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바람에 꽃비…시나브로 흩날리네”

e산업 / 林 森 / 시인 / 2013-04-27 17:5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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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T VIEW- 林 森 '벗이여! 오오!' [일요주간=林 森 / 시인]

- 벗이여! 오오! -

너 들리니 ?

꽃순 살그머니 열리는 저 소리

사락 사라락,

진하게 살점 묻어나는

그리움 차마 버거워

가슴패기 보듬으며

파르라니 살아온 나날

기둘림이 별되어

하늘 총총 박히더니

솔바람에 꽃비인 양

시나브로 흩날리네

수십 세월 흘렀어도

계절이사 그 때 그 봄

강산 모습 변했지만

동심일랑 그 때 그 꿈

넌 듣고 있니 ?

귓전에서 솟아나는

네 실핏줄 소리

팔딱 파알딱,

시방 얼른 나서오

벗 !

詩作 note

헐벗고 굶주린 우리의 동포, 우리의 이웃, 우리의 벗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배고픔과 속박에 시달리며 신음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보여지고 있으나 도무지 도울 방도가 생겨나지를 않아 너무나도 안타깝기만 하다.

인생의 축복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아마 좋은 만남의 축복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사람들과 만나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 내 인생의 내용과 질적인 수준을 결정하게 된다. 좋은 부모와 좋은 배우자, 좋은 친구나 좋은 스승, 그리고 좋은 이웃과 좋은 거래처....이런 선택된 좋은 만남이야 말로 삶에 있어서 정말 큰 축복이며 행운이다.

그러나 어떤 좋은 만남도 그 좋은 만남을 준비하고 맞아들이려는 적극적이며 주도적인 나 자신의 노력과 다짐이 선행되어야 함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냥 막연하게 기다리기만 하는 가운데 저절로 좋은 만남들이 찾아드는 법은 없다.

그러므로 중요한 시작은 없이 중간에 어떤 재주나 기교를 부려서 만남의 가치를 조절하려 든다든지 만남의 결과만을 맛보려 한다는 건 인생 헛수고에 지나지 않는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사는 것, 이것이 참된 인생을 사는 지표라고 믿는 바이다.

어차피 바람처럼 허허로운 것이 우리네 삶이고 그렇게 물처럼 유유히 흐르며 사는 것이 우리네 인생의 이야기이다. 만남이 흐르는 물과 같을진대 서로의 가슴에 생채기를 내며 서로 등지고 못할 짓 하면서 살 일이 무에 있을까? 그냥 바람처럼 무욕의 마음으로 살다 가야 할 것이다. 그저 구름처럼 세상을 감싸 안으며 떠돌다 가면 될 것이다.

우리 인간에게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것이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반복되면서 갖게 되는 자연스러운 감정 관리일 것이다. 시기와 질투의 감정에 휩쓸리면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고 남에게 피해를 주게 될 뿐만 아니라 때로는 모함에 빠뜨리게 되기도 한다.

대체적으로 그런 사람들은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거나 심리적으로 상당히 불안정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자기 자신은 돌아보지 아니하고 남의 약점이나 단점을 물고 늘어지며 희열을 느끼는 게 과연 사람이 할 도리인지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매사에 형평성 있고 공정해야 할 우월적인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심사숙고하여 자신의 결정이나 언행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횡포로 이용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완벽하지 못하기에 잘못할 수 있고 실수할 수 있겠지만 똑같은 일의 반복적인 악용으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힌다면 그런 사람은 스스로 사람이기를 거부하는 금수보다도 못한 미물에 불과할 뿐이다.

이렇듯 자기 자신을 모르는 어리석음 때문에 감정의 노예로 전락하여 치졸하고 저급스러운 행동을 한다면 우리는 그런 사람의 삶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삶이 더 이상 삭막하지 않고 풍요로우면서도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는 그날까지 이웃을 향한 사랑을 영원히 이어가려는 노력이야 말로 정겨운 만남을 지속시키는 데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조건이 되는 것이다

요즈음 정국이 여러모로 불안하고 국내외적으로 혼란스러운 일이 많이 일어난다. 특히 전 세계를 적대시하며 마치 세상에서 최고로 막강한 강대국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북한의 오만함과 억지가 도를 넘고 있다.

