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영찬
나 오늘 새로 집 한 채 지을 것이네
창문만 있고 질문은 없는 집/ 손님만 있고 주인 없는 집
응답은 있으나
주제도 주체도 없어 이상하지만 말 없는 가구를 사들이고
과묵한 벽면을 색칠해야지
중략
누구나 함부로/ 지붕 뜯고 들어와
한참을 울다가도 아무 상관 없는 집
있어도 좋은 집/ 없어도 좋은 집
처음부터 끝까지 울타리는 없지만
울타리 둘러치고 앉아
담장 밖의 바람 소릴 끌어모으기 아주 편한 집
푹신한 소파에 기대 잠깐 가면을 취해도 햇살 달려와
이불 덮어주는 집
때 되면 달빛 출렁 창문 흔들어/ 커튼 가려주고
꿈결에 흔들린 꿈들이 푸른 원고지에 검은 잉크를
풀어놓는 집
중략
밤이면 밤마다 나 집 한 채 지었다가 허물고
또다시 꾸미며 살아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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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화 작가 |
시집 가장 마지막 장에 배치한 「나의 시집」, 한 채를 짓기 위해 화자는 ‘밤이면 밤마다 나 집 한 채 지었다가 허물고/ 또다시 꾸미며 살아’왔다고 고백해요. 이 고백을 따라 시인의 집에 깃드는 일. 한 번 들어가면 이 집에서 나오고 싶지 않을 수도 있어요. 오랫동안 찾던 집을 발견한 만족감에 ‘푹신한 소파에 기대’ 쉬고 싶을 수도 있거든요.
『오늘밤은 리스본』은 작가의 주관적 자아나 내적 고백, 삶의 고뇌가 결여되어 있어 시를 만나는 동안 잠시 삶의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을 거예요. 환상적 언술로 짠 양탄자를 타고 시인의 집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는 즐거움, 이 집에서는 마음껏 칠정을 풀어놓아도 괜찮다고 시인은 얘기하네요.
『오늘밤은 리스본』의 표지는 관능적이고 매혹적이지요. 제목 또한 독자의 궁금증을 자아내고요. 왠지 멋진 사건이 일어날 것 같은 밤의 리스본, 우리 시간 내어 『오늘밤은 리스본』으로 떠나 보는 건 어떨까요. 시의 집 사랑채를 열면 많은 예술가와 사상가가 우리를 반길 거예요. 낭만과 환상적 언어들이 오로라처럼 펼쳐지는 집, 공간과 시간이 무화된 시인의 언술은 마치 문학 콘텐츠를 읽는 것 같거든요.
‘누구나 함부로/ 지붕 뜯고 들어와/ 한참을 울다가도 아무 상관 없는 집’ 시인의 자유로운 발상들을 되짚어 보면 이 집은 개인의 집이 아닌 모두의 집이라고 생각돼요. 이어 ‘푹신한 소파에 기대 잠깐 가면을 취해도 햇살 달려와/ 이불 덮어주는 집/ 때 되면 달빛 출렁 창문 흔들어/ 커튼 가려’주는 집, 마치 무위자연을 연상케 하지요.
시인은 완결된 집 한 채를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집을 짓고 허물기를 반복했을까요. ‘꿈결에 흔들린 꿈들이 푸른 원고지에 검은 잉크를/ 풀어놓는 집’이라는 행을 통해 집을 짓는 일은 계속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어요. ‘밤이면 밤마다 나 집 한 채 지었다가 허물고/ 또다시 꾸미며 살아왔’다는 독백의 변주로 읽히거든요.
이일훈 건축가는 ‘좋은 집이란 생각하게 하는 집’이라고 해요. 시인의 집은 건강하고 솔직하며 결핍이 없어 현대인들이 로망하는 집이지 않을까 싶어요. 김영찬 시인의 『오늘밤은 리스본』은 생각들이 시어로 발화되는 좋은 집, 시의 미학이 환한 집이네요.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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