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전 명예교수 “정부가 재벌들 말대로 해줬지만 실업·빈부격차 더 심화”

Interview / 김슬기 / 2015-05-28 15: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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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인터뷰-서울대 환경대학원 이정전 명예교수
[일요주간=김슬기 기자] “갑질이 여기저기서 유행한다지만 가장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갑의 행세를 하는 건 바로 지금 정부다. 그리고 여기에 당하는 을은 바로 우리. 당하는데 익숙해진 건지 아니면 지쳐가는 건지 우리는 어느새 만년 을이 되어 버렸다. 이렇게 번번이 정부와 정치권에 뒤통수 맞는 지금,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건 뭘까.” ‘왜 우리는 정부에게 배신당할까?’ 한국 경제학계의 원로, 서울대 환경대학원 이정전 명예교수는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우선 의문을 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 발짝 더 나아가기 위해선 정신 똑바로 차리고 많이 알아야 하며 더 멀리 내다봐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수많은 저서 이후 약 3년 만에 다시 출간된 그의 신간 ‘왜 우리는 정부에게 배신당할까’는 약아빠진 자본주의와 표리부동한 민주주의 속 우리가 결코 소외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알아야 할 경제학의 이론들이 충분히 집약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저서와 함께 경제학자 관점에서 보는 정부와 정치권의 구조적인 문제, 현 정부의 정책 사안들을 둘러보는 그와의 시간은 깊은 의미가 있었다.

- 시장은 정의로운가, 이후 3년 만에 출간하신 책이다.

▲ 그렇다. 대학 강단에서 가르치던 경제학 자료를 토대로 일반 대중들도 알기 쉽게 풀이한 책이다. 이 책을 출판하게 된 계기는 요즘 시대에 있다. 제목 그대로 최근 정부에게 배신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지 않는가. 근데 그건 우연적인 게 아니고, 다 이론적인 근거가 있는 것이다. 먼저 배신한 정부가 가장 문제지만 배신당한 우리도 알아야 할 것들이 많다. 바보 같이 앉아서 당하거나 정부, 정치권 욕만 하는 건 아무 소용없다. 염치없는 보수, 눈치 없는 진보 사이에서 우왕좌왕만 할 게 아니라 시민사회가 나설 차례라는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에서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어져 가는지..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를 잘 이해해야 한다.

- 특히 몇 년 사이에 정부, 정치권을 넘어 범국민적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말씀하신 것처럼 ‘정부에게 배신당했다’라고 표현했는데.

▲ ‘세월호 사고’가 바로 그것이다. 세월호 사건 그리고 당시 무력했던 정부의 구조, 거기에 안타깝게 희생됐던 수많은 이들, 또 이후 정부의 의문스러웠던 사후대책까지.. 이런 일련의 과정에 감정이 울컥했다. 아무래도 그 부분이 책을 좀 더 일찍 출간하게 된 원인이 된 것 같다. (세월호에 대한 그의 생각은 아래에 이어진다)

- 책이 총 3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에선 자본주의와 거기에 따른 정부의 역할이 서술되어 있는데, 자본주의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부자는 더 부유해지고, 서민은 더 가난해지고.. 이런 경제적 불평등을 포함해 전반적으로 자본주의 시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부가 어떻게 나아가면 될까, 정부가 어느 정도 개입해야 적절하다고 보는가.

▲ 사실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문제다. 시장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그리고 그 문제의 정도는 항상 논쟁 거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8년 세계 경제 위기 이후로 분위기가 변했다. 종전 시장을 옹호하던 사람들이 기가 죽고, 반대로 정부 개입에 대해 적극적인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근데 그렇다 해도 어느 한 쪽으로 (정부 개입에 대해)기울어진 건 아니다. 시장 옹호론자(보수)들은 최소한의 정부 개입을 기대하고 있고 또 그 반대파(진보)는 정부가 시장에 뛰어들어 경제 민주화를 이뤄야 한다고 한다. 근데 이런 진보니 보수니 편 갈라서 생각하기 보다는 양 측의 의견을 전부 제대로 알고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모든 객관적인 자료와 지식을 갖고 있어야 문제 해결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게 아닌가. 이 책을 출간한 것도 바로 그런 의미다. 그리고 내 개인적인 의견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는 거에 대해선 어느 정도는 공감한다. 하지만 과거와 같은 방식은 안 된다는 것이다.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 시장도 정부도 전부 문제가 있다는 걸 빨리 파악하고 또한 무엇보다 시민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앞장섰으면 한다.

