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최철원 논설위원 |
나도 이제까지 살았던 시간을 돌이켜보면 탄탄대로나 무사태평과는 거리가 좀 있지만 그래도 삶이 그런대로 무사무탈했다. 좋은 일을 만나면 즐거워 어쩔 줄 모르는 기쁜 날이 있었고, 불행한 일을 당하면 우울증에 빠져 헤맨 날도 있었다. 이것은 굳이 따지자면 살아가는 과정이지 큰 복도 큰 화도 아니었기에 이상하지 않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내 주변 사람들도 대게는 그러했다. 그것이 무릇 평범한 소시민의 삶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어떤 어려운 일이 닥치면 그 일을 넘기며 이만하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크게 좋은 일이 없는 것처럼 크게 나쁜 일은 생기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 같은 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령 로또에 당첨되는 행운이 거의 희박한 것처럼, 하늘이 무너지거나 땅이 꺼지거나 전쟁에 휘말리는 불행한 일도 내게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냥 그렇게 적당히 크고 작은 일을 겪으며 그 상황에 맞게 무사무탈하게 지나간다 생각하며 지금껏 살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생각이 조금씩 흔들리며 깨어지고 있다. 워낙 도체에 어이없는 사고들이 다발적으로 일어나다 보니 험하고 궂은일, 즉 불행한 일이 꼭 남에게 일어나는 일만은 아닌 것으로 느껴진다. 자고 나면 또 무슨 사고가 터질지, 이렇게 사고가 많은 나라에서 그 모든 사고를 피하고 사는 일이 더 어려운 일이며, 하루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것이 크나큰 행운으로 여겨진다.
생각해 보니 모든 사건 사고는 늘 우리와 떨어져 있는 게 아니다. 굳이 세월호 사건과 이태원 참사를 송환하지 않더라도, 얼마 전 어떤 행인이 신림동 길을 가다 생면부지 낯선 사람이 휘두르는 흉기에 찔려 불행한 종말을 맞이했다. 비 오는 날 오송에서 멀쩡히 차를 타고 지하차도를 달리다 갑자기 들이닥친 6만t의 빗물에 휩쓸려 14명이 순식간에 세상을 떠났다. 누가 이렇게 되리라 생각이나 했겠나. 학교 다녀오겠다며 아침에 나간 아홉 살 아이가 음주운전 차에 치여 숨을 거두는 현실, 그것도 하굣길 횡단보도 앞에서. 이젠 초등학교 어린이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거라는 장담도 쉽게 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그들은 알았을까? 아침 눈뜰 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오늘 이렇게 불행을 맞으라는 걸.
요즘 눈 뜨고 바라보는 세상이 무섭다. 나이가 드는 탓일까, 세상사를 많이 경험한 탓일까. 점점 무서운 게 많아진다. 큰비가 내리며 곳곳에서 50여 명이 목숨을 잃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산사태로 한 마을이 매몰된 현장은 처참했다. 갑자기 불어난 강물로 제방이 무너져 순식간의 지하차도를 삼키며 많은 인명을 앗아간 대형 참사는 새삼 자연의 무서움을 일깨워줬다.
우리는 대형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천재(天災)가 아니라 인재(人災)라는 말이 관용구로 쓰이지만, 대부분의 재난은 인재에 가깝다. 재난의 본질이 그렇다. 사고를 미리 대비해 위기 예방을 메뉴얼을 촘촘히 짜 가동했다면 피해가 대폭 축소되었을 것이다. 되풀이되는 수해 피해 기억 때문에 당국과 지자체는 피해 예방을 위한 프로그램을 수시로 방송하며 독려했지만 일이 터지고 나서 보니 곳곳이 구멍투성이였다. 성공한 대비와 예방은 겉으로 드러날 수 없고 오직 실패만 사고의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대형 참사는 사회 전체에 엄청난 고통을 안기고 오랫동안 트라우마를 남긴다. 그래서 사고가 일어나면 정확한 진상 규명과 사고 수습에 최선을 다할 줄 아는 성실함과 투명함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전문가와 관계 당국이 어느 곳에 문제가 있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차분하고 꼼꼼히 따져 필요한 조치를 강구해야 함에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사고를 망각하며 담당 공무원이 '정무적 책임'을 지는 식으로 사고가 종결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구성원 모두는 사고 당사자 고통에 공감하고 위로하며 최대한 예를 베풀어야 한다. 잘못은 사과하고 책임은 질 줄 아는 그런 태도가 분명 존재한다면 천재지변과 인재지변으로 인한 국민의 분노는 한결 줄어들지 않을까. 나라는 수해로 난린데 해당 지역 지도자는 "현장에 갔어도 바뀔 것은 없었다."는 옹색한 말을 하고, 어떤 단체장은 우중 골프를 치며 "주말에 골프를 치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며 오히려 반문하는 행동을 하였다. 국민 정서의 눈높이와 동떨어진 행동, 공감과 위로에 무감한 세태. 지도층 사람들은 과연 이래도 되는가.
명목GDP 2161조원, 세계경제 13위의 나라. 우리나라가 어느덧 상식적인 시민들이 최소한의 보호막이나 사회 시스템의 가장 소극적 가동을 기대할 수 없는 곳이 돼버린 게 아닌가. 사고가 생길 때마다 "우리는 다시는 이러지 않을 것이다"라 반복하고 다짐하지만, 현안의 떠밀려 서고 예방조치를 소홀히 한다면 또다시 불행은 되풀이될 것이다.
나는 언제, 어디서, 어떤 사고를 당할까. 불확실한 삶에서 우리는 언제나 벗어날 수 있을까?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사회, 여ㆍ야당은 재해의 근원적인 문제까지 정쟁화시켜 네 탓 내 탓을 하며 싸우는 정치. 흰 국화와 눈물이 뒤 덮인 거리에서 떠나는 자를 보내며 다시 묻는다. '우리 사회 안전망 이대로 괜찮나?'. '나는 괜찮을까'를. 마음속 깊은 곳에 인으로 베여 있는 오늘도 무사히 소녀 그림을 떠올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시민과 공감하는 언론 일요주간에 제보하시면 뉴스가 됩니다'
▷ [전화] 02–862-1888
▷ [메일] ilyoweekly@daum.net
[ⓒ 일요주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