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화 시인의 작가 초대석 ] 시인 박순 『바람의 사원』, 상처가 성소가 되는 순간

Interview / 이은화 작가 / 2026-03-30 15: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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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이은화
대담자: 박순
▲ 시인 박순

 

 

박순 1970년 강원 홍천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계간 『시인정신』 신인문학상 수상(2015)으로 등단, 시인정신 우수작품상, 서울시립뇌성마비복지관 표창, 제2회 서울시민문학상 본상, 제5회 하유상문학상 수상 등이 있다. 현재 노원문인협회 이사, 문화앤피플 이사, 아태문화예술총연합회 부회장, 서울시립뇌성마비복지관 작문교실 강사, 국민권익신문 기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페이드 인』 『바람의 사원』이 있다.


Q. 선생님, 반갑습니다. 먼저 선생님 소개 부탁드려요.

▶ 안녕하세요. 먼저 <작가 초대석>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도 시를 뜨겁게 사랑하는 박순 시인입니다. 저는 계간 『시인정신』으로 2015년에 등단했습니다. 벌써 등단한 지 11년 차이고 시집 『페이드 인』과 『바람의 사원』이 있습니다. 11년 차라고 말하니 시인으로서 책임감이 느껴집니다. 또한 서울시립뇌성마비복지관에서 작문교실 강사 7년 차이기도 합니다. 제 소개를 하려니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갑니다. 시를 처음 쓸 때의 설렘과 강의를 했던 첫 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처음 저를 소개할 때 시를 뜨겁게 사랑한다고 했는데 지금도 시와 연애 중입니다. 그 사랑이 앞으로도 계속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이름에 대해 궁금하신 독자가 많습니다. 제 실명은 박순자, 필명은 박순 朴筍입니다. 등단하면서부터 필명을 썼습니다. 순筍은 식물의 싹을 말하며 무럭무럭 자라서 좋은 기운을 많은 분에게 나누어 주라는 의미입니다. 좋은 기운이 많은 분에게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Q. 첫 시집 『페이드 인』의 표제작은 어떻게 탄생했으며, 폭포를 소재로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 「페이드 인」을 먼저 낭독하겠습니다.

물줄기는 지그재그로 흘렀다 무모하게 뛰어내렸다 절벽 앞에서 뒷걸음질 치고 싶은 날도 있을 것이다 부딪치고 튕겨져 나왔다 무른 바위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시간은 계속된 지 오래 서로는 파편이 되어가는 시간에 충실했다 어느 한 날 폭포는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얼어 붙었다 산짐승의 이빨을 닮은 폭포는 바닥을 향해 매달려 있다 겨울이 깊어질수록 폭포와 바위는 뜨겁게 엉겨 붙었다 경계를 감춘다 겨울은 마취의 계절이다 눈을 좀 붙여보는 건 어때? 한숨 자고 나면 괜찮을 거야… 봄은 서로의 경계를 드러내는 통증의 시간 입술 위에 봄을 올려놓는다, 그 환한 봄을,

‘페이드 인’은 영화나 연극에서 어두운 화면이 밝아지는 기법을 뜻합니다. 첫 시집 『페이드 인』의 표제작인 「페이드 인」은 산행 중에 본 폭포에 대한 시입니다. 여름 폭포에 대한 시는 이미 많은 시인이 썼기에 저는 겨울 폭포에 대해 쓰게 되었습니다.


빙벽이 된 겨울 폭포는 어쩌면 경계를 감추며 꽉 부둥켜안고 있다고 상상했습니다. 잠깐의 마취로 휴식을 취하는 폭포를 쉼이 필요한 사람의 모습으로 의인화했습니다. 봄은 환희의 계절이지만 이 시는 환희를 역설적으로 표현했습니다. 또 다른 고통의 시간이 봄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Q. 두 번째 시집 『바람의 사원』의 제목은 시집 전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들려주세요.


▶ 「바람의 사원」을 먼저 낭독하겠습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나는 몰랐다 /구부러진 길을 갈 때 몸은 휘어졌고/발자국이 짓밟고 지나간 자리에는/꽃과 풀과 새의 피가 흘렀다/바람이 옆구리를 휘젓고 가면/돌멩이 속 갈라지는 소리를 듣지 못했고/바람의 늑골 속에서 뒹구는 날이 많았다/바람이 옆구리에 박차를 가하고 채찍질을 하면/바람보다 더 빨리 달릴 수밖에 없었다/질주본능으로 스스로 박차를 가했던 시간들/옆구리의 통증은 잊은 지 오래/일어나지 못하고 버려졌던/검은 몸뚱이를 감싼 싸늘한 달빛/그날 이후/내 몸을 바람의 사원이라 불렀다

언제부터인가 바람의 숨결에 저도 모르게 멈추곤 했습니다. 보드라운 바람도 있지만 휘청거리게 하는 바람도 계속 존재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백사마을 언덕을 오른 적이 있었습니다. 지붕에 얹힌 검은 폐타이어가 그 집을 바람으로부터 막아주고 있었습니다. 제 삶과 같은 동질감을 느꼈고 싸늘한 달빛 아래 누워있는 모습은 어쩌면 인생과도 참 닮았습니다.


