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자: 김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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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명규 작가 |
Q. 선생님께서는 2001년 《에세이 문학》 으로 등단하셨습니다. 먼저 그동안의 문학적 여정을 들려주세요.
▶ 《에세이 문학》 등단 후 광주 수필 문학회 동인으로 다년간 활동했습니다. 이후 서울로 이사하여 에세이 문학회 동인으로, 현재는 ‘수필문우회’와 수필동인 〈토방〉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01년에 첫 수필집 『당신의 이름은』을 낸 뒤 광주에서 서울로 이사 온 다음 2008년 『귀부인 연습』을 출간했어요. 두 번째 수필집 『귀부인 연습』으로 현대수필문학상을 받았지요. 이후 오랜 기간 수필집 낼 생각을 하지 않고 지내다 2023년 세 번째 수필집 『램프가 아직 불타고 있는 동안』을 출간했습니다.
등단 추천작으로 「그해 겨울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썼지요. 가난했던 신혼 시절의 얘기였어요. 시골 변두리에 5만 원짜리 전셋집에서 살던 때지요. 첫 아이 임신을 하게 되어 입덧도 심했지만 어려워서 입맛에 당기는 음식을 제대로 먹어볼 수 없었고 연탄불로 구들장이 더워진 방 아랫목에 누울 때면 걱정이 사라지고 가난하지만, 행복을 느꼈던 시절을 추억하는 내용이지요.
Q. 두 번째 수필집 『귀부인 연습』이라는 제목이 흥미롭습니다. 이 제목에 담긴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 이 수필집의 제목은 바로 내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서울에 입성하였을 당시 동생들이 나를 보면 지방색이 가득하고 촌티가 난다고 하더라고요. 몸매도 좀 가꾸고 지방에서 입던 옷은 되도록 입지 말라는 충고였어요. 서울에 왔으니 서울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고요. 그래서 거울을 보며 나름대로 노력했던 과정을 그린 얘기입니다. 이젠 제법 귀부인 티가 난다고 동생들이 놀리지요.
Q. 세 번째 수필집 『램프가 아직 불타고 있는 동안』은 소멸을 앞둔 것들이 가진 고유한 온도가 느껴지는 제목입니다. 3부에 실린 「램프가 아직 불타고 있는 동안」의 마지막 문장을 책 제목으로 삼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 내 인생은 고희를 넘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불태우고 싶은 정열이 남아 있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 불이 꺼지기 전까지는 글을 쓰며 살고 싶었거든요. 아직도 제 생각은 젊습니다. 젊은이 못지않은 사고방식을 가졌다고 자부하고 있거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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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는 김명규 작가. |
Q. 수필 「램프가 아직 불타고 있는 동안」에서 치매로 현재의 언어를 잃고 어린 시절 배웠던 다른 나라의 언어를 쓰는 캐나다 할머니 이야기와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라는 시구를 한 편 안에 나란히 놓으셨습니다. 선생님께 노년이란 어떤 시간인가요?
▶ 저는 오늘이라는 이 시간을 내게 주어진 마지막 날처럼 귀하게 쓰고 있습니다. 사소하지만 이 사소함이 주는 하루를 놓치고 싶지 않거든요. 여행하고 영화를 감상하고 음악을 들으며 외로움과 행복을 채워내는 일상에 늘 감사가 머물지요. 젊은 시절 갖지 못한 여유를 누릴 수 있는 현재 생활에 가끔은 노년의 시간도 괜찮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Q. 선생님께서는 미사여구를 절제한 문체로 삶의 애환을 진솔하게 때로는 유머 있게 풀어낸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이 문체는 어떻게 다듬어진 건가요?
