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자: 고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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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두현 시인 |
[편집자 주] 1963년 경남 남해 태생. 이곳에 유배 온 서포 김만중의 시와 소설을 읽으며 시인의 감성을 키웠다.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유배시첩(流配詩帖)」 연작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시선집 『남해, 바다를 걷다』 등을 펴냈다.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와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거쳐 문화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시산문집 『시 읽는 CEO』와 『옛 시 읽는 CEO』 『리더의 시 리더의 격』 독서경영서 『생각의 품격』『경영의 품격』 『교양의 품격』을 통해 ‘독서경영’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필사책 『마음필사』와 『사랑필사』 『동주필사』 『명언필사』 등을 엮었고, 김달진문학상, 유심작품상, 김만중문학상 유배문학특별상 등을 받았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과서에 시와 산문이 실려 있다.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후, 전통적인 서정시의 품격을 현대적으로 계승해 오신 고두현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선생님의 발자취 중 특히 주목할 점은 한국경제신문에서 문화부 기자, 문화부장, 논설위원 등 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도 시와 경영을 접목한 독특한 영역을 개척하셨습니다.
▼ 시를 쓰면서 문화부 기자로 일할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습니다. 시인의 눈과 언론인의 눈, 문학적 글쓰기와 저널리즘 글쓰기의 묘미를 동시에 체득할 수 있었으니까요. 경제신문의 문화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문화와 경제라는 다소 이질적인 영역을 아우를 수 있었으니 더욱 운이 좋았습니다. 시를 쓰다가 기사를 쓸 때, 그 반대로 쓸 때 모두 감각을 전환하기가 쉽지 않은데, ‘새가 두 개의 날개로 균형을 잡듯이’ 이 둘의 조화를 꿈꾸면서 남다른 배움을 많이 얻었습니다.
외환위기 직후에 만난 기업인 중에는 그 어려운 시기에 적자 회사를 흑자 회사로 바꾼 ‘기적의 경영자’들도 있었어요. 직원들에게 1인당 연간 100만 원씩의 책값을 아무 조건 없이 지원했더니 다른 어떤 것보다 큰 효과가 있더라, 책에서 얻은 지식과 지혜로 직원들이 앞장서 회사를 키우더라, 이런 얘기를 하는 이들이 있었죠. 그분들 얘기를 듣고 현장을 취재하면서 ‘독서경영’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기사를 쓰고 ‘독서경영 전도사’를 자처하기도 했습니다.
그 덕분에 『시 읽는 CEO』와 『옛 시 읽는 CEO』를 쓰게 됐고, 운 좋게 베스트셀러가 됐죠. 20여 편의 시와 거기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인문학적 자기계발의 시야를 넓혀 보자는 게 목적이었는데 마침 그때가 창의적인 기업 경영자들 사이에서 인문학 열풍이 막 불 붙기 시작할 때여서 더욱 호응이 컸던 것 같습니다.
● 바다와 시는 왠지 낭만적인 정서를 떠올리게 합니다. 경남 남해 출신으로 시선집 『남해, 바다를 걷다』를 내셨는데, 고향이 선생님의 문학세계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바다와 섬이라는 공간이 시인으로서의 정서 형성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듣고 싶습니다.
▼ 남해는 저의 고향이자 문학적 모성의 원천이죠. 남해는 바다 이름과 섬 이름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큰 섬인 남해도와 작은 섬인 창선도가 아이를 보듬고 있는 어머니를 닮은 섬이에요. 그래서 남해는 어머니의 섬이자 사랑의 섬이라 부르는데, 그 속에서 「늦게 온 소포」의 송신음과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바래길 연가」의 수신음이 함께 울리곤 했습니다. 등단작 「유배시첩(流配詩帖)」을 비롯해 수많은 작품이 이곳에서 탄생했으니까, 남해는 또 시의 섬이고 그리움의 섬이기도 합니다. 몸 전체가 시의 발신처이자 수신처인 섬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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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 문학 기행 중 서포 김만중 유배지 |
●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1637~1692) 선생의 유배지도 남해죠?
▼ 예. 남해에 유배 와서 안타깝게도 3년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자란 곳에서 가까운 벽련마을 앞에 서포가 유배 살던 작은 섬 노도(櫓島)가 있습니다. 그가 북방의 선천 유배지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윤삼월 눈길에 옷을 적시며 이곳으로 또 귀양살이를 왔지요. 제가 그 당시 애절한 서포의 심정이 되어 쓴 시가 ‘남해 가는 길-유배시첩(流配詩帖) 1’인데, 서포의 몸과 마음을 빌려 그의 쓸쓸한 마음을 읊은 연작시 중 한 편이죠. 이 시로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으니 저로서는 더욱 각별합니다.
