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내의 중심 번화가인 스스키노에 위치한 호텔은 나가시마 공원을 등지고 있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담하고 소박하게 꾸며진 작은 객실의 공간 활용도가 놀라웠고, 무엇보다 창밖으로 보이는 나가시마 공원의 경치에 감탄사가 저절로 터져 나왔다.
그녀는 서둘러 여행 가방 속의 짐을 정리하고 온수를 받아 욕조에 몸을 뉘었다. 따뜻하고 포근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지자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다나까 박사와의 인터뷰 약속까진 아직 두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삿포로 여름 태양이 길게 늘어질 무렵 오후 5시 소나는 호텔 로비에서 다나까 박사와 만났다. 도쿄대 동아시아문제연구소 소장인 그는 조 박사의 스승이었다.
그들은 택시로 오도리 공원까지 함께 이동해 산책을 즐기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미리 준비한 카메라로 공원 분수와 화단을 배경으로 다나까 박사의 사진도 찍고 주변 경관도 렌즈에 담았다. 예순을 넘긴 다나까 박사는 인자한 미소를 머금고 그녀의 요구대로 여러 포즈를 취해 주었다.
“교수님, 흔쾌히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제 의견에 귀 기울여 주셔서 제가 더 감사하죠.”
“조 박사는 잘 지내고 있죠?”
다나까 박사의 뜬금없는 질문에 그녀는 일순간 당황스러웠다.
“네, 교수님.”
“함께 왔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운 생각이 드네요.”
다나까 박사가 웃으며 말을 했다.
“다나까 교수님, 알고 계시죠. 이틀 전에 발생한 북한 괴선박 피격사건은 어떤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하세요?”
소나는 조 박사 안부를 외면한 채 서둘러 인터뷰의 방향으로 화제를 돌렸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의 방위정책이 공세적으로 전환되면서 일본의 방위 정책도 ‘적극적 대응형’으로 전환했어요. 그래서 적극방위 대상이 가상적의 미사일 공격, 무장공작선 영해침범, 무장게릴라 테러활동 등으로 확대했죠. 이번 무장어선공격 사건도 예상되는 테러의 범주와 무장 공작선 활동으로 간주 격침을 하게 된 것이죠.”
“일본의 방위 정책이 적극적 방어 개념으로 전환했다는 의미인가요?”
“그렇죠. 그렇지만 실제 현장 자위대나 국토보안청은 즉각 대응 체제가 아직은 어색하고 복잡한거죠.”
“이번 사건으로 북한은 어떤 대응을 할 것 같습니까?”
소나는 북한의 돌발 행동이 우려됐다.
“아마 북한은 이번 기회를 권력 승계의 기회로 보다 탄탄히 하는데 이용하려고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부의 결속을 다지는 작업부터 진행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죠?”
“북한은 자신들의 경제난이 미국과 일본의 압살정책 때문이라며 일본에 위협을 가하고 있는데, 그들이 일본을 공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시지는 않습니까?”
그녀의 질문에 다나까 박사가 피식 웃음을 웃었다.
“그들은 일본을 상대로 직접 공격할만한 전쟁 물자가 충분하지 않아 어렵죠. 설령 그들이 공격을 감행한다면 목표는 일본이 아닌 한국의 특정 지역, 예를 들면 서해 백령도라든가 세계의 관심 지역이 되겠죠.”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지리적 여건과 북한 해상 전력의 능력이 그 이유죠. 북한은 아마 한국을 공격할 구실을 마련할 것입니다. 그것도 단 기간에 허를 찌른 뒤 미국과 협상을 요구하며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려 하겠죠.”
소나는 더더욱 궁금해졌다.
“북한의 정규군이 아닌 특수부대의 일본 테러 공격의 가능성은요?”
“물론 그런 공격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죠. 북한은 현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돌발 사태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죠.”
다나카 박사는 지리적으로 가깝게 대치하고 있는 한국 침공을 먼저우려했다. 공원을 산책하며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서쪽 하늘로 낙조가 붉게 타올랐다. 어둑해지는 공원을 뒤로 하고 그들은 주위의 게요리 전문점으로 들어갔다. 홋카이도 인근에서 잡아 올린 신선한 해산물과 게요리로 식사를 하며 인터뷰는 계속 되었다.
“교수님, 일각에서는 북한의 핵 위협보다 일본의 군사대국화 움직임을 더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다나까 교수는 포럼 발표 준비 자료를 강의하듯 술술 토해냈다.
“미국 내에서 조차 일미 양국의 균형 있는 안보 책임을 강조하고 있어요. 이제 미국은 안보 블록을 정해 놓고 그 지역의 1차 책임은 그 지역 국가가 앞장서서 하는 것을 원칙으로 내세우기 시작했잖아요. 즉, 아시아에서 일본의 안보책임 역할이 높아진다는 것이죠. 그래서 앞으로 헌법 개정에 대한 목소리는 거세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인터뷰는 저녁 9시 무렵에 끝이 났다. 소나와 다나까 박사는 호텔로 돌아와 각자의 방으로 헤어졌다. 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인터뷰 내용을 정리해서 기사를 송고했다.
청와대
8월 14일 밤 9시 북악산
산에서 내려 부는 시원한 밤바람이 청와대 춘추관 아래까지 몰려 내려왔다.