▶ 저는 중학교 시절 서툰 글솜씨로 900매 장편 소설을 써보았지요. 제가 문학적이거나 철학적 표현이 뛰어난 수필을 쓴 건 아니고요. 특별히 문학 수업을 받아 본 적도 없어요. 습관처럼 펜을 들면 자연스럽게 써지더라고요. 제 수필을 읽으신 독자분들의 얘기가 슬픈 글에서는 울고 재밌는 글에서는 배꼽을 쥐고 웃었다고 해요. 나름 남을 웃기고 울리는 특기가 조금 있나 봐요.
Q. 같은 수필집에 실린 「옹이」에서 부군께서 백 편의 시를 써서 사랑을 고백했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문자 한 통, 사진 한 장으로 감정이 오가는 지금 느리고 불편했던 그 시절의 사랑 방식이 오히려 그리워질 때가 있는데요.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사랑의 미학이란 무엇일까요?
▶ 사랑은 붙드는 힘이 아니라 놓아줄 줄 아는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랑은 소유가 아니고 존중이겠지요. 상대를 내 뜻에 맞추려 하지 말고 그 사람의 고유한 인격의 깊이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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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인한 시비, 「보랏빛 남쪽」 제주도 애월읍 수산리 저수지 앞. |
Q. 『램프가 아직 불타고 있는 동안』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을 꼽는다면요? 작품과 이유를 소개해 주세요.
▶ 한 편을 꼽는다면 「코」입니다. 이 수필은 힘들이지 않고 쉽게 써 내려간 글입니다. 무엇보다 남편이 재미있게 읽어준 글이기도 하고요.
코
생명의 뿌리입니다. 절로 터진 구멍이라서 무심했습니다. 세상의 온갖 진선미를 두뇌와 시각으로만 감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물질에 구멍이 방해를 받으면서 나는 그것의 소중함에 눈떴습니다. 맞습니다. 구멍을 통하여 미추와 삶의 애환까지도 들여다볼 수가 있더라고요. 참으로 오묘하고 신기합니다. 직경이 불과 이 센티도 안 되는 그것에 우리의 목숨이 걸려있기도 하지요.
때로는 시각과 미각을 대신합니다. 나는 오늘도 그 구멍을 곧추세우고 일상을 시작합니다. 뱀허물처럼 벗어놓은 가족들의 땀 전 의복들을 하나씩 살피면서 그들의 삶을 점검하고 읽어냅니다. 먼저 남편의 인생이 요즘 달라졌습니다. 가족의 생계에 쇳덩이만큼이나 무거운 책임에서 벗어나서 옳아, 이제 남은 인생이 꿀맛 같나 봅니다. 어제는 퇴직한 동료들과 국내 여행을 다녀오더니 여흥이 옷가지에서 아직 펄럭입니다. 거나한 술판에 녹아들었었나 봅니다. 자식들의 학비 걱정, 입에 풀칠할 걱정, 그때에 그의 누렇게 찌들었었던 허물은 고양이도 코를 돌리고 달아났었습니다.
아들이 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에 복학하기 전, 포클레인이 건물의 멱살을 잡고 뒤흔드는 공사현장에서 학비를 벌고자 쏟은 짠 얼룩에 나는 얼굴을 묻곤 하였습니다. 먹어도 또 먹어도 봄눈 삭듯 할 장정의 뱃가죽이 그믐달처럼 홀쭉해져서 쓰러져 잠든 모습은 어미의 시름이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시절, 여대생이던 두 딸의 수줍은 꿈도 비밀스럽게 펼쳐보는 것은 내 젊은 날을 보듯 설레곤 하였습니다. 서툰 바느질로 기운 내의를 보면서 뭉클한 사랑이 어둔 밤하늘의 별빛처럼 내려앉곤 하였지요. 먼 훗날 나와 같은 어미가 될 딸들이 그렇게도 안쓰러웠습니다. 낳았을 때 서운하고 시집보낼 때 서운하다는 딸들의 전설은 두고두고 서글펐습니다.
