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자: 권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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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순자 시인 |
권순자 權順慈 1958~ 시인·교육자. 경주 출생. 카톨릭재단 경주 근화여고 졸업,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학과 졸업, 국민대학교 교육대학원 영어교육학과 졸업. 1986년 《포항문학》에 「사루비아」 외 2편으로 작품활동 시작, 2003년 《심상》 등단. 1981년부터 교직에 봉사하며 문학 활동을 이어왔음. 시집 『바다로 간 사내』, 『우목횟집』, 『검은 늪』, 『낭만적인 악수』, 『붉은 꽃에 대한 명상』, 『순례자』, 『천개의 눈물』 3권(한영일 대역, 한중대역, 영문판), 『청춘 고래』, 『소년과 뱀과 소녀를』 9권과, 시선집『애인이 기다리는 저녁』, 영역시집 『Mother's Dawn』(『검은 늪』영역),『A Thousand Tears』, 프랑스어 번역시집 『Poète en pleine nuit』(야밤의 시인), 옥스퍼드대학교 출간 『On Translating Modern Korean Poetry』((현대 한국시 번역에 관하여)에 「위안부 12」 수록됨).
수필집 『사랑해요 고등어 씨』, 한국저작권협회 오디오북 선정시집 『우목횟집』 등이 있음. 2018년 녹조근정훈장(대통령), 2002년 동서커피문학상, 2003년 시흥문학상, 2012년 아르코문학상 수상. 중학교 교사(37년) 역임, 사)양천문인협회 회장 역임. 시와여백, 시인통신 동인, 한국시인협회 회원, 한국작가회의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e-mail : 479sky@naver.com
Q. 1986년 「사루비아」로 문단에 데뷔하셨을 때의 기억이 궁금합니다. 그 시절 문단의 분위기와 시인으로서의 첫 출발은 어떤 의미였나요?
▶ 그 당시 포항문협에는 중앙문단에 이름을 떨친 소설가 손춘익을 필두로 소설가 이대환, 정학필, 동화작가 김일광, 시인으로 공광규, 김만수, 김석춘, 김수일, 김정구, 김종인, 김진술, 박무근, 송애경, 신동화, 오승강, 윤석홍, 이상익, 임병태, 정원도, 조순태, 채상근, 수필가로 김규련, 배용재, 박성준, 빈남수, 서상근, 성홍근, 이삼우, 이진형, 조유현, 황기석 등 쟁쟁한 문인들이 계셨습니다. 훌륭한 문인들의 추천을 받아 데뷔한 것은 행운이며 감사하고 기뻤지요.
신출내기 문인인 저는 그들 옆에서 문학적 대화를 나누고 토론하고 행사를 치르면서 문학적 공기를 마음껏 마셨습니다. 포항이라는 지역이 주는 신선함과 문학이 주는 뜨거운 열망이 많은 기대를 끌어냈어요. 그곳에서 사물놀이도 배우고 해마다 문학 특강, 백일장, 시화전, 책 출간회, 카페 시낭송회 등 행사를 치르면서 문학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새끼 고래처럼 거친 숨을 내쉬곤 했습니다.
Q. 영어교육을 전공하시고 존 키츠의 The Fall of Hyperion으로 석사 논문을 쓰셨습니다. 영미 낭만주의 시가 선생님의 시 세계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 대학교 때 은사이신 김종윤 교수님이 영시를 가르치셨는데, 그 시간이 특히 즐거웠습니다. ‘Tyger Tyger, burning bright / In the forests of the night; ‘ Willian Blake의 시 ‘The Tyger’를 크게 읊어주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보이는 듯,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합니다. 그분에게 영향을 받아서인지 졸업시험과 학사논문 중 택일해도 되는 시점에서, 졸업시험도 보고 동시에 학사졸업 논문도 Keats 시를 써서 그 교수님께 칭찬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낭만주의 시가 제게 시적 정서를 많이 키워주었다고 여겨집니다.
Q. 시집 『붉은 꽃에 대한 명상』으로 2012년 아르코문학상을 받으셨습니다. 이 시집의 배경과 당시의 창작 고민을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 ‘붉은 꽃에 대한 명상’은 생태주의적 관점을 주제로 많은 시편들이 자연과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하며 쓴 시들입니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들과 인간의 공존을 모색하고 고민하며 그 세계를 인식하는 글이 자주 등장합니다. 짧은 생애를 살기에 더 강렬하게 빛나는 생명체들에 대한 연민과 경외감을 담고 있습니다.
