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가 경영권까지 흔드는 ‘입법 남용’으로 기업을 경영하기가 어렵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리고 있다. 모처럼 만난 중소기업을 하는 후배가 ‘입법 권력의 무서움’을 토로했다. “요즘은 기업을 경영하기가 너무 힘듭니다. 차라리 월급쟁이가 편하겠어요. 사업을 확장하려 해도 노사협의를 먼저 살펴야 합니다.” 그러면서 한마디 더 던졌다. “우리 사회는 공무원의 직권남용보다 국회의 입법 남용이 더 문제 아닙니까.”
가볍게 들을 말이 아니다.
국회의원이 만든 법 하나가 노동자의 권리와 기업의 경영, 국민의 일상을 바꾼다. 그만큼 입법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법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할지,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은 없는지, 그 부담을 누가 감당할지 충분히 검증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공무원이 권한을 남용해 국민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면 직권남용의 문제가 발생한다. 물론 입법의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국회의원에게 법적 책임을 묻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민주주의에서 국회의원의 입법권은 보장돼야 한다. 다만 입법의 자유가 검증의 책임까지 면제해 주는 것은 아니다.
최근 시행된 개정 노동조합법 (노란 봉투법)을 둘러싼 논란은 이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개정법은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 경영상의 결정 등을 노동쟁의 대상에 포함할 수 있도록 범위를 넓혔다. 기업의 투자나 사업 재편까지 노동쟁의의 대상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 배경이다.
정부는 기업의 투자·합병·분할·양도·매각 등 사업 경영상의 결정 자체는 의무적 교섭 대상이 아니라고 지침을 통해 선을 그었다. 다만 그 결정으로 정리해고나 배치전환 등 구체적인 근로조건의 변화가 객관적으로 예상되는 경우에는 관련 사항이 교섭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동자의 권리와 기업의 경영권은 어느 하나를 일방적으로 희생시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노동자의 고용과 안전, 근로조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경영상 결정이라면 노동자가 설명을 요구하고 의견을 제시할 통로가 필요하다. 동시에 투자와 생산시설 배치, 사업 재편처럼 신속하고 전문적인 판단이 필요한 영역에는 경영자가 결정하고 그 결과에 책임질 공간도 필요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권한과 책임의 균형이다.
그렇다면 이런 경계를 법 시행 이후 정부의 지침으로 정하기보다 입법 과정에서부터 더욱 분명하게 했어야 한다. 법을 만든 뒤 현실에서 혼란이 생기면 시행령이나 지침으로 보완하는 방식이 반복된다면 국민과 기업 모두 법을 어디까지 적용해야 하는지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입법은 국회에서 표결하는 순간 끝나는 일이 아니다. 법이 시행된 뒤 실제 현장에서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살피는 것까지 입법의 책임이어야 한다.
주요 국가들이 입법의 사전·사후 영향을 따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국은 입법 전 영향평가를 실시하고 시행 후에는 실제 효과와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을 검토한다. 미국 의회 예산처 (CBO) 역시 법안이 정부뿐 아니라 주·지방정부와 민간에 미치는 비용과 의무를 분석해 의회에 제공한다.
우리 국회에도 법안 비용추계와 영향평가 제도가 있다. 문제는 제도가 있느냐보다 그것이 실제 입법의 질을 높이는 장치로 제대로 작동하느냐에 있다. 일정 규모 이상의 사회적 영향이 예상되는 법안이라면 사전 평가를 강화하고, 시행 후 실제 결과를 검증해 필요하면 법을 고치는 절차까지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법을 고치는 것을 정치적 패배로 여길 이유도 없다. 잘못된 부분을 인정하고 바로잡는 것이 오히려 책임 있는 입법이다. 국회가 가진 입법권은 국민에게서 위임받은 권력이다. 국민은 국회에 백지위임장을 준 것이 아니다. 권한이 클수록 더 엄격한 검증과 설명이 뒤따라야 한다.
무소불위의 입법 권력이 무서운 것은 단순히 힘이 세기 때문만은 아니다.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면서도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의 경계가 흐려질 때 권력은 더욱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국민은 국회에 묻고 싶다. 법을 만들면서 무엇을 검증했는가. 그 법이 현장에서 어떤 결과를 낳을지 얼마나 고민했는가.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생겼을 때 누가 책임지고 고칠 것인가를. 입법권이 존중받듯 입법권에 따르는 책임도 함께 져야 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법은 한번 만들어지면 되돌리기 어렵다. 그래서 일정 규모 이상의 사회적 영향이 예상되는 법안은 사전 평가를 의무화하고, 시행 후에는 실제 효과를 검증해 잘못된 부분을 고치는 장치가 필요하다. 국민에게 준수와 책임을 요구하는 법을 만드는 국회라면, 스스로도 그 법을 만든 과정과 결과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권력은 누리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행사하고, 어떤 책임을 남겼는가에 그 흔적이 남는다. 국회가 기억해야 할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
국회는 남 머리만 깎지 말고 제 머리도 깎아야 한다. 남의 머리는 깎으라 밀어붙이는 입법 갑질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민주주의를 아무리 외쳐도 그 말은 허공에 메아리일 뿐이다. 그 자리에는 파쇼의 흔적만 남을 것이다.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ch258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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