두 구멍은 혀의 기능도 문제없이 해내지요. 과일 가게에서 과일을 고르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구멍에 대면 단내를 맛볼 수 있거든요. 사람들은 단물 스민 과일을 들고 아주 흐뭇한 표정을 짓습니다. 이웃들은 대문을 굳게굳게 잠그고 내왕 없이 살고 있지만 나는 구멍을 통해 앞집이나 위 아래층의 경제적인 정도를 대충 짐작할 수 있습니다. 윗집에 오늘 밤 누군가의 기일이 다가왔나 봅니다. 여느 때와 달리 모인 사람들의 얘기 소리가 들려오더니 오전부터 전을 지지고 다음엔 나물을 몇 가지 볶는 냄새가 나더라고요. 점심시간이 지나자, 이제는 찜기에 생선 찌는 냄새가 연기처럼 새어들잖아요. 그 다음엔 탕국 끓이는 내가 창을 넘지 않겠어요.
평소에 주방의 창을 열어 놓으면 끼니에 무엇을 먹을까 걱정했던 메뉴를 얻을 수 있죠. 누구 집에서 꽁치를 굽고 조기를 굽고 갈치를 굽고 고등어조림을 하는지 다 보여요. 더불어 생활 정도의 차이를 알게 되는 거죠. 만날 된장국이나 콩나물국만 끓이기도 하고 누구네 집에선 사골 국이나 갈비찜을 종종 식탁에 올리죠. 밥이라고 다 똑같은 백미 밥이 아니에요. 현미밥 잡곡밥 보리밥 무밥, 그 집에 들어가 솥뚜껑 안 열어 봐도 다 안답니다.
조물주가 최초에 흙으로 인간의 모형을 만들고 구멍 두 개를 내어 거기에 생명을 불어 넣으니 사람이 된 것 모르는 이가 없잖습니까. 구멍 외에 사람은 오장육부를 가졌지만 그것들이 제아무리 제 할 일을 다 한다고 해도 그 좁은 구멍 두 개가 기능을 잃으면 우린 다시 흙이 되는 겁니다. 신비로운 구멍에 절이라도 해주고 싶을 때가 있지만 며칠 전 우리 집에서 구멍으로 말미암아 옥신각신 싸움이 벌어졌어요. 우리 집 영택(영감태기의 준말)씨가 밤늦게 고주망태가 되어 들어왔어요. 그 지독한 술 냄새와 생마늘 냄새를 입에서 뿜는데 구역질이 올라와 잠을 잘 수가 있어야죠. 환장하겠는데 구멍이 빨아들이니 악을 안 쓸 수가 없었어요.
하여튼 편리한 재주를 부리는 구멍을 나는 잘 다스려 봅니다. 된장찌개가 간이 맞는지 짜게 졸았는지 안방에 있어도 맛을 압니다.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도 눈만으로 보는 게 아니고 구멍으로 느끼는 게 많습니다. 꽃향기, 두엄 삭는 냄새, 그것들은 우리의 기분을 올려놓기도 하고 노하게도 합니다.
그 밖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에 처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이 석 자나 빠졌다고 말합니다. 구멍을 지키고 있는 지붕이 서양 사람처럼 높은 사람이 있고 좀 내려앉은 사람들도 있지요. 그 지붕이 사람의 인상이나 미모를 좌우하기 때문에 요즘은 병원에서 지붕을 올리기도 하고 고치는 것이 유행하고 있더구먼요. 참으로 중요한 부분입니다.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으면 하느님께서 얼굴의 한가운데에 뚫으시고 눈비 맞지 않도록 배려하여 지붕까지 마련해 주셨겠어요.