어려운 이념의 대립이나 헤게모니의 문제도 떠나고, 다변하는 국제 정세를 논할 필요도 없이 당장이라도 전쟁을 일으킬 것 같은 저들의 엄포와 허풍이 가히 목불인견이다.

이러한 이해하기 힘든 가치관과 무모한 돌발적 정신세계에 빠져있는 집단을 이웃으로 두고 있는 우리나라는 지금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기가 난감한 건 더 말할 여지가 없는 노릇이다.

하필이면 왜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국가 중에서도 가장 호전적이며 상식이 통하지 않는 부류의 호전광들을 이웃으로 두게 되었는지 참 딱한 실정인 것이다.

그동안의 분단 역사와 동족상잔의 원인 등은 차치하고 이제부터라도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와 신념을 가지고 좋은 관계를 유지 발전시키는 노력을 함께 기울인다면 더없이 좋겠건만 이 위인들은 도대체가 어찌된 영문인지 기초적이며 원론적인 대화조차 통하지를 않으니....

아예 모든 진리나 원칙을 무시하고 본인들의 주장만을 되풀이하며 스스로 고립되고 왕따가 되기를 자처하고 있는 모양은 동서고금을 통해도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든 일인 건 엄연한 사실인데 문제는 그 피해나 고통은 사단을 일으키고 있는 무뢰배들과는 전혀 무관한 선량하고죄없는 일반 주민들이 오롯이 떠안고 있다는 사실이다.

헐벗고 굶주린 우리의 동포, 우리의 이웃, 우리의 벗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배고픔과 속박에 시달리며 신음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보여지고 있으나 도무지 도울 방도가 생겨나지를 않아 너무나도 안타깝기만 하다.

그네들이 무슨 죄가 있어서 그 동토에서 태어나게 되었단 말인가?

대를 이어 맹목적으로 충성만을 강요하며 그 댓가로 헐벗고 굶주리는 삶을 멍에처럼 제공하고 있는 저 불한당들의 치하에서 실낱같은 희망도, 오고 가는 계절도 잊은 채 오직 하루하루의 목숨만을 겨우 연명하고 있으니 언제나 저 동포들에게도 찬란하고 따뜻한 봄의 햇살이 비추어질 수 있게 될까?

언제 쯤이면 저들도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며 자유로운 하늘 아래서 서로 손잡고 어깨동무하면서 즐거이 춤추고 노래할 수 있게 될까? 봄이 오면 청아하게 돋아나는 새싹들과 나날이 포근해져가는 공기를 만끽하면서 새로운 계획과 생활의 활력을 준비하는 것이 이 계절이라면 누구나가 당연하게 여기고 또 그리하는 것이 마땅한 인지상정인 것조차 생각도 못하고 있는 가녀린 우리의 벗들, 안쓰러운 우리의 이웃들을 할 수만 있다면 정말이지 따뜻한 가슴으로 꼬옥 안아주고 싶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저 도당들의 도발에 대응하는 정도의 수준 말고 그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모든 힘과 지원을 모두어 자유와 동족의 이름으로 휴전선을 무너뜨리고 북녘에서 신음하고 있는 불쌍한 동포들을 당장이라도 해방시키고 싶다.

조금만 그 고집을 양보하고 대화의 장으로 나와서 국제 질서에 협력하며 국제 사회의 일원이 되기만 한다면 모든 경제적인 원조나 인도적인 교류도 기꺼이 베풀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 우리 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이 내미는 손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있는 어리석은 저들은 대관절 무슨 근거로 저들이 누리고 있는 권력과 체제가 영원할 거라고 여기고 있는 걸까 ?

과연 저들은 스스로가 축복 받은 역사의 장을 만들어나가고 있다는 생각일까 ?

