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자: 이화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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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화열 작가 |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이화열 (Hwa-Yeal LEE) 파리 거주, 언어로 삶을 그리는 에세이스트아트 디렉터이자 디자이너 출신의 에세이스트.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으며 파리 국립 타이포그래피 연구소(ANCT)에서 수학했다. 도시 디자인 전문 회사를 이끌며 아트 디렉터로 활동하다가, 시각적인 이미지를 넘어 언어로 삶의 풍경을 그려낸다. 현재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파리라는 도시 안에서 이방인의 낯선 시선과 생활인의 내밀한 감각으로 사람들과 도시가 품은 이야기를 섬세하게 관찰하고 기록하고 있다.
Q 파리에서 활동하시는 이화열 작가님을 모셨습니다. 최근 파리에서의 일상은 어떤가요?
▶ 부모님을 떠나보내고, 아이들도 독립해서 떠났습니다. 허전하기도 하지만, 이제야 비로소 타인이 아닌 온전히 저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찾아온 것이죠.
요즘 제 일상을 채우는 동사들은 아주 단순합니다. ‘쓰다’, ‘읽다’, ‘걷다’, 그리고 ‘만들다.’ 화려한 수식어는 걷어냈지만, 그 빈자리를 본질적인 행위들이 꽉 채우고 있습니다. 특히 저에게 파리는 거대한 서재와도 같습니다. 걷기에 참 좋은 도시니까요. 낡은 골목을 걷다 보면 눈에 밟히는 풍경들이 자연스럽게 문장이 되고, 글감이 되어주곤 합니다.
무엇보다 최근 제 일상에서 빠질 수 없는 즐거움은 ‘피아노’입니다. 난생처음 피아노를 배우고 있어요. 피아니스트가 될 일은 전혀 없으니, 잘해야 한다는 강박 없이 순전히 저만의 즐거움을 위해 건반을 누릅니다. 완벽에 도달하려는 야망 없이, 서툰 연주 속에서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소리를 발견하는 기쁨이 꽤 큽니다. 마치 매일 새로운 감각을 배우는 학생이 된 기분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런 몰입의 시간이야말로, 인생의 숙제를 마치고 나서 떠나게 되는 나만의 자유 여행이 아닐까 싶습니다.
Q 지난 10월 한국에 다녀가셨는데, 이번 방문에서 특별히 의미 있었던 일이 있었나요?
▶ 파리에 거주한다는 거리상의 제약 때문에 꽤 오랜 시간 책을 펴내면서도 독자들과 직접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북토크 자리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솔직히 그동안 저에게 독자란 인터넷 서점의 판매 수치나 소셜 미디어의 짧은 댓글로만 가늠할 수 있는, 다소 막연하고 추상적인 대상이었습니다. 모니터 너머 어딘가에 존재하는 신기루 같았다고 할까요.
그런데 이번에 그분들을 직접 만나 눈을 맞추고, 제 글이 그들의 삶에 스며들어 어떤 파동을 일으켰는지를 육성으로 전해 듣는 시간은 저자로서 잊지 못할 경험이었습니다. 어떤 독자분이 “작가님이 제 머릿속 복잡한 생각들을 딱 잡아서 끄집어내 주신 것 같았어요”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글쓰기란 지극히 고독하고 일방적인 작업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결국 제 내면의 사유가 타인의 삶과 만나 공명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기분이었습니다.
지방 북토크에서 책에 사인을 하려는데, 책의 앞 페이지가 깨알 같은 메모로 반이나 채워져 있는 걸 보며 ‘과연 나는 이토록 치열하게 책을 읽는 독자인가’ 하는 반성을 하기도 했죠. 북토크는 그 막연했던 ‘연결’을 실체로 확인하는 자리였고, 앞으로 더 성실하게 써야겠다는 기분 좋은 책임감을 안겨주었습니다.
Q 특히 이번 신간 『고요한 결심』이 출간되자마자 많은 관심을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 감사하게도 출간 한 달 만에 중쇄를 찍었습니다. 사실 ‘조력사’라는 주제가 낯설고 무겁기에, 독자분들이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조심스러운 마음이 컸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늙고 병드는 과정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아픈 부모를 돌보는 분들은 그 모습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미래를 겹쳐 보게 됩니다. ‘나도 저렇게 되면 어떡하지?’, ‘나는 어떻게 존엄을 지킬 수 있을까?’