- 그 새로운 방법이란 게 과거보단 덜 강압적이면서 보다 효율적으로 개입하는 걸 말하는 건가.

▲ 그렇다. 정부가 나서준다고 해도 과거와 같이 공권력에 입각해 개입해선 안 된다. 그건 시대를 거스르는 일이다. 1970년 신자유주의가 득세한 것도 정부가 무지막지하게 개입해서 된 일 아닌가. 근데 무제한의 자유를 줬던 신자유주의가 결국 위기를 불러오고 2008년 세계 경제 위기가 왔다. 그럼 또 다시 정부가 강압적으로 개입해야 하는가. 그럼 결국 악순환의 되풀이다. 그러니 보다 새로운 방법으로 정부가 접근해야 한다는 말이다.

- 재계에선 정부가 간섭하는 거에 대해 부정적이다. 항상 나오는 논리가 경제 발전의 저하다.


▲ 이전 정부인 이명박 정부도, 현 정부도 그렇고 재벌들을 많이 도와줬다, 재벌들 말대로 해줬다. 근데 좋아진 게 있는가? 실업은 늘고 빈부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결국 대기업 말은 틀린 거라는 거다. 정부가 여기에 말려들면 안 된다. 그러다 점점 악화되면 정경유착이 심해지는데 현재 한창 시끄러운 성완종 사건이 그 단적 예시지 않는가. 재벌들 말 들어주면 절대 경제민주화를 이룰 수 없다는 말이다.

-그 럼 시장의 큰 문제 중 하나인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구체적인 정부 정책을 이야기 하고 싶다. 그 중 임금 정책을 말하자면 최저 임금 인상 문제가 있다.

▲ 난 개인적으로 최저 임금 인상을 동의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실시가 안 된다. 삼성에서 최저 임금을 지키지 않는다고 (정부가) 이건희 회장을 가둘 것인가. 일반 자영업도 그렇다. 안 지키면 뭐 어쩔 것인가.

- 실효성이 없다는 얘긴가.

▲ 그렇다. 그걸 실효성 있게 만들려면 비용이 엄청 든다. 일일이 (최저시급 위반 대상을) 잡으려고 뛰어다니는 것도 다 세금에서 나간다. 보다 근원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 그러면 반대로 고액 연봉 상한선을 두는 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 그건 적극 찬성이다. 연봉을 줄인다고 해서 대기업 임원들이 죽지도 않으며 또 연봉이 강력하고 경제적인 인센티브를 형성한다는 이론적인 근거 또한 아직 박약하다. 연봉이 높아도 정당한 근거가 있으면 상관이 없는데 그렇지 않는 게 문제다.

- 일각에선 고액 연봉 상한선이 우리 실정에 아직 어렵지 않냐, 라는 말도 한다.

▲ 최저 임금 인상이 현실적으로 결렬된 이유는 걸리는 업체들이 주로 중소기업체, 수많은 자영업체들이다. 그 수많은 업체들을 다 잡아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대기업은 몇 개가 되나. (대기업의) 임원들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래서 (고액 연봉에 관해) 조치를 취하는 게 별로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 책 2부를 보면 투표 얘기가 많다. 근래 고령화 사회가 계속 돼가면서 정치, 경제, 사회 분야에 있어 노인 인구의 영향력은 점점 강해지는데 반해 청년들의 참여도는 떨어지고 있다. 투표율도 마찬가진데.