● 선생님이 작년에 출간한 시집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에 수록된 작품들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특히 개인적 경험이 역사적 상상력과 만나면서 식민지 경험과 아픔을 환기시키는 「망고 씨의 하루」는 어떤 배경에서 쓰인 작품인지 궁금합니다.
지쳐 퇴근하던 길에/ 망고를 샀다.// 다 먹고 나자/ 입안이 부풀었다.// 저 달고 둥근 과즙 속에/ 납작칼을 품고 있었다니// 아프리카로부터/ 여기까지 오는 동안// 노예선을 탔구나./
너도. -「망고 씨의 하루」 전문
▼ 어느 날 퇴근길에 있었던 일을 담담하게 쓴 것입니다. 지친 상태에서 망고를 사 와 허겁지겁 먹었죠. 그런데 잠시 후 입안이 부풀어 오르는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났어요. 그 순간 “저 달고 둥근 과즙 속에 납작칼을 품고 있었다니”라는 문장이 떠올랐죠. 달콤한 열대과일 속에서 느껴지는 ‘칼’의 은유가 즐거움 속에 숨어 있는 고통, 풍요 속에 감춰진 폭력성, 식민지와 노예무역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망고의 씨’와 ‘망고 씨(氏)’를 의인화하는 맛까지 담아냈지요.
● 이어 응축된 언어로 극한의 상황을 그린 「풍란 절벽」, 「상강 아침」 등의 작품들은 선생님의 어떤 문학적 의도나 경험이 반영된 것인지도 여쭙고 싶습니다.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 선생님께서 전달하고자 하신 메시지나 문학적 지향점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소나무 뿌리 끝에 복령 덩어리도 금방 캐고/ 비 온 뒤 나무에 올라 목이버섯도 쉽게 따던/ 하석근 아저씨가 그날은 맞은편 절벽에서/ 진땀을 흘렸다. 미끄러운 바위 틈새/ 까마득히 오르느라 하얗게 질린 끝에/ 아슬아슬 풀 한 포기 안고 내려왔다.// 무슨 풀인가 봤더니 석란(石蘭)보다 몇 배나 더/ 값을 쳐준다는 풍란(風蘭)이라 했다.// 그냥 바위틈에 핀 석란보다/ 바람 먹고 자란 풍란이 귀하기는 하겠지만/ 갓난쟁이 딸 첫돌 맞은 지 이틀도 안 돼/ 천애 절벽 기어 올라갈 일은 아니었다.// 어부들은 바다에서 짙은 해무를 만나 길을 잃었을 때/ 풍란꽃 향기를 맡고 육지가 가까운 걸 알았다는데// 아서라, 풍랑도 없는 낭떠러지/ 돌무더기 떨어지듯 허망하게 스러지고 만/ 두 살배기 딸 새벽 산에 묻고 난 뒤/ 하석근 아저씨 다시는 풍란 절벽을 오르지 않았다.// 풍란 잎사귀 하나가 백만 원까지 치솟던 시절이었다. -「풍란 절벽」 전문
▼ 이 시는 별다른 설명 없이도 금방 알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지요. 여기에 나오는 하석근 아저씨를 주인공으로 한 시가 한 편 더 있습니다. 제목부터 「하석근 아저씨」인데, 시 속의 배경을 알고 나면 두 편의 시가 서로 맞물려 있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참말로/ 아무 일 없다는 듯/ 이제 그만 올라가 보자고/ 20리 학교 길 달려오는 동안 다 흘리고 왔는지/ 그 말만 하고 앞장서 걷던 하석근 아저씨.// 금산 입구에 접어들어서야/ 말이 귀에 들어왔습니다./ 너 아부지가 돌아가셨……// 그날 밤/ 너럭바위 끝으로/ 무뚝뚝하게 불러내서는/ 앞으로 아부지 안 계신다고 절대/ 기죽으면 안 된대이, 다짐받던// 그때 이후/ 살면서 기죽은 적 없지요.// 딱 한 번, 알콩으로 꿩 잡은 죄 때문에/ 두 살배기 딸 먼저 잃은 아저씨/ 돌덩이 같은/ 눈물 앞에서만 빼면 말이에요.// 그날 이후. -「하석근 아저씨」 전문
열네 살 때였으니까, 중학교에 들어간 첫해였습니다. 그 시절 우리 가족은 남해 금산 보리암 아래의 작은 절집 곁방에 살았는데, 그 절에 나무도 하고 궂은일도 하는 하석근이라는 처사가 있었어요. 어느 날 그 아저씨가 학교로 찾아왔습니다. “…너그 아부지가…… 돌아가셨…….”
