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주간=박현군 기자] 유통재벌이 중소 협력업체에 대한 횡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정치권의 특별 과제인 경제민주화에 대한 국민 요구도 유통구조의 재벌독식에 대한 문제점에서부터 출발했다. 그러나 재벌중심의 유통구조가 소비자의 권익을 보장하는 순기능적 측면이 있다는 주장도 일각에서 제기되는 것도 사실이다. 재벌중심의 유통구조는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일요주간>은 재벌중심 유통구조에 종속되어 있는 식품산업의 실태를 연구 발표한 현대정책연구원의 신승철 박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 유통산업의 건전한 발전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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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정책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 신승철 박사 |
현대정책연구원 경제연구본부는 지난 2일 ‘식품산업 유통 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사협력 과제 연구’라는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신승철 박사를 책임연구원으로 하여 발표된 이 연구보고서는 식품산업이 재벌중심 유통업체들의 종속 산업화되면서 갖게 된 업계 발전의 구조적 한계성을 지적하고 있다.
신 박사는 우리나라 유통산업이 특정 유통재벌의 문제가 아닌 재벌중심으로 독과점화 된 유통구조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유통재벌은 각 채널을 모두 보유·운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유통산업 왜곡과 중소협력업체의 종속화를 불러오는 근본적인 원인이다.”
신 박사는 우리나라 유통산업의 문제점에 대해 이같이 진단했다.
우리나라의 유통산업은 신세계그룹과 롯데그룹이 서로 경쟁하는 쌍두마차적 체제를 갖추고 있으며, 그 외 GS그룹이 홈쇼핑, 편의점, SSM 사업을, 삼성그룹에서 분사한 홈플러스가 대형마트, SSM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 외 현대백화점 등 다수의 재벌들이 유통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 현 유통업계의 현실이다.
신 박사는 “재벌들이 유통산업에 발을 디디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될 수 없다. 문제는 재벌들이 한 개 체널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보유 유통채널을 문어발 식으로 확장해 나간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유통산업은 유통재벌 간 경쟁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지만 유통체널 간 경쟁은 사실상 없다. 일부 전문 유통기업이 나름 치열한 고민과 경쟁을 시도하고 있지만 규모와 역량의 한계로 인해 재벌 유통그룹의 아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라고 지적했다.
신 박사는 “이같은 유통재벌들의 다채널 확보는 고객의 집중을 낳게 되고 결국 가공식품 산업 등 중소 제조업체들은 유통재벌들의 외면을 받게 될 경우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판매가 막막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특정 협력업체가 롯데쇼핑과 문제가 발생되면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롯데쇼핑, 롯데슈퍼 등에서 물건을 철수하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이 때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 홈플러스 등에 충분히 물건을 공급하고 있더라도 일단 유통체널의 25%에서 외면 받았기 때문에 영업전략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재벌유통 독과점에 중소협력사 종속 심화
신 박사는 중소 제조 협력업체들의 시각에서 볼 경우 우리나라의 재벌중심 유통구조는 사실상 독과점 구조의 공고화라고 지적했다.
신 박사는 “신세계백화점의 이마트 개점, 롯데그룹의 홈쇼핑 사업 진출은 사실상 유통환경 변화에 대한 물타기 식 경영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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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미국과 유럽 등 소위 유통 선진국이라고 말하는 나라들에서는 한 개 그룹이 다채널을 보유하기 보다는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유통채널을 더욱 특화시켜 타 경쟁사와 타 채널에 고객을 빼앗기지 않도록 서비스와 상품의 질을 더 높이는 방법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유통 선진국에서는 유통 채널 간, 동일 유통 채널 내 경쟁기업 간에 치열한 경쟁이 살아있게 되고 결국 고객 독점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되면서 소비자와 중소 제조 협력업체들과 함께 3자가 모두 상생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유통재벌들이 고객을 사실상 독점하는 구조로 가다보니 중소제조업체들이 항상 을(乙)의 위치에 놓이게 되고 결국 불공정 거래 관행이 발생된다는 것이다.