▲ 정치와 경제가 맞물린 문제다. 일단 젊은 층들은 바쁘고 고달프고 지쳐있다. 그러다보니 정치에 관심을 가질 여유도 없고 투표할 생각도 없다. 이게 소득 불평등과 관련된 문젠데. 소득 재분배가 잘 이뤄지고 경제적 여유를 갖게 해주면 젊은 사람들도 정치 문제에 관심을 가질 것이고 투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될 거다. 그리고 투표를 해야 한다, 라고 말하고 싶다. 투표를 하지 않으면 이 책 제목대로 정부에게 쉽게 배신당할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젊은 사람들이 (정치, 경제, 사회 문제에 대해) 의식을 가지고 나서줬으면 한다. 이 책을 출판하게 된 계기 중 하나이기도 하다. 젊은 사람들이 이 책을 많이 읽어주었으면 한다. (웃음)

- 책 3부에선 조세 정책에 관한 얘기를 하셨다. 한쪽에선 현 정부 공약이기도 했던 ‘증세 없는 복지’를 말하기도 하고 또 일각에선 증세가 있어야 빈부격차도 해소된다, 라는 얘기를 한다. 증세와 복지의 상관관계 어떻게 보시는가.

▲ 먼저 국민 소득 대비 담세율이 세계적으로 낮은 나라가 우리나라다. 통계에도 나와 있다. 이 말은 외국 부자에 비해 우리나라 부자들이 세금을 적게 내는 편이라는 거다. 이 부분에서 세금을 낼 여지가 충분히 있다. 즉 증세 여지가 있다.

- 증세라 함은 부자 증세를 말하는가.

▲ 그렇다. 가난한 사람들, 중산층에서 돈을 짜내야 한다, 라는 말이 아니다. 부자들이 세금을 더 내줘야 한다는 말이다. 대기업들 보면 돈을 그득그득 쌓았다고 있다. 여권 쪽에선 우리 경제 나쁘다고 하고 있는데 객관적으로 보면 우리 경제 절대 안 나쁘다. 경제 성장률 작년 3.4% (한국 경제 성장률 2014년 연간 기준으로 3.3%를 기록)를 기록했다. 외국에 비해 월등히 높다. 유럽 0%대, 미국 2%대다. 외국 선진국에 비해 월등히 높은 거다. 즉 잘나가고 있다는 거다. 수출도 마찬가지다. 무역 흑자가 계속되고 있다. 작년엔 세계 5대국 안에 들었다. (한국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지난 해 798억 8,000만 달러 기록, IMF 자료 기준)

- 한국개발연구원 (KDI)을 비롯해 많은 기관들은 올해 경제 전망을 어둡게 봤는데.


▲ 무역 흑자를 기록한 수치는 객관적 자료다. 세계 5대국 안에 든 건 객관적 사실이고 대단한 거다. 올림픽에서 10,11등 할 때도 아우성인데. 이건 무려 5등이다. 하지만 일반 국민들이 가난함을 느끼는 건 맞다. 이 쌓아둔 돈을 복지에 써야 한다. 종합하자면 객관적으로 봐서 (경제계에) 돈이 많다는 거, 그리고 담세율이 굉장히 낮다는 거. 그 두 개만 하더라도 우리가 복지에 인색할 이유가 없다. 결국 마음의 문제다. 부자들, 재벌들은 돈 내기 싫은 거다. 싫은데 싫다고 말할 수 없으니 다른 이상한 논리(경제가 어렵다는)를 내세우고 있는 거다. 그런 논리가 일반 대중들에게 통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일례로 박근혜 정부가 선거 공약으로 노인들에게 무조건 20만 원 씩 제공하겠다, 했는데 선거 끝나고 오리발을 내밀지 않았냐. 거기에 많은 노인들이 경제가 어려운데 어쩌냐, 라고 한다. 즉 이런 식의(경제가 어렵다는) 논리를 전파하는 재벌, 대기업과 이 논리에 놀아나는 국민들.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이 책에서 말하고 싶은 전반적인 내용 또한 그거다.

