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협적인 존재...자칫 신경줄을 놓았다간 대형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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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보면, 해난사고 소식을 들으면 언제나 마음이 착잡해진다. 20대 젊은 시절, 나는 바다 위에 있었다. 당시 내게 있어 바다는 모험과 희망의 세계였다.
꿈과 희망을 찾아, 검푸른 파도를 헤치며 망망한 대해를 항해하는 항해사였다. 그러나 30여년 전, 남대서양에서 해상 사고가 있고 난 이후부터 내게 있어 바다는 저만치 멀어져 버렸다. 유속(流速) 4노트의 강한 포클랜드 해류(海流)와 함께.
세월호의 참상. 목젖까지 치오르는 안타까움을 감당하기가 어렵다. 이 상황에서 누구를 탓하겠는가마는, 선박과 육지의 일사불란하지 못했던 조직체계가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승객을 버리고 탈출한 선장과 ‘해기사’(海技士)에게 선박에서 그들이 하는 역할이 무엇이었는지 묻고 싶다. 탈출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들을 믿고 몸을 실었던 승객들을 조치한 뒤에 탈출해야 했다. 그것이 당신들의 의무이니까.
당신들이 의무를 저버린 세월호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었다. 브레인이 사라져 버린 로봇처럼 어느 것 하나 필요에 따라 움직여 주질 않았다. 모든 게 무기력했고, 의지와는 상관없이 끌려갈 수밖에 없는 혼재된 세상이었다.
발 동동 안타까운 마음은 부두에 있는데, 생사의 갈림길이 빤히 바라보이는 눈 앞에서 세월호는 물 밑으로 침몰해가고 있었으니. 꿈이라면 좋으련만. 단 한번만이라도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현실이었다!
“구명뗏목이 한두 개를 제외하곤 그대로 매달려
문제는 덕지덕지 칠해놓은 페인트가 주범 가능성”
나침반이 장님으로 돌변
긴급으로 전하는 세월호 침몰 소식을 들으며, 나는 해난사고의 부피를 가늠해 보았다. 사고 선박은 6,000톤급 여객선이라고 했다. 인천에서 제주로 가는 세월호라는 여객선의 주된 승객은 제주로 수학여행을 가는 고등학생이라고 했다.
그 배는 선령이 20여년인, 일본에서 건조한 노후 선박을 국내에서 사들여 운항중이라 했다. 사고 지점은 진도 앞 해상의 맹골수도라 했다.
아뿔싸! 맹골수도(孟骨水道)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사고가 된통 크게 터졌을 거라는 걸 감지했다.
맹골수도는 완도의 청산도와 함께 항해자들에게 위협적인 존재였다. 자칫 신경줄을 놓았다간 대형 사고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곳이었다.
그간 언론에서 누차 보도했다시피 맹골수도는 조류가 강하기로 유명한 곳이다. 수산 해양 고등학교나 대학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특히 항해술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맹골수도에 대해 한번쯤은 들었을 것이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해역(海域)이므로 주의해서 항해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청산도의 경우는 위험 요소가 다르다. 서편제로 알려진 완도의 청산도는 자기장(磁氣場)이 강한 곳으로 유명하다. 지구의 남극과 북극 간에는 지구자기(地球磁氣)가 존재하는데, 청산도의 자기장은 이보다 강해 선박의 나침반을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이것을 ‘자기난리’(磁氣亂離)라고 하는데, 선박의 나침반은 자석에 의해 생명을 얻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박의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을 소용없게 만들어버린다는 것은 눈을 감고 항해하는 거나 다름없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지역 해도(海圖)에는 청산도를 ‘자기장 이상 지역’이라고 기재해 두고 있다. 나침반에 의지하지 말고 주의해서 항해하라는 경고인 것이다.
이처럼 위험을 내포한 청산도와 맹골수도는 그래서 미래의 항해사들이 한번쯤은 듣고 지나가는 부분이었다. 세월호의 선장이나 항해사들이 그걸 몰랐을 리 없다.
그렇다면 왜 그랬을까? 설령 배 밑바닥이 암초에 부딪혔다 해도 그렇게 쉽게 침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6,000톤급의 여객선과 같은 항행선박은 배 하부를 이중저로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중저’란 말 그대로 ‘이중으로 된 바닥구조’라는 의미인데, 육안으로 식별 가능한 배 밑비닥을 두 겹으로 설치했다고 이해하면 되겠다.
다만 두 겹 사이에 간격을 두어, 그 간격의 빈 공간을 가로 세로의 벽으로 나눈 다음, 나누어진 빈 칸에는 청수(淸水)나 바닷물을 채워두기도 한다. 이중저는 선박이 해저의 암초에 부딪혔을 경우 밑바닥이 손상되었다 하더라도 보조 바닥이 하나 더 있기 때문에 선박 내부로의 침수를 막는 등 위급상황에 대비하도록 한 조치이다.
우물쭈물하다 대형사고
그렇다면 왜 그랬을까? 그동안 선장과 3등항해사, 그리고 조타수의 진술을 종합해 보면 나름대로 어떤 귀추가 드러난다. 그것은 선장의 뻔뻔함 안에 내재해 있는 인간성이다. 3등항해사는 맹골수도에서 지휘가 처음이라고 했다. 뒤집어 해석하면, 그 전에는 선장이 조타실을 지키고 있었다든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당직을 섰다는 얘기가 된다.
