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주간=이정미 기자] 대중목욕탕 업주가 동성(同性) 보호자를 동반하지 않은 시각장애 1급 여성에 대한 목욕탕 입장을 거부한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말하는 ‘정당한 사유’가 있어 정당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대전지법 민사3단독 김재근 판사는 지난 15일 대중목욕탕 입구에서 동성보호자가 없다는 이유로 입장이 거부당하자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이라며 A(여)씨가 업주를 상대로 낸 100만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2011가소122610)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결론적으로 업주로서는 목욕탕 내에서의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동반보호자가 없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별도의 추가 인력을 고용해야 하는데, 공익적 성격이 있는 장애인보호에 따른 비용이나 부담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맡는 게 마땅하지, 사인에 불과한 목욕탕 업주에게 일방적으로 전가하는 것은 안 된다는 판단에서다.
법원에 따르면 시력이 전혀 없는 전맹(全盲)의 1급 시각장애인 A(여)씨는 2010년 12월 남성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아 대전에 있는 한 대중목욕탕 매표소까지 갔다. 그런데 동성(同性) 여성보호자와 함께 오지 않은 것을 본 목욕탕 업주 B씨가 “시각장애인이 혼자 오면 어떻게 하느냐, 다음부터 도와 줄 사람이 함께 오지 않으면 받지 않겠다”고 말하자 A씨와 말다툼이 벌어져, 동행했던 활동보조인이 욕설해 언쟁이 계속돼 결국 업주는 목욕탕 입장을 거부했다.
한편 A씨는 이 사건 이전에 3~4회 가량 동성보호자의 동반 없이 목욕탕에 입장한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목욕관리사의 도움을 받아 이동, 탈의, 입욕 등을 마친 적이 있었다.
이에 A씨는 “동성보호자를 동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목욕탕 입장을 거부한 것은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행위로서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위반한 불법행위”라며 “목욕탕 업주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며 1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반면 업주 B씨는 “목욕탕 입장을 거부한 것은 장애를 이유로 했다기보다는 당시 있었던 언쟁으로 인해 감정이 격해져 있었고, 소란스러운 상태로 말미암아 영업에 방해를 받았기 때문에 입장을 거부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설령 그것이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이라고 하더라도, 전맹인 A씨가 동반보호자의 도움 없이 목욕을 하는 경우 비장애인에 비해 목욕 도중 다칠 염려가 높아 이를 예방하고, 또한 사고 발생으로 인해 부담하게 될지도 모르는 손해배상 책임을 면하려는 차원에서 입장을 거부한 것으로 정당하다”고 맞섰다.
◈ “업주의 출입거부가 부당하다는 원고의 주장은 어느 정도 수긍”
이에 대해 재판부는 먼저 업주의 목욕탕 입장 거부행위가, A씨의 시각장애를 사유로 인한 것인지에 대해 판단했다. 김 판사는 “피고는 원고 측과 말다툼 끝에 감정이 상하고, 영업이 방해받은 점을 들어 입장을 거부했다는 주장에 의하더라도, 목욕탕 입장 거절을 둘러싼 말다툼의 원인이 시각장애인인 원고가 동성보호자를 동반하지 않았다는 것에서 비롯됐다”며 “이는 원고가 시각장애인이라는 점에 목욕탕 입장 거부의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할 것이어서, 원고의 장애를 사유로 한 것이라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어 “공중목욕탕은 인간이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함에 있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목욕을 위해 제공되는 시설로서 보호자의 동반 여부를 불문하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어야 함이 원칙인 점, 시각장애인이 목욕탕 내에서 사고를 당할 위험성이 높다는 점에 대하여는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가 없으므로 비장애인보다 사고발생의 위험성이 높아 출입을 거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피고의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또 “사고발생시 업주가 부담하게 될지도 모르는 손해배상책임에 대하여는 보호자의 동반 없이 목욕을 감행한 시각장애인의 과실비율을 높게 평가해 과실상계 단계에서 충분히 반영함으로써 적정한 손해배상액을 결정할 수도 있다는 점 등에 비춰 보면 피고의 출입거부가 부당한 것이라는 원고의 주장은 어느 정도 수긍할만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 “업주나 목욕관리사에게 선의의 도움 무제한적으로 요청할 수 없어”
그러나 재판부는 손해배상은 인정하지 않았다. 김 판사는 “시각장애 1급으로서 전맹인 원고는 이전에 3~4차례 이 목욕탕을 이용했는데 그때마다 목욕탕에 근무하는 목욕관리사의 도움을 받아서 목욕을 마쳤을 뿐이고, 이에 의하면 원고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혼자서 목욕탕을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목욕탕의 동선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던 상태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따라서 원고가 공중목욕탕을 이용하는 경우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보이고, 이때의 도움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입장, 탈의, 샤워기, 온탕, 냉탕 등의 이용, 착의, 퇴장에 이르기까지 이동에 있어 지속적으로 제공돼야 하는 것으로 보이는 점, 이런 도움 제공을 사인인 피고에게 일방적으로 부담지울 수 있는 명시적인 근거를 찾기 어려운 사정도 인정된다”고 덧붙였다.