금산 입구에 도착할 때까지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날 밤 늦게 하씨 아저씨가 저를 밖으로 불러냈습니다. “그때 난 니보다 더 어렸는데, 아부지가 돌아가신 뒤로 한 번도 기를 못 펴고 살았다. 니는 절대로 그러지 마라. 평생 무슨 일이 있어도…… 기죽으면 안 된대이!” 아버지를 학교 뒷산 공원묘지에 묻고 돌아온 날에도 다시 한번 말했습니다. “절대 기죽지 말그래이.”
아저씨의 말에는 깊은 비애와 회한이 함께 배어 있었습니다. 그 슬픔의 밑바닥에 또 다른 아픔이 숨겨져 있었지요. 아저씨는 너무나 예쁜 두 살짜리 딸을 잃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콩알에 구멍을 내고 약을 넣어 꿩을 잡은 직후의 일이었습니다. 한밤중에 손 쓸 새도 없이 딸을 잃고 꺼이꺼이 눈물을 삼키던 아저씨. 돌덩이 같은 그 등을 고사리손으로 어루만지는 것 말고는 제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20여 년 뒤, 문득 제 일상이 그의 삶과 얼마나 겹쳐져 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격려(encouragement)’라는 말은 라틴어 ‘심장(cor)’을 뜻하는 단어에서 왔다고 합니다. ‘격려한다’는 ‘심장을 준다’는 것, 뜨거운 심장을 주듯 마음의 뿌리를 덥혀준다는 것이니 하석근 아저씨의 “기죽지 말라”는 말과 사뭇 닮았지요.
● 「상강 아침」 이야기도 들려주시죠. 시 원문을 먼저 볼까요.
발밑 어두운 줄 모르고/ 고개 빳빳이 들고 다니다/ 바삭,/ 서릿발/ 밟은 아침// 아뿔싸,/ 지금/ 땅속으로/ 막 동면할 벌레들/ 숨어드는 때 아닌가. -「상강 아침」 전문
▼ 몇 해 전 어느 날 아침, 자고 나니 서릿발이 하얗게 솟아 있었죠. 바쁜 출근길에 서릿발을 밟았다가 ‘바삭’ 하는 소리에 흠칫 놀랐습니다. 균형을 잃고 미끄러질 뻔한 탓도 있지만, 발아래 땅속 사정을 살피는 마음이 더 컸지요. 그날 이 시를 썼습니다.
이 시를 발표하고 난 뒤, 다른 분들이 써 준 감상평을 보고 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새로운 관점과 미처 생각지 못한 깨달음을 연이어 얻었지요. 문태준 시인은 신문 칼럼에서 “겨울잠을 자기 위해 벌레들이 땅속에 들 때여서 혹여 해를 입히지 않았을까 시인은 몹시 염려하면서 이 일이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다닌 것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보아 자신의 성품이 주제넘게 거만하거나 억세지 않은지를 반성하고 있다”며 “시인이 밟은 그 서릿발이 땅속을 날카롭게 찔렀을 것”이라는 신선한 시각을 제시해줬습니다.
손택수 시인은 “서릿발을 밟는 일상적 행위가 타자의 발을 밟는 낯선 느낌을 환기시키는데, 일상의 포도를 밟는 습관이 ‘바삭’ 하는 순간적 경험과 함께 ‘아뿔싸’ 하는 성찰을 부르면서 ‘고개 빳빳이’ 쳐든 수직적 우월감으로부터 풀려나는 화자를 엿볼 수 있다”며 “인간과 비인간의 완고한 경계가 순간적으로 무너지는 감각”의 이면을 일깨워줬습니다.
유성호 문학평론가는 “오만하게 걷다가 미끄러지는 인간의 마음 반대편에서 잔광을 한껏 뿌리며 상강 아침에 문득 바라본 형상을 통해 우리가 낮고 겸허하게 살아야 함을 장엄한 삶의 표지로 제시한다”며 그 안에 숨은 “서늘하고 따듯한 역리(逆理)”(<문학의 오늘> 2022. 봄)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줬지요.
이들이 비춰 준 사유의 거울을 통해 ‘땅속을 날카롭게 찔렀을 서릿발’과 이에 따른 성찰,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넘어서는 존재의 그늘, ‘서늘하고 따듯한 역리’와 겸허한 삶의 자세를 새삼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 선생님의 글들은 “잘 익은 운율과 동양적 어조, 달관된 화법”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현대시에서 전통적 정서와 형식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계승하려고 노력하는지 설명해 주십시오.