PB상품, 많이 팔수록 제조사는 손해
신 박사는 유통재벌과 협력업체 간 대표적 불공정 관행이 할인행사와 PB상품(유통업체가 제조업체에 제품생산을 위탁하여 후 유통업체 브랜드로 내놓는 상품)이라고 지적한다.
본래 할인행사는 외국에서 바겐세일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할인행사로 변질되면서 불공정거래가 관행화 됐다고 주장한다.
신 박사는 “유럽이나 미국 등의 경우 세일행사는 자신이 본래 확보한 물건들을 가지고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진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우리 유통채널의 경우 할인행사를 위한 상품을 협력업체로부터 별도로 받고 있다. 즉 고객들에게 싸게 팔수록 발생되는 마진율 하락을 중소협력업체들에게 전가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신 박사는 식품가공산업에서 특히 이같은 불공정 거래관행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일본 방사능의 태평양 오염과 기후변화 등으로 주요 식재료의 가격이 상승하고 있지만 식품업체 매출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대형 할인점들은 가격 인하 압력을 더욱 가하고 있을 뿐 아니라, 판매비 전가, PB상품 요구 등으로 인해 식품산업체들의 수익성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라고 밝혔다.
대형마트가 이같은 횡포를 일삼는 배경에는 고객을 쥐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신 박사의 설명이다.
신 박사는 “대형 유통업체의 비중이 커지면서 식품유통 경로의 지배권이 제조업체에서 유통업체로 이전됐기 때문에 식품산업체들은 유통업체의 무리한 요구를 거절하기 힘들다”고 했다.
특히 신 박사는 대형마트의 경우 상위 4개 업체가 전체 시장의 75% 장악하고 있는 등 독과점이 심화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PB상품의 경우 신세계, 롯데쇼핑 등에서는 대형 유통재벌사와 중소제조업체들 간 상생 전략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신 박사는 우리나라에서 대형 유통채널들의 PB상품이야 말로 협력업체들을 고사시키는 대표적 행위라고 강조했다.
신 박사는 “PB상품에서 대형유통체널과 중소협력업체 간 상생이 이뤄지려면 PB상품 개발에 유통업체의 기여가 어느 정도 반영이 되어야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백화점과 대형마트에서 진행하는 PB상품은 유통업체가 협력업체 물건들 중에서 원하는 제품을 선정한 후 PB상품 공급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즉 제조사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기존에 출시하던 제품을 겉 포장만 유통업체 브랜드로 달고 더 싼 가격에 공급해야 한다고 밝혔다.
신 박사는 “특히 PB상품이 많이 팔리면 더불어 제조사의 이름도 알려지고 기존 상품도 많이 팔리면 좋겠지만, 현실은 PB상품을 통해 제조사 브랜드가 알려질 여지도 없으며, PB상품이 많이 팔릴수록 제조사 상품을 달고 출시하는 동일 상품은 오히려 매출이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PB상품은 제조사들 입장에서 팔수록 손해”라고 설명했다.
유통재벌 독과점, 국제경쟁력에 '독'
그러면 대형유통체널들은 협력업체들과 상생의 관계를 맺는 경우는 없을까?
이와 관련 신 박사는 “대형유통체널의 중소협력업체 경쟁력 강화 모델을 꼽자면 이마트의 해외시장 동반진출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마트는 1997년 중국 상하이에 점포를 개설한 이후 현재 16개 매장을 확보하고 있으며, 3년 안에 베트남에도 1호점을 설립할 것을 선언하는 등 해외진출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그리고 식품산업부문을 포함한 일부 중소협력업체과 동반진출하여 이들의 해외진출을 돕고 있다.
신 박사는 “대형유통채널이 중소기업의 수출 길을 열어준다는 것은 평가할 만한 공적”이라면서도 “그러나 현재 국내 유통채널 중 중국과 동남아시아 이외의 해외진출, 특히 유통 선진국이라는 미국과 유럽에 진출한 기업은 전무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신 박사는 “우리나라 유통기업들은 할인상품 별도요구 등 중소 협력업체들과 불공정 거래관행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통 선진국에서 경쟁력을 갖추기는 힘들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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