결국 이 책이 던지는 질문들이, 이제는 어떤 특수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생의 문제이기에 독자들의 공감과 맞닿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Q 신간을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전에,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전작 『지지 않는 하루』와 『서재 이혼시키기』는 어떤 책인지 간략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지지 않는 하루』는 직장암 판정을 받고 보낸, 제 인생에서 의도치 않았지만 가장 ‘특별했던’ 1년의 기록입니다. 죽음의 문턱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삶의 유한함을 깨닫게 해주는 선물이 되기도 합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우리 안의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실패나 타인의 시선 같은 실체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현재를 저당 잡히곤 하니까요. 그 두려움에 덜미를 잡히지 않고,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지금, 여기’의 감각으로 오늘 하루를 후회 없이 살아내는 태도, 그것이 제가 말하고 싶었던 ‘지지 않는 하루’입니다.
『서재 이혼 시키기』는 제목을 보고 의아해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보통 부부라면 서재를 합치는 것을 꿈꾸니까요. 몇 년 전 저희 부부는 합쳤던 서재를 나누기로 했습니다. 문득 각자의 서재 속의 책들을 들여다보면서, ‘닮음’에 대한 열망 때문에 서로의 ‘다름’을 간과하고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책은 타인과 함께 살아가면서도 어떻게 ‘나’라는 자아를 잃지 않고 독립적인 삶의 태도를 견지할 수 있을까, 그 치열한 고민을 유쾌하게 풀어낸 일종의 ‘결혼 생존 보고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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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1월, 대전 <버찌 책방>에서 열린 북토크 현장. |
Q 이번 신간 『고요한 결심』을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 우리는 늙음과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꺼려합니다. 늘 죽음이란 나와 상관없는 ‘3인칭’의 사건이라고 믿고 싶어 하죠. 하지만 우리는 가까운 ‘2인칭’의 죽음을 목격함으로써, 비로소 피할 수 없는 나의 ‘1인칭’ 죽음을 돌아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일 년 전, 시어머니 아를레트가 스위스에서 조력사를 선택하셨습니다. 그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며 저는 사람마다 삶의 모양이 다르듯, 죽음을 대하는 태도 또한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몽테뉴는 “철학은 죽음을 배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우리 일상에서 ‘오늘 점심 뭐 먹지’를 고민하는 것처럼, 죽음에 대한 사색을 일상으로 불러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죽음을 사색한다는 것은, 죽음이라는 그림자를 통해 ‘지금, 여기’의 삶을 더 선명하고 밀도 있게 감각하는 방법이자, 두려움 없이 자기 생의 주인이 되기 위한 가장 적극적인 삶의 기술입니다.
남의 생각으로 살아온 사람은 결국 남의 생각으로 죽게 됩니다. 내가 정작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데, 죽음의 방식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는 없겠죠. 시어머니의 선택은 신체의 쇠락 앞에서도 ‘나’라는 존재의 질서를 끝까지 무너뜨리지 않으려는 단호한 의지였습니다.
이 책, 『고요한 결심』은 3인칭 죽음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비춰보는 질문들입니다. 어떻게 사랑하며,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그리고 ‘잘 떠나는 삶’이란 과연 어떤 모습인가에 대한….
Q 가족의 조력사라는 내밀한 주제를 다루면서 집필 과정에서 가장 고민한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 가장 힘들었던 건 ‘윤리적 부채감’이었습니다. 시어머니의 죽음은 온전히 그분의 것인데, 제가 글로 옮기는 순간 그것은 ‘이야기’가 되고 ‘소재’가 되니까요.
