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희의 드라마틱한 삶...산골 소녀에서 아동 문학 작가로

문화 / 최부건 기자 / 2024-12-28 10:2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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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감성 동시인(童詩人) 김수희

[일요주간 = 최부건 기자] 김수희 아동 문학 작가는 국내 작가에게 큰 영광인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수혜,황금펜 아동문학상,천강문학상을 연달아 수상한 작가이다. 생애 한 번을 받기도 힘들다는 그 상들을 한 해에 모두 휩쓴 것이다. 유망한 아동문학작가로 문학계에서 주목을 받게 된 김수희 작가를 일요주간에서 만나보았다.

 

▲ 소녀감성 동시인(童詩人) 김수희 작가

 

김수희 작가는 구미의 한 치과에서 근무하고 있다. 전문대학 졸업 후 생업을 위해 치위생사로 일했고 결혼과 육아를 위해 쉰 시간이 있었지만 이십 년 가까이 치위생사로 일한 셈이다. 김 작가는 비록 문학의 비전공자이지만 부단한 노력과 포기하지 않는 끈기로 아동문학계 굴지의 상들을 올 한해 세번의 큰상을 수상하며 아동문학상 3관왕이라는 쾌거를 이루어 냈다.

 

"어쩌다 작년 한 해에 제게 이렇게 많은 것들이 왔는지 꿈만 같습니다. 동시를 쓴 지 칠 년 이 넘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저는 수없이 넘어지고 엎어졌습니다. 반복된 좌절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아르코창작기금 수혜자 명단에서 제 이름을 발견했을 때 쉬이 믿기지 않았어요. 거짓말 안보태고 당선자 명단을 스무 번은 들여다 본 것 같아요. 작년 8월 중순 황금펜아동문학상 당선 전화를 받았을 때도 정말 놀랐습니다. 모든 아동문학작가들이 선망하는 상을 연이어 수상하게 되다니요. 뜻밖의 당선 소식에 정말이냐 사실이냐 여러 번 되물었던 기억이 납니다. 정말로 기뻤습니다 최종심사 탈락을 세 번이나 했던 문학상이라 더더욱 기뻤죠. 

 

그리고 같은 달 말에 천강 문학상 대상 당선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땐 기쁘기보다 덜컥,겁이 나더라고요. 올해 왜 이러지? 이런 적이 없었는데 뭔가 잘못된 건 아닌가 하고요.

(웃음)그래서 정말 당선 소식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못했습니다. 며칠 후 기사가 나고서야 가족들과 가까운 지인들에게 알릴 수 있었습니다. 사실 아직도 꿈만 같습니다. 물론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겠지만 아직 부족하고 갈 길이 먼 제가 이리 큰 영광을 다 가져도 되는 것인지 쑥스럽고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이럴때일수록 몸을 낮추고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김수희 작가는 김천시 농소면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 봉곡초등학교를 다녔는데(지금은 폐교 됨) 집은 한 시간 가까이 걸어야 학교에 도착할 수 있는 산골에 있었다. 어린 시절 유복하진 않았지만 곁에는 따뜻한 부모님과 무한한 사랑과 보살핌을 주신 할머니가 계셨다. 김 작가는 사계절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던 산골 속에서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며 자랐다. 그때 함께했던 자연과 사람들이 모든 글의 씨앗이 되었다고 말한다. 

 

▲ 박태제 은사님


맨드라미가 이어준 은사와의 인연
어 릴 적부터 작문을 좋아했던 김 작가는 글을 쓰는 것에 대한 막연한 꿈만 가지고 있었다. 그런 김 작가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박태제 은사님의 권유 때문이었다.

 

이야기는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태제 선생은 김 작가가 초등학교 시절 줄곧 교장을 역임했다. 전교생이 120여 명 밖에 되지 않는 작은 학교라 교장임에도 불구하고 전 교생의 이름을 모두 알고 있었던 선생은 학부모와 주변 이웃들이 은사님의 전근을 반대하는 청원까지 할 정도로 따뜻하고 덕망이 있는 분이었다. 하지만 결국 졸업사진을 찍기 직전 전근을 가시게 되었는데 전근을 며칠 앞두고 마치 운명처럼 우연하게도 맨드라미가 피어있던 교정에서 김 작가와 만나게 된다.

 

“수희야,꽃씨가 여물려면 좀 더 있어야겠구나. 나중에 이 꽃씨를 받아서 선생님 있는 학교로 보내줄 수 있겠니?”