청와대의 모든 수석비서관실은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퇴근을 준비하던 직원들은 비상대기 명령이 떨어지고 긴급국가안전보장회의가 진행된다는 사실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한 여러 자료와 최근 동향에 대한 문건들을 취합하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안전보장회의가 열리는 청와대 지하벙커는 대략 3백여 평 남짓한 공간에 상황실과 회의실, 사무실, 기계실과 당직실을 갖춘 일명 ‘무궁화벙커’라고도 불렸다. 평소엔 국가위기관리실이 관리하고 있는 곳이다.
국무총리를 비롯한 안보관계 장관들과 비서관들은 김영민 국정원장의 수집정보 브리핑 자료를 읽으며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통령은 이번 장마 때 입은 수해지역을 돌아보고 복귀 중이었다.
“김 원장, 북의 급변 사태라는 게 김정은이 죽기라도 했다는 겁니까?”
국무총리가 자료를 덮으며 의문 섞인 어투로 물었다.
“김정은의 생사에 관한 정보는 아직 확인된 것이 없습니다.”
“그럼 뭡니까? 북의 급변사태라는 게.”
“권력 투쟁 징후의 포착입니다.”
“권력 투쟁? 쿠데타를 말하는 거요?”
“군부 쿠데타라기보다는 권력 중심의 반란 정도로 보입니다.”
“확실한 물증을 잡은 정보를 미 대사관에서 받았어요?”
국무총리는 미 측의 정보를 신뢰하듯 되물었다.
“로스만 CIA 서울지부장은 뭐라 하던가요?”
그때 회의실 문을 열고 대통령실장이 먼저 들어섰다.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대통령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서고 잠시 후 대통령이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모두가 다시 착석하자 대통령이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확인하듯 빙 둘러 보았다.
“김 원장, 수고 많았습니다.”
“그래 북에서 쿠테타가 일어났다고요?”
“예, 전화상으로 대통령님께 보고한 상황 그대로입니다.”
“국방장관?”
“예, 각하!”
“북한군의 특이 동향 파악된 게 있습니까?”
“휴전선 지역은 전력 증강이나 부대 이동 징후 없이 평시 수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호위사령부 산하 평양 인근 기갑부대가 오늘 새벽에 활발하게 기동한 것이 포착되었습니다.”
“그래요. 미8군 사령부와 긴밀히 협조해서 사태를 예의 주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 원장?”
“예, 대통령님.”
“만약 내란이 일어났다면,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가 몇 개나 있습니까?”
“현재 마련한 시나리오는 2가지가 있습니다.”
김 원장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일단은 작계 5029를 점검하면서 대응준비 하겠습니다.”
국방장관이 간략히 답을 하자 대통령이 다시 물었다.
“북한에 급변 사태 발생 시 실행되는 작전 계획이죠?”
“예, 그렇습니다. 각하.”
“그리고 합참의장과 이번 사태를 주시하며 데프콘 비상발령 검토를 해서 조치하겠습니다.”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메모를 하던 외교안보수석 최봉조가 말문을 열었다.
“저희 기존의 정보 분석실이 있지만, 이번 사태만을 집중 추적 분석하고 대응 전략 준비를 위한 TF팀을 구성하기로 장 수석과 협의했습니다.”
“어떻게요”
“오랫동안 한반도 안보전략을 연구해온 북한비대칭전력 전문가 조기수 교수입니다.”
“조기수 박사를 말하는 건가요?”
“예, 대통령님. 지난 대선 때 통일안보자문위원직을 수행했습니다.”
“내가 미쳐 조 박사 생각을 못했군요.”
20년 넘게 북한 내부 문제에 대해서만 연구한 조 박사의 경력에 대통령은 마음이 가벼워졌다.
8월 13일 미국 동부시각 오전 09시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8월의 태양이 볼티모어 아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 교정으로 쏟아져 내렸다. 하얀색 건물들이 대열을 갖춘 듯이 모여 있는 중앙 연병장 앞으로 흰색 유니폼 정장을 입은 사관생도 하나가 절도 있는 멋진 걸음으로 연병장을 돌고 있었다. 멀찌감치 서 있는 훈육관의 감독 아래 교칙을 위반한 생도가 군기 교육을 받는 중이다.
그 오른쪽으로 널따란 플라타너스 숲이 열병식 하듯 가지런히 늘어서 있었고, 동쪽으로 거대한 토담이 성벽처럼 둘러쳐진 곳에 담쟁이덩굴에 포박된 붉은 벽돌 건물이 중세 수도원처럼 앉아 있는 미국가안보국 NSA가 자리하고 있었다.
NSA는 합법적이거나 비합법적인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전 세계를 대상으로 우방국과 적국을 가리지 않고 24시간 도감청을 실시하는 초헌법적인 기관이다.
통신위성으로 수집되는 모든 신호, 문자, 소리 등을 슈퍼컴퓨터로 분석하여 정보로 만들어 실시간대로 미 대통령실로 보고하고 있었다. 불과 몇 시간 전 평양의 이상 기류를 파악한 이들은 중국과 북한의 군사적 움직임을 수집하여 백악관과 CIA에 제공했다.
평양의 작은 소동들의 숨소리까지 챙기는 이들 NSA의 눈과 귀를 피할 순 없었다. 북한에서도 당 간부들은 휴대폰을 늘상 차고 다녔다. 그들이 김정일 저격사건 시 통신보안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긴급하게 통화한 내용과 동해바다에서 정찰선을 추격하며 교신했던 일본 해상보안청 공군 자위대의 무선 내용이 그대로 분석되어 백악관 대통령실로 보고되었다.
미 CIA도 이번 북한 평양 사태를 심각한 상태로 판단하여 별도의 TF를 구성하여 추적, 분석 작업과 대응 전략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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