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창동식' 최초 도입한 ‘유흥업계 제왕’ 10년 만에 검거

사회 / 이진희 / 2010-06-30 09:5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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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 내 섹스’, ‘유사성행위 후 섹스’ 코스로 5년간 매출 3600억


룸에서 여종업원들의 나체쇼를 보면서 유사성행위는 물론 섹스도 할 수 있는 이른바 ‘북창동식’ 유흥주점이 한때 전국을 강타했다.


이 때문에 유흥주점 업주들은 앞 다퉈 입구 앞 간판에다 ‘북창동식’이라는 광고 문구를 내 걸고, 모방 영업에 열을 올렸다. 이처럼 ‘술과 섹스’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유흥문화를 탄생시킨 실제의 한 업주는 이로 인해 강남의 유흥주점을 평정했다.


서울 강남에서 일명 '바지사장'을 내세워 총 13곳의 기업형 성매매업소를 운영해온 실제업주가 10년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이 씨는 일명 '북창동식' 유흥업소를 운영하며 10여년 만에 업계를 평정했다.


서울경찰청 형사과는 21일 이 씨에 대해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 위반(알선영업행위등)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바지사장' 박 모 씨(38) 등 2명은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 위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이 씨의 업소 자금관리인 임모씨(34) 등 2명에 대해서는 범죄수익은닉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이 씨에게 통장 명의를 빌려 준 오 모 씨(32) 등 46명은 전자금융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이 씨는 2000년부터 최근까지 서울 강남과 북창동 등에서 유흥업소 13곳을 운영하며 미성년자가 포함된 여종업원들을 고용해 성매매를 알선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씨는 차명계좌와 이중장부를 이용해 업소 수익금 305억8000여만 원을 빼돌려 세금 42억6000여만 원을 포탈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경찰 조사결과 1997년 북창동에서 호객꾼, 일명 '삐끼'로 유흥업소에 발을 들인 이 씨는 이후 업소 내에서 나체쇼와 유사성행위, 성행위를 하는 일명 '북창동식' 영업을 최초로 도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씨는 자금관리인을 통해 업소 수익금을 관리하며 수십 개 차명계좌를 만들어 자동화기기를 통해 입출금하는 방법 등으로 단속을 피해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이씨는 10여 년간 유흥업소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이 수천억 원에 달하는 등 초호화 생활을 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 관계자는 "이 씨가 불법 성매매업소를 운영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해왔다"며 "그 중 10개 업소, 5년간의 매출을 최소한의 기준으로 추산해도 그 매출액이 3600억 원 상당에 이른다"고 전했다.


경찰은 이 씨가 운영한 불법 성매매업소가 더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여죄 여부를 계속 조사 중이다.


이와 함께 경찰은 이씨가 10여 년간 유흥업소를 운영하며 한 번도 입건되지 않았던 점으로 미뤄 경찰관 등 공무원의 비호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이 부분에 대해서도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경찰은 이 씨가 경찰관 63명과 통화한 사실을 확인하고 이 씨의 휴대전화 통화내역을 분석하는 한편, 지난 1월 초부터 최근까지 경찰관 63명에 대한 조사를 벌였지만 유착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이 씨가 치밀한 수법으로 법망을 피해 다니며 그동안 한 번도 실업주로 처벌을 받은 적이 없다"며 "관련 업계 종사자들은 그 이면에 경찰과 검찰 등 비호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 씨가 처벌받지 않았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경찰관 63명에 대한 징계 절차가 진행될 것"이라면서도 "뇌물수수에 따른 형사처벌이 아닌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의 '통화 한 통만 확인돼도 징계할 것'이라는 지시 불이행에 대한 내부 징계"라고 선을 그었다.


한편 이씨가 30대 후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강남 유흥업계를 평정한 비결은 '북창동식' 영업 때문이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북창동식'은 업소 내 룸에서 여종업원이 나체쇼를 하고 유사성행위, 성행위 등을 하는 퇴폐영업을 말한다.


이 씨가 처음 유흥업계에 발은 디딘 것은 1997년. 당시 지방 모 대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한 그는 북창동 모 유흥업소에서 호객꾼, 일명 '삐끼'로 일하며 이 업계에 뛰어들었다.


삐끼로 일하던 중 2000년 그는 북창동에서 자신의 유흥업소를 개업했고,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북창동식' 영업을 최초로 도입했다.


'북창동식' 영업이 성공을 거두자 그는 2003년 송파구 방이동에 2개 업소를 개업하면서 본격적으로 강남에 진출했다.


이후 5년여 만에 논현동을 비롯한 강남 일대에 총 13개 업소를 운영하면서 그는 강남 유흥업계의 제왕으로 군림했다.


그는 여종업원들로 하여금 '룸 내 성행위', '룸 내 유사성행위 후 모텔 성관계', '룸 내 유사성행위' 등으로 구분된 코스를 손님이 원하는 대로 하게 해주는 방식으로 성매매를 알선했다.


이 중 '룸 내 성행위' 즉, '북창동식'이 인기를 얻으면서 그는 단기간에 고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그가 최초로 도입한 '북창동식' 영업은 이후 강남 유흥업계의 주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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