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주간=윤영석 기자] 나경원 전 새누리당 의원의 남편인 김재호 판사의 기소청탁을 받았다는 현직 검사의 양심선언이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면서 검찰은 물론 4·11총선을 앞두고 있는 정치권에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지난달 29일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봉주 7회’에서 현 인천지검 부천지청에 근무하는 박은정 검사가 주진우 시사인(IN) 기자의 허위 사실 유포 혐의를 수사하고 있는 서울지방검찰청 공안부에 지난 2004년 서울서부지검 재직 당시 김재호 판사로부터 나 전 의원과 관련한 기소 청탁을 받은 것이 사실이라며 양심선언을 했다고 밝혔다.
나 전 의원은 지난 2004년 일본 자위대 창설기념식에 참석해 네티즌의 거센 비난을 받았고 나 전 의원은 이 내용을 퍼뜨린 누리꾼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그러나 수사가 진행되지 않자 나 전 의원의 남편인 김재호 판사가 당시 검찰 공안부에 근무 중이던 박은정 검사에게 해당 네티즌의 기소를 청탁했다는 것.
나꼼수는 “박은정 검사가 최근 주진우 기자 구속영장 청구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나경원 전 의원 남편 김재호 판사 기소청탁 관련 내용을 검찰에 털어놨다”며 “우리가 나꼼수 방송을 계속 할 수 있었던 것은 박은정 검사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주진우 기자는 지난 10월 나꼼수에서 “나 전 의원의 남편인 김 판사가 나 후보를 비방한 네티즌을 기소해 달라며 관할 지검 관계자에게 청탁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 검찰은 주 기자를 허위사실 유포로 구속수사 한다는 내부 방침을 정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박은정 검사의 양심선언으로 주 기자의 구속수사가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전해졌다.
나꼼수는 김 판사의 청탁 사실을 폭로한 박은정 검사에 대해 “우리가 살려고 박은정 검사를 죽일 수 없어 증언하지 말라고 했지만 주 기자의 구속영장 검토 소식에 박은정 검사가 검찰에 사실을 말한 것”이라며 “조직의 배신자로 낙인 찍혀 사실상 검사생활이 끝난 것으로 봐야한다”고 걱정하고 “박은정 검사를 지켜줘야한다”고 덧붙였다.
조준현 “나경원-김재호 수사해 처벌해야”
이와 관련해 법조계의 반응도 뜨겁다. 조준현 변호사는 “나경원 - 김재호는 수사해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변호사는 자신의 트위터에 “반드시 특검으로라도 나경원 남편 김재호 판사의 기소청탁을 조사해서 김재호 판사 처벌해 주세요!”라고 처벌을 촉구했다.
조 변호사는 “국가를 사익을 위해 사용하는 가카, 의원 유지위해 고소 남발하는 강용석, 주자인 국민을 처벌하기 위해 판사 남편을 이용한 나경원과 기소청탁한 김재호 판사, 자식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나?”라며 “이런 자들이 국회의원을 하며 다시 총선에 나온다니..이들이 갈 곳은 국회가 아니고 법과 정의와 역사의 심판장인데...”라고 비판했다.
또 최근 정직 6개월의 중징계를 받고 백수가 된 이정렬 창원지법 부장판사가 트위터에 “나꼼수 봉도사 7회 듣고서... 백수 한 사람 또 늘겠군... 400번째 트윗을 이런 내용으로 할 줄이야...”라고 김재호 부장판사를 거론하자, 조 변호사는 거듭 “설마 검찰총장이 이정렬 부장판사처럼 박은정 검사를 징계하진 않겠죠? 자꾸 개념검사 개념판사님들이 떠나시면 안 되는데요”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조 변호사는 “(나꼼수 방송을) 아직 못 들었지만 소식 듣고 잠이 안 오네요..화도 나고..법조인으로서 자괴감도 들고...”라고 분개했다. 조 변호사는 “박은정 검사의 양심선언으로 나경원-김재호 판사의 네티즌 기소청탁이 사실이란 걸 알게 되었는데... 할 말이 없다..나경원-김재호는 수사해서 처벌해야 한다!”며 “의원과 판사직을 남용해서 무고한 국민을 기소하도록 한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중대범죄다!”라고 규정했다.