Q. 선생님의 시에는 고향, 바다, 어머니와 같은 이미지가 자주 등장합니다. 시인께서 생각하는 자신의 시 세계의 핵심 정서는 무엇인가요?
▶ 어린 시절은 문무대왕암이 오리길 정도에 있는 농촌에서 살아서 제 시에는 강과 바다, 산 등 자연 정서가 많습니다. 포항 남자와 결혼하게 되어 바다를 가까이에서 보며 억센 파도를 헤치며 힘차게 살아가는 사람들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와 새로운 문화체험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농촌, 어촌의 주민들은 열심히 살고 그 속에서 힘찬 에너지를 저도 받게 되어 글에 스미게 된 것 같습니다.
Q. 시집 『소년과 뱀과 소녀를』에서는 이전과 다른 시적 분위기와 실험도 보입니다. 최근 작품에서 새롭게 탐구하고 있는 주제가 있다면 무엇인지요?
▶ 이전 시들의 주제가 사회적이고 공동체적인 부분에 대해 역동적으로 썼다면 『소년과 뱀과 소녀를』에서는 좀 더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정서를 명징한 언어로 더 맑게 소소하게 써 내려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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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회 한불문화예술협회 시낭송회. 경기 광주 충현박물관 (2024.5.4.) |
Q. 『천 개의 눈물』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시집입니다. 이 작품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에 참으로 참담한 시간을 보내고 나서 자녀를 키우는 어미로서 자식을 잃은 부모 마음을 헤아리며 가슴 아파하던 시간이 길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위안부 할머니들 소식을 접하고 어린 나이에 일본군에 이유없이 잡혀가 치욕과 고통의 세월을 보낸 이야기와 생사를 모른 채 딸자식을 기다리는 어미의 심정이 조금씩 상상되기 시작했습니다. 증언집을 찾아 읽고 수요집회에 나가서 할머니들의 육성으로 고통의 기록을 생생히 들으면서 위안부 시를 한편씩 쓰기 시작했습니다.
증언집의 책 분량이 많긴 하지만, 여러분께서 이 증언집을 읽어 주시면 좋겠어요. 저는 이 바람을 담아 증언집을 읽지 못한 분들을 위해 먼저 시를 써 일본군위안부의 존재를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일본군위안부를 주제로 쓴 시집을 출간하면 증언집을 읽을 다리를 놔줄 수 있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Q. ‘수요집회’에 직접 참석해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을 들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경험이 시를 쓰는 과정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 수요집회에 참가하여 할머니들의 육성을 듣고 또 해외 일본군위안부를 겪은 할머니들 육성을 들으며 그 할머니들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처럼 상상이 되어 끔찍하였습니다. 증언을 육성으로 듣는 일은 참 힘들었는데 겪은 분들의 그 고통의 정도를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경기도 광주에 있는 나눔의 집에 문학단체와 방문하거나 개인적으로 몇 차례 들리면서 할머니들의 삶을 아프게 체감했습니다. 이 계기는 그분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시를 쓰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어 서울 마포구에 자리한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을 개인적으로 찾기도 하고, 여성인권에 관심 있는 동료 교사 및 학생 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방문하여 지원 활동을 이어가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여성 및 인권 회복을 위한 활동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Q. 역사적 비극을 시로 기록하는 작업에서 시인으로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 있었다면요?
▶ 먼저, 그 가족들의 아픔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그 가족들에게 고통의 시간을 다시 상기시키는 것은 아닌가, 그들에게 힘과 위로를 주는 행위인가 등의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의 경우는 일본이 아직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다는 점, 도리어 발뺌하고 거짓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 할머니들의 인권회복을 해드려야 한다는 점이 문제로 남아 있어서 해결될 때까지는 이 활동이 이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또 세월호 문제도 원인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중에 정치적인 이유로 더 진행하지 못하는 점은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이 문제 또한 언젠가는 해결되기를 소망합니다.
Q. 9. 『천 개의 눈물』이 한·영·일 대역 시집으로 출간되고 이후 중국어 번역도 이루어졌습니다. 국제 독자들과 만나게 된 과정과 그 반응이 궁금합니다.
▶ 시집 『천 개의 눈물』은 처음에는 한글판만 기획했습니다. 그런데 구글 등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일본이 해외 언론에 왜곡된 주장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을 욕되게 하는 글을 보며 분노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출판사와 의논하며 번역자를 찾아 영어와 일어로 번역하고 2015년 한·영·일 대역 판을 출판했습니다. 이어 중국어 번역자를 소개받아 중국어로 번역하여 2016년 한중판을 출판했습니다. 이 모든 작업은 출판사 포엠포엠 주간 한창옥 선생님의 도움이 컸습니다. 일문 번역은 한성례 선생님, 중국어 번역은 박희선 선생님이 해주셨는데 이 두 분께서 의미 깊은 일이라고 최소한의 번역비를 받고 작업해 주셔서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2018년에는 영문판만 따로 출판하여 미국에서 평화의 소녀상 건립 등 행사에 보냈습니다.