▼ 호흡이 늘어지지 않게끔 내재적 리듬을 살리는 데 애를 많이 씁니다. 서정과 서사만큼이나 중요한 게 운율이잖아요. 그리고 문자 이전의 소리 감각을 되살리려고 노력합니다. 시어의 의미와 소리의 말맛이 둥글게 맞물릴 때 화자(話者)의 감성이 그대로 전달되지요. 시가 곧 노래이니 더욱 그렇습니다. 저는 시를 쓰거나 퇴고하는 과정에서 몇 번씩 소리 내어 읽고 또 읽습니다. 손으로 다듬는 ‘문장 퇴고’와 함께 혀로 궁굴리는 ‘입말 퇴고’에 더 시간을 많이 들이는 편이죠. 낭송 무대에서 제 시를 자주 만나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 학생들의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필기도구 없이 눈으로만 읽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마음필사』가 필사책의 효시로 평가받고 있는데, 필사의 가치와 의미를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 들려주십시오. 디지털 시대에 손글씨로 쓰는 필사가 갖는 특별한 힘이 있다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 시가 ‘가장 짧은 문장으로 가장 긴 울림을 주는 것’이라면 필사란 ‘누군가를 마음에 새겨 넣는 일, 그 속으로 가장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필사의 맛은 천천히, 느리게 하는 데 있습니다. 행과 행 사이에 흐르는 언어의 물결과 시간의 무늬를 오래 만져보고 음미해 보는 게 중요하지요. 그 내밀한 리듬에서 전해지는 교감과 공감의 떨림을 온전히 느끼면서 가장 편안하고 한가로운 자세로 따라 쓰면 좋습니다. 쉼표가 있으면 그 대목에서 쉬고, 말줄임표가 있으면 그 여백을 그대로 비워 두고, 그러다 보면 마음의 밭이랑 사이로 그리운 얼굴이 떠오르고, 아침 샘물처럼 영혼이 맑아질 것입니다.
은은하게 소리 내며 쓰는 글은 심신을 둥근 공명체로 만들어줍니다. 촉감이 부드러운 연필이나 만년필, 붓으로 써 볼까요. 연필을 깎는 시간의 고요, 그 질감을 즐기며 한 자 한 자 따라 쓰는 과정도 사각사각 재미있습니다. 손가락에 착 감기는 만년필로 쓸 땐 종이 위의 잉크처럼 생각의 물줄기가 따라 흐르지요.
매일 조금씩 쓰다 보면 그 순간만큼은 온전히 나를 위한 사색과 성찰의 시간이 됩니다. 그 시간들이 쌓이면 한결 깊어지고 넓어진 생각의 단층을 발견할 수 있지요. 가끔, 정성스레 필사한 시의 한 구절을 보여주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속마음을 슬며시 전해보는 것도 멋진 일일 것입니다.
● 스스로 생각하기에 ‘나’는 어떤 시인인가요?
▼ 죽순을 닮은 시인을 꿈꿉니다. 비 그친 다음 날 대나무 숲에서 보았지요. 여기저기 싹을 밀어 올리는 죽순. 귀 기울이면 키 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마디마다 생장점이 있어 하루에 30~50㎝까지 자라니 그럴 만도 하죠. 한 달이면 어른 대나무 키가 되고, 생장이 끝난 뒤엔 더 굵어지지 않고 속을 단단하게 다집니다. 그런데, 대나무는 땅속에서 5~6년을 자란 뒤에야 순을 내밉니다. 땅속줄기가 굵을수록 죽순이 튼실합니다.
마디마다 달린 눈 가운데 죽순으로 솟는 것은 고작 10%. 그만큼 오랜 기간을 거치고 생멸의 경계를 지난 뒤에야 지상에 오릅니다. 꽃은 일생에 한 번만 피우지요. 마지막 순간에 온몸으로 개화하고 생을 마감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시가 탄생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래 견딘 뿌리, 삶의 극점에서 단 한 번 피우는 꽃, 매사에 더디고 과작인 제가 특별히 신봉하는 ‘죽순의 시학’입니다.
* 오늘은 시집뿐만 아니라 시산문집, 독서경영서, 필사책까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현재도 대학과 기업에서 인문학 강연을 통해 시의 지혜를 전하고 계시는 고두현 선생님을 만나보았습니다. 선생님과 함께한 마음 따뜻해지는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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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화 시인 |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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