가장 두려웠던 건, 나의 글쓰기가 혹여나 그분의 고통을 평면적으로 그리거나, 문학적 성취를 위해 타인의 죽음을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자기 검열이었습니다. 살아있는 자가 떠난 자의 침묵을 빌려 말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에 대한 고민이 집필 내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책이 단순히 ‘조력사 찬성론’으로 읽히는 것을 가장 경계했습니다. 한 인간의 고유한 삶과 죽음이 ‘찬반 논쟁’의 장작으로만 소비되는 것은 원치 않았으니까요. 어머니의 선택을 사회적 이슈로 확장하면서도, 동시에 그분 개인의 고유한 태도를 훼손하지 않고 온전히 지켜내는 것. 그 균형을 잡는 일이 가장 큰 숙제였습니다.
하지만, 이 기록이 단순히 조력사라는 제도에 대한 논쟁을 넘어, 우리가 모두 언젠가 마주할 늙음과 죽음에 대한 보편적인 성찰로 확장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Q 시어머님의 조력사 결정을 처음 들었을 때 심경은 어떠셨나요? 가족으로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충격이었습니다. 한 번도 예상하지 못한 결정이었으니까요. 내 앞에서 “이제 그만 떠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무엇보다 삶의 문을 스스로 닫으려 결심하기까지 혼자 견뎠을 시간들 앞에서, 곁에 있던 우리는 정작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는 무력감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보내드리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지만, 사랑하는 존재를 잃지 않고 싶은 감정 사이에 어쩔 수 없는 비통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떠나신 뒤에야 끝까지 존엄을 잃지 않으려 했던 그 단호한 뜻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사실 그것을 지켜보는 3개월의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떠나보낼 사람과 충분히 이별할 수 있는 3개월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 우리에게 남겨준 고마운 선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Q 시어머니 아를레트와의 관계는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 사람들이 종종 “참 좋은 고부관계였네요. 부러워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저는 그 관계를 단순히 ‘좋았다’는 말로 이상화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존중의 거리’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가까워서 서로를 침해하지 않고, 너무 멀어서 무심하지 않은, 거리 말이죠.
누군가를 돕는다는 건, 그 사람의 자유와 자존을 지켜주는 일이라는 걸 그녀를 통해 배웠습니다. 아를레트와 함께하면서 저는 스스로에게 질문했습니다. ‘만약 그녀가 한국에서 같은 상황이었다면 조력사를 선택했을까?’ 저는 그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시어머니는 자존의 기준, 인간적인 독립의 최소선을 스스로 정하고 싶어 했고, 그걸 허용하지 않는 돌봄은 그녀에게 진정한 돌봄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녀의 선택은 단순한 완고함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자 했던 태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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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록하는 습관이 이야기를 만든다. 파리, 이화열 작가 |
Q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느끼신 죽음에 대한 문화적 차이, 특히 조력사에 대한 시각차는 어떤가요?
흥미로운 점은 한국의 여론입니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 한국 성인의 약 75~80%가 조력사 입법에 찬성한다고 합니다. 수치상으로는 프랑스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높은 편이죠. 대중의 인식은 이미 변하고 있는데, 현실적으로는 프랑스나 한국이나 죽음에 대한 자기 결정권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물론, 두 나라 사이에는 죽음에 대한 문화적인 차이가 존재합니다. 제 아들이 할머니의 결정을 슬퍼하면서도 단호하게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하지만 엄마, 그건 온전히 할머니의 선택이야.” 프랑스에는 가족이라 해도 개인의 고유한 결정권에는 감히 개입할 수 없다는 명확한 인식이 깔려 있습니다. 내 삶의 주인은 철저히 ‘나’라는 것이죠.
반면 한국에서의 죽음은 여전히 ‘관계 안에서의 사건’입니다. 나의 죽음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 아니라, 남겨질 가족과 공동체의 것이기도 하니까요. ‘효(孝)’라는 정서 안에서 인위적으로 생명의 끈을 놓는 행위는 죄책감을 동반합니다. 가족 된 도리로 끝까지 붙잡는 것이 사랑이라 믿는 문화 속에서, 조력사는 자칫 패륜이나 생명 경시로 오독될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실제로 제 나이의 친구들을 보면, 자신의 조력사에는 찬성하지만 정작 부모님의 조력사를 받아들이기는 어려워하는 정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두 문화가 마주하는 질문의 끝은 같습니다. ‘숨만 붙어 있는 생존이 과연 삶인가.’ 방식과 속도는 다르지만, 고통 없이 존엄하게 생을 마감하고 싶은 바람은 지극히 인간 본연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Q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존엄’과 ‘인간다움’의 정의는 무엇인가요?
