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학점 4.0보다 AI 실전력이다 … 'AI 학점제'가 지방대의 살길이다

칼럼 / 박덕수 칼럼니스트 / 2026-09-30 09:5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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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점 4.0에 토익 900점. 한때는 이 두 줄이면 서류는 무난히 통과한다고들 했다. 요즘은 얘기가 다르다. 기업이 지원자에게 묻는 내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무엇을 얼마나 외웠는지보다, AI 도구를 손에 쥐여줬을 때 현장의 골치 아픈 문제를 얼마나 빨리, 정확하게 푸는지를 본다.

채용 공고를 보면 변화가 뚜렷하다. 기아와 HD현대는 올해 하반기 신입 채용에 지원자의 AI 활용 능력을 평가하는 절차를 처음 넣었다. CJ올리브네트웍스는 코딩테스트를 개편해, 개발 직군 지원자가 AI와 함께 실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바이브 코딩 테스트'를 치르게 했다. 비개발 직군에는 업무 상황에서 AI를 어떻게 쓰는지 보는 별도 테스트를 둔다. 넥슨컴퍼니는 인턴십 채용에서 코딩테스트를 없애고, AI 도구로 실무와 비슷한 문제를 푸는 과정을 평가한다.

입사 시험에 바이브 코딩이 등장했다는 건 그만큼 현장에서 흔한 일이 됐다는 뜻이다. 어려운 문법을 외우던 시절과 달리, 지금은 사람의 말로 의도와 뼈대를 설명하면 AI가 코드를 짜고 돌아가는 시제품까지 만들어 준다. 비전공자도 아이디어만 있으면 프로토타입을 내놓는 세상이니, 기업이 눈여겨보는 것은 직관을 제품과 서비스로 옮기는 실행력이다. 여러 단계로 이어진 일을 스스로 계획해 처리하는 'AI 에이전트'를 목적에 맞게 설계하고 부릴 줄 아는지도 앞으로 실무 생산성을 가르는 기준이 될 것으로 본다.

필자는 대학 창업보육센터에서 벤처기업을 운영한다. 그러다 보니 근로장학생으로 일하는 학생들을 매일 만난다. 대학을 2~3년 가까이 다닌 학생이 기본적인 컴퓨터 활용이나 오피스 프로그램 앞에서 쩔쩔매는 걸 볼 때면 가슴이 턱 막힌다. 결국 장학금을 지원하며 "제발 기초 자격증이라도 따서 실무 역량을 갖추라"고 한다. 그때마다 학생들에게 하는 말은 같다. “구글의 AI 전문기술 자격증을 딴다면 구글 등 유수 빅테크기업 입사도 꿈이 아니다.”

문제는 대학이다. 기업은 이렇게 빨리 움직이는데, 대학 강의실은 이론 강의를 그대로 둔 채 평가 방식만 조금 손보는 데서 멈춘 곳이 많다. 이 간극을 좁히지 못하면 졸업장이 사회로 나가는 디딤돌 노릇을 하기 어렵다.

움직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교육부와 대교협은 올해 'AI 기본교육과정 개발 지원사업'을 시작해 20개 대학을 선정했고, 대학마다 3억 원씩 지원한다. 이 가운데 14곳이 비수도권 대학이다. 선정된 대학은 AI 기초 교양 교과를 만들어 신입생 필수 과목으로 운영한다. 전남대도 2027학년도 신입생부터 전교생이 AI 교양 6학점을 필수로 이수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반가운 일이지만, 대부분 교양 과목 한두 개를 새로 여는 수준에 그친다.

필자가 말하는 'AI 학점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 컴퓨터공학과나 IT 계열만의 과목으로 두지 않고, 인문·사회·예술·자연과학 어느 전공이든 학생이 자기 분야에 맞는 AI 에이전트를 기획해 배치하고, 필요한 프로그램을 자연어로 만들어 보게 하자는 것이다. 보여주기식 특강으로 끝내지 말고, 실무 과제를 해결하는 전 과정을 정규 학점으로 인정해야 한다.

법을 고쳐야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고등교육법 제6조는 학교의 장이 법령의 범위에서 학칙을 제정하거나 개정할 수 있다고 정한다. 시행령에 따르면 학칙을 바꿀 때는 사전 공고와 심의, 공포의 절차를 거치면 된다. 교육과정을 어떻게 짜고 학점을 어떻게 인정할지는 상당 부분 대학이 학칙으로 정할 수 있는 영역이다. 정원 조정이나 학과 통폐합처럼 교육부와 얽힌 사안과는 결이 다르다. 필요한 것은 법 개정보다 교수와 학생, 학부모까지 함께 해 보자고 마음을 모으는 일이다.

이 판에서는 오히려 지방대가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덩치가 큰 수도권 대학은 이해관계가 얽혀 방향을 틀기 어렵다. 위기에 처한 지방대가 전 학사 과정을 AI 중심으로 먼저 바꾸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덩치 큰 수도권 대학이 이해관계에 발목 잡혀 머뭇거리는 사이 치고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방대에는 시간이 없다. 종로학원이 올해 2월 집계한 2026학년도 정시 추가모집 인원은 지방권 105개 대학에서 7,201명, 서울권 24개 대학에서 668명이었다. 열 배가 넘는 격차다. 지방권 추가모집이 전년보다 26.2% 줄어 최근 7년 가운데 가장 적었다는데, 그 정도가 '나아진' 수준이다. 2025학년도에도 추가모집 마감 무렵 정원을 채우지 못한 대학 49곳 가운데 40곳이 지방대학이었다. 잃을 것이 많지 않은 쪽이 먼저 움직일 수 있다

학령인구 감소를 탓하며 시간을 보낼 여유는 없다. 기업이 원하는 건 대학의 주소지가 아니라 현장에서 바로 가치를 만들어 내는 AI 실전력이다. 지역 주력 산업과 맞물린 AI 인재를 먼저 길러내는 대학이 나오면 수도권 중심의 학벌 서열도 조금씩 흔들릴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가르칠 교수진과 실습 환경을 갖추고 평가 기준을 세우는 일까지 대학의 부담이 결코 가볍지 않다. 다만 이 짐을 대학 혼자 짊어질 필요는 없다. 도구의 원리와 기초 사용법 같은 공통 교육은 온라인과 대형 강의로 풀어내고 원격수업 기준을 학칙에 담으면 교수 인력 부담을 크게 덜 수 있다. 대학끼리 손을 잡는 길도 열려 있다. 교육부 지원사업을 발판 삼아 모듈형 교육과정을 나누고, 학점 교류와 K-MOOC를 보완, 엮어 자원을 아끼면 된다.


그렇게 아낀 교수의 시간은 전공별 소규모 실습과 결과물 피드백에 쏟아부으면 된다. 이렇게 역할을 나누어 효율을 꾀한다면 한정된 교수진과 인프라로도 전 학과를 아우르는 AI 학점제를 충분히 넓혀 갈 수 있다. 시작은 학칙을 여는 데서 할 수 있다. 남은 것은 결단이다. 판을 새로 짜지 않는 대학에 내일은 없다.

 

 

일요주간 / 박덕수 칼럼니스트 happyworld53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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