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 이은화 작가 시 읽기 65] 천국

문화 / 이은화 작가 / 2025-12-29 11: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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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이만영


눈먼
낙타가 먹구름 속을 지나고 있다

발자국 소리에 하늘이 뚫린다
사방 천지에 내리치는 폭풍우

새카매진 얼굴로
미끄러운 사막을 맨발로 걸어가면
빛바랜 그림자가 돋아날 듯

뼈를 끌어안고 죽은
화석으로 발굴될 것이다

우리들의 사인은
고독사孤獨死

아이들이
연기를 꼬아 만든 밧줄에 매달린 채

천국의
바늘구멍을 통과하고 있다



▲ 이은화 작가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 시 감상 ) “우리들의 사인은 / 고독사”, 이 잔혹한 문장은 감정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죽음의 원인을 분석하듯 오히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부검하지요. 죽음의 자세가 아닌 죽음의 흔적으로 남은 “화석”, 이 시의 화석은 이름 대신 연대를 부여받고 슬픔 대신 표본 번호를 얻게 되지요. 죽음이 연구될 뿐 애도 되지 못하는 애석함과 함께요. 인간의 존재가 과학적 자료가 되는 쓸쓸함을 담고 있는 시.


특히 혼자 죽는 순간보다, 살아있는 동안 이어진 외로움을 생각하게 하는 고독사. 시인은 이 고독사 앞에 “우리들”이라고 복수형을 씁니다. 고독한 죽음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의 비극일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개인의 비극이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되는 순간, 시는 연대의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고독이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은 역설적으로 위로가 될 수 있으니까요.

한 생을 건너는 길은 눈먼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처럼 어렵고 고독한 일. 희망이 없이는 건널 수 없는 길이지요. 더 안타까운 현실은 이런 삶이 “연기로 꼰 밧줄”에 매달린 아이들, 우리의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는 거예요. 구원의 약속이면서 동시에 탈락의 기준이 되는 “천국”이라는 공간을 그저 바라보는 시인. 이 응시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되지요. 내가 잡은 희망과 믿음은 푸른 밧줄일까, 아니면 연기로 꼰 밧줄일까. 불확실한 삶이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이 여정이 외롭지만은 않기를 이 시의 시인과 함께 조용히 바라봅니다.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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