 

그 꽃은 아직 씨가 여물지않은 맨드라미였다. 김 작가는 선생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꽃씨가 여물길 기다렸다. 닭 벼슬처럼 꼿꼿하던 맨드라미가 꽃대를 말리며 씨앗을 떨어뜨리기 시작했을 때 김 작가는 잘 여문 꽃씨를 받아 선생님이 전근가신 학교로 편지와 함께 보냈다. 얼마 후 우체부 아저씨는 처음으로 어린 김작가의 이름이 적힌 하얀 봉투를 전해 주었다. 약속을 지켜주어 고맙고 편지를 그곳 선생님들께 자랑했다는 선생님의 답장이었다. 김 작가와 선생님의 인연은 그렇게 이어졌다.

 


본격적인 작가로서의 삶

시간은 흐르고 계절은 돌고 돌았다. 삶의 언덕에서 숨이 찰 때마다 선생님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러는 사이 그녀는 주부가 되었고,선생은 노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동안에도  ‘엄마로서의 삶’ 을 칭찬하신 선생님의 격려와 응원은 김 작가에게 큰 힘이 되었다. 

 

그렇게 아내와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던 어느 날 문득 선생님이 뵙고 싶어졌고 더 늦어지면 평생을 두고 후회할 것만 같아 선생님을 찾아나섰다. 정년이 가까웠던 선생님과 열세 살의 어린이는 여든을 훌쩍 넘긴 노인과 마흔을 앞둔 두 아이의 엄마로 만난 것이다. 주름이 늘고 백발이 성성하신 모습이었지만 어릴적 단상 위에서 백일장 상장을 건네주시던 선생님의 기품은 그대로였다. 그 옛날 두 마음속에 심었던 맨드라미가 그날 비로소 붉은 꽃을 피웠다.

 

서로에게 선물과도 같은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수희가 글을 계속 썼으면 좋겠다". 하시던 선생님의 말씀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제자로서 좀 더 훌륭하게 커 있으면 선생님이 더 기뻐하셨을텐데 하는 마음도 들었다. 후로 김 작가는 글 쓰는 일에 매달렸다. 그리고 2011 년 구미문학예술공모전에 수필로 대상을 수상했을때 선생님은 연로한 몸을 이끌고 제자의 입상을 축하하러 구미까지 오셨다. 그때 김 작가는 가르침을 주신 은사에게 식당에서 주위 사람들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큰절로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이후 자주는 아니더라도 선생님과의 만남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지금은 96세라는 연세로 건강이 좋지 않아 대전의 한 요양원에 있지만 김 작가는 그런 선생님께 드리고 싶은 선물이 있다. 바로 자신의 이름으로 낸 책이다. 드디어 올해 책을 내어 선생님을 찾아뵐 계획이다. 

 

 

졸업 앨범과 결혼식에서 찍지 못한 은사 와 제자의 사진, 선생님은 김작가의 결혼식 때 건강이 좋지 않아 주례를 서지 못하셨다.편지로 이어진 둘의 인연은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미소를 빼았지못했다.

 

 

박태제 선생이 글 씨앗을 준 사람이라면 그녀에게 아동문학가라는 이름을 달아준 동시,그동시 씨앗을 준 사람은 아동문학계의 거장 박방희 선생이다. 구미 문협의 어느 행사에서 만난 박선생이 동시를 써보라고 권유한 것이 인연이 되어 김 작가는 본격 동시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 

 

2014년 열심히 준비한 동시를 어느 신문사 신춘문예에 응모했으나 A에 밀려 B인 김 작가 의 작품은 최종심 탈락이라는 고배를 마시게 된다. 그러나 이내 A 작가는 이미 등단경력이 있는 사람으로 응모 요강 조건에 부합되지 않았던 것이 밝혀지면서 당선이 취소되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당선 결과는 번복되지 않았다. 그것이 불운의 시작이었을까. 2015년 창주문학상으로 등단은 했지만 신춘문예 최종심사 4회 탈락,황금펜아동문학상 3회 탈락,눈높이 아동문학상 최종심사 탈락을 맛보며 눈물을 삼켜야했다.

 

"그냥 낙선도 아니고 번번이 꼭대기에서 떨어지니 내 능력은 딱 여기까지인가 깊은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미끄러지고 떨어지는 것보다 정말 힘들었던 것은 이루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이었습니다. 느리더라도 끝내 이룰 수만 있다면 그것이 언제든 언제까지고 도전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 해가 안 되면 다음 해에,또 안 되면 그 다음해에 도전했겠죠. 누군가 그런 말을 하더군요. 최종심사은 실력이고 당선은 문운(文運)이라고요. 올해는 정말 제가 문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라고 김 작가는 겸손하게 말했다.

