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화 시인의 작가 초대석 ] 『화살기도』의 힘, 여세실 시인에게 듣는 「만종」의 노래

Interview / 이은화 작가 / 2026-03-09 17: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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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행: 이은화
대담자: 여세실

▲ 여세실 시인


2021년 《현대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해 시집 『휴일에 하는 용서』와 『화살기도』를 출간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일요주간》과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등단 4년 만에 두 권의 시집을 펴내며 한국 시단에 새로운 목소리를 들려주고 계신 선생님과 이렇게 이야기 나눌 수 있어 기쁩니다. 시와 삶, 그리고 언어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Q. 시를 처음 쓰기 시작하셨을 때가 궁금해요. 등단 전후로 어떤 시간을 보내셨나요?

▶ 중학교 때 처음 시에 관심을 가지고 시를 쓰기 시작했어요. 원래는 글을 쓰는 것보다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소묘를 전공하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좋아하는 마음에 비해 빼어난 재능은 없었어요.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을 무렵, 진로에 대한 고민이 컸고 방황의 시기가 길었는데, 그때 시가 도피처가 되어주었습니다. 

 

특히 김행숙 시인의 <사춘기> 시집을 읽고 크게 충격을 받았어요. 무슨 소리인지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시가 주는 기분 좋은 착란과 해방감이 크게 와닿았습니다. 또 소묘하는 것이 시를 쓰는 일과 닮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시의 문장을 쓸 때 언어로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고 써요. 언어로 포착되지 못하는 세계의 양감과, 채도를 보는 일은 매번 벅차고 설렙니다. 지금은 취미로만 가끔 그림을 그리지만, 꼭 잘하지 않아도 되는 취미가 있다는 것이 시를 쓰는데도 좋은 해방구가 되어줍니다.


Q. 첫 시집 『휴일에 하는 용서』는 어떻게 세상에 나오게 됐나요? 첫 시집을 낸다는 건 시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요?

▶ 많은 분이 책을 두고 자식 같다고 말하는데, 그 말에 깊이 동감합니다. 시집이 어떻게 쓰였는지를 말하는 일은 누군가에게 내 자식이 어쩌다 이 꼴이 됐는지는 설명한 일처럼 난감하게 느껴집니다. 다만 첫 시집의 경우, 오랜 습작 기간의 생활이 많이 반영되어 있어요. 

 

특히 코로나 시기의 일상이 반영된 시들이 더러 있습니다. 막연한 무력감과 슬픔, 단절된 상태에서의 습작들이 있고요. 그러한 생활 속에서도 몸을 비틀어가며 일상에 균형을 잡고 애정을 놓지 않으려고 애를 쓴 흔적들이 있습니다. 저는 아직 아이를 낳아본 적이 없지만, 아이들을 만나고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는데요. 부모나 선생의 말을 너무 잘 듣는 너무 어른스러운 아이들은 더 마음이 쓰입니다. 

 

오히려 어른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 맘대로 크고 작은 사고를 치는 아이들의 무람함이 다행스러워요. 제 시집 역시 제 예상과 달리 저에게 많은 변화와 기회, 만남을 가져다줍니다. 시가 저를 예측할 수 없는 미래로 끌고 갈 때 기분 좋은 당혹감을 느낍니다. 또 제가 생각지 못한 부분을 제 시에서 읽어주시는 독자분들께도 늘 배움을 얻습니다.
 

▲ 독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여세실 시인

 

Q. 첫 시집에서 “그치지 않고 솟아나는 슬픔”을 바랐다면, 『화살기도』에서는 슬픔에 집을 짓고 산다고 하셨어요. 2년 사이 선생님께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 슬픔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해요. 취약함이 타인과 연결되게 하고, 공감하게 하고, 포용하게 하며, 누군가를 사랑하게 하는 힘이 된다고 생각해요. 첫 시집을 쓸 때는 강한 슬픔을 느끼면서도 슬픔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발버둥을 쳤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그 이후에는 슬픔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합니다.

 

슬픔이 있는 사람은 혼자이지만 결코 홀로일 수 없다는 생각을 해요. 슬픔에 빠져 혼자라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제 시가 그런 말을 건네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기꺼이 함께 주저앉아, 오래 울 수 있음에 다행이라고, 그 울음에 리듬을 붙여 보고, 어느 날은 그것이 꽤나 경쾌한 산보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말을 건네고 싶어요. 아주 아주 오래 걸리더라도요. 언제까지고 슬픔의 구석을, 가장자리를 자처하고 싶습니다.


