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성희롱 신고하니 90% 방치·83% 보복 [포커스]

사회 / 김성환 기자 / 2022-05-19 13: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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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갑질119, 19일부터 ‘성희롱 방치·성차별’ 노동위원회 구제신청 가능
▲참고자료. (사진=픽사베이)

 

[일요주간 = 김성환 기자]  

# 직장 상사로부터 성추행당한 후 가해자는 아무렇지 않게 저를 대했고, 증인인 다른 상사는 모른 척했습니다. 두 달이 지나서야 겨우 용기를 내 회사에 신고했지만, 돌아오는 건 차가운 시선들이었습니다. 부장은 저에게 가해자가 했던 업무를 떠넘기고, 큰소리로 면박을 주기도 했습니다. 같은 팀원들은 저를 따돌렸습니다. 노동청에도 결국 신고했는데, 저를 빼고 사무실 이사를 하더라고요. 완전히 회사에서 투명 인간이 됐습니다.

# 이사장이 업무 시간에 여직원이 앉아 일하고 있으면 옆에 다가가 여직원 팔에 자기 엉덩이가 닿도록 앉아서 음담패설을 수시로 합니다. “너는 옆 라인이 이쁘다.”, “여직원들은 치마를 입어야 이쁘게 보인다.”, “여자는 가슴이 커야 한다.”, “눈이 매력적이다” 등등 성적 농담은 기본이고 음담패설을 수시로 합니다. 이 외에도 불합리한 일이 너무 많지만 이사장이라 불이익을 당할까봐 신고하기가 너무 두렵습니다.

정치권이 여야 가릴 것 없이 성희롱·성추행 문제로 시끄럽다. 윤재순 대통령비서실 총무비서관은 지하철 성추행 문제에 대해 ‘사내아이들의 자유가 보장된 곳’이라고 묘사하는 시를 쓰고, 검찰 재직 당시 동료직원들에게 성희롱 발언을 일삼았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민주당 박완주 의원은 성비위 의혹으로 제명됐다.

19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지난해 1월부터 올해 3월까지 신원이 확인된 이메일 제보 중 자세한 피해 내용까지 확인할 수 있는 205건의 직장 내 성희롱 제보 메일을 분석한 결과, 성희롱을 신고한 노동자는 100명으로 48.8%였다.

직장 내 성희롱을 신고한 노동자들을 조사한 결과, 피해자 보호 등 조치의무 위반을 경험했다가 90건으로 90%였고, 신고했다는 이유로 불리한 처우를 한 건수는 83%에 달했다. 성희롱 신고자 10명 중 9명은 법적 의무사항(바로 조사·피해자 보호·가해자 징계·불리한 처우 금지·비밀누설 금지)이 지켜지지 않고 방치됐고, 신고자의 83%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저할 수 있는 보복 갑질을 당했다.

직장 내 성희롱 행위자는 사용자 25.9%(53건), 상급자 64.4%(132건)로 전체의 90.2%(185건)가 직장에서 위력 관계를 맺은 상급자였다. 직장 내 성희롱을 당한 피해자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는 79.0%(162건)였다. 직장 내 성희롱을 하는 가해자는 직장 내 괴롭힘을 병행하고 있다는 의미다. 직장 내 성희롱 행위자의 9.8%는 동료, 5.4%는 제삼자였다.

유형별로는 언어적 성희롱이 156건으로 76.1%로 가장 많았다. 이어 신체적 성희롱(성추행) 89건(43.4%), 시각적 성희롱 13건(6.3%)이었다.

직장갑질119는 “직장 내 성희롱은 성차별적 분위기에서 더욱 만연하다”며 “지금까지 고용상 성차별과 성차별적 괴롭힘을 당했을 경우 노동청 진정만 가능했다. 위법 행위에 대한 처벌이나 시정은 요구할 수 있지만, 신고의 부담을 갖는 피해자에 대한 배상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동부 신고이기 때문에 입증 책임도 피해자에게만 있었다”며 “직장에서 성차별적인 말을 듣거나, 실제 고용상 성차별이 발생하는 사례는 많은데 신고하는 부담은 피해자에게만 있다”고 했다.

직장갑질119가 더불어민주당 송옥주 의원실을 통해 고용노동부에 받은 자료에 따르면, ‘고용상 성차별 익명신고센터’의 사건 처리현황에서 2021년 1월부터 2022년 3월까지 고용상 성차별 신고 건수는 542건이었는데 성차별 신고가 들어온 사업장에 대해 근로감독을 나간 횟수는 0건이었다.

직장갑질119는 “신고의 부담은 피해자에게만 있는데, 신고해도 노동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며 “대한민국 여성직장인은 성희롱을 당해도 방치당하고, 성차별이 발생해도 혼자 싸워야 한다”고 비판했다.

한편, 이날부터 ‘남녀고용평등법’과 ‘노동위원회법’ 개정으로 ▲고용상 성차별이 발생하거나 ▲직장 내 성희롱·고객 등 제3자에 의한 성희롱 신고에 대한 조치 미이행 ▲성희롱 신고 후 불리한 처우에 대해 노동위원회에 시정신청이 가능하다.

원칙적으로는 이날 이후 발생한 행위에 대해서만 시정신청이 가능하지만, 법 시행일 전에 행위가 발생해도 이날 이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면 시정신청을 할 수 있다.

직장갑질119는 개정법 시행을 맞아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대한민국 직장여성 살아남기-성희롱 방치·성차별 노동위에 신고하세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강은희 변호사 “여성들이 마주하는 성희롱과 성차별 개인이 겪는 개별 사건의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직종을 가리지 않고 발생한다”며 “이는 성차별적 직장 문화와 만연한 직장 내 성희롱은 일터에서의 성차별은 건재함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어 “남녀고용평등법 개정 전 지금까지는 고용노동청 진정 등을 통해 여성들은 성희롱과 성차별을 신고해도 적절한 조치나 배상받지 못했다”며 “이번 법 개정으로 성차별적인 직장 문화가 조금이나마 개선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장종수 노무사는 “개정 시행되는 고용평등법의 사각지대는 없다. 대기업도, 5인 미만 사업장도 예외는 아니다”며 “개정 시행되는 고용평등법을 통해 성차별적인 직장 문화가 변화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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