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디지털 채권, 구조가 아니라 ‘시장’을 선점하는 자가 승자가 된다

People / 서정선 칼럼니스트 / 2026-04-23 11:4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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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이미 준비돼 있다. 이제 시장은 ‘가능한가’가 아니라‘누가 먼저 자금 흐름을 현실로 만들 것인가’를 묻고 있다

 

 

1. 시장 전환 단계
디지털 채권의 시장 적합 가능성을 둘러싼 논의는 이미 한 단계 넘어섰다.

디지털 채권을 둘러싼 논의는 오랫동안 기술과 구조 중심으로 이어져 왔다. 블록체인 기반 발행, 토큰화, 글로벌 투자 연결 같은 개념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했지만, 시장의 질문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게 실제로 가능한가. 이 질문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새로운 금융 구조는 언제나 검증을 먼저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이제는 가능성을 따지기보다, 실제로 움직이고 있는지를 먼저 본다. 금융 시장에서는 이 변화가 의미가 크다. 기술이 아니라 자금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 비로소 시장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한 번의 거래로는 부족하다. 같은 방식의 거래가 반복되기 시작해야 시장으로 인정된다. 그 시점부터 자본의 반응 속도도 눈에 띄게 달라진다. 과거에는 이런 과정에 시간이 필요했다. 규제를 검토하고, 신뢰를 쌓고, 거래를 반복하면서 시장이 만들어졌다.


디지털 채권은 출발점이 다르다. 이미 존재하는 자산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매출채권이든 프로젝트 수익이든, 자산 자체는 새롭지 않다. 그동안 부족했던 것은 자본시장과 연결되는 방식이었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새로운 자산이라면 이해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지만, 이미 알고 있는 자산은 구조만 열리면 바로 판단이 가능하다. 그래서 구조가 실제로 작동하는 순간, 자본은 빠르게 반응한다. 이 흐름은 글로벌 금융기관의 움직임에서도 확인된다.


JPMorgan은 Onyx 네트워크를 통해 토큰화된 자산을 실제 결제 흐름에 연결하고 있다. 단순한 테스트를 넘어 운영 단계로 들어섰다는 의미다. HSBC 역시 디지털 자산 플랫폼을 통해 채권과 자산을 디지털 구조로 편입시키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기존 시장을 대체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확장하는 방식이다. 결국 지금 시장은 분명히 한 단계 넘어왔다. 이제는 구조를 설명하는 단계가 아니라, 자금을 실제로 움직이는 단계다.


2. 자본 이동 단계
자본은 낯선 것보다 익숙한 것을 더 빠르게 선택한다

디지털 채권 시장을 이해하려면 자산보다 자본의 움직임을 먼저 봐야 한다. 겉으로 보면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본이 움직이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는 쪽에 가깝다. 자본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다. 새로운 것을 찾기보다 이미 이해하고 있는 영역을 확장하는 데 더 빠르게 반응한다.


디지털 채권이 다루는 자산을 보면 이 점이 분명해진다. 중소기업 매출채권, 프로젝트 기반 수익, 인프라 현금흐름, 계약형 매출은 모두 기존 금융에서도 다뤄온 자산이다. 달라진 것은 자산이 아니라 접근 방식이다. 그동안은 이 자산들이 자본시장으로 들어오는 경로가 제한돼 있었다. 구조가 복잡하거나 비용이 높았고, 투자 접근성도 낮았다.


디지털 채권은 이 부분을 바꾸고 있다. 자산을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산이 시장으로 들어오는 길을 바꾸는 것이다. 이 변화는 자본의 반응을 바꾼다. 이미 알고 있는 자산이기 때문에 투자 판단 자체는 어렵지 않다. 구조만 열리면 바로 움직일 수 있다. 그래서 이 시장에서는 자본이 먼저 대기한다. 기회를 찾기보다는, 구조가 작동하는 시점을 기다린다. 그리고 한 번 자금 흐름이 확인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투자자는 개별 자산보다 그 자산이 들어오는 구조 자체를 보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자금은 분산되지 않는다. 특정 구조로 모인다. 초기 시장에서는 이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게 나타난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과정에서 수익률이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디가 더 높은 수익을 주는가보다, 어디서 먼저 자금이 움직였는가가 더 중요해진다.


싱가포르가 Project Guardian을 통해 보여주는 것도 같은 흐름이다. 기술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자금이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지를 검증하고 있다. 이 시장은 새로운 자산을 만드는 시장이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자산과 자본을 다시 연결하는 시장이다.


