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자: 이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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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일우 시인 |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전북 무주 출생, 서울교육대학, 가천대 국어국문과, 2016년 《문학청춘》 신인상으로 등단, 문학청춘 작가회 작품상 수상, 시집 『여름밤의 눈사람』, 문학청춘 작가회 명예회장.
Q. 이일우 선생님, 반갑습니다. 『문학청춘』 작가회의 회장으로 바쁘실 텐데요,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 네. 반갑습니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새해를 준비하느라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특히 올해는 4년 동안 맡았던 회장직을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시를 쓸 수 있는 해라 감회가 새롭습니다. 음, 최근에는 고향을 자주 떠올립니다. 그래서 자주 시장을 찾습니다. 시장을 걷다 보면 제 시의 원형질 같은 것들을 만나게 돼요. 된장 청국장 냄새, 남새를 다듬는 할머니의 손길, 그런 것들이 시장에는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어서 위안이 됩니다. 또한 《문학청춘》 작가회의 일을 맡으면서 젊은 시인들과 만남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들의 새로운 시적 언어의 실험을 보면서 깜짝깜짝 놀라고 또 많은 자극을 받지요.
Q. 선생님께서 이끌고 계신 《문학청춘》은 어떤 지향점을 가진 매체인가요? 또 회장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역할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 《문학청춘》은 이름 그대로 '문학의 청춘'을 꿈꾸는 매체입니다. 여기서 청춘은 단순히 나이가 젊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문학에 대한 첫사랑 같은 열정을 간직한다는 뜻이에요. 70대의 시인도 새로운 이미지의 언어를 찾아 헤맨다면 그는 지금 청춘이지요.
《문학청춘》의 가장 큰 지향점은 '열린 광장'이 되는 것입니다. 기성 문단의 권위적인 구조나 폐쇄성에서 벗어나 누구나 자유롭게 문학을 논하고 실험할 수 있는 공간을 추구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신인들의 투고를 적극적으로 받고 있고 때로는 파격적인 실험 시도 과감하게 싣고 있습니다.
회장으로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균형’입니다. 전통과 혁신, 기성과 신인, 서정과 서사적 실험 사이의 균형이요. 한쪽으로 치우치면 문학의 생명력은 약해집니다. 마치 시를 쓸 때처럼 긴장과 이완, 말과 침묵 사이의 균형을 찾아 나가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다리’ 역할입니다. 세대 간의 다리, 장르 간의 다리가 되는 것이죠. 최근에는 시와 산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들도 많이 소개하고 있고, 젊은 평론가들의 신선한 시각도 적극적으로 담으려 노력합니다. 문학이 고립된 섬이 되지 않고 다른 예술 장르나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김영탁 주간님이 《문학청춘》의 내일을 고민하는 모습을 볼 때면, 이 잡지는 늙지 않겠구나 싶습니다.(웃음) 잡지를 향한 그 치열한 애정이 곧 이 매체의 생명이니까요. 저 역시 그 젊음 안에서 제 시들도 생기를 이어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Q. 선생님께서는 단호함과 부드러움을 함께 지닌 성품으로 많은 시인들의 신뢰를 받고 계십니다. 이러한 면이 선생님의 문학 세계와도 연결된다고 생각하시나요?
▶ 아, 제가 그렇습니까? 그렇게 봐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요. 사실 저는 그리 단호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문학에 관한 일에서는 타협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제 성품과 문학 세계는 분명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를 쓸 때도 저는 단단한 뼈대 위에 부드러운 살을 입히려고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아픔이나 상처를 다룰 때도 그것을 직접 토로하기보다는 단단한 이미지 속에 감추려고 노력합니다. ‘여름밤의 눈사람’이라는 역설적 이미지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언어입니다.
제가 추구하는 것은 ‘따뜻한 엄격함’이라고 할까요. 시어 하나하나를 고를 때는 매우 엄격하지만, 그 언어가 담아내는 정서는 따뜻하기를 바랍니다. 마치 겨울 햇살처럼, 차갑지만 따스한 그런 느낌을 주고 싶습니다. 이런 태도는 후배들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작품을 볼 때는 냉정하게 평가합니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상처받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합니다. 비평은 칼이 아니라 거울이어야 합니다. 자신을 비춰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울 말입니다.