최근 법복을 벗고 정치 입문을 고민 중인 서기호 전 서울북부지법 판사는 박은정 검사와의 인연을 소개했다. 서 판사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묘한 인연이네여. 박은정, 백혜련 검사 모두 저와 같은 사법연수원 29기죠. 특히 박은정 검사는 같은 7반이어서 잘 아는데 양심적이고 합리적인 분, 그리고 명랑했어요. 부디 중심을 잡고 굳건히 버티시길...”라는 글을 올렸다.
백혜련 전 검사 “정의로운 검사 박은정 당황”
수석 검사 출신인 백혜련 검사는 “박은정 검사는 굉장히 당황해 이 사건이 확대재생산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입장으로 전해졌다. 사법연수원 29기 동기로 박은정 검사와 친한 친구인 대구지검 형사3부 수석검사 출신 백혜련 변호사는 지난 1일 CBS라디오 ‘김현정 뉴스쇼’에 출연해 “다른 분을 통해서 전해들은 내용”이라며 박 검사의 근황을 이렇게 전했다.
이번 논란의 핵심인 ‘기소청탁’과 관련 백 변호사는 “이 사건에 대해 (박 검사가) 굉장히 당황하고 있고, 그래서 이것이 확대 재생산되는 것에 대해서 개인적으로는 원치 않는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정 진행자가 “지금 확대 재생산을 원치 않는 부분이나, 전화기를 꺼놓고 입장을 발표하지 않는 것을 보면 양심선언 같은 느낌이 아니다”라는 질문에 백 변호사는 “박 검사가 개인적으로는 나꼼수에 얘기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것이 나꼼수와 어떤 논의 하에 된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그럼 정황을 따지면 ‘누군가에게 말한 게 흘러들어 간 게 되는 거냐”고 묻자 백 변호사는 “그런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그런데 박 검사의 평소 성향으로 봤을 때 굉장히 양심적이고 정의로운 검사이기 때문에, 사건이 만약 그렇게 진행됐다면 자기가 충분히 양심적인 발언을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대답했다.
박은정 검사가 자신의 입장을 발표하지 않는 것과 관련해 백 변호사는 “사건이 이렇게 큰 파장을 가져오리라고 박 검사도 생각을 못 했을 것”이라며 “저도 똑같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말씀드리는데 제 사직수리가 큰 파장을 가져오리라고 생각을 못해서 굉장히 당황했다. 자기가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큰 반응이 올 때는 주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이해했다.
백 변호사는 그러나 “조만간에 개인적으로 정리할 부분은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박 검사가 ‘기소청탁’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으로 전망했다. ‘검찰조직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하지 않겠느냐’는 우려에 대해 백 변호사는 “검사로서 가장 큰 것은 인사 불이익인데, 인사처리가 2월에 끝났기 때문에 당장 검찰조직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면서도 “단지 검사 생활을 하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어려울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날 인터뷰에서 판사들의 청탁이 이뤄지고 있음이 드러났다. 백 변호사는 “일반적으로 판사들의 경우 가족이나 친인척이 얽혀 있는 사건을 가끔 청탁하는 경우가 있다. 보통 담당검사한테 판사가 직접 하는 경우는 드물고 자기가 아는 검사의 사법연수원 동기를 통하거나 공판검사를 통해서 들어오는 경우가 많이 있다”며 “그런데 직접적으로 기소를 해 달라, 이런 구체적인 내용을 가지고 청탁하는 경우는 아주 드문 경우”라고 밝혔다.
‘판사가 직접 기소를 부탁하면 검사 입장에서 심리적으로 얼마나 부담이 되느냐’라는 질문에 백 변호사는 “개인적인 차이가 있는데 판사가 자기보다 사법연수원 기수가 위고 직급이 부장판사나 더 높은 법원장급이라든지 또 높은 분을 통해서 들어왔을 경우는 개인적으로 많은 신경이 쓰이고 압력으로 좀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진행자가 ‘이번 경우에 만약 사실이라면 박은정 검사가 어느 정도 부담이 됐을까요’라고 묻자, 백 변호사는 “제가 말씀드리기 어려운 부분인데 일단 나경원 전 의원의 남편인 김재호 부장판사가 박은정 검사보다는 더 사법연수원 기수가 윗분이고 나경원 전 의원의 신분도 있기 때문에 박 검사 입장에서 어느 정도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은 든다”고 대답했다.