3. 기준 형성 단계
시장은 결국 먼저 작동한 방식을 따라간다

자금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기준이 만들어진다. 많은 경우 기준은 제도나 규정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투자자는 이론보다 사례를 먼저 본다. 자금이 실제로 집행됐는지, 투자가 이루어졌는지, 상환이 문제없이 끝났는지. 이 세 가지가 확인되면 구조에 대한 신뢰는 빠르게 형성된다. 그리고 같은 방식의 거래가 반복되면 그 구조는 자연스럽게 기준으로 자리 잡는다.


이 시점부터 시장의 판단 기준도 달라진다. 개별 자산이 아니라, 구조 자체의 안정성과 반복 가능성을 본다. 한 번 기준이 만들어지면 이후 시장은 빠르게 그 방향으로 수렴한다. 먼저 작동한 구조는 검토가 쉽고 판단이 빠르다. 자본이 들어오기에도 유리하다. 반대로 나중에 등장한 구조는 항상 비교 대상이 된다. 기존 방식보다 분명히 나은 점이 없다면 선택받기 어렵다. 결국 경쟁의 기준도 바뀐다.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했는가보다 얼마나 먼저 작동했는가가 중요해진다.


4. 글로벌 경쟁 단계
이제 경쟁은 국가가 아니라 구조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디지털 채권 시장에서는 경쟁의 기준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국가가 중심이었다. 어디에서 발행됐는지, 어떤 규제를 받는지가 중요한 기준이었다. 지금은 그 의미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자산은 한 국가에 있을 수 있지만, 자본은 그 안에 머물 필요가 없다. 투자자, 자금, 거래는 하나의 구조 안에서 연결된다. 이 변화는 단순한 글로벌화라기보다, 시장 작동 방식 자체가 바뀌고 있는 흐름에 가깝다.


자본은 점점 더 명확한 기준을 따른다. 자금이 얼마나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지, 위험이 얼마나 통제되는지, 구조가 실제로 검증됐는지. 이 세 가지다. 이 조건을 만족하는 구조가 나오면 자본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이동한다. 싱가포르는 이 변화를 가장 빠르게 반영한 시장 중 하나다. 규제를 고정된 틀로 유지하기보다 실험 가능한 환경으로 전환하고, 글로벌 금융기관과 함께 구조를 먼저 작동시키는 방향을 택했다. 이 접근은 한 가지 메시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 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다.


5. 전략 포지션 단계
이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타이밍의 문제다

이 흐름 속에서 한국 역시 선택의 시점에 들어왔다. 시장 형성에 참여할 것인가, 아니면 형성된 시장을 따라갈 것인가. 한국 자본시장은 제도와 인프라 측면에서 분명한 강점을 가지고 있다. 안정성과 신뢰도 역시 높은 편이다. 다만 이 강점은 동시에 속도를 늦추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시장이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디지털 채권 시장은 구조가 작동하는 순간 빠르게 확장된다. 초기 구조가 기준이 되면 이후 시장은 그 틀 안에서 움직이게 된다. 이 시점에서 필요한 접근은 단순하다. 모든 것을 내부에서 완성하려 하기보다, 이미 움직이기 시작한 구조와 연결되는 것이다. 이 연결은 단순한 투자 참여가 아니다. 자산을 제공하고, 자본을 연결하고, 구조 형성 과정에 함께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단계에서는 참여자가 단순한 투자자가 아니라, 시장 구조를 만들어가는 쪽에 가까워진다. 반대로 이 시점을 놓치면 선택지는 제한된다. 이미 만들어진 기준 안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

디지털 채권은 더 이상 개념이 아니다. JPMorgan은 이미 자금을 움직이고 있고, HSBC는 구조를 확장하고 있으며, 싱가포르는 시장을 실험하고 있다. 기술은 준비돼 있다. 자산도 이미 존재한다. 자본도 움직일 준비가 돼 있다. 누가 먼저 이 흐름을 현실로 만들 것인가. 지금은 판단의 시점이 아니라, 움직임의 시점이다. 그리고 자본은 언제나 이미 움직이기 시작한 방향으로 먼저 이동한다.

 

 

일요주간 / 서정선 칼럼니스트 jacobxu0304@gmail.com 

 

[필자 주요약력]
現 INTERPRO H.K PEF 대표
現 일요주간 부회장
前 Proton International LLC (H.K) 법인장
前 Proton Asia PEF GP
前 Proton Asia PEF
아시아 국제 금융 법률,회계 전문위원
前 화중 테크 대표이사
前 화중아이앤씨 대표이사
前 중국 대련보세구 정부 위촉 외자유치 및 투자 구조 자문 대표
前 중국 천진 한화종합유한공사법인장
前 중국 주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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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선 칼럼니스트 / 중국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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