해설 주제인 ‘삶의 근원적인 질문들에 관하여’ 다시 생각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나는 왜 살아가는가,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일 것입니다. 바람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무수한 상처의 흔적들이 남을 것입니다. 저는 상처를 입은 자연이 될 수도 있고 상처를 주고 있는 인간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스스로 박차를 가하며 더 빨리 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 삶이기도 합니다. 모든 생물이 살아가는 데 있어 햇빛과 공기 그리고 바람이 꼭 필요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대상을 인식하게 만드는 그 바람, 바람들, 바람들, 제 두 번째 시집인 『바람의 사원』 제목처럼 제 몸은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바람의 사원이기도 하고 또한 새로운 시간의 삶을 바라는 사원이기도 합니다. 가장 핵심이면서 주제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시가 「바람의 사원」입니다.
 

▲ 오뚜기들의 글 발표회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모습



Q. 시집의 해설을 직접 쓰셨는데, “무모하다”라는 평도 있었다고 하셨어요. 그럼에도 직접 쓰신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 시집이 출간된 후 무모하다는 평과 새롭게 도전해서 신선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기존 시집들처럼 평론가에게 맡기지 왜 직접 썼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고 무모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첫 번째 시집 표제작인 「페이드 인」의 폭포도 “절벽 앞에서 뒷걸음질 치고 싶은 날도 있을 것”입니다. 도전도 해 보지 않는다면 삶이 재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인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시집을 정리하면서 해설을 직접 써보면 어떨까, 하는 용기로 시작했습니다. 한 편 한 편 제가 애정하는 시를 직접 골라서 주제별로 나눈 후 전개했습니다. 제가 직접 쓴 해설집이라 다 쓰고 난 후에 뿌듯했습니다. 해설 주제는 ‘삶의 근원적인 질문들에 관하여’입니다. 해설을 쓰는 과정에서 삶을 돌아보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Q. 「바람의 사원」이 해외 언론 <신드쿠리에>신문에 영문으로 번역 게재되었습니다.

▶ 2025년을 저는 잊을 수 없습니다. 인생의 전환점이 된 해이기 때문입니다. 주위에 사람들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는 말을 실감합니다. 저를 아끼는 분을 통해 소개받았습니다. 강병철 박사님이 「바람의 사원」을 영문으로 번역해서 <신드쿠리에신문>에 게재될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해외 언론에 소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정도로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많은 분께서 격력와 응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신 모든 분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Q. 2020년부터 서울시립뇌성마비복지관에서 작문교실 강사로 활동하며 느낀 점과 그 경험이 시 창작에 미친 영향은요?

▶ 처음에는 ‘내가 할 수 있을까?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보면 눈물부터 나지 않을까? 어떡하지?’하는 걱정과 설렘으로 긴장이 되었습니다. 장애인은 시가 아플 것이라는 편견을 벗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쁘고 아름다운 시를 쓰는 분들이 많습니다. 또한 시에 대한 열정이 넘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도 매너리즘에서 벗어날 때가 많습니다. 함께 호흡하며 글을 써 작품집을 만드는 시간이 참으로 소중합니다. 강의를 준비하기 위해 더 많은 자료를 찾고 시집, 소설, 에세이를 읽습니다. 연극, 영화, 뮤지컬, 전시회를 보고 다니면서 시의 소재와 주제를 찾아 시를 씁니다. 어떻게 보면 강의를 준비하는 시간은 곧 시를 쓰기 위한 준비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작문 교실은 수업을 마칠 때 항상 주먹을 가슴 위로 올리며 같이 외칩니다. “당신의 미래는 일상 루틴 속에 숨어 있다. 마이크 머독” 그리고 박수를 칩니다. 저는 매일 아침 시를 필사하고 이론을 공부하고 다양한 작품을 읽는 등 저를 위해 한 시간 정도 공부합니다. 이 루틴은 저를 성장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회원들의 시가 제 피드백을 통해 점점 완성도가 높아질 때 기분이 좋습니다. 강사를 하면서 회원들과 함께 성장하는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다.


Q. “현재의 사회적 실상을 외면하면 시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시인이 사회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시인으로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일은 어떤 의미인가요?

▶ 시를 쓰지 않으면 시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현재의 사회적 실상을 외면한다면 시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관점을 달리하면 보이는 것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내는 것도 좋지만 소외되고 아픈 분들의 힘겨움, 부조리한 실상들을 직시하면서 직설로 때론 은유로 사회적 실상을 담아내는 것이 시인으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외롭고 쓸쓸한,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좋습니다. 묵묵히 한 걸음씩 걸어가면서 시인이라는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그 한 줄 붙들기 위해 오늘도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선한 영향력에 대해 생각합니다. 저로 인해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기를, 글을 쓰는 동기를 부여하기를 바랍니다. 힘들어 비틀거릴 때 제 시로 그들을 일으켜 세울 수 있기를, 작은 위로가 되고 함께 울어주는 그런 시인이 되기를요. 은혜를 입었으니 저 또한 베푸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각박하고 이기적인 삶 속에서 따뜻한 풍경을 함께 그려내며 서로에게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시간을 늘 생각합니다. 제가 그런 사람으로 살고 있는지 계속 묻습니다.