Q. 시집 『여름밤의 눈사람』을 준비하며 가장 중점을 두신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이 역설적인 제목을 선택하신 이유도 함께 들려주세요.
▶ 『여름밤의 눈사람』은 제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시집입니다. 이 시집을 준비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불가능한 것들의 공존'이었어요. 여름과 눈사람, 이 두 소재는 함께할 수 없는 것들이죠. 이와 같이 우리 삶도 비슷하지요. 불가능한 공존 속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인생이니까요. 형식적으로는 절제와 여백을 중시했습니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말하는 그런 침묵의 언어를 추구했어요. 행간의 여백이 독자들에게 상상의 공간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눈사람이 녹아내린 자리에 남은 물웅덩이처럼 시가 읽힌 후에 남는 촉촉한 여운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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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귀포 문협> 초청 ‘제주 바르게 알리기’ 행사에서 조승래, 신미균 강영은 김택희 , 김송포 김찬옥, 이일우 시인. |
Q. 네. 선생님의 시에는 ‘빈 공간’과 ‘여백’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 같습니다. 시에서 침묵과 여백이 갖는 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시에서 여백은 단순히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적극적인 침묵이라고 할까요.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말하는 공간이지요. 동양화에서 여백이 그림의 일부인 것처럼 시에서도 여백은 작품의 중요한 구성 요소입니다.
저는 시를 쓸 때 ‘덜어내기’를 많이 합니다. 처음 초고를 쓰고 나면 절반 이상을 덜어내요. 꼭 필요한 행만 남기고 나머지는 여백으로 돌려보내는 거죠. 이 과정이 힘은 들지만 그래야만 시가 숨을 쉴 수 있다고 믿습니다. 여백은 독자의 참여 공간이기도 합니다. 시인이 모든 것을 다 채워 넣으면 독자가 들어올 자리가 없지요. 적절한 여백은 독자들이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투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줍니다. 그래서 같은 시도 읽는 사람마다 읽을 때마다 다르게 읽히는 거죠. 이것이 시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이라고 봅니다.
Q. 『여름밤의 눈사람』에 실린 작품 중에서 독자들이 가장 사랑한 시와, 선생님께서 특별히 아끼시는 시를 하나씩 소개해 주시겠어요?
노파심
수건 한 장 똬리 틀어 깔고 앉은
할머니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숨이 덜컥 막혔다
콩깍지 까던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치맛자락 앞에 펼쳐놓은 자식들
종일 굶은 쥐눈이콩 서 되
검버섯 눌어붙은 더덕 두 종지
입을 반쯤 벌린 자루 속에 무말랭이 있다
주춤주춤 다가가 앉으니
오물거리던 입술 달싹였다
침 묻힌 말에서 마른 풀 냄새가 났다
달천시장 골목 입구
한시도 가만 놔두지 않고 지나가는 이의 눈빛을 좇는
할머니의 눈에 하루살이가 아른거렸다
키운 자식들 다 빠져나가고 들인 자식들만 지키는
할머니 곁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 「노파심」 전문
독자들이 가장 사랑해 주신 시는 「노파심」입니다. 그리고 제가 개인적으로 아끼는 시는 「여름밤의 눈사람」입니다.
여름밤의 눈사람
눈사람을 만든다 / 눈 위에 눈
비뚤어야 사람이라는 눈이라는 사람
꼿꼿이 세워도 지축을 품고 살아
삐딱하게 당당하다
저쪽으로 넘어갈 몽당발 하나 마련하지 못한
펑퍼짐한 얼굴이 아른거린다
이리저리 / 눈 코 입 뜯어고쳐 본다
다듬으면 뭉개지고 고치면
녹아내리고 마는 액자 속 액자
그 속에서 웃고 있는 너
눈 크게 뜨면 사라지고 말
이글이글 / 밤새 눈 속을 달구는 사람
그릴 수 없는 것을 그리고 싶어서
환한 밤중
타버린 숯덩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
다 녹아서 뜨거운 너
훅! / 나를 빨아들인다
- 「여름밤의 눈사람」 전문
Q. 시와의 인연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시의 출발점이 되었던 유년 시절의 기억이나 경험이 있다면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 외할아버지는 한학자이면서 문장가셨습니다. 강진에서 벼슬을 하셨답니다. 그런데 일본에 의한 단발령이 선포되고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벼슬을 내려놓고 피난지를 찾아 나섰고 정감록에 소개된 금평이라는 마을로 이주하셨습니다. 금평은 그런 분들이 전국에서 들어와 정착하면서 생긴 마을입니다.