제발 지금이라도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안하무인이며 오만방자한 생각이야 말로 축복이나 승리가 아니라 저주가 되고 파멸로 가는 지름길임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기실 모든 인간에게는 죽음이 그 앞에 있다. 죽음이라는, 모든 인간이 예외 없이 가야할 길을 생각하며 겸손해지지 못하고 역사를 두려워 할 줄 모르는 인간이나 집단은 반드시 실패한다는 건 필연적인 귀결이다. 단언컨대 그런 오류를 범하는 인간들은 깊이가 없다. 그래서 생각이 가볍다. 그리고 행동 자체가 교만하다. 헛된 것으로 자신만만해 하는 인간은 어리석을 따름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지나온 삶과 시간 속에는 수많은 크고 작은 일들이 있어왔다. 각종 스포츠나 과학적인 성과를 통하여 세계를 놀라게 한 쾌거도 있었고 각종 예기치 못한 사건 사고들로 인해 온 나라가 충격에 빠지고 온 국민들이 슬픔에 잠기는 적도 있었다. 우리는 이러한 시절의 흐름이 모아지는 것을 역사라고 부른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세상과 사람들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든 것을 금새 잊고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불과 몇 해 전에 북한의 도발로 인하여 수많은 희생자를 냈던 천안함이나 연평도 포격사건, 그리고 또 다른 많은 만행의 흔적과 기억들을 우리는 과연 이 시간 얼마나 생생하게 우리의 뇌리 속에 각인시켜놓고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을까 ?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우리 주변의 파렴치한 각종 대형 사고들을 대하면서 가슴이 섬찟해질 때가 종종 있다. 이렇듯 세상은, 그리고 그 속에서의 사람들은 모든 일들을 정말 쉽게 망각하는 것 같다.

필자가 아무리 목소리를 높이고 많은 것을 짚으며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려 하여도,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것을 기억하자고 호소하여도, 세상은 그저 언제나 그랬듯이 어떤 일도 쉽게 잊어버리고 남의 일로 간주하면서 또 뭔가의 새로운 상황과 다른 일에 열중할 따름이다.

왜 그런가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이것이 인간의 유한함과 연약함, 그리고 남 보다는 나 자신을 먼저 챙기려 하는 이기적인 에고이즘과 맞닿아있는 본성이리라 생각한다.

인류의 긴 역사 속에는 어김없이 세 가지의 인생들이 존재한다.

첫째는 이름 모를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인생이다. 그들은 정말이지 먼지처럼 벌레처럼 역사의 밑바닥에서 거름이 되고 진토가 되며 길고 긴 역사의 뒤안길을 받쳐왔다.

둘째는 선천적으로 좋은 여건에서 만들어져서 인정받는 삶을 살다 간 그래서 역사의 한 페이지에 이름을 끼워넣은 소위 리더급의 인생이다. 그 역할이 중요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느 시대에나 그런 이름들은 늘 존재한다.

그리고 셋째는 실질적인 역사를 만들어낸 움직이는 인생이다.

처해진 여건이나 출신은 미천하고 볼품없지만 엄청난 노력과 도전으로 그 존재가 새롭게 태어나 역사의 한 가운데에 주인공으로 자리매김 되도록 거듭난 인생을 말한다.

그들은 그들의 삶을 통하여 역사적인 인물이 되기까지 자신의 연약하고 모자람을 극복하기 위해 더욱 더 노력하고 자기계발의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랬기에 그들은 지워지지 않았고 장구한 역사를 만든 위대한 반열에 자신들의 삶과 이름을 올려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힘들고 간단하지 않은 제언이지만 가능하다면 우리 모두도 이런 역사에 남는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인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 자신의 이름만을 드높이고 개인적인 출세를 하기 위한 단편적인 달성 욕구가 아니라 더불어 사는 우리의 이웃들에게 참다운 벗이 되고 동반자가 되어지며 서로가 짊어지고 있는 짐과 고통을 기꺼이 분담하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역사 위에 자신의 인생을 세우면서 앞으로 전진하는 삶의 모습, 모두의 삶이라는 큰 틀 안에 개인 개인의 삶들이 조화롭게 담겨져서 함께 미래로 나아가는 우리의 삶의 모습이 되었으면 한다.

새삼스러울지는 모르겠으나 너나 할 것 없이 이 봄에 적어도 벗이라는 제목 앞에 다짐 하나는 해두었으면 한다.

지난 날의 후회스럽고 잊고 싶은 삶의 모습은 모두 똘똘 묶어서 깊은 겨울의 골짜기로 던져버리고 우리의 마음 안에 봄의 소식을 불어넣고, 봄의 기운이 살아나면서, 봄의 향기가 드러나는 만인의 벗으로 거듭나기를 다짐해보자는 말이다.

아마 그리하면 비록 우리는 지금 평범하고 작은 삶의 크기로 살아가고 있는 소시민이지만 역사 속에서 그 이름이 영원히 빛나고 있는 선택받은 인생들처럼 귀하고 복된 인생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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