 언어가 횡행할수록 대중과 사회는 소통이 아니라 단절이 심화되고, 이 단절은 편가름과 갈등으로 이어져 사회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그러면 정치인들은 왜 의견과 사실을 구별하지 않고 의견을 사실처럼 말해버리는가. 아마도 그들이 당파성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고, 그래서 그것을 정의라고, 신념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의견과 사실은 뒤죽박죽이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지금 우리 시대의 언어는 무기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언어가 완강한 돌덩어리처럼 굳어져 다른 언어에 의해서 절대로 부서질 수 없다면, 그것은 언어가 아니고 무기며 그런 언어는 소통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말을 하거나 언어를 사용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글을 잘쓰고 세련된 수사학을 구사하는 것이 아니라 의견과 사실을 구분해서 말해야 한다. 말을 할 때, 글을 쓸 때, 말하는 것이 사실을 말하는 것인지, 의견을 말하는 것인지, 사실을 바탕으로 한 의견인지, 아무런 사실을 바탕에 두지 않고 그저 나의 욕망을 지껄이는 것인지를 구별하지 않고 말을 하면, 이런 언어들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에 기여할 수가 없으며 오히려 단절을 심화시킨다.

요즘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언어적 문제는 듣기가 안 된다는 것이다. 채팅만 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주장만 있고 듣기는 안되니, 청각장애인들이 다 모여 있다. 이 시대 정치인은 청각장애자들만 모인 집단이다. 그들은 어떤 사태를 인식할 때 이 사태는 내 마음에 드는가, 들지 않는가. 사람을 볼 때는 저자는 내 편인가, 아닌가를 먼저 구분하여 내편이 아닐 경우 무조건 남의 말은 들으려 하지 않고 내 주장만 옳다고 말한다. 당파성에 젖은 자들은 그것을 정의라 말한다. 그것은 소통을 단념한, 엉터리 정의로 오직 단절만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힘을 가진 다수당이 소수당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기들만의 정의로 민주주의에 대해 말할 때 이 세상 온갖 횡설수설을 함께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정치 행위는 근본적으로 언어를 매개로 이루어진다. 언어가 정치의 단순한 도구만이 아니라 정치를 정치이게끔 하는 전제라는 뜻이다. 이런 이유에서 이 사회의 언어 자체가 뒤섞여 소통 불가능하게 되어버렸을 때, 우리는 민주주의를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모든 사태에는 사실이 먼저 있고 의견이 있을 뿐이다. 사실이 여론을 이끌고 가는 세상이 민주주의다. 여론이 사실을 뭉개 버리는 세상은 올바른 민주주의가 아니다. 사실과 의견을 구분해서 말한다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를 만드는 기초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소통에 의해서만 가능할 터인데, 소통되지 않은 일방적 언어로 무슨 민주정치를 할 수 있겠는가.

이 시대 언어가 바벨탑을 쌓던 시절처럼 무너져 내리고 있다. 언어가 무너져 내리면 그 사회의 모든 구조물이 무너져 내린다. 최근 여권의 검찰 비판을 보면 중립성 문제에 대해서는 검찰 개혁만큼 무게를 싣지 않고, 검찰권 장악이라는 것에 초점이 맞혀져 있는 듯하다. 이런, 목표를 설정해놓고 검찰을 비판하는 것은 가치없는 무용한 바벨탑의 언어일 뿐이다. 그들이 말하는 문제점은 아무런 사실에도 입각해 있지 않고, 자기들만의 의견으로 여론의 정서를 한 방향으로 몰고 가서 정치 권력화하려는 의도를 감추고 있다.

법무부 장관의 수사 지휘권 발동으로 시작된 검·언유착 수사는 대검과 중앙지검 검투사들이 한 편의 무협 드라마를 연출했다. 이번 사건은 처음부터 사실관계를 규명하려는 것보다는 '눈에 가시'를 뽑아내려는 여권 의견과 일부 언론이 여론몰이 방식으로 전개했다. 수사대상이 된 한동훈 검사장의 수사 정보 유출사항이 없었음을 여러 차례 해명에도 불구하고, 중앙지검에서는 '혐의가 있다는' 단순 추정 의견만으로 혐의가 무엇인지 정확히 입증되기 전부터 '구속 불가피론'으로 여론을 몰고 가며 적대하여 부딪쳤다. 그 여론은 필연적으로 발생한 여론이라기보다는 법무부와 여당이 어용 방송과 짜고 벌인 조성 된 여론이었다.

광복절 기념행사에서 김원웅 광복회장 의견이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또다시 친일 청산에 불을 댕겼다. 보수 성향의 신문과 진보성향 신문의 사설은 확연히 달랐다. 민주당은 보수세력을 친일로 매도하며 비난하는 언설이 단골 메뉴로 이어졌고 진보세력을 비난하는 언설이 통합당 깃발로 모이며 갈등은 증폭되고 있다. 이 언어의 무간지옥(無間地獄)에서 우리는 몸 둘 곳 없다. 모든 언어들이 또 다른 언어에 의해 부정당하는 가엾은 운명을 넘어서지 못한다 하더라도, 부당하고 무너지는 과정의 성실성은 흔적조차도 당대의 말속에서는 찾을 수 없다. 다들 제가 옳다고 떠든다. 그래서 세상은 고막이 터질 듯이 시끄럽고, 마침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 이 사회를 이끌고 가는 똑똑한 사람들아. 왜 이렇게 헷갈리게 하나.


공정 보도를 해야 할 공영방송은 정권의 지원군 노릇을 하다 어용 방송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섰다. 사실은 보도하지 않은채 그들만의 의견으로 여론 조성 보도를 하다 권·언유착이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국민과 시청자를 우롱했다. 명백히 잘못된 것들이 올바름이라는 여론으로 조성될 때 이 사회는 거짓 세상으로 절망만 가득할 것이다. 어째서 인간이 인간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인간이 인간의 몸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그 단순하고 명백한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힘으로, 우김질로 세상을 이끌고 가는가.

정치인들은 민주주의와 위기 극복의 이름으로 인간의 구체성을 추상화하지 말라. 추상화된 언어의 합리성은 뻔뻔스럽다. 그 추상성이 권력의 힘이고, 그 뻔뻔스러움이 민주주의를 병들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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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원 논설위원

최철원 논설위원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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