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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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화 작가 |
기형도 시인의 시처럼 우리 안에 긍정보다 질투가 더 많은 건 아닌지 살펴볼 일이에요. 질투가 시기로만 끝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지나치면 나를 파괴할 수 있는 일. 곧 질투는 모든 파괴의 시작점이자 관계를 무너뜨리는 힘을 갖지요. 하지만 약간의 질투는 필요하답니다. 항상 뜨겁거나 차가울 수만은 없는 일, 감정의 대위對位는 필요하니까요.
이 시의 화자는 주변과 자신을 견주며 방황하던 지난날을 반성하고 있어요. 자신의 이상에 갇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시간들, 우리에게 백 번의 고민보다 한 번의 실천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해 주지요.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다며 객관적으로 돌보지 못한 자신의 삶을 고백하는 시. 이어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 되기를 꿈꾸기보다, 먼저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에요. 자신의 미래가 희망이 없다고 예단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는 요즘. 이렇게 침전하다 보면 사회에 분노가 쌓이고 삶에 대한 작은 감사마저 부정하게 될지 우려돼요. 우리 힘든 일을 만나게 되면 먼저 자신의 의지와 소통해 보면 어떨까 싶어요. 보편적인 삶의 답은 자기 안에 있지 않을까요. 불안과 질투, 이런 정서를 거두고 나면 짙은 안개가 머문 자리마다 안개꽃으로 가득할 거예요.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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