사법연수원 21회로 현재 서울동부지법에서 근무하는 김재호 부장판사는 29회인 박은정 검사보다 사법연수원 기수가 8기 높다. 또 나경원 전 의원도 사법연수원 24기에 판사 출신으로 2004년 이후 한나라당 의원으로 활동하며 대변인과 최고위원까지 지냈고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국회의원직을 사직했다.
공지영 “법원·검찰 엘리트조직 엉망진창”
이와 관련 소설가 공지영 작가는 검찰 조직을 겨냥해 비판의 날을 세웠다. 지난달 29일 자신의 트위터에 “박은정 검사에게 배신의 ‘배’자라도 쓴다면 검찰조직을 자타가 조폭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라며 “그들은 우리가 낸 세금으로 월급 받는 이들이니 국민의 이익에 철저하게 복무해야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진짜 배신자가 누군지 명확해진다”고 검찰을 겨냥했다.
또 “서기호 판사, 박은정 검사를 보고 있노라면 국가의 최소한의 상식이며 기강인 법에 종사하는 법원 검찰 등 최고 엘리트조직들이 이렇게 엉망진창인 나라에서(얼마나 얼마나 누르고 감추려다 터진 사건들인지) 정상적 삶을 영위하는 것 자체가 비정상적이다”라고 개탄했다.
박영선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은 지난 2일 “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이 대한민국 변화를 위해 핵심의제로 등장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힘주어 말했다.
박 최고위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이 사건에 대해 나경원 전 의원과 김재호 판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판사가 검사에게 사건과 관련해서 직접 전화를 했다고 보도된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한마디로 사법부의 신뢰문제”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어제 나경원 전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전화통화를 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청탁하지 않았다는 답변만 되풀이 한 것으로 보도 되고 있다”며 “기소청탁설 문제의 핵심은 김재호 판사가 박은정 검사에게 전화를 했는가 하는 사실 여부”라고 비판했다.
이날 민주통합당은 양심고백 후 사표를 제출한 박은정 검사와 관련 “나경원 전 의원의 남판인 김재호 판사의 기소청탁 의혹과 관련해 사실관계를 밝힌 박은정 검사가 조직을 떠난다고 밝혔다”며 “후배 법조인의 앞길 막은 김재호 판사는 침묵하지 말라”고 압박했다.
김현 수석부대변인은 “나경원 전 의원은 어제(1일) 기자회견에서 의혹을 부인했지만 통화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아 사실상 통화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며 “그런 가운데 양심선언을 했던 박은정 검사가 ‘오늘 검찰을 떠난다’는 글을 검찰 내부전산망에 남겼다”고 말했다.
이어 “기소청탁을 밝힌 박 검사는 경찰조사를 받았다. 박 검사의 사의표명에 검찰 상부의 압박은 없었는지 밝혀져야 한다”며 “어려운 결단을 한 박 검사는 사의를 표해야 하는 상황인데 처벌을 받아야 할 김재호 판사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수석부대변인은 “사건의 전개는 거꾸로 가는 대한민국, 상위 1%의 특권층이 독식하는 불공정한 사회의 단면을 똑똑히 보여준다”며 “사건의 발단, 내용, 그리고 사건의 흐름을 지켜보며 대법원과 검찰의 신뢰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후배 법조인의 앞길을 막은 김재호 판사는 비겁하게 침묵하지 말고 사실관계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혀라”고 촉구했다.
한편 박은정 검사는 지난 2일 검찰 내부 통신망 이프로스를 통해 사의를 표명했다. 이날 오전 박 검사는 검찰 내부통신망에 글을 올려 "오늘 검찰을 떠난다. 같이 근무했던 분들께 감사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길 바란다"고 자신의 입장을 간단하게 전한 후 사표를 제출했다.
이에 대검찰청은 나 전 의원 기소 청탁 의혹 관련 검찰을 떠나는 박 검사를 만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검찰청은 "박 검사에게 책임을 물을 사유가 없어 사직서를 반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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