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화 시인의 작가 초대석 ] 옆구리를 수거하다』를 펴낸 시인 교사 김승필, 섬 사람들의 애환과 교실의 언어

Interview / 이은화 작가 / 2026-06-08 10:2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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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행: 이은화
대담자: 김승필
▲ 김승필 시인

김승필 시인. 2019년 계간《시와정신》봄호에 시를, 2022년 계간《동시 먹는 달팽이》겨울호에 청소년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옆구리를 수거하다』황금알 2021, 앤솔러지『꽃심의 온고을, 천년의 생각을 벗다』문예연구 2019,『오늘은 좋은 날』리토피아 2021. 공동 창작집『사이꽃』(공저) 시와정신사 2023, 청소년 고전『우리 고전 캐릭터의 모든 것(전4권)』(공저) 휴머니스트 2008, 청소년 문학『국어 선생님의 시 배달』(공저) 창비 2010, 고등학교 참고서『창비 고등국어Ⅰ 내신 문제집』(공저) 창비 2014, 전자책『수업 고민 사전』(공저) 창비 2025 출간했으며 계간《시산맥》기획시선 현상 공모 당선(2018), 광주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2021). 현재 중·고등학교에서 말랑말랑한 생각으로 똘똘 뭉친 아이들을 가르치며, 시詩밭을 경작하고 있음.


Q. 선생님은 중·고등학교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시(詩)를 쓰는 시인입니다. 먼저 학생들과 함께하는 일상은 어떠신지요.

▶ 교단에서 학생들과 함께하는 일상은 늘 생생하고도 복합적입니다. 학교라는 공간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웃음과 긴장, 침묵과 소란이 교차하는 곳이니까요. 교사로서는 학생들의 생활과 배움을 책임져야 하지만, 시를 쓰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교실은 무엇보다도 ‘살아 있는 언어’가 끊임없이 생성되는 장소라고 생각해요.


학생들은 어른들이 견고한 시선으로 지나친 것들을 아주 낯설거나 예민하게 바라봅니다. 무심코 던진 한마디, 복도 끝에서 혼자 창밖을 바라보던 표정, 친구와 다투고 돌아온 뒤의 침묵 등이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어떤 순간에는 학생 한 명의 말이 시의 첫 문장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에는 교실의 공기 자체가 한 편의 시처럼 다가오기도 합니다.


수업 준비와 생활지도, 행정 업무와 민원 상담까지 이어지는 일상 속에서 시를 쓴다는 것은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많은 에너지를 요구합니다. 하루를 마치고 나면 언어가 완전히 소진된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지요. 그런데도 다시 시를 쓰게 되는 건, 학교가 인간의 가장 솔직한 감정들이 오가는 공간이기 때문이지요. 청소년기의 불안과 기쁨, 외로움과 희망은 꾸며내기 어려운 진실성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학생들과 함께 있으면 저 역시 많이 배우게 됩니다. 시는 결국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학생들은 늘 제게 익숙해진 세계를 다른 각도에서 흔들어 보여줍니다. 그래서 교사이면서 시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누군가를 가르치는 동시에, 끊임없이 새로운 감각을 배우며 살아가는 일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Q. “말랑말랑한 생각으로 똘똘 뭉친 아이들”이라는 표현을 쓰고 계십니다. 선생님만의 수업 철학이나 학생들을 대하는 원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 저는 학생들을 대할 때 무엇보다도 ‘가능성의 존재’로 바라보려고 합니다. 아이들은 아직 완성된 사람이 아니라, 끊임없이 흔들리고 변화하면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 가고 있지요. 그래서 저는 학생들을 너무 빨리 판단하거나 단정 짓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씁니다. 일찌감치 규정해버리면, 스스로 자라날 수 있는 여백까지 함께 닫아버릴 수 있으니까요.