지붕이 너무 높아 불행한 것이었을까요.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한 치만 낮았더라면 세계 역사는 바뀌었을 거라고 했지요. 성형외과에서 지붕을 고치는 사람들은 이제 그 운명도 바뀌지 않을까 모를 일이네요. 지어주신 대로 사는 것이 순리일 텐데 말입니다. -「전문」
Q. ‘코’ 하나로 이토록 유쾌하면서도 깊은 세계를 열어 보이시다니 놀랍습니다. 오랜 세월 수필을 써오시면서 독자의 반응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으시다면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라고 말씀해 주셨던 분이 계셨고, 내 책을 펴면 접을 수가 없어 더러는 밤새 다 읽어버렸다는 분들이 계셨어요. 감사한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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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필동인 <토방> 모임. 조순배, 오순자, 구민정, 김명규, 이경수, 김형진, 박준수 |
Q. <수필문우회>와 <토방> 동인 활동을 이어오고 계시는데, 동인 활동의 인연에 대해 듣고 싶어요.
▶〈수필문우회〉에 입회하게 된 동기는 고 유경환 선생님의 추천으로 입회하였습니다. 〈토방〉의 시작은 광주지역의 시인과 문인들로 구성되어 시작되었는데 제가 서울로 이사하게 되어 토방 모임이 중단되었어요. 그러다가 서울 거주 문우회 회원 몇 분과 다시 〈토방〉을 지어냈어요. 벌써 18년의 역사를 지닌 〈토방〉이 되었네요. 매달 작품을 써서 합평회를 하고 식사와 다과를 나누는 정겨운 문우들입니다.
Q. 수필이 소설이나 시에 비해 독자와 더 가깝게 소통할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하시나요?
▶개개인의 작품에 따라서 차이가 있겠지만 수필은 다 벗어버린 자신의 고백이지요. 은유 깊은 시보다도 픽션의 소설보다 독자에게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친밀한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문학적인 구성을 위해서 수필에도 어느 정도의 허구가 첨가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수필은 작가의 개성이 잘 드러난 갈래기에 독자와의 거리가 가깝다고 봅니다.
Q. 앞으로 쓰고 싶으신 이야기, 혹은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시다면요?
▶제 삶의 체험과 그리운 추억을 담은 글을 써 보려고 해요. 무엇보다도 독자분들의 감성과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글쓰기라면 즐거움이 더 크겠지요. 수필은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입니다. 그러니 누구든 도전해 보십시오. 글을 쓰다 보면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영혼이 맑아집니다. 그래서 쓰는 순간이 행복해지지요. 수필은 다른 장르와 달리 자신의 마음을 살피기 좋은 글입니다.
Q. 마지막 질문입니다. 많은 분이 젊음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데, 선생님은 수필 「나는 지금 날개를 달고」에서 “젊음을 돌려준다 해도 사양이다”라고 단호하게 쓰셨어요. 그러면서 마지막 문장 “슬픈 추억은 멀고 오늘의 나는 행복하다”라는 문장이 마치 선언처럼 읽힙니다. 고단했던 젊은 날을 지나 팔순을 앞둔 지금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선생님께는 어떤 의미인지, 그 긍정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 젊음을 사양하겠다는 것은 젊은 시절 겪어야 했던 어려움을 사양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지혜와 혜안이 깊어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박경리 선생님과 박완서 선생님의 늙음에 대한 예찬처럼 나이 든다는 것이 슬픈 것만은 아닙니다. 참으로 편안한 나날입니다. 젊음을 유지하고 싶다는 것은 아마도 마음까지 늙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일 것 같습니다. 내 마음만은 자유롭게 청춘의 한때에서 유희하고 싶거든요. 어떤 옷을 입어도 젊음 때문에 아름답고 화장기 없는 얼굴에서 청순함을 머금었던 옛 모습은 아니더라도 마음만은 그 순간에 머물고 싶습니다.
* 긴 시간 동안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신 김명규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고희를 넘기고도 여전히 불꽃처럼 타오르는 글쓰기의 열정, 그리고 “슬픈 추억은 멀고 오늘의 나는 행복하다”라는 그 단호하고 아름다운 선언이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램프가 꺼지지 않는 한 계속 써 내려가실 선생님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며, 독자 여러분과 함께 응원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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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화 시인 |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일요주간 문화예술 전문 주필위원.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cactus681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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