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 이은화 작가 시 읽기 67] 나는 과자예요

문화 / 이은화 작가 / 2026-01-12 10:4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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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자예요

이미산


함부로 깨물거나 천천히 녹이거나
당신의 취향이면 좋겠습니다

공글리고 희롱하다 단박에 삼켜도
당신으로 피어나니 다행입니다

모르는 사람이여
오늘은 심심하고 내일은 궁금한가요

내가 있잖아요
버려지고 구겨져도 애인처럼 바스락거리는

심야의 환한 편의점
변신을 기다리며 가지런히 배열된

나는 과자예요



▲ 이은화 작가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 시 감상 )  편의점을 감정이 머무는 장소로 바꿔놓는 이 시는 소비되는 자신의 운명을 부드럽고도 장난스럽게 드러냅니다. “당신의 취향”이라면 무엇도 괜찮다며 모든 선택권을 타인에게 맡기면서요. 생각 없이 집어 든 과자 한 봉지가 이렇게 다정하게 말을 걸어올 줄 누가 알았겠어요. “오늘은 심심하고 내일은 궁금한가요” 이 질문은 편의점 진열대 앞에 서 있는 우리의 마음을 예리하게 짚어내지요. 심심함과 호기심 사이에서 무언가를 집어 드는 그 순간의 심리를요.


“버려지고 구겨져도 애인처럼 바스락거리는” 구절 또한 인상적이에요. 과자 봉지 소리를 관계의 잔향처럼 표현한 이 시구는 현대인들의 가벼운 관계를 떠올리게 하니까요. 얇은 과자 봉지 같은 관계, 그 속에서도 “당신으로 피어나니 다행”이라는 화자의 고백은 묘하게 애틋합니다. 누군가에게 닿음으로써 외로움에 대한 위안을 얻고 안도하는 우리의 마음을 담고 있거든요.

불면의 성소처럼 환한 심야의 편의점, 그곳에서 “내가 있잖아요”라고 속삭이는 과자의 목소리. 깨물리고, 녹고, 삼켜지는 모든 순간을 사랑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이 시는, 친근한 ‘과자’라는 화자를 통해 현대인의 심심함과 궁금함, 그리고 그사이에 숨은 쓸쓸함을 말해주고 있어요. 이 때문일까요. 쓸쓸함으로 연결되기 쉬운 “모르는 사람여여”라는 익명성이 이 시에서는 오히려 다정한 초대가 되지요. 바쁜 생활 속 커피나 컵라면 등 감정을 회복해 줄 위로가 필요할 때 들리는 편의점, 우리 진열대를 서성일 때 “나는 과자예요”라며 건네는 화자의 다정한 위로에 조금은 즐거워지지 않을까요.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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