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서적’ 헌법소원 군법무관들 패소…“징계 정당”

사회 / 신종철 / 2010-05-12 14:3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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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군 최고 지휘권자에 대한 복종 의무 다하지 않아”

[일요주간= 신종철 기자]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이 장병들의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가 파면 등 징계를 받은 군법무관들이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대부분 졌다. 국방부는 2008년 7월 “‘북한의 우리식 문화’ 등 23권의 도서를 장병들의 정신전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불온서적으로 지정하고, 부대 내 반입을 금지하도록 각급 부대에 하달하자, 군법무관 7명은 “이 조치가 장병의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했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국방부는 당시 소령으로 근무하던 지OO 법무관 등 2명을 “국방장관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의사로 지휘계통을 통한 건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동참자를 모아 집단적으로 헌법소원을 냈다”는 등 이유로 파면하고 나머지는 감봉, 근신, 징계유예 조치하자 6명이 징계에 불복해 소송을 냈다.


하지만 이들은 법원에서 대부분 구제받지 못했다. 서울행정법원 제3행정부(재판장 김종필 부장판사)는 지난 4월 23일 지OO씨 등 전ㆍ현직 군법무관 6명이 국방부장관 등을 상대로 낸 파면처분 등 취소 청구소송에서 장기 군법무관인 지씨의 파면만 취소하고, 나머지 5명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먼저 “군법무관도 헌법소원을 낼 권리가 있지만, 군장교로서는 지시ㆍ명령권자의 의사를 존중해야 하고 이를 함부로 거부할 수 없으며, 만약 이런 지시ㆍ명령이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을 제기한다면 지휘관의 지휘권 행사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외관상 하급자가 상관의 명령에 불복하는 모양을 띠게 될 여지가 있으므로, 헌법소원을 낼 경우 지시ㆍ명령권자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해 군내부의 지휘체계 유지에 지장이 없도록 함과 동시에 군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원고들은 불온서적 군부대 반입 금지 지시가 헌법에 위반된다고 단정하고 군 내부에서 집단의 힘에 기대어 헌법소원을 제기했을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논쟁을 야기하고, 이로 인해 정치적인 논란의 빌미를 제공하는 등 헌법소원 제기 과정이 적절치 못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 자체가 위법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군인사법령의 위헌 여부에 관한 순수한 헌법적 판단을 받겠다는 것에서 나아가 군 내부의 특수한 권력관계상 요구되는 상관의 지시ㆍ명령을 무력화할 의도로 지휘권자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고, 사안의 중대성과 정치적 파장을 고려해 적절한 권리구제방법에 대해 검토 없이 헌법소원을 낸 것은 군 최고 지휘권자인 국방장관이 지시ㆍ명령에 대한 복종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라고 판단했다.


아울러 “군대는 특수한 신분ㆍ권력관계가 인정되는 조직이므로 비록 사회에서 허용되는 표현ㆍ행위 또는 방법이더라도 군에 대한 품위ㆍ신뢰를 손상시키고 선동적ㆍ모욕적이며 무절제ㆍ무례한 언행을 하거나 상관의 명령에 반발하는 듯한 언행을 해 군의 위신을 손상시키거나 군의 지휘체계를 문란하게 하는 것은 징계사유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지씨에 대한 파면은 징계 재량권을 넘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지씨가 파면 징계처분을 받아 확정되면 변호사자격을 취득할 수 없게 되는데, 그러면 군법무관시험에 합격해 8년을 군법무관으로서 군을 위해 기여한 원고의 기득권을 송두리째 빼앗는 결과가 돼 지나치게 가혹한 결과”라고 밝혔다.

민변, “사법부 책임 방기”

한편, 법원의 이 같은 판결에 대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회장 백승헌, 이하 민변)은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에 반발해 헌법소원을 제기한 군법무관들에 대한 징계처분의 위법부당함을 다툰 소송에서 서울행정법원의 기각 판결은 국방부의 시대착오적이고 위헌적인 조치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한 것으로서 인권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가 스스로 그 책임을 방기하고, 관련 법리 및 사실관계조차 왜곡한 것으로 심히 유감이다”고 밝혔다.


민변은 또 “헌법소원을 했다는 이유로 파면 등의 징계처분을 받은 군법무관들은 국방부의 시대착오적 보복조치와 기본권과 적법절차의 원리의 침해를 바로 잡아줄 것을 바라는 마음으로 행정법원의 문을 두드렸다”며 이같이 논평했다.


민변은 “지휘계통을 통해 시정을 요구할 수 있었음에도 법률에 정통한 전문가인 군법무관이 선택한 헌법소원은 적절치 못했다고 판단한 서울행정법원 제3부의 판단은 법원이 행정소송의 가능성 여부를 법리적으로 면밀히 검토하지도 않았음은 물론 이미 국방장관이 국회에서 시정조치를 명백히 거부한 점에 비추어 지휘계통을 통한 건의가 군 내부에서 합리적으로 처리될 수 있는 가능성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점을 완전히 간과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에 더해 헌법상 보장된 재판청구권의 행사인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것이 명령불복종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은, 헌법과 기본권의 행사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결여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또한 재판부가 사실관계에 대한 충분한 심리와 기본권의 보장이라는 법원의 역할에 대해 깊은 고심을 했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민변은 “행정법원의 이번 판결은 파면이 적법하다고 설시함으로써 사실상 군을 헌법을 준수할 의무가 있는 국가기관이 아닌 치외법권 지역으로 설정했다”며 “특히 언론을 통해 군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은 애초에 징계사유로 인정할 사실관계가 전혀 없다는 점에 비추어 명백한 오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변은 그러면서 “많은 이들이 민주주의의 퇴행을 걱정하는 현 시국에서 행정법원이 이렇듯 군을 사실상 헌법의 치외법권 지역으로 설정하고, 군법무관의 기본권 행사를 명령불복종으로 판단한 것은 심리의 충실성 면에서나 헌법과 법률의 해석의 면에서나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끝으로 “그러나 우리는 상급심의 판단과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아직 남아있다는 점에 주목한다”며 “특히 헌재는 누구의 눈치도 볼 것 없이 더 이상 결정을 미루어서는 안 될 것이며, 모든 공권력 행사와 법 해석의 근간이 되는 헌법적 원칙에 비추어 올바른 판단을 보여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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