제가 “말랑말랑한 생각으로 똘똘 뭉친 아이들”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아이들의 생각과 감정은 아직 단단하게 굳어 있지 않지요. 어떤 말 한마디에 크게 상처받기도 하지만, 반대로 아주 작은 격려 하나로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성장하기도 합니다. 저는 그 ‘말랑말랑함’을 미숙함이 아니라, 세상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업에서도 정답을 빨리 찾아내는 것보다, 자기 언어로 생각해 보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특히 문학 수업에서는 작품의 해석을 하나로 고정하기보다 “왜 그렇게 느꼈는가?”를 오래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학생마다 살아온 경험과 감각이 달라서 같은 시를 읽어도 전혀 다른 장면을 발견하거든요. 저는 그 차이를 틀린 것으로 보기보다, 각자가 가진 감수성의 흔적으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또 하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학생들 앞에서 ‘진짜 어른’으로 서는 일입니다. 아이들은 교사의 말보다 태도를 먼저 읽습니다. 그래서 권위로 누르기보다, 먼저 한 사람의 삶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주려고 합니다. 실수하면 인정하고, 모르는 것은 함께 찾아보려고 합니다. 결국 교육은 지식을 전달하는 일 이전에,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가능성을 곁에서 끝까지 믿어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詩時한 詩읽기『공깃밥은 내가 쏠게』(학급 문집)를 받은 제자들.



Q.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 검토, 평가 문항 출제, 학급(동아리) 문집 제작에 이르기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십니다. 선생님에게 ‘국어 교육’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 저에게 국어 교육은 단순히 읽기와 쓰기 능력을 가르치는 일을 넘어, 학생들이 자기 삶을 언어로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국어라는 과목은 결국 인간의 마음과 삶을 다루는 과목이니까요. 문학 작품을 읽는 일도, 비문학 텍스트를 분석하는 일도 결국은 세계를 이해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힘과 연결되어 있다고 봅니다.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 검토나 평가 문항 출제 작업을 하면서도 가장 많이 고민하는 부분은, 학생들이 국어를 ‘정답만 찾는 과목’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물론 교육 현장에서는 객관적인 평가 기준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언어와 문학의 세계는 본래 하나의 답으로만 환원되기 어려운 영역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학생들이 작품 속에서 자기만의 질문을 발견하고, 자신의 언어로 생각을 설명할 수 있는 여백을 남기는 수업과 평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학급(동아리) 문집 제작 활동은 저에게 매우 뜻깊은 작업입니다. 문집은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학생들이 “내 이야기도 누군가에게 읽힐 가치가 있구나.”라는 감각을 처음 경험하는 자리라고 느끼거든요. 처음에는 글쓰기를 어려워하던 학생도 자신의 글이 활자화되어 나오는 순간 굉장히 특별한 표정을 짓습니다. 그 경험은 단순한 수행평가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자기 언어가 누군가로부터 존중받았다는 기억으로 오래 남기 때문입니다.


저는 국어 교육의 핵심이 결국 ‘자기 언어를 가진 사람’을 길러내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감정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사람, 타인의 말을 끝까지 들어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익숙한 세계를 조금 더 깊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일 말입니다. 빠른 정보와 짧은 말들이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한 문장을 천천히 읽고 오래 생각하는 힘은 더없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런 의미에서 국어 교육은 단순한 교과 학습이 아니라, 한 사람을 더 깊고 단단한 존재로 성장하게 만드는 과정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Q. 천사의 섬, 신안(新安)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섬과 바다의 풍경이 시를 쓰는 데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시나요?

▶ 천사의 섬, 신안에서의 유년은 제 시의 가장 오래된 근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섬은 도시처럼 끊임없이 속도를 요구하는 공간이 아닌 기다림과 침묵의 시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는 곳이지요. 바깥세상 불편한 동거 없이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듯 바지런한 자벌레의 보폭으로 밤하늘에 뜬 뭇별을 바라보느라 오선지 위에 채집한 깨알 같은 비문非文을 옮기느라 꽃 지는 것도 몰랐지요. 그래서 바람의 향방에 따라 달라지는 윤슬과 붉은 노을은 제 시의 호흡과 정서 안에 깊이 스며들어 있지요.


무엇보다 섬사람들의 삶과 언어가 제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신안 사람들의 말에는 꾸밈은 없지만 깊은 생활의 시간이 배어 있었습니다. 짧고 투박한 말 한마디에도 바다를 견디며 살아온 감정과 체온이 느껴졌지요. 그래서 저 역시 시를 쓸 때 지나치게 화려한 표현보다는 생활 가까이에서 길어 올린 말, 몸의 온도가 남아 있는 언어를 더 믿게 되는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지금도 여전히 섬의 시간을 품고 어두운 문밖 낮은 포구에 찍힌 찰진 갯벌의 흔적을 위안 삼아 갯골에 새겨진 붉은 낙관을 문자로 찍고 싶은, 노대바람에 일렁이는 세상인심을 그렇게 베껴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안에는 아직도 갯내음과 바람의 결, 그리고 먼 바다를 오래 바라보던 어린 시절의 침묵이 남아 있으니까요.