- 현 정부 조세 정책을 보면 작년 말, 연말증세가 말이 많았다.


▲ 조세 전문가는 아니니 구체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지만 경제학자 입장에서 난 개인적으로 증세 자체만 놓고 본다면 큰 무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정책을 추진하는 방법과 태도의 문제다. 먼저 설득이 필요했다. 대통령이 직접 나와 간곡하게 얘기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좀 전에도 얘기했지만 소통의 부재가 문제인 거다.

- 담배 값 인상도 말이 많았고, 대중교통 요금도 곧 오를 예정이라는데.

▲ 경제학자 입장에서 보면 지금이 적기라고는 생각한다. 전 세계적으로 디플레이션 현상을 보이고 있다. 옛날에 공공요금을 올렸어야 했는데 (못 올렸고) 지금 정부 부채가 많이 쌓여 있다. 결국 이게 다 국민 세금 부담이다. 그럼 올리되 다만 서민들에게 부담이 덜 가게 해야 한다. 물이나 전기 같은 경우 어느 정도 이상을 쓰면 높게, 이하를 쓰면 낮게, 조정할 수 있지 않냐. 차등화를 둔다면 서민들에게 부담 주지 않으면서 요금을 올릴 수 있다. 그럼 부채도 깎을 수가 있기 때문에 적기라고는 생각한다.

- 법인세율 인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 낮춘 걸 다시 원상 복귀하는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로 인상하면 반발이 뒤따를 거다. 그러니 대통령서부터 관료들까지 부지런히 뛰어줘야 한다. 역시 설득과 양해의 과정이 필요하다.

- 하지만 재계에선 구조조정과 상품가 인상을 이유로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근데 (법인세율) 낮춰줘도 좋아진 게 없지 않나. 그 논리라면 세율 낮추고 경기가 활성화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 일각에선 현 정부가 부자 증세는 없고, 서민 증세만 늘리고 있다고 하는데.


▲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증세를 못하고 있고 아직 조세 개혁 자체가 본격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담뱃값 정도가 올랐는데.. 그 정도 증세로 복지 정책이 체계적으로 이뤄지기 힘들다.

- 안심전환대출 같은 금리 인하 정책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 별로 거기에 찬성하고 싶지 않다. 막말로 금리를 싸게 해줄 테니 은행에 돈 빌려서 집 좀 사라, 이건데. 돈을 빌려줘야 한다면 중소기업에 더 빌려줘야 한다. 왜냐면 중소기업에 돈 빌려주면 고용이 늘어나고 고용이 늘면 중산층이 살아난다. 근데 지금 금융기관 돈을 가계가 빚지는데 사용하고 있다. 현재 그 돈이 생산적으로 쓰이고 있느냐, 라고 묻고 싶다. (경제 정책 일환으로) 방향 자체가 틀렸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지만 경제를 살리려면 부동산 띄우기가 아니라 중산층을 살려야 한다.

- 중산층을 살리려면.

▲ 소득재분배 정책이다. 증세를 통해 소득재분배를 적극적으로 하고 중소기업들이 고용을 많이 하게끔 중소기업을 도와줘야 하는 거다. IMF수석 부총재(데이비드 립튼)가 얼마 전 방문 했을 때도 같은 얘기 하지 않았느냐. 중산층 살리는 정책 즉 소득재분배 정책을 취하지 않으면 한국 경제 살리기 어렵다고.

- 끝으로 한국 경제 전망을 어떻게 보시는가. 정부와 언론은 부정적이다.

▲ 매년 어렵다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한국 경제 성장률은 높은 편이다. 객관적인 수치로 보면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자꾸 나쁘다고 말하는, 여권에서 주장하는 속내는 뭐냐, 경제가 나쁘니 자꾸 불만 터트리지 말고, 가령 세월호 같은 거 가지고 자꾸 얘기 하지 말고 ..좀 잠자코 있으라, 경제 민주화 얘기하지 마라. 뭐 (정부 일에 간섭 말라는) 이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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