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생
파스칼 키냐르
그런데 사랑이란 정확히 이런 것이다: 은밀한 생, 분리된 성스러운 삶, 사회로부터 격리된 삶. 그것이 가족과 사회로부터 격리된 삶인 이유는, 그러한 삶이 가족보다 먼저, 사회보다 먼저, 빛보다 먼저, 언어보다 먼저, 삶을 되살리기 때문이다. 어둠 속, 목소리도 없는, 출생조차도 알지 못하는, 태생(胎生)의 삶. - 파스칼 키냐르, 『은밀한 생』, P.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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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화 작가 |
사랑은 ‘가족보다 먼저, 사회보다 먼저, 빛보다 먼저, 언어보다 먼저, 삶을 되살리기 때문이다.’라고 서술한 파스칼 키냐르의 『은밀한 생』. 이 문장은 마치 사랑을 위해 반사회적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고백하는 듯 들린다. 그 무엇보다도 ‘먼저’라고 강조하는 사랑!, 한 번쯤 돌아보라. 우리에게 사랑은 무엇이었는지. 그 순간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던 마음과 그 순간 그 사람을 놓치면 삶이 끝일 것 같은 절박함, 그 갈망이 동물의 순수한 욕구처럼 발동되던 순간을.
사랑은 많을 걸 포기할 수 있게 함과 동시에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힘을 갖는다. 이 거대한 감정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수 세기 동안 사랑의 본질을 탐색했지만 수학적 정의를 내리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예술의 영역 안에서 은유와 상징으로 표현되는 사랑은 지금도 고갈되지 않는 현재형이다.
「배를 매며」에서 ‘사랑은,/ 호젓한 부둣가에서 우연히,/ 별 그럴 일도 없으면서 넋 놓고 앉았다가/ 배가 들어와/ 던져지는 밧줄을 받는 것’이라고 장석남 시인은 노래한다. 사랑이란 갑자기 날아든 밧줄을 잡는 것과 같아 순간 저항할 수 없는 사랑의 시작이라고.
두 시인의 시처럼 사랑은 어느 방향에서 어떤 모습으로 올지 예측할 수 없는 일, 사랑이란 초자연적 힘으로 우리를 지배하는 것. 몸과 정신에 깃들어 우리를 흔들어 놓고 홀연히 떠나는 신들림과 같은 것. 사람의 의지를 넘어서는 사랑, 이처럼 우아미와 합일하기 힘든 영역을 우리는 왜 이루고자 하는 것일까. 형체가 없어 더 매혹적인, 우리의 이 사랑은 어디쯤 오고 있는 것일까. 귀밑머리만 스치고 지나간다면 얄궂다 할 수 있을까.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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