Q. 평론가와 독자로부터 받은 피드백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나 조언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 지은경 문학평론가는 “시적 묘사는 설명이 아닌 상징과 암시이다. 박순 시인의 시들은 새로움을 추구하는 도전정신과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시창작의 예술성을 높이 사고 싶다. 소재가 다양하고 말 부림의 재능과 재치가 엿보이며 함축된 깔끔한 말맛이 박 시인 시의 특징이라 하겠다.”라고 했습니다.

권성훈 문학평론가는 “「바람의 사원」은 제목에서 보이듯 어디에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바람과 종교적 교당을 합성한 신비적 공간이다. 누구나 바람처럼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바람이 남긴 ‘발자국’이라는 흔적을 통해 그것을 인식하게 된다. 바람은 스스로 자신의 형태를 드러낼 수 없기에 본질적으로 부딪침이라는 대상을 통해 발현되는 신과 같은 존재일 수 있다. “바람이 옆구리에 박차를 가하고 채찍질”하는 것같이. 이 ‘채찍질’이라는 ‘통증’이 어디서 오는지 신만이 아는 것으로 살아 있는 존재 모두 ‘바람의 사원’에서 맡겨진 채 벌어진다.”라고 했습니다.

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는 “「바람의 사원」은 박순 시인의 뛰어난 언어적 감각과 깊은 철학적 사색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복잡한 관계를 세심하게 탐구하는 시다. 이 시는 독자에게 자연과의 관계를 재고하고, 자신의 삶과 정체성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시적인 아름다움과 함께 귀중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오는 작품이다.”라고 했습니다.

어떤 독자분들은 제게 중요한 피드백을 해 주셨습니다. “시집을 읽으니 누구도 쓸 수 없는 ‘박순 표’를 읽었다.”라고 격려와 응원을 보내 주셨습니다.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내 얘기야 하면서 울다가 웃었다.”라고 하셨습니다. 시를 쓰는 일은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독자와 공감을 나누는 일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Q. 최근에 작업한 일 중에서 소개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다음 시집에서는 어떤 풍경을, 어떤 목소리로 담고 싶으신가요?


▶ 올해 1월 말에 시네포엠 “초대”가 공연에 올랐습니다. 지면 발표로 문학작품을 만나는 한계를 벗어난 의미 있는 작업이었습니다. 제 시 「장마」 「레드, 블랙」 「화장 1」 세 편을 가지고 예전에 희곡으로 썼습니다. 이번 작업에 이 희곡을 토대로 예술 감독님이 시나리오로 각색했고 독립영화로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장마」는 불안한 어린 저를 만나고 「레드, 블랙」은 화가 마크 로스코를 통해 살아가야 하는 의미와 위로, 응원을, 「화장 1」은 별이 된 엄마를 다시 만나는 내용으로 세 편이 하나의 스토리로 연결이 되었습니다. 어떤 분이 유튜브에 올라온 동영상을 시청하신 후 “온몸에 전율이 흐르고 눈에 이슬이 맺혔다.”, “새로운 시도에 박수를 보내고 문학작품 활동을 이런 모습으로도 한다니 깜짝 놀랐다.”라는 등 긍정적인 말씀을 주셨습니다. 다양한 시도를 통해 경계를 허물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독자에게 더 가깝게 다가가는 계기가 되어 기쁩니다.


빌 게이츠는 “나는 힘이 센 강자도 아니고, 두뇌가 뛰어난 천재도 아니다. 날마다 새롭게 변했을 뿐이다. 그것이 나의 성공 비결이다.”라고 했습니다. 세 번째 시집에서는 두 번째 시집에서 볼 수 없는 시를 많이 담을 예정입니다. 다른 표현과 묘사로 새롭게 읽히도록 쓰고 있습니다. 최종적으로 저는 “박순 표”시를 지향하고 싶습니다. 저만의 인식과 표현으로 독자에게 다가가겠습니다.


* 오늘 인터뷰에서 시 한 줄을 붙들기 위해 잠 못 이루는 밤을 기꺼이 택한다는 박순 시인과 함께했습니다. 겨울 폭포가 바위를 껴안듯 삶의 통증을 외면하지 않고 시어 속에 녹여온 시간이 두 권의 시집 안에 담겨 있는데요. 서울시립뇌성마비 복지관에서 회원들과 함께 성장하고 문학의 경계를 허물며 해외 언론에 시가 실리는 기쁨까지 누렸지만, 시인은 여전히 “시와 연애 중”이라고 말합니다. 세 번째 시집에서 만날 “박순 표” 시가 벌써 기다려집니다. 오늘 귀한 시간 함께 주신 박순 시인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 이은화 시인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일요주간 문화예술 전문 주필위원.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cactus681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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