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거짓말이 용인되는, 병든 사회

People / 최철원 논설위원 / 2021-02-21 17:5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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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2021년, 현재를 살며 사회적 관점에서 한국 사회를 보면 우리 사회가 병들어 가고 있다는 증표가 여럿 있다. 그 중 고위 공직자들의 거짓말만큼이나 뚜렷하게 우리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래 다각도로 이루어지는 정치적 사회적 퇴행 현상중 가장 큰 문제는 정직하지 못한 인격 소유자가 국가 요직에 재직하며 국민 앞에 아무런 부끄럼 없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이유야 무엇이든 장관과 고위공직자가 국민을 향해 거짓말을 하는 것은 결코 소홀히 넘어갈 수 없는 중요한 문제다.

이 정부에는 유독 부끄러움을 모르는 낯 두꺼운 사람들이 여럿 있다. 오죽하면 청문회에서 채택되지 못하고 임명장을 받은 고위공직자가 27명이나 되겠는가.


국회 청문회장에서, 기자들의 물음에서,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고, 실체가 드러나자 "그땐 몰랐다," "기억이 불분명했다"는 너절한 변명은 듣기에도 짜증스럽다. 그런데 더 짜증스러운 것은 그들이 수치심을 모른다는 것이다. 사람이 동물과 구분되는 건 부끄러움을 안다는 점이다. 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거짓말을 하는 행위가 공중(公衆)에 노출될 때 수치심을 느끼는 게 자연스런 감정이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는 "서구문화의 뿌리가 신(神)이나 인간 내면에 있는 반면, 동양문화의 뿌리는 체면을 잃는데 대한 수치심에 있다"고 했다. 수치심이 감당할 수 없는 무게에 짓눌릴 때, 종종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하는 이유다. 그러기에 체면을 차리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야말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야 하는 인간 사회의 형성의 요체인 셈이다. 춘추시대 명 제상 관중(管仲)도 지도자는 잘못을 했을 때 숨기지 않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나라를 지탱하는 덕목이라 했다.

최근 김명수 대법원장의 거짓말을 두고 사법부가 격랑에 휩싸였다. 판사들은 노골적으로 대법원장이 책임을 져야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대법원장은 지난해 5월 "국회 탄핵문제로 임성근 부산고법부장 판사의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없다며 사표 문제와 관련 시종일관 사실관계를 부인했다. 그러나 답변서가 거짓임이 들통 난 날, 그는 자신의 흐릿한 기억을 탓했다. "9개월 전의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했다"고 "기억이 안 났을 뿐이지 거짓말이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법을 지켜야하고 법을 집행해야 하는 사법부 수장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사법부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행위다.

사법부 수장이 국민적 관심을 증폭되는 사안을 말하는 자리에서 옳고 그름을 말하는 것은 실로 천금의 무게를 갖는다. "내가 사표를 수리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 말이다." 귀를 의심케하는 이 충격적인 발언의 주인공이 대법원장이라는 사실에 놀랍다. 그의 말은 정치적 중립에서 공명정대한 모습을 보여준 게 아니라 특정 사건의 한쪽 당사자로 비춰졌다. 대법원장은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렇게 거짓말을 해도 괜찮은 것인가. 법으로 거짓을 가려내고 거짓을 응징해야 하는 게 존재(存在)의 이유인 사법부 수장의 거짓 발언은 큰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그 말에 관한 아무런 가책과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야당에서는 사퇴하라며 연일 공세를 퍼붓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대법원장이 책임을 지고 사퇴하느냐 그대로 직무 수행을 하느냐의 문제 이전의 근본적인 질문을 하는 것이다. 왜 우리 사회 지도자들은 거짓말을 아무런 가책 없이 하는가. 국가 사법부 최고 수장이 이렇게 국민 앞에 거짓말을 한다면 그것이 끼치는 파괴적인 효과는 참으로 막대한 줄 모른단 말인가. 인권 최후의 보루인 사법수장이 이정도 인데 국민은 누굴 믿고 공정한 재판을 기대한단 말인가.

오늘의 사법부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의 핵심, 사태의 본질은 사법부가 국민에게 돌이 킬 수 없을 정도로 불신을 받고 있다는 이른바 신뢰의 위기인 것이다. 신뢰는 모든 것이 말로 성립하고 말로 유지되며 말로 관리되는 말의 신뢰 체계인데, 그 체계의 근본인 말의 믿음성을 허물면 깊은 불신의 늪에 빠진다. 말의 질서가 무너지면 나라 전체는 허물어지기 마련이다. 나라가 똑바르냐 바르지 않느냐는 그 사회가 얼마나 정직한 사회인가에 달려 있다.

한 국가 한 문명의 종말은 훌륭한 리더가 없어서가 아니라 말의 질서를 무너뜨려도 아무런 비판 없이 수용하는 사회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당면한 제일 큰 문제는 지도자들이 거짓말을 대놓고 해도 용인된다는데 있다. 거짓말하는 사람이 득세하는 세상. 속이는 사람이나 속임을 바라보는 사람이나 서로가 바라보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넘어가는 사회. 법을 지켜야 될 것을 책무로 하는 장관, 법을 만들어 세상을 이롭게 하는 국회의원, 법의 올바른 판단으로 국민의 인권을 보호해야 할 심판관인 대법원장 등은 바르지 않다. 거짓말이 드러나도 부끄러움을 모른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사회가 거짓말을 해도 괜찮은, 병든 사회로 가고 있다는 증표며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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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원 논설위원

최철원 논설위원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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