 

▲ 『詩배달 – 내가 읽은 시 한 편』자료



Q. 2019년 등단하신 뒤 2021년 첫 시집 『옆구리를 수거하다』를 출간하셨습니다. 독특한 제목을 가진 이 시집에 대한 설명 부탁드려요.

▶ “버려진 것들의 배후는 참 서럽다. / 버려진 것들은 그림자가 길어 자꾸 뒤를 돌아보게 한다. /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기억을 다시 불러본다. / 햇살 아래 골목 안 풍경/바닥을 짚고 일어서는 중이다.”(시인의 말)

다양한 주제를 신선한 형식과 낯선 스타일에 담아 첫 시집『옆구리를 수거하다』(황금알)를 펴냈습니다. 제1부에는 시를 쓰는 동안 겪었던 고뇌, 혹은 사유에 관한 작품, 제2부와 제3부는 남도 바닷가의 삶, 문화, 생태를 소재로 한 작품, 4부는 자연 존재나 현상, 사회적 모순을 소재로 한 작품을 중심으로 땅 위의 숨탄것들 거두기, 그리고 파랑주의보, 붉은 기억을 불러냈지요. 특히 신안 우이도에 살았던 어상漁商을 다룬 「홍어장수 문순득」을 비롯하여 「사월포 파시」, 「독살」 그리고 독특한 방법으로 숭어를 잡는 행위를 다룬 「육소장망六艘張網」, 「황태 덕장」, 「죽방렴」, 「죽방렴 어부」, 「북항」, 「애기동백」, 「늦잠」, 「개양할미」 등 많은 작품은 바다와 그곳에 사는 지역민들과 깊게 연계되어 있지요.


시집 제목은 다소 낯설고 이질적으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낯섦 자체가 우리가 살아가는 감각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삶은 언제나 완결된 형태로 존재하기보다 결핍과 상처를 품은 채 흔들리며 지속되니까요. 제게 “옆구리”라는 말은 바로 그런 인간 존재의 연약함과 비어 있는 내면을 상징하는 이미지였습니다. 중심에서 약간 비껴나 있지만 가장 은밀한 통증이 머무는 자리, 쉽게 드러내지 못한 외로움과 결핍이 축적되는 장소처럼 느껴졌습니다.


또한 “수거하다”라는 표현에는 단순히 거두어 간다는 의미를 넘어, 방치되거나 잊힌 것들을 다시 끌어안는 행위의 의미를 담고 싶었습니다. 저는 시를 쓰는 일이 결국 삶의 이면으로 밀려난 감정들, 미처 언어가 되지 못했던 고독과 결핍, 상처의 흔적들을 다시 길어 올리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외면하고 지나쳤을 감정의 유물을 끝내 버리지 않고 오래 들여다보는 일, 어쩌면 그것이 시의 역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시집에 수록된 작품들 역시 비교적 안정되고 견고한 세계보다는, 흔들리고 금이 간 존재들의 내면에 더 가까이 다가가려 했습니다. 몸의 감각과 통증, 불안과 고독 같은 정서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저는 인간이 완전하여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완전하고 쉽게 상처받는 존재이기 때문에 더 깊은 슬픔과 온기를 품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첫 시집은 제게 등단 이후 처음으로 세상에 건네는 가장 사적인 고백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화려하거나 과장된 언어보다는, 실제 삶을 통과하며 몸 안에 남은 감각들을 가능한 한 진실하게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돌이켜보면『옆구리를 수거하다』는 단순한 제목 이상의 의미로, 당시 제가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려 했던 시선과 태도가 가장 압축된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Q. 시집 해설을 맡은 권온 평론가는 ‘시간의 의미와 기다림의 가치’를 주제로 짚었습니다. 선생님 스스로는 그 시집을 어떤 시간의 기록으로 보고 계신가요?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시가 있다면 함께 들려주세요.



