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 이은화 작가 시 읽기 91] 여름 복숭아를 따네

문화/People / 이은화 작가 / 2026-08-10 10: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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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복숭아를 따네

문태준


먼 데서 그이가 오신다기에 복숭아를 따네

봄 모란 같은 복숭아를 따네
여름 천일홍 같은 복숭아를 따네

장맛비 천둥 먹은 복숭아라네
복더위 매미 소리 먹고 익은 복숭아라네

매미 허물은 복숭아나무 가지에 붙어 있네
홑옷을 벗어 놓고 가객은 어디에 계신가

월광 같은 복숭아를 따네
범종 같은 복숭아를 따네

벌레 먹은 복숭아는 내 몫이라네
부스러진 달 같고, 깨진 종소리 같은 복숭아를
어서석어서석 씹어 먹네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 시 감상 ) 먼 데서 오신다는 그이는 누구일까요. 여름 복숭아를 따는 화자에게서 수확의 기쁨보다 설렘이 더 달게 묻어납니다. 꽃의 붉음에서 월광의 밝음으로 그리고 범종의 울림으로 이어지는 감각들은 화자의 응축된 기다림이겠지요. 그러니 복숭아를 “딴다”라는 것은 기다림이 열매 맺는 순간일 것입니다.

시 속의 “그이”를 기다리는 마음을, 저는 오래전 한 여인에게서 본 적이 있지요. 어릴 적 복숭아꽃이 예뻐 그녀 집 앞을 서성이곤 했지요. 복숭아가 익어갈 무렵이면 따 먹고 싶은 마음에 그 앞에서 머뭇거리기도 했습니다. 봄부터 여름 사이 그 집을 겉돌던 동안 그녀가 집 떠난 남편을 기다리며 혼자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이후부터 그 집의 복숭아꽃은 왠지 쓸쓸해 보였지요. 그 기억 때문일까요. 이 시를 읽으며 그녀의 소식이 궁금해졌지만, 물을 곳이 없었습니다. 직접 찾아 나선 길에는 헐어가는 빈집만이 저를 맞았지요. 그녀와 함께 복숭아나무도 사라진 뒤였습니다.

복숭아는 다른 과일보다 유독 벌레가 잘 든다고 합니다. 그 벌레 먹은 자리가 곧 “부스러진 달”과 “깨진 종소리”로 익어가는 상처의 무늬가 아니었을까요. 그녀 또한 그런 상처를 안고 여름을 건너며 살다 갔겠지요. 상한 자리를 도려내지 않고 고스란히 품는 일, 그것은 그녀와 이 시가 함께 보여 주는 기다림의 방식입니다. 이 시의 화자처럼, 그 집의 그녀처럼 우리도 한 번쯤은 기다림을 안고 여름을 건너왔을 테지요.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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