김 판사는 원고 스스로도 사건 당일 ‘탈의실까지만 데려다 주면 나머지는 혼자서 하겠다’는 취지로 말한 것에 의하더라도, 원고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탈의실까지 혼자서는 이동할 수 없음이 명백해 최소한 탈의실까지의 이동에 도움이 필수적인 것으로 봤다.
김 판사는 “이에 더해 목욕탕 내부 시설에 대한 동선이 충분히 파악되지 않은 원고가 정상적으로 목욕을 마치려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데, 이때 목욕탕에서 근무하는 업주나 목욕관리인에게 선의의 도움을 무제한적으로 요청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왜냐하면 업주는 계속해서 매표소를 지켜야 할 것이고, 목욕관리사는 다른 손님의 때를 밀고 있던 경우라든가 혹은 원고를 도와주던 도중 다른 손님이 때를 밀어달라고 요청할 경우에는 본연의 업무에 종사할 수밖에 없어 그 동안 원고는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김 판사는 “그렇다고 동반보호자가 없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별도의 추가 인력의 고용을 목욕탕 업주에게 강요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입장을 허용해야만 한다고 하는 경우, 보호자를 동반하지 않은 여러 명의 시각장애인이 동시에 입장하는 상황을 가정해보면 추가인력이 필요한 경우를 충분히 상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판사는 특히 “만일 피고로 하여금 원고와 같이 동성보호자를 동반하지 않은 시각장애인을 입장시킨 후 자발적인 도움을 주도록 유도한다면, 이는 공익적 성격이 있는 장애인보호에 따른 비용이나 부담을 사인에 불과한 피고에게 일방적으로 전가하는 것이 돼 그 타당성이나 합리성에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또한 “원고가 목욕탕 내에서 시설을 이용하던 도중 사고가 발생하게 되면, 업주가 그 책임에서 언제나 완전하게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해 보면, 동반보호자가 없는 원고를 혼자 목욕탕에 입장시키도록 하는 것은 피고에게 과도한 부담이 되거나 현저히 곤란한 사정이 있는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 “장애인 보호 위한 비용은 국가나 자치단체가 부담하는 게 마땅”
김 판사는 한발 더 나아가 판단했다. 그는 “원고와 같은 장애인의 보호를 포기할 수 없는 이상, 장애인의 목욕탕 이용에 따르는 부담이나 비용을 누가 부담해야 하는지에 대해 보면 헌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장애인 보호를 위한 부담이나 비용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현재 일부 자치단체에서는 중증장애인을 위한 장애인 전용 목욕탕을 건립해 무료로 운영하고 있고, 또한 장애인복지법에 의한 장애인으로서 혼자서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운 중증장애인은 자치단체장을 상대로 활동보조, 방문목욕 등의 활동지원급여를 신청할 수 있기 때문에서다.
이때 활동지원급여를 신청할 수 있는 장애인은 ‘장애등급이 1급인 사람’을 말하는데, 원고는 전맹 1급 시각장애인으로서 이에 해당할 것으로 보여 향후 이 사건과 같은 분쟁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길도 열려 있다는 것이다.
김 판사는 “이런 점을 종합해 볼 때, 동성보호자를 동반하지 않은 원고의 목욕탕 입장을 허용하는 것은 피고에게 과도한 부담이나 현저히 곤란한 사정 등이 있는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되므로, 피고의 입장거부 행위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말하는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라며 “결국 차별행위에 해당되지 않아 정신적 손해배상 청구는 살려볼 필요 없이 이유 없다”고 기각사유를 밝혔다.
'시민과 공감하는 언론 일요주간에 제보하시면 뉴스가 됩니다'
▷ [전화] 02–862-1888
▷ [메일] ilyoweekly@daum.net
[ⓒ 일요주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