2026년 10월 29일부터 3일간 열린 한국시인협회 주최 <서울, 세계 시 엑스포 2025> 행사에 참여하였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해외 시인들께 『천 개의 눈물』 한영일대역 시집을 한 권씩 드리고 설명했습니다. 또 중국에서 온 시인들에게는 중국어판을 건네고 설명하니, 그들도 일본군위안부 인권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행사도 하고 있다는 말을 해주셔서 힘이 되었습니다. 작은 힘이 모이면 큰 힘이 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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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순자 시인의 프랑스어 번역 시집《Doete en Peine nuit》<야밤의 시인> 표지 |
Q. 시집 『검은 늪』이 영어판 Mother’s Dawn으로 출간되었고 시집 『야밤의 시인』은 불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이 시집에 작품에 실린 작품들에 대한 말씀 부탁드려요.
▶ 검은 늪 영어판은 2011년 미국 출판사 Xlibris에서 출판했는데 미국인 여성이 ‘고무장갑’ Rubber Gloves이 인상이 매우 깊었다고 평해주었습니다. 영어판 Mother’s Dawn에 실린 시편 중 「목련」, 「어머니의 새벽」, 「봄이 기침하다」, 「민들레」, 「목련꽃」 등이 불어시집 『야밤의 시인』에 포함되어서 프랑스인들이 읽게 되어서 기쁩니다. 「목련」은 제 어머니를 주제로 다루었고 「어머니의 새벽」 은 시어머니를 주제로 다루었습니다. 불어시집에 실린 「소금」과 「폐선」은 평생 가장으로 열심히 사신 아버지와 시아버지를 주제로 했습니다. 가난하고 힘들지만, 자식을 위해서라면 세상을 억척스럽게 살아내는 어머니, 아버지 이야기. 자식을 위해 애쓰는 마음은 세상의 모든 부모가 공감하는 만인의 정서인 것 같습니다. 척박하고 거친 겨울을 이겨낸 식물들이 봄이 오기 전에 싹을 틔우고 발돋움하는 모습, 한 움큼의 흙만 있으면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민들레 이야기도 여리고 약한 이들이 어떻게 살아내는지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입니다.
Q. 작품 「위안부 12」가 해외 학자들의 한국 시 번역 연구에서 다루어지고 옥스퍼드 대학 연구 자료로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시가 해외 학계에서 연구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셨나요?
▶ 위안부 시집 『천 개의 눈물』은 제가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 책무를 조금은 해냈다고 믿는 책입니다. 열세 네 살 어린 나이에 영문도 모른 채 전쟁의 도가니로 끌려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전쟁 위안부로 살아야 했던 삶은 지옥도에도 나오기 힘든 험한 생활입니다. 그들이 거기서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다가 죽기도 하고 또 전쟁이 끝나고 요행히 살아왔지만, 자신이 당한 해괴한 일들을 발설하지 못하고 어떤 가족은 그런 딸을 받아주지도 않았다는 증언을 읽거나 들었을 때, 그들의 고통은 상상하기 힘들었습니다. 한창 배울 나이에 전쟁터에, 위안부로 가서 죽음보다 못한 삶을 살았고, 살아와서는 숨어 살거나 전혀 모르는 곳에 가서 이름을 바꾸고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고통을 제 펜의 입을 빌어 소리치게 하고 싶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진실을 알고, 일본당국이 그들의 인권을 회복해 주는 일을 해주기를 글을 통해 소리높여 외쳤습니다.
그리고 인권회복을 위해 유럽 특히 프랑스에도 알리고자 불어 번역자가 불어 번역을 끝냈습니다. 프랑스에서 출판하고자 기획하고 애쓰는 중입니다. 그러던 중에 2020년 6월에 한국시인협회와 한국작가회의로부터 제게 전달하는 이메일 한 통을 각각 받았습니다. 그것은 옥스퍼드 대학교 동양학 연구소 안나 예이츠-루 박사가 보낸 이메일이었습니다.