▶ 존엄과 인간다움에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이는 자신이 더 이상 타인에게 유용하지 않다는 사실에서 존엄의 상실을 느낍니다. 또 누군가에게는 기억을 잃어가는 것이 가장 큰 공포일 수 있죠. 시어머니 아를레트는 병원이나 요양 시설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타인의 손에 전적으로 의지해야만 생명을 부지할 수 있는 상태, 즉 ‘최소한의 자립’이 무너진 상황을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여겼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존엄의 핵심은 ‘삶에 대한 통제권’을 마지막 순간까지 타인에게 양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 운명을 기계적인 의료 시스템의 연명 치료나, 가족들의 죄책감 섞인 결정에 맡기지 않는 주체성 말입니다. 한국에서는 종종 중증 환자에게 가족들이 병명을 숨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환자를 보호하려는 사랑의 마음이겠지만, 저는 그것이 엄밀히 말해 한 인간이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마침표를 찍을 기회를 박탈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진실을 알 권리, 그리고 내 남은 시간을 어떻게 쓸지 결정할 권리를 빼앗는 것이니까요.
결국 인간다움이란 ‘자기 삶의 언어’를 갖는 것입니다. 남의 시선, 남의 기준에 맞춰 평생을 살아온 사람은 죽음조차 남의 생각대로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무엇을 욕망하고, 무엇을 견딜 수 없는지를 정확히 아는 것. 그 치열한 ‘자기 앎’이 선행되어야 비로소 존엄한 선택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Q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이나 탐구하고 싶은 주제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 가능하다면 꾸준히 한국어로 제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고, 프랑스어로 책을 쓰는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내년 아비뇽 연극 페스티벌에서 박완서 작가의 단편을 번역극으로 올리는 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가장 집중하고 싶은 작업은, 파리에서 보낸 30년의 시간을 기록하는 일입니다. 코로나 이후 다시 붐비는 도시를 보며 ‘진짜 파리스러운 건 무엇일까’를 자문했습니다. 저에게 그것은 에펠탑 같은 랜드마크가 아니라, 낡은 탁자와 골목 모퉁이, 소리와 이미지, 문학적 기억의 파편들입니다. 그 30년의 질감을 사진과 글로 정리해 보고 싶습니다.
이런 집필 계획과는 별개로, 생활인으로서 제 삶의 계획은 훨씬 단순하고 구체적입니다. 건강보조제보다 맛있는 요리를 해서 좋은 와인과 함께 나누는 것. 사진 찍고, 글 쓰고, 서툰 피아노를 치고, 더 늙기 전에 바다낚시를 자주 가는 것. 거기에 작은 시골집의 정원까지 가꿀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요.
저는 스스로에게 ‘지금, 괜찮나?’라는 질문을 종종 던집니다. 그 질문에 ‘괜찮다’고 답할 수 있다면, 마지막 순간도 괜찮을 거라 믿습니다.
Q 긴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독자분들께 마지막으로 전하실 말씀이 있는지요?
▶ 우리가 긴 시간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사실 이 모든 것은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삶’을 더 선명하게 비추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침표를 어떻게 찍을지 고민하는 사람은, 그 문장의 중간 과정을 결코 허투루 쓰지 않습니다. 내 생의 마지막 페이지를 존엄하게 덮고 싶다는 소망은, 결국 오늘이라는 페이지를 성실하고 아름답게 채워 넣으려는 태도로 이어집니다. 타인의 시선이나 세상이 정해준 정답을 좇느라, 정작 자신이 누려야 할 행복을 뒤로 미루지 마십시오. 남들을 위해 살기에 우리 인생은 너무나 짧고 귀합니다.
조지 오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결국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대신해 생각하게 될 것이다.” (S’ils ne savent pas bien penser, d'autres penseront à leur place.)
‘나’라는 주어를 잃지 마시고, 지금 당신의 창가에 든 햇살 한 조각을 기꺼이 환대해 주십시오. 그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가장 충만하게 사랑하는 방식일 테니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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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화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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