허공 한 채


비닐봉지 하나가 힘없이 떴다, 가까스로
가라앉는다 바닥을 치며 솟구치는 저 비릿한
생 어머니의 다리가 찰칵,
지나간다 금세 홀쭉하다 이 세상에 와서
뭘 버리고 뭘 챙겨야 할지 굽은 등
억눌러, 억눌러 또 버젓이
저 작은 몸에다 힘껏
허공 한 채 심는 중이다


▶ 저는 제 시집을 ‘사라지는 것들을 오래 바라본 시간의 기록’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아가다 보면 많은 것들이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지만, 어떤 감정과 기억은 쉽게 소멸하지 않고 오래 마음의 바닥에 남아 있지요. 시를 쓰는 동안 그 잔여의 시간을 붙들어 보려 했던 것 같습니다.


권온 평론가께서 말씀하신 ‘기다림’ 역시 제게는 단순히 무언가를 기다리는 행위라기보다, 삶의 상처와 결핍을 통과하며 자기 안의 침묵을 견디는 시간에 가까웠습니다. 사람은 기다리는 동안 조금씩 변하고, 이전과는 다른 마음의 얼굴을 갖게 되니까요.


그래서 제 시집은 완결된 시간의 기록이라기보다, 아직 끝나지 않은 내면의 계절을 지나가는 과정의 기록에 더 가깝습니다. 지나간 것들을 애도하면서도 끝내 삶 쪽으로 다시 몸을 기울이려는 마음, 어쩌면 저는 그 미세한 회복의 움직임을 오래 시로 남기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 『詩배달 - 내가 읽은 시 한 편』학생들 원고



Q. 『국어 선생님의 시 배달』(공저)과 “아이들과 함께 2010년대 시집 읽기” 그리고 전자책 『수업 고민 사전』(2025)까지, 글쓰기로 교실 밖 독자들과 끊임없이 이어지는 작업을 꾸준히 해 오셨습니다. 이 작업에 관해 말씀 부탁드려요.

▶ 국어 수행평가 영역에 「詩배달 – 내가 읽은 시 한 편」을 포함하여, 자신의 독서 체험 및 대중문화(영화, 대중가요)와 연관 지어 선정 시를 좋아하게 된 사연, 선정 시를 들려주고 싶은 사람, 함께 읽고 싶은 사람, 선정 시의 표현상 특징, 마음에 와닿은 인상 깊은 구절을 중심으로 특별한 감동이나 감흥 등을 서술하게 합니다. 고등학생들은 “이런 것을 왜 해야 합니까?”, “시 공부는 다른 갈래에 비해 너무 재미없고 어렵습니다.”, “교과서에 나온 시도 어려운데 직접 시집을 대출해서 과제를 해야 합니까?” 등 불만 섞인 투정을 부리는 학생들을 위해 참고가 될 만한 자료는 학교 도서관에 갖추어 대출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시간을 들여 직접 시를 찾아 읽어 보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소개할 시의 출처에 대해서도 양식에 적도록 했습니다. 교내 도서관에서 직접 대출한 도서의 분류 번호, 시집명, 저자명, 출판사명을 반드시 포함해 기재하도록 했습니다. 그에 반해 중학생들은 학교 도서관 활용이 더뎌 전국에 있는 시인들이 제게 보내온 시집을 먼저 읽고 작가(시인)별로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는 시 한 편씩 골라 자료집을 제작한 후 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2010년대 시집 읽기”를 필사합니다. 이를 통해 절제된 시어와 입에 착착 달라붙은 운율의 맛, 그리고 외운 시 한 구절이 자신도 모르게 말과 글에 녹아들어 세상을 사는 멋과 맛을 더해 주기를 바랍니다.