저는 여섯 살 때부터 외할아버지께 『추구』를 배웠습니다. 그는 생활을 위해 서당을 운영하셨지요. 『추구』는 오언(五言)으로 된 글을 모아 공부하기 쉽게 학습용으로 만든 책입니다. 그날 배운 글을 읽고 외우면서 저도 모르게 시적 분위기를 익히고 몸으로 느꼈던 것 같습니다. 요즘도 ‘춘수만사택’이요 ‘하운다기봉’이라 하며 읊어보고는 한답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3학년까지 학교 도서를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때 소설을 많이 읽었지요. 사실 시골에서 책을 구해 보기는 힘든 시절이었어요. 그래도 소설책은 더러 있었지요. 그러나 시집은 많지 않았습니다. 국어책의 시가 다였지요. 도서실이 아닌 교장실에 비치된 도서를 청소하고 정리정돈하며 책 대여하는 일을 맡는 동안 책을 많이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즈음부터 시를 써보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일기 대신 시를 썼다고 할까요. 며칠 걸러 한 편씩, 서툴지만 진심을 담아 썼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본격적으로 시 세계에 빠져들었어요. 김소월,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서정주 등 당시 구할 수 있는 시집을 읽었죠. 특히 김소월의 시는 60여 편 암송할 정도였습니다. 김소월 시의 서정성은 저의 시적 출발점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진달래’가 아닌 ‘참꽃’으로 30여 편의 연작시를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Q. 선생님 시에는 ‘콩깍지’, ‘무말랭이’ 같은 토속적인 말과 ‘달천 시장골목’ 같은 구체적인 장소가 자주 나타나는데요. 이런 일상의 언어와 공간을 시로 불러들이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 저는 시가 특별한 언어로 쓰여야 한다는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장 평범하고 일상적인 언어로 가장 깊은 진실을 말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콩깍지’나 ‘무말랭이’ 같은 말들은 제 유년의 언어들이죠. 이런 말들 속에는 사전적 의미를 넘어선 정서와 삶의 기억이 담겨 있습니다.
예를 들어 「노파심」의 ‘콩깍지’라는 말을 들으면 저는 자동으로 할머니의 손을 떠올립니다. 마당에 멍석을 펴고 앉아 콩을 까시던 할머니, 그 느릿느릿한 손놀림과 구수한 된장 냄새까지 함께 떠오르죠. 이런 구체적인 감각이 시를 살아있게 만든다고 생각해요.‘달천 시장 골목’ 같은 구체적인 장소명을 쓰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추상적인 ‘고향’ 이나 ‘시장’이 아니라 ‘달천 시장 골목’이라고 쓸 때, 그 공간의 특수성과 보편성이 동시에 드러난다고 봐요. 달천이라는 작은 읍내의 시장이지만, 그곳에는 모든 시장이 가진 삶의 활력과 애환이 담겨 있거든요. 또한 이런 토속적인 언어들은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기록이기도 합니다. 젊은 세대들은 ‘무말랭이’가 뭔지 모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시 속에 이런 말들을 살려둠으로써, 우리가 잃어가는 정서를 붙잡아 둘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언어의 경계를 넓히며 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해 오셨는데요. 앞으로 더 탐구해 보고 싶은 시적 주제나 언어적 실험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 나이가 들수록 ‘경계’라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 기억과 망각의 경계, 있음과 없음의 경계……. 이런 경계선 위에서 일어나는 떨림 같은 것을 언어로 포착하고 싶어요.
최근에는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적 정서’라는 주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스마트폰으로 많은 것을 해결하는 시대지만, 여전히 우리는 손 편지의 감촉을 그리워하고, 종이책의 냄새를 사랑하죠. 이런 역설적인 정서를 어떻게 시로 담아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또한 ‘대화체 시’의 가능성도 탐구하고 있습니다. 독백이 아닌 대화로 이루어진 시, 하지만 부재하는 존재와의 대화를 통해 현존의 의미를 되묻는, 그런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문학청춘》을 통해 이런 실험적인 작품들도 소개하면서, 한국 현대시의 지평을 조금이나마 넓혀가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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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화 시인 |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일요주간 문화예술 전문 주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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