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주간=노현주 기자] 이화여대 최경희 총장은 지난 19일 중도 사퇴했다. 1889년 문을 연 이화여대 130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에 따라 최 전 총장 사퇴 후에도 '최순실 딸 특혜 의혹'에 대한 진실 규명 움직임이 지속될지 여부에 관심이 모인다.
최 총장은 19일 오후 2시5분께 보도자료를 통해 "저는 이제 이화가 더 이상 분열의 길에 서지 않고 다시 화합과 신뢰로 아름다운 이화 정신을 이어가자는 취지에서 오늘 총장직 사임을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미래라이프대학(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에 반대하며 지난 7월28일부터 본관 점거 농성을 벌여온 학생들은 즉각 공식 성명서를 발표해 "이화인들은 최 총장의 사임에 적극 동의하며 지극히 마땅하다"고 환영했다.
이대 교수 100여명은 최 총장이 사임 의사를 전한 뒤인 오후 3시30분에 교내 본관 앞에서 '해임 촉구' 시위를 강행하며 학생들과 연대한다는 뜻을 표명했다.
이들 학생과 교수는 총장 사퇴에 일단은 안도하고 있지만 최씨의 딸 정유라(20)씨에 대한 특혜 의혹 규명이 지지부진해지진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점거 농성 참여 학생들은 성명서에서 "(최 총장이) 단지 그간의 사건이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꼬리 자르기식으로 사임 발표를 하는 등 학내 문제에 대해 책임감 없는 모습을 보인 것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한다"며 "부정입학자의 입학 취소, 관련자 처벌 등 본인이 책임져야 하는 사항 역시 확실하게 책임질 것을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교수들 역시 집회 성명서에서 "최경희 총장이 (정씨 의혹에) 연관된 것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이는 단지 이화정신에 위배되는 정도가 아니라 사법처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범죄적 행위라고 여겨진다"며 계속해서 촉각을 곤두세울 것임을 시사했다.
반대로 최 총장의 사퇴가 의혹 규명의 '가속페달'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정씨 특혜 의혹이 이대 역사 130년에 유례가 없었던 '사건'을 불러온만큼 사회적 관심 및 집중도가 오히려 더 높아졌기 때문이다.
최 총장과 마찬가지로 특혜는 없다고 주장해온 내부 관계자들은 최 총장이 의혹 무마를 위해 사임을 결심한 것이 결코 아니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학교 당국 측 한 관계자는 "최 총장은 사태 초반부터 학내 분열과 갈등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있었다. 다만, 이전에는 어떻게든 자신이 직접 수습하는 것이 진짜 책임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라며 "오히려 최 총장은 '학교 차원의 특혜 같은 건 없었다는 진실'이 언젠간 입증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고 전했다.
이대 학교 당국은 지난 17일 ECC(Ewha Campus Complex) 이삼봉홀에서 교수, 교직원, 재학생 등을 대상으로 정씨 특혜 논란에 대해 해명하는 자리를 가졌다.
여기서 학교 당국은 이대가 정씨(2015학년도 입학)를 위해 이전 11개였던 체육특기자 전형 선발 종목 수를 그의 전공인 승마를 포함해 23개로 대폭 늘렸다는 의혹에 대해 "2013년 5월 체육과학부 교수회의에서 엘리트급 선수 지원 확대를 위해 결정했다"며 "이에 입학처는 2014년도 모집요강에 인정 종목 확대 변경을 예고했다"고 밝혔다.
또 지난 6월 체육특기생 관련 학칙을 개정해 정씨가 출석을 거의 하지 않고도 학점이 인정될 수 있도록 한 것 아니냐는 의심에 대해서는 "우수학생 선발을 위해 체육학부에서 필요성을 제기, 다른 대학의 사례를 종합 검토해 규정 개정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정씨가 마감 기간을 넘긴 과제물을 내고도 학점을 받은 것에 대해서는 "체육학부의 체육특기생 학사관리에 일부 문제점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왜 하필 정씨의 입학을 전후해 선발 종목 수를 확대하고 학칙을 개정했는지, 체육과학부 이모 교수가 정씨에게 극진한 경어를 써가며 과제물 첨삭지도까지 해준 이유가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는 납득할만한 설명이 이뤄지지 못한 상태다.
이대 교수협의회 회장인 김혜숙 인문대 교수는 17일 최 총장 측의 해명 자리가 끝난 직후 "의혹이 충분히 해소되지 못했다"고 평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