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보상이 법적으로 인정되는 추세…투자자들의 집단소송 가능...보상약관 개편, 금융당국의 처벌 강화 필요
[일요주간 = 김완재 기자] 지난 8월 8일, 수도권을 강타한 역대급 폭우로 인해 여의도에 위치한 한국투자증권 본사 사옥이 침수되면서 지하 전산실에 합선이 발생해 트레이딩 시스템(HTS, MTS)에 접속이 끊기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날 오후 4시경 발생한 전산시스템 오류는 이튿날 오전 7시 15분경이 돼서야 정상 복구되면서 무려 15시간이 넘는 ‘전산 장애’가 발생했다.
이번 전산 장애로 투자자들은 시장 상황에 맞게 대처하는 길이 원천 봉쇄돼 엄청난 금전적 손실을 봤다. 내 돈을 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투자자들은 주가가 하락할 때 손절매를 할 수 없어 손실을 봐야 했다. 추가매수도 불가능했다. 게다가 주가 상승에 매도하지 못해 수익기회를 상실하기도 했다.
![]() |
▲한국투자증권 전상 장애 피해보상 팝업 안내창. |
투자자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고, 결국 정일문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8월 9일 사과문을 통해 “불편사항을 접수해 주시면, 성실히 그리고 신속하게 조치하고 끝까지 책임질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한국투자증권이 제시한 ‘온라인 거래 장애 발생 시 보상기준 및 절차’는 “전화기록 및 전산시스템상에 주문 로그가 남아있는 주문 건에 한해서만 보상이 가능”하다고 돼 있다. 주문기록이 없으면 보상을 받지 못하는 셈이다.
해당 기준에 따르면, 투자자는 보유하고 있던 주식 등을 매도하겠다고 미리 주문해두지 않는 이상 보상받을 수 없다. 하지만 현실은 무시한 기준과 절차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지난 7일, 보도자료를 통해 한국투자증권의 ‘전산 장애’ 피해보상이 미흡하다고 직격했다.
이 딘체는 “MTS의 보급으로 스마트폰 앱에서 몇 번의 터치로 즉시 주문이 가능한 시대다. 사전에 전화 주문으로 매도 의사를 밝히는 투자자는 거의 없다”며 “투자자 입장에서는 접속조차 되지 않는데 어떻게 매도 의사를 밝히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러한 구시대적인 보상기준으로 피해배상에 나서는 것은 책임을 회피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투자증권 홈페이지에 올라온 민원접수 안내문 역시 소극적인 대처로 투자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해당 안내문은 ‘8/9 동시호가(또는 접속 가능한 가장 빠른 시간)에 매도해 손실 확정된 건에 한해 보상이 가능하다’고 돼 있다”며 “고객에게 직접 손실 여부를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게다가 8월 12일까지 접수된 건만 보상하겠다고 해 투자자에게는 고작 4일의 시간이 주어졌다. 해외 체류 중인 투자자는 모르고 넘어갔을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한국투자증권의 ‘전산 장애’로 투자자들은 금전적 손실은 물론, 소중한 자산에 대한 통제권을 잃어 정신적 피해도 극심하다. 집단소송도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고 밝혔다.
실제 미국에서는 2020년 증권거래 플랫폼 로빈후드(Robinhood)에서 전산장애 사태와 관련해 현재까지도 15만 명에 달하는 투자자들은 로빈후드에 990만 달러(약 136억 원)의 피해보상금을 요구하는 집단소송을 진행 중이다. 미국 금융당국은 7000만 달러(약 962억 원)의 벌금 및 보상 지급을 명했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전산 장애’ 피해보상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 기존까지는 투자자들이 증권사·거래소에 제기한 소송이 기각되거나 제한적으로 인정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2017년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에서 90분간 ‘전산 장애’가 발생했을 때, 투자자들은 집단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에서 패했다. 그러나 지난달 열린 항소심에서는 빗썸이 총 2억 5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로 뒤집혔다”고 전했다.
이어 “‘전산 장애’로 인한 손실이 법리적으로도 폭넓게 인정된다는 뜻이다. 심지어 한국투자증권에서 발생한 전산장애는 무려 15시간이다. 투자자의 피해는 더욱 명백하다”며 “시대가 변했음에도 증권사들의 구시대적인 피해보상 조항과 전산시스템 관리는 바뀌지 않고 있다. 그간 투자자들이 집단소송을 해도 보상금이 작으니 굳이 조항을 수정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제 금융소비자의 인식은 예전과 같지 않다. 고객 친화적인 피해보상안과 철저한 전산시스템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투자자들의 집단소송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한국투자증권은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면서 증권사들의 전산장애에 대해 금융당국의 엄중한 처벌을 촉구했다.
'시민과 공감하는 언론 일요주간에 제보하시면 뉴스가 됩니다'
▷ [전화] 02–862-1888
▷ [메일] ilyoweekly@daum.net
[ⓒ 일요주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