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혼밥의 운명

칼럼 / 최철원 논설위원 / 2026-08-06 18: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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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곳 가까운 주변에는 식당이 밀집한 거리가 있다. 거리 입구에는 관공서에서 세운 커다란 간판이 서 있다. 명칭은 '먹자골목'으로 공식 행정용어 지위를 누린다. 그 골목에는 배고픈 사람들이 한 끼를 때우기 위해 자연스레 모여드는 삶의 풍경이 있다. 허기진 사람들의 애환이 느껴져서 '식당거리'보다 먹자골목이 훨씬 감성 있는 명칭이다.

이 골목에서 내가 가끔 이용하는 식당 벽에는 메뉴 8가지를 써 붙여 놓았다. 이 메뉴들을 아우르는 제목은 '대중식사'다. 큰 글씨 제목 아래 된장찌개 계통에는 냉이된장찌개, 버섯된장찌개가 있고 김치찌개 계통에는 스팸김치찌개, 두부김치찌개, 돼지고기찌개가 있다. 생선조림 계통에는 고등어조림, 갈치 조림이 있고 라면 계동에는 달걀라면, 떡라면, 어묵라면을 판다.

음식 재료에 따라 다양한 메뉴가 있으며 값은 저렴한 편으로 모두 만 원 이하다. 냉장고에 들어 있는 음료수나 맥주, 소주, 막걸리는 손님들이 직접 꺼내서 먹는다.

식당은 아침 일찍부터 영업을 시작해 늦은 밤까지 영업한다. 점심시간에는 주변 사무실 직장인들로 단체 손님이 붐비지만 저녁 시간대 주 고객은 혼밥, 혼술 먹는 사내들이다.

날이 저물면 허기지는 자연현상 속에서 저절로 발길이 가는 곳이 식당이다. 밥을 먹는 행위가 그 밖에 온갖 인간 잡사보다도 더 근원적이고 보편적이기에 밥 먹는 일은 아무도 피해갈 수 없는 산(生)자들의 공통 운명이다. 배고픔에는 밥 이외 대책이 없다. 한 두 끼를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 이것이 밥이다. 밥은 먹기 싫어도 진저리나게 먹어야 한다.

저녁 시간이 되면 대중식당은 밥을 먹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어떤 이는 혼밥을 하며 어떤 이는 혼술도 하며 소주를 곁들인다. 불평등이 양극화된 사회에서 대중식당을 이용하는 고객은 대부분이 노동을 팔아서 밥을 벌고 수저를 들어 밥을 먹으며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사람들이다.

어느 날 저녁 식사 때라 좌석 부족으로 낯선 사람과 합석을 해 식사를 했다. 앞자리에서 혼밥, 횬술하며 취기가 오른 사내는 처음 본 내게 소주 한 잔을 권하며 이곳 식당을 자주 이용하는지 물었다. "여기 같이 허접한 식당은 우리 갈은 흙수저들이나 오는 곳이지 금수저들은 좋은 곳에서 밥을 먹는다"며, 세상 불평등을 말했다. "불평등이 우리 사회에 자리매김한 신분사회에서 노동을 팔아서 밥을 먹어야 하는 절망과 비애"를 체념 섞인 울분으로 소주잔을 연거푸 비웠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나도 이곳을 단골로 이용하며 혼밥하니 흙수저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금수저, 흙수저는 계급의 사회 경제적 지위나 직위에 따라 붙여진 계급을 구분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는 만큼 정돈된 개념은 아니지만, 인간의 삶의 현실을 통과해온 단어다. 다양한 현실을 꿰뚫어 보고 해석하는 통찰력과 거기에 언어를 부여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에서 금수저, 흙수저 같은 단어들이 태어난다.
이 단어는 조어(調語)이지만 꿰맨 자리가 없어서 자연 발생한 단어들처럼 느껴진다.

좋은 말들은 늘 가까이 있다. 서민들이 찾는 대중식당에서 혼밥을 먹으며 그들이 내뱉는 언어를 귀담아들어 보면 그 속에는 삶의 진리가 담겨 있다. 그래서 가끔 소재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글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그런 일상에 녹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 나도 내 앞자리 사람도 혼밥을 먹고 있다.

대중식당에서 혼밥은 혼자 사는 사람들만의 식사가 아니다. 혼밥 먹는 사람들의 생명줄 같은 것이다. 이것을 잊지 말고 꾸역꾸역 밥을 먹자. 혼밥이면 어떠랴 먹어야 산다.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더운밥, 찬밥, 혼밥 가릴 것 없이 밥상에 앉아 겸손해야 한다.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ch258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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