 

천강문학상 수상으로 인해 신춘문예는 도전 자체가 의미없게 돼버렸다. 신춘문예는 신인 등용문인데 천강을 받음으로써 기성 작가로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신춘문예와는 인연 이 안 됐지만 이제는 작품 활동에 매진하여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만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가 글을 쓰는 목적은 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많은 좌절을 견뎌내고 꾸준히 노력한 결과 수상을 통해 걸어온 길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을 뿐,앞으로 문학인으로서 갈 길이 멀기에 ‘지금 가는 길로 꾸준히 가면 된다’는 선생님 말씀을 새기며 느리더라도 꾸준히 걷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그녀는 말했다.

 

메모와 습작

처음 동시를 만났을 때 정말 신기하게도 안에 있던 이야기들이 서로 나오겠다고 아우성을 쳤다. 밥 먹을 때,자려고 누웠을때,자다 깼을 때,운전 중에,심지어 화장실에 앉아서도 끝 도 없이 시상이 떠올랐다. 이야기의 씨앗들을 놓치지 않는 방법은 메모였다. 스마트폰은 그녀의 작은 PC다.

 

짬짬이 시간 날 때마다 시상이 떠오를 때마다 메모장을 펼치는 일이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시간적 여유가 주어질 때 주워놓은 글 씨앗을 들여다보고 물을 주고 싹을 틔운다. 그간 쓴 많은 시들이 다 그렇게 태어났고 앞으로도 그 안에서 태어나 자라고 꽃을 피울 것이다. 후로 슬럼프가 찾아와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이제 조급한 마음은 없다. 글 나 무는 급한 마음에 물을 자주 준다고 쑥쑥 자라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로서의 목표

"흥행은 목표가 아니에요. 지속적인 작품 활동을 통해 나의 글을 좋아하는 분들과 소통하는 것입니다. 많은 작가가 그러하겠지만 소수라도 저의 글을 좋아해주고 인정해주는 독자 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글은 소통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으니까요. 읽으면 마음이 따뜻해 지는 울림이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지금껏 해온 시간처럼 그 소망이 이뤄지도록 천천히,꾸준히 걷겠습니다."

 

아동문학이란 말 그대로 아동을 위한 문학이다. 아동문학 그 본질에는 변치 않는 동심(童 心)이 있어야 한다. 아이들이 읽었을 때 공감하고 즐거워야 한다. 어른이 아이의 마음으로 쓰는 문학,아이들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쓰는 문학이다. 이 동심으로 말미암아 아동 문학은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두 아우를 수 있게 해준다. 모든 세대들이 읽었을 때 공감이 가고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아동문학이다.

 

어린 시절을 잊은 어른은 있어도 어린 시절이 없었던 어른은 없다고 했다. 누구나 어릴 때 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살아가면서 순간 순간 어린 나를 만날 때가 있는 것이다. 어린 나 를 만나고 그 아이와의 대화를 통해 독자와 소통하는 것이 아동문학가의 소명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아동문학은 지금 다른 분야에 비해 뒷전에 밀려있는 것이 현실이다. 시나 소설, 수필에 비해 호흡이 짧고,비교적 쓰기 쉬울 것이라 생각하다보니 그런 것 같다. 하지만 현재 전국에서 많은 아동문학가들이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있고 어린이들을 위해 좋은 글을 많이 쓰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전망은 밝다고 본다.

 

글은 평생을 함께할 친구 같은 존재라고 말하는 김 수희 작가,은사의 바람처럼,김 작가의 오랜 염원처럼,글로써 오래도록 모든 세대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문학작가가 되길 바란다.

 


꽃봉오리(제 15회 황금펜아동문학상 수상작)

아직 안 돼!

햇살 익을 때까지

봄 비 내릴 때까지 

바람이 따뜻해질 때까지

나오려는 재채기

꼭,  꼭 참고 있는 입.

 


(제9회 천강문학상 대상 당선작)

우리 아빠 트럭도

영서 아빠 자가용도

강우 아빠 오토바이도

하늘에서 보면

점,

작은 점,

스물 네 평

 

우리 집도 

마흔다섯 평

현우네 아파트도

하늘에서 보면 

점, 

까만 점,

우리 할머니 낮은 텃밭도

세정이 할머니

5층 건물도 

하늘에서 보면

점,

모두 점.

 


[김수희 작가 약력]

2004 제17회 매일한글 백일장 장원

2011 제27회 구미문학예술공모전 수필 부문 대상 2013 제2회 맑은누리문학상 수상

2013 제1회 항공문학상 수상

2015 제43회 창주문학상 당선(등단) 2018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수혜

2018 제15회 황금펜아동문학상 당선

2018 제9회 천강문학상 아동문학부문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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