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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
물론 우리나라 정치는 당장 직면해 있는 수많은 과제를 감당하기에도 어렵고 벅차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대내외 환경을 살피고, 그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여 변화에 대처하라는 정치 석학들의 조언은 이상주의의 허황한 소리로 들리거나, 아니면 현실의 정치 비리에 눈을 가리려는 수단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며 어물쩍 넘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당장 눈앞에 벌어지는 사안에만 급급하게 대처하며 다가오는 큰 정치적인 사안은 그때 가서 보자는 사고로 임하였기에 숱한 난제와 도전을 겪고 있다. 우리 정치가 겪고 있는 도전은 어느 때나 있었고 그때마다 뼈를 깎는 자기 성찰과 개혁으로 시대의 파고를 넘어왔다.
개혁과 혁신은 선거를 앞둔 정당들의 습관성 몸풀기 구호인가. 총선이 가까워지니 여ㆍ야 정치인 누구나 외치는 중요 구호가 개혁과 혁신으로 이미 써 먹을 대로 써먹은 누더기 혁신을 꺼내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 민주당이 개혁을 외치며 이재명 대표는 국회 연설에서 불체포 특권 포기를 선언하며 스스로 검찰에서 조사를 받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을 뼈를 발라내는 아픔으로 모든 것을 바꾸겠다며 김은경 혁신호를 띄웠으나 시작 전부터 계파 안배를 보며 결과는 글쎄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김기현 여당 대표도 취임 100일 회견에서 의원 수 축소, 불체포 특권 포기, 무노동 무임금 등 3대 정치 개혁 과제로 내걸고 추진하겠다고 말했지만, 이 말은 정치적 수사로 기만이 노골적이다. 구시대 특권을 포기하겠다고? 말은 비단결인데 그들의 정당 운영 행동을 반추해 보면 생뚱맞다. 오죽하면 윤여준 전 장관이 "당 관리를 대표가 하나, 대통령이 하고 있지 않나"라는 질타가 있을까.
지난 총선에서 불체포 특권 포기를 선거 중요 공약으로 내걸며 국회의원의 강력한 개혁을 약속했던 민주당의 공약은 공약(空約)으로 뭉개며 자당 의원들의 구속엔 무조건 반대하는 '방탄 국회'를 연출했다. 중앙선관위의 불법 채용 의혹과 '국정 농단' '경제 공동체'라는 신묘한 법률 용어를 엮어 대통령을 탄핵했던 특검도 스스로 특대형 비리(대장동 사건)에 휘말려 있다. 이쯤 되면 힘 있고 권력이 있는 곳에 개혁이란 용어는 아무 작에도 쓸모없는 구호인 셈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나라에선 어떤 세력이든 다수 여론만 장악하면 헌법을 무시하고 무슨 조치든 자의적으로 취할 수 있다고 여기는 중우정치의 미망과 군중 독재의 유혹이 판을 쳐왔다. 무력한 개인을 유혹하는 집단주의의 정치구조와 이에 따른 지나친 일방성에 동의할 수 없는 세상이 되어있다. 이러한 것은 건전한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하는 중대한 요인으로 보인다. 무엇이든 다수면 된다는 편견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현실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나라 정치인을 보며 느끼는 게 개혁이라는 용어이다.
비정상의 정상화가 개혁이다. 특권에 몸을 숨긴 기득권의 정치 표상과 대안 비전 부재의 정당, 불법ㆍ부패에 젖어 아무리 세탁해도 냄새나는 도덕적 타락으로 쓴웃음을 짖게 하는 우리 정치에, 여ㆍ야당 대표는 정치 개혁을 경쟁하듯 서둘러 발표하며 지키지도 못할 개혁을 어젠다로 띄우고 있다. 모순투성이의 구습 타파를 외치며 시작된 개혁은 과거 잘못을 바로잡아 새 시대를 열겠다는 약속이다. 권력을 새로 쥔 자치고 이 말을 하지 않는 이가 드물다. 그러나 실제로 한 일은 옛사람을 쳐내거나 내게 유리한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특히 우스운 것은 이전 권력이 누리던 특권이 있다면 제도는 그대로 둔 채 누리는 사람만 바꿔치기했다. 그런 개혁치고 목표를 제대로 달성한 사례가 드물다.
역사에 성공한 개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성공한 개혁은 바꿔야 할 대상을 사람보다 제도에 뒀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제도를 누구에게 적용하는가'였다. 성공한 많은 개혁과 바뀐 제도를 자신에게 먼저 적용했다. 그 과정에서 승자로서 누릴 수 있던 특권도 포기했다. 국가의 구습을 바꾸겠다며 개혁하는 정치인의 다짐은 말이나 제도를 고치는 것이 아닌 솔선수범과 자기희생을 통해 완성된다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불분명한 형태로 구호화된 개혁은, 계층과 계층, 세대와 세대, 지역과 지역, 심리적 불행 의식, 이념의 차이, 사회에 존재하기 마련인 권위인정의 경쟁 등 이러한 틈들에 존재하는 부정적인 힘들을 총동원하는 방관일 수 있으나 적극적으로 정치의 비전을 보여주는 슬로건은 아니다.
민주당이 국회에서 방송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내건 명분이 개혁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특정 정파가 공영 방송을 좌지우지하는 관행을 끊고 공영 방송을 국민에게 돌려 드린다"고 했다. 그런데 그 국민이 누구를 가르키는지 대상이 모호하기에 그 말의 진의가 의심스럽다. 박근혜 정부 시절 마련했던 개혁 법안을 자신들이 집권하자 외면했다가 이제 다시 추진하는 것은 정당한 개혁인지 국민은 묻고 있다. 이 문제 지적에 관해 여당도 자유로울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여ㆍ야 가릴 것 없이 공영 방송을 정파의 이익 실현에 도구로 삼는 형태를 반복했다.
우리 정치에 개혁이란 결국 싸움판의 표어나 협박용 단어가 되면서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않는 공허한 말이 되었다. 중요한 것으로 정치권이 자신들이 필요할 때마다 단골로 즐겨 쓰는 개혁이라는 언어다. 이것은 진보 정권, 보수 정권 가릴 것 없이 집권만 했다 하면 단골 메뉴로 쓰는 주요 슬로건이다. 그러나 개혁이라는 수사는 무엇을 개혁하겠다는 것인가를 일관성 있게 보여준 일이 드물었다. 여ㆍ야 모두 그 나물이 그 밥으로 그 밥그릇 개혁을 하겠다니 개혁을 시작도 하기 전 공염불이 될까 우려스럽다.
이 나라 정치인은 시대적 과제인 개혁을 자신들이 먼저 해야 하지 않겠는가. 자신들은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 사회와 국민만 개혁해야 한다면 개혁은 요원한 정치적 구호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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