학부, 대학원 과정에서 한때 ‘구비문학(口碑文學)’에 심취한 적이 있었지요. 특히 이야기판을 직접 찾아 ‘입심이 좋은 이야기꾼’을 만나 그들로부터 이야기를 채록한 경험을 살려 평소 ‘설화교육(說話敎育)’에 관심을 둔 적이 있었지요. 2013년 광주 중·고등학생 이야기대회를 통해 수상한 예비 이야기꾼(학생)을 제보자의 인간적 신뢰 관계인 라뽀(rapport) 형성을 중심으로 청중의 반응을 보며 구연하게 하여 제13회 전국 중·고등학생 이야기대회(2013.12.21. 한양대)에 출전하여 입담 좋은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를 인정받아 ‘으뜸상’과 ‘사투리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또한 제14회 전국 중·고등학생 이야기대회(2014.12.27. 한양대)에 최우수상인 ‘한빛상’과 ‘사투리상’을 수상하며 말하기 교육에 공헌하기도 했지요. 이러한 경험을 발판 삼아 저는 400여 개의 국어과 학습 용어를 집대성한 전자책 『수업 고민 사전』(공저, 2025) 집필에 참여하였습니다. 특히 “학습 용어 개념”, “수업 고민 이렇게 해결해요”, “이런 활동 어때요?”, “학생 질문은 이렇게”, “함께 보면 좋은 자료” 등의 체계적인 서술 방향 아래, 학습 용어 ‘설화’ 항목의 집필을 맡아 교육 현장과 학습자의 실제 고민을 반영하고자 하였습니다.

 

▲ 나주 영산포 홍어의 거리에서(아내와 함께)



Q. 다음 시집에서는 어떤 세계를 열고 싶으신가요? 아직 언어가 되지 못한 풍경이나 감정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 다음 시집에서는 더욱 심연에 가까운 정서와 존재의 미세한 진동을 오래 응시해 보고 싶습니다. 이전의 시들이 상실과 기다림의 시간을 통과하며 삶의 균열을 더듬어 왔다면, 앞으로는 그 균열 이후에도 끝내 소멸하지 않는 내면의 잔광(殘光)과 생의 미약한 숨결까지 언어로 길어 올리고 싶습니다.


아마 다음 시집은 이전보다 더 느린 호흡과 깊은 음영을 품게 될 것 같습니다. 선명한 의미를 제시하기보다, 오래 흔들리고 끝내 사라지지 않는 감각의 파문을 따라가고 싶습니다. 설명되지 않는 슬픔과 불현듯 인간을 다정하게 만드는 순간들, 그 연약하고도 숭고한 마음의 결들을 천천히 언어의 표면 위로 떠오르게 하고 싶습니다. 결국 제가 열고 싶은 세계는 거창한 서사가 아니라, 우리가 무심히 지나쳐버린 존재들과 감정들의 은밀한 진폭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에 퇴직할 무렵 욕심을 내 ‘청소년 시집’을 한 권 내고 싶네요.


Q. 끝으로 선생님의 교실을 거쳐 간 아이들이 훗날 어른이 되었을 때,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길 바라시나요? 시를 가르치는 선생님으로서 학생들에게 남기고 싶은 한 가지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말씀 부탁드리며 이만 인터뷰를 마칩니다.

▶ 제 교실을 지나간 아이들이 훗날 어떤 직업과 명함을 갖게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저는 그들이 삶의 속도에 함몰되지 않고, 끝내 자기 내면의 결을 보존할 수 있는 어른으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타인의 고통 앞에서 잠시 걸음을 늦출 줄 알고, 쉽게 판단하고 재단하는 세계 속에서도 한 사람의 사연을 끝까지 헤아리려는 품위를 잃지 않는 존재 말입니다. 저는 문학이 결국 인간을 더 섬세하고 깊은 존재로 이끄는 힘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또 아이들이 자기 삶을 스스로의 언어로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꼭 시인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슬픔의 명암을 자기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쉽게 붕괴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언어는 단순한 전달의 도구가 아니라, 한 존재가 세계와 불화하지 않기 위해 끝내 붙들게 되는 마지막 내면의 형식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학생들이 정답에 능숙한 사람보다, 자기만의 질문을 오래 간직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시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남기고 싶은 것은 ‘감수성의 존엄’입니다. 오늘의 세계는 지나치게 빠르고, 너무 많은 것들이 즉각적으로 소비되고 폐기됩니다. 그러나 한 문장을 오래 붙들어 읽는 일, 한 사람의 침묵을 함부로 해석하지 않는 태도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는 결국 세계를 더 천천히 바라보게 하는 일이며, 보이지 않는 마음의 결을 끝내 외면하지 않는 방식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아이들이 살아가며 어느 깊은 저녁에 문득 한 줄의 문장 앞에서 다시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삶이 지나치게 고단해지는 순간에도, 오래전 교실 어딘가에서 건네받은 한 문장의 온기가 자신을 조금 더 견디게 해주기를 바랍니다.

 

 

▲ 이은화 시인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일요주간 문화예술 전문 주필위원.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cactus681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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