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명절과 타향살이

칼럼 / 최철원 논설위원 / 2023-10-04 12: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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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가을, 한가위 날 동산 위에 뜬 둥근달, 오곡이 무르익는 들녘 생각이 마음을 들볶아 고향을 찾게 한다. 여름의 땡볕과 산자락의 물소리가 잦아들면 뜨겁고 힘든 시간을 지나온 나무는 가지에 주렁주렁 열매를 달고 저마다의 색깔을 나타내는 명절을 코앞에 둔 절기다. 거친 폭풍과 폭우에 시달린 기억이 곡식의 낱알에 스며들며 땀을 흘린 농부의 고된 노동의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들녘의 아름다운 향 내음을 누가 외면하랴만, 모처럼 찾은 고향의 들녘이 아름다워야 함에도 왠지 낯설다. 오랜 타향살이로 마음이 고향을 잃어버렸음이다.

추석 밤 달빛은 골고루 비추지 않았다. 남쪽엔 구름이 달을 가렸고 북쪽엔 둥근 달이 모습을 보이다 밤안개에 흐려지기를 반복했다. 모처럼 찾은 고향에서 밝은 달빛을 보려고 기대했지만, 주변이 허락하지 않는다. 흐려지는 기억 속에 희미해진 옛 생각을 떠올리며 그 정취에 젖고파 마음속 고향을 그린다. 고향은 왜 향수가 있는가. 결코 떠나려 해도 떠나지지 않는 고향, 부모가 태어나 자란 곳, 조상이 묻힌 고향 땅에 서면 자신의 인생 이력을, 짧지 않은 삶의 여정에 굽이 서린 굴곡을 돌아보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고향에서 본 산굽이를 휘돌아 드는 가을강(江)은 물이 말라 속으로 흘러 애잔하고, 됫마루에서 보는 산등성이는 여전히 듬직하다. 그래도 '옅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 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추석의 밤은 왜 이리 아린지 그 맘 헤아리기가 어렵다. 초로의 할머니 품에 안겨 달콤한 잠에 떨어진 손자의 천진한 얼굴에도 이 시대의 어려움이 덮칠까. 이런 우려가 부질없다는 생각이 미칠 즈음 불쑥 얼굴을 내민 추석 달에 불확실한 미래를 무작정 맡겨보자는 낙관을 허용한 고향의 시간은 어째든 흐뭇했지만, 어느새 얕은 잠에서 깨어 현실에서 고향이 주는 옛 생각을 더듬는다.

나도 초로의 나이가 되니 때때로 어린 시절이 그립고 옛 생각이 절로 난다. 우리네 삶에 타향살이 왜 해야 하고 추억이란 대체 무엇일까. 돌이킬 수 없는 옛날을 회상하며 생각의 영사기를 되돌리면 그곳의 종착지에는 고향이라는 어휘가 와 닿는다. 흔히 고향의 풍경은 그리움의 원천이라지만 나는 고향이라는 어휘가 물고 늘어지는 정한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부모님이 고향을 입에 담고 살아서이기도 하겠지만, 고향이란 단어로 느끼는 진화할 수 없는 비논리성이 그 바탕을 이루는 듯싶어서다. 그래서 고향이라든지 타향이라든지 하는 그런 어휘 자체가 아예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그럼에도 삶에서 결코 떨쳐버릴 수 없는 게 고향이기에 어쩔 수 없이 수긍하며 고향을 생각하고 오래전 시절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고향을 떠올리며 생각의 커튼을 열면 제일 먼저 받는 느낌은 '오래됨'이다. 오래됨은 낡음과 빛바램으로 자연스럽게 연관된다. 그래서 고향이란 단어는 희미하면서도 선연하며 오래됨이라는 뜻이 들어있고, 고향의 기억들은 대체로 오래된 날들과 관련된 것들이다. 우리 세대는 고향이란 주제로 얘기를 나누면 자연스레 어릴 적 배고팠던 일과 그 시절 정취로 얘기가 흐른다. 당시 지독한 추위와 배고픔은 보릿고개를 겪은 세대들을 하나로 묶었다. 또래가 모이면 자연히 그 시절 얘기가 나오기 마련이고 나도 모르게 녹음기 반복하듯 주절거린다.

이런저런 이유로 타향을 떠돌다가 조상이 묻혀있는 고향 땅에 언젠가 돌아간다는 귀소본능에서도 우리는 고향이 우리에게 주는 안식 감을 엿볼 수 있다. 고향과 관련해서 생각만으로도 많은 추억들이 당연하게 다가오지만 실로 찬찬히 살필만한 점은 고향에 대해서는 자신도 모르게 깊은 정을 품고 늘 고향의 포근함을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삶이 힘든 처지에 놓이거나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때, 사람들은 거의 본능적으로 고향을 찾는다. 중대한 결심을 하기 전에 고향 땅에 묻힌 선영을 찾아뵙는 이유가 다 그런 것이다.

우리 민족이 추석 명절에 고향을 찾는 풍습은 아름다운 전통이다. 올해도 많은 사람이 고향을 찾는다. 자동차로 꽉 막힌 도로 위를 거북이걸음을 하더라도, 먼 길의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떠나고 돌아옴을 반복할 것이다. 비록 고향을 찾지 않는 사람이라 해도 고향을 생각하며 그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래서 고향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사건으로 기억되고, 공간으로 기억되는 그리움이 머무는 장소, 영혼의 본거지 같은 곳이다.

다들 수도권에 몰려들어 옥신각신 삶을 영위하던 사람들이 명절이 되니 너도나도 귀향 행렬에 동참해 고속도로가 꽉 막힌다며 매스컴이 연일 머리기사로 보도하고 있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삶을 영위하던 사람들이 명절이면 기어이 돌아가는 그곳이 아직도 그 도시민들의 고향일 것인가. 지금 그들의 고향은 아늑하고 포근한 어머니의 품인가. 명절만 되면 도로가 막혀 자동차가 길바닥에서 기어가면서도 기를 쓰고 고향을 찾아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사람들이 고향으로 가는 게 아니라, 고향의 영원한 허상을 향해 기를 쓰고 달려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타향에 떠도는 사람들아, 때가 되어 고향을 다녀오는 사람들아, 비록 타향에서 고단한 삶을 살더라도 고향과 타향을 구분하고 말하며 살지 말아라. 타향 위에 고향을 건설하지 못하는 당신들의 정신적 유랑은 떠돌이며 영원한 실향민이다. 정든 땅을 떠나 수도권에 몰려들어 삶을 영위한다면 그 삶은 끝끝내 타향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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