내용은 “다른 옥스퍼드 대학교 연구자와 같이 한국 현대 시 번역에 대한 책을 쓰고 있습니다. 그 안에 한국 시를 번역해서 어떻게 번역했는지 논의하면서 외국에 있는 독자한테 한국 시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책에 대한 정보를 첨부했습니다. 그 안에 제가 번역을 하고 싶은 시인과 작품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중에 제 이름이 있어서 제게 이메일을 전달해 준 것입니다. 저는 무척 반가웠고 감사했습니다. 제가 대단한 시인들 틈에 끼인 것이 놀라웠고 위안부 시집을 한 번 더 소개하는 계기가 되어 반가웠습니다. 시 한 편이지만 그 시 한 편이 물꼬를 열어줄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Q. 프랑스 시인협회 교류 행사 등 해외 문학 교류에도 참여하셨습니다. 한국 시가 세계 독자들에게 어떻게 읽히기를 바라시나요?
▶ 한국시만의 형식적 특성이 있는 시조는 2025년도에 프랑스 시 장르에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2023년 3월 한국시인협회가 프랑스시인협회와 교류하여 얻은 획기적인 발전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문화가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프랑스에서도 한국어 배우기 열풍이 대단해졌다고 합니다. 2023년 프랑스 방문 당시, 파리시테대학교, 엑스마르세유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님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한국어학과가 인기가 높아지면서 경쟁률이 치열해졌다고 합니다. 한국어학과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는 소식은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프랑스 학생이 한국어로 시를 짓는 백일장 수상 작품을 한국어로 낭송하는 모습을 현장에서 보고 한국의 위상이 참으로 높아졌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엑스마르세유대학 대강당에서 열린 한국시인들의 자작시 낭송 시간에는 시낭송을 듣고 눈물을 닦는 학생들을 여럿 보았습니다. 그리고 행사 끝나고 학생들이 다가와 “정말 감동적이었다”고 느낌을 직접 전달해 줘서 우리말로 된 시를 듣고 감동하는 모습에 시인으로서 자부심과 감사함이 마음에 물결쳤습니다.
앞으로도 여러 나라에서 한국시가 다양하게 읽히고 낭송되기를 마음 깊이 소망합니다. 파리시테대학교에서 열린 ‘시인의 봄‘ 행사에 함께하고, 엑스마르세유대학교 ’한국 시의 날‘ 행사에 함께 해서 뜻깊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행사가 이어지고 한국 시가 계속 외국 독자를 만나기를 기대해 봅니다.
Q. 여러 시집과 시선집 『애인인 기다리는 저녁』 그리고 제목이 독특하고 따뜻한 인상을 주는 수필집 『사랑해요 고등어 씨』 등을 출간하며 오랜 창작 인생을 이어오셨습니다. 끝으로 앞으로 쓰고 싶은 시와 지금의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 앞으로 쓰고 싶은 시는 운율이 좀 더 드러난 여백이 있는 시, 독자에게 좀 더 다가가는 재미있는 시를 써보고 싶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옥스퍼드 대학에서 위안부를 주제로 한 권순자 시인의 작품이 교재에 수록되었다는 사실은, 한 편의 시가 국경을 넘어 역사의 증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일입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세계의 강단에서 읽히는 그 작품을 함께 나누는 것으로 오늘의 자리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시인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위안부 12
-강제연행 1
권순자 Kwon Sunja (1958–)
양산읍 시골 깡촌
아버지 돌아가시고 농사지을 남자가 없었어요
어느 날 동네 반장이 나에게,
공장에 일하러 가야 한다
안 가면 재산을 몰수하고 외국으로 추방시키겠다
고 협박했지요
시집가야 하는데 동네에 남자가 없었어요
남자는 모두 징용으로 끌려가버렸지요
제 나이 열네 살이었어요
끌려가서 스물한 살까지 노예로 살았어요
중국 광저우,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방콕,싱가포르
끌려 다니는 데는 이유가 없었어요
그냥 트럭에 싣고 갈 뿐이었어요
제가 힘없는 농민의, 힘없고 어린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생각해보세요
열네 살이 잡혀가서 낯선 나라, 낯선 군인들에게
수십 명의 남자들에게 당하는 고통을 상상해보세요
그곳이 공장이라구요?
제가 열네 살인데
제가 스물한 살까지 팔년의 세월동안
군인의 노예로 살았는데
그곳을 공장이라고 믿으라고 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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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화 시인 |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일요주간 문화예술 전문 주필위원.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cactus681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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