당연한 말이다. 안개 자욱한 무중항해거나, 협수로 항해거나, 기상이 요란한 악천후거나, 야간항해거나, 그리고 맹골수도와 같이 위험요소가 잠재해 있는 곳에서는 당직사관이 있더라도 선장이 조타실을 지켜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장이 없으므로 3등항해사가 지휘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3등항해사의 마음이 어떠했을지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조타수가 키를 잡고 있다. 대개 3등항해사와 같은 조로 편성된 조타수는 경력이 풍부한 선원이게 마련이다.
3등항해사는 해도 상에 기재되어 있는 변침점에서 항로를 바꾸었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조류가 강하다 보니 회전 반대방향으로 배 뒷부분이 떠밀렸을 테고, 따라서 조타수가 진술했듯, 키가 많이 돌아갔을 수 있다.
조타실 나침반의 바늘을 보더라도, 아니 느낌으로도 키가 많이 돌아갔다는 건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얘기했듯 이 즈음에서 선박 아래쪽 화물이 한데 쏠림으로써 복원력을 잃었고, 회복하지 못해서 온 불상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다. 선박이 항로를 이탈했다. 변침을 해야 할 곳이기에 변침을 했다지만 항로를 이탈한 선박을 항로 위에 올려놓아야 하는 것은 3등항해사의 몫이다.
그러나 항로를 벗어난 선박이 뜻대로 움직여주질 않는다. 선장의 호통소리가 귓전에 맴돈다. 불안한 3등항해사는 이즈음에서 좀 더 냉정하고 과감할 필요가 있어야 했다.
선박이 항로에서 이탈했다더라도 천천히, 되돌려놓으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마음은 불안하고 강한 조류에 키는 원하는 대로 움직이질 않고. 이 찰라의 순간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화를 불러들이지 않았을까.
그러기에 선박운용술 시간에는 이러한 가르침도 있다. “졸렬하게 행동하지 말라.” 이 경구는 과감하게 행동해라는 뜻이다. 우물쭈물하다가는 대형 사고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舵)는 효력을 상실했고, 배는 복원력을 잃은 채 기울어져 버렸다. 그렇다면 당직 항해사는, 아니 선장은 차후 행동을 신중하게, 신속하게 대처했어야 했다. 관제센터에 긴급신호를 보낼 수도 있고, 지나가는 항행선(航行船)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다.
‘또 하나 범인’ 덕지덕지
칠한 페인트 아닐까?
항해사라면 누구나 아는 ‘채널 16’은 비상 채널이다. 평상시 모든 선박들은 ‘채널 16’에 고정시켜 둔 채 항해를 한다. 누군가 자기 선박을 호출하게 되면 다른 채널을 지정하여 이동한 뒤 통화를 하도록 하고 있다. ‘채널 16’은 대기 상태로 비워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월호가 ‘채널 12’에서 제주관제센터를 호출하였다는 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선장이 퇴선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는 점도 의아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설사 강한 조류에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것 같아 “방에 가만히 있으라” 했다지만, 그만큼 긴박한 상황에 대처하지 못했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선장과 해기사들의 결정적인 잘못은 그 많은 승객을 두고 먼저 탈출했다는 데 있다. 선장과 선박 해기사들의 태도는 정말이지 이해할 수가 없는 부분이다. 아무리 일이 썩 급하여 미처 손을 쓸 겨를이 없을 것 같은 조수불급(措手不及)의 상태라 한들 선박에서 선장이 지켜야 할 일은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것이다.
배와 함께 수중고혼(水中孤魂)이 되라는 말이 아니다. 탈출을 할 때 하더라도 마지막까지 배에 남아 자신의 직무를 완수해야 하는 것이다. 길거리 장사꾼들에게도 서로 간에 지켜야 할 상도(商道)가 있듯, 선원들에게 씨맨십(船員常務)이 있음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궁금한 것은 구명뗏목의 기능이다. 구명뗏목은 선박이 침몰하게 되면 자동으로 이탈하여 펼쳐지도록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한두 개를 제외하곤 그대로 매달려 있었다. 문제는 뭘까. 덕지덕지 칠해놓은 페인트가 그 주범일 것이다.
바닷물 위에 떠 있는 철판을 녹슬지 않게 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건 페인트다. 하물며 선령이 20여년이라는 세월호는 오죽 했겠는가? 녹슨 부분은 떨어내고, 페인트칠 하기를 20여년 해왔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만일 믿기지 않는다면 직접 배 위에서 확인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페인트로 간신히 수밀(水密)을 유지하고 있는 배관 또한 얼마나 많은지.
모든 게 참으로 안타깝다. “왜 그랬을까?”라는 물음만 꼬리를 잇고 잇는다. 한평생 바다를 삶터로 알고 살아왔을 선장과 해기사들. 그들은 깊이 반성해야 한다. 참회하고, 사죄하고 또 사죄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세월호와 같은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정부와 민관군이 협력해야 한다. ‘맹골수도의 기억’을 결코 잊지 않아야 한다. 생떼 같은 아들딸을 가슴 속에 묻은 부모의 심정으로,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영원히 잊지 않을 맹골수도를 향한 위령탑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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