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 이은화 작가 시 읽기⑯] 식구 – 함께 밥을 먹는 사람들

문화 / 이은화 작가 / 2025-03-31 09:3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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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 –함께 밥을 먹는 사람들
시인 이현정

식구 – 함께 밥을 먹는 사람들


이현정


편의점 창가 자리
오천 원 도시락 앞

하나둘 모여 앉은
낯익은 얼굴들

늦저녁 각자 찬으로
허기짐 덜어내며

오늘 하루 어땠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 마디 말 없어도
곁을 내준
그것만으로도

저무는 위로가 되어
저마다의
식구가 되어


▲ 이은화 작가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시 평론) 이현정 시인의 『지구를 돌리며 왔다』 에 실린 시어들은 뜰채에 건져 올린 것처럼 명징하게 읽힌다. 뜰채의 망을 치고 튀어 오르는 은빛 고기 떼처럼 밑힘이 단단한 시. 시를 이렇게 가볍게 써도 되는가, 오해하게 되는 시. 수식이 담백한 시인의 글을 읽으며 묻는다. 독자와 거리를 좁히는 간결한 밀착성이 내게는 있는가.


「식구」의 시적 공간은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편의점 창가에서 ‘늦은 저녁’을 먹는 ‘낯익은 얼굴들’은 말이 없다. 그저 서로의 곁을 내어줄 뿐, 창밖을 보거나 폰을 만지며 먹는 밥. 채워지는 빈자리는 오히려 씁쓸하고 곁이 멀다. 마치 지친 여행객들이 모여 먹는 밥처럼 말이다. 편리함과 쓸쓸함이 공존하는 편의점의 식사, 간편함 뒤에 숨겨진 현대인의 불편한 식문화를 반영하고 있는 시를 읽으며 ‘먹는 데서 정 난다’는 옛말이 떠오른다. 사회적 유대감이 사라져 가는 오늘날 불편한 진실을 들춘 시인의 글은 우리에게 건강한 식문화에 대한 물음과 이에 관한 고민을 모색하게 한다.

「식구」에서 볼 수 있듯 시인의 시들은 가볍게 던진 말이 울림이 되고 이 울림은 읽는 이의 마음을 전이시키는 힘이 갖는다. 이처럼 발랄한 느낌과 진중함의 이원적 얼굴을 가진 시편들에서 어떤 모습이 시인의 시적 모습인가 되묻는 일을 어리석을 것이다. 시인에게 시란 결국 ‘삶’입니다. 삶의 여정과 소멸, 사랑과 이별, 아픔과 위로 등의 주제가 상상과 현실 속의 대상과 만나 시로 태어’났다고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인터뷰 기사에서 알 수 있듯 시인의 단정한 시행들은 누구나 공감하기 쉬운 사건과 일상을 녹여내고 있다.

‘오다’의 사전적 의미는 옮기다, 곧 ‘움직이다’라는 뜻을 내포한다. 『지구를 돌리며 왔다』의 제목처럼 한 권의 시집을 묶기까지 작가의 부단한 노력이 담긴 책. 이 시집은 지구가 자전하며 변화하는 사회의 패러다임을 인문학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현대인들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일까. ‘식구’는 단단하고 끈끈하다. 누구도 깰 수 없고 깨서도 안 되는 성지와 같다.


사회의 가장 작은 공동체인 ‘식구’, 시작이자 끝의 중심인 가족이 붕괴하면 우리 삶은 무엇이 남을까. 자칫 놓치기 쉬운 풍경을 포착한 시인의 예리함은 독수리의 눈처럼 날카롭다. 이처럼 공동체 식탁을 함께 쓴다는 의미를 함의하고 있는 「식구」, 시인이 제시한 이런 가족의 형태가 건강한 문화인지 고민해 볼 일이다. 가족이 분화되고 있는 사회 현상을 담은 시를 읽는 동안 ‘식구’라는 말, 마음 뭉클해진다.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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