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강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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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화 작가 |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시 평론) 삼월! 계절을 부르는 이월, 사월, 오월이라는 말은 참 예쁩니다, ㅇ과 ㄹ의 울림소리는 운율을 더하고 우리 조금만 여유를 갖는다면 미음완보微吟緩步에 좋은 계절이지요. ‘삼월에는 잠시라도 눈을 감지 마세요/ 그 틈에 꽃이 필지 몰라요’ 맞습니다. 꽃은 소리 없이 피고 흔적을 남기며 집니다. 고층 아파트나 사무실에서 갇혀 있는 동안 숱한 봄꽃들 중 과연 우리는 ‘어머! 매화구나.’, ‘오! 벚꽃이네.’ 花들짝 놀라며 피는 꽃 명을 얼마나 불러 보았을까요. 봄이면 누군가에게 꽃길을 걷자고, 말을 건네거나 문자를 보낼까 생각도 해보지만 하루, 한나절을 함께 걷기 어려웠을 거예요. 꽃들이 꽃 피우는 일에 집중 하듯 우리도 바쁜 이유들이 많았을 테니까요.
이월이 말쯤이면 매화가 피겠지요. 곧 삼월이에요. 올해는 우리 꽃에 얽힌 자신의 이야기 한 송이씩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요. 사랑의 정한이 담긴 꽃, 윤슬이 내린 꽃, 아쉬움이 움튼 꽃 그 어떤 꽃이라도 꽃 향은 향기롭잖아요. 이 순간 여러분은 어떤 꽃이 떠오르나요.
봄이면 고향 집은 늘 축제였어요. 방문을 열면 낮은 능선을 따라 핀 매화. 해마다 꽃구경을 온 사람들로 붐볐지요. 어린 저는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면 매화 사이를 걷곤 했어요. 달빛 아래서 보는 청매화는 유독 신비로웠지요. 꽃이 절정에 이를 때면 꽃 향에 취해 잠들곤 했으니까요. 이화梨花를 보며 봄밤의 애상적 정한을 읊던 이조년의 마음이 이처럼 황홀했을까요.
꽃그늘 아래 돗자리 깔고 앉아 청포도 사탕을 먹던 유년, 봄볕의 쌀쌀한 감촉도 좋았지요. 한번은 꽃뱀과 눈이 마주쳤어요. 놀란 마음을 숨기고 뱀의 눈을 부드럽게 바라보았지요. 뱀을 만나면 정물처럼 움직이지 말라는 할머니 말을 떠올리면서요. 그런데 꽃뱀은 청매 그늘이 본래 자기 자리라는 듯 똬리 틀고 앉아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 거예요.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고 싶은 제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꽃뱀은 하염없이 자리를 지켰지요. 꽃뱀이 떠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제 시야는 온통 꽃뱀 무늬의 꽃들이 만발했답니다. 동그랗게 똬리를 말고 있는 모습이 마치 한 송이 꽃 같던 뱀. 그날 이후 사라진 그 꽃을 다시는 만나지 못했지요.
이렇게 기억 속의 화담을 찾는다면 꽃들이 파랑새로 날아올라 우리 어깨에 내려앉을지 모르잖아요.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러주듯, 올해는 우리가 꽃들을 반겨주면 어떨까요. ‘아름다운 것은 오래 머물지 않아요’ 이 말! 움켜쥘 수는 없지만 내 안에 응축할 수 있어 위로가 돼요. 춘설이 녹듯 우리의 시간도 순간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삼월은 제가 먼저 청매 그늘에서 꽃뱀을 만난 유년의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사월. 오월, 유월의 이야기는 여러분이 채워주길 청해 봅니다. 강원석 시인은 우리에게 ‘삼월에는’ ‘눈도 감지’ 말고 ‘숨소리도 크게 내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들이 피어날까요. 생애 첫 선물을 받아보는 아이가 숨 멎을 듯 눈 크게 뜨고 깜짝 놀라는 탄성처럼! 궁금해지는 봄 초입입니다.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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