Q. 『화살기도』라는 제목이 인상적이에요. 어떻게 이 제목을 정하게 되셨는지, 그리고 일반적인 기도와는 어떻게 다른가요?

▶ 어떤 무력감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 있음을 체감하게 되는 순간들이었습니다. 너무나 큰 무력감과 상실감을 느끼면서도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잠들며 여느 날과 똑같은 일상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 모질게 느껴졌습니다. 그때 통근 지하철에서 아주 간곡히 기도를 하게 되었어요. ‘화살기도’는, 신에게 아주 간곡하게 매달리듯이 빠르고 짧게 하는 기도입니다. 떼를 쓰듯이요. 아무 일도 없는 이 평범한 일상이 오랫동안 당연하게 해달라고 떼를 쓰듯 기도하게 되는 날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날에 제가 바라보는 사물들이 그 사물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극진하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 모든 사물의 입을 빌려 기도를 하게 되는 순간이 있었어요. 모든 일상과 평범함이, 모든 사물과 풍경이 자기 몫을 하는, 최선의 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또한 누군가의 평범하고 안심되는 풍경이 되고 싶어요. 제 시와 기도로 누군가의 더 나은 슬픔의 배경이기를 바랍니다.


Q. 선생님 시에서 ‘슬픔’을 다루는 방식이 독특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으셨을 것 같아요. 선생님에게 슬픔은 어떤 의미인가요? 슬픔을 시로 쓴다는 건 어떤 작업인가요?

▶ 슬픔은 구석을 자처하는 마음이에요. 틈을 자처하는 마음이에요. 우는 방법을 잊은 사람들이 마음 놓고 자기를 풀어놓을 수 있는 흐느낌의 순간을 쓰고 싶습니다. 또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 눈치를 보지 않고 막춤을 춰보는 노래 같은 시를 쓰고 싶어요.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어른이 되지 못한 어린아이의 구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시가 그런 어린 마음의 면모를 마음껏 드러내 볼 수 있는 구석이면 좋겠습니다. 아주 어질러보기도 하고, 무너져보기도 하는 틈 같은 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화살기도』낭독회에서 시 낭독하고 있는 여세실 시인(마스크 쓰고 있는 모습)

 

Q. 시 속에 ‘상실과 환생의 감각’이 느껴지는데요, 이런 모티프는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된 건가요?

어릴 적 대가족에서 자랐어요. 어린 시절 집안의 어른들이 돌아가시는 것을 차례로 목도했습니다. 또 사회적 참사가 일어날 때의 경험이 시에 크게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상실과 죽음을 마주하게 될 때 가눌 수 없는 슬픔을 느끼는 동시에, 그 이후에 계속해서 살아 나가야 하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머무르는 한 계속해서 여기에 머무르게 된다고 생각해요. 부재로서 존재하는 것, 사라짐으로써 각인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할머니가 여전히 저를 지켜준다고 느끼고요. 할머니의 말씨가 시의 발화가 될 때도 있습니다. 또 사랑하는 이의 부재를 감당하며 상실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슬픔에 기꺼이 동참하고 싶습니다.


Q. 장시 「만종」에 유실물 보관함, 깨금발, 망태기, 옻 같은 존재들이 각자의 기도를 올리잖아요. 이 존재들은 어떻게 시 안으로 들어오게 됐는지 궁금해요?

▶ <만종>에 관해서라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꽤 깁니다. 복합적인 마음으로 쓰인 시예요. 좀 더 이전에는 제가 쓰는 시와 제가 겪는 슬픔이 오로지 저만의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두 번째 시집을 준비하는 동안에는 제 시와 슬픔, 제가 겪는 혼란과 기쁨이 제 주변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체감하게 되었습니다. 그 책임 또한 마찬가지이고요. 그것이 다행이기도 한 한편, 무척 큰 죄책감으로 다가오기도 했어요.

 

시를 쓴다는 이유로 딸로서, 친구로서, 연인으로서 직무 유기를 했던 시절이 있기도 했고요. 누구나가 필히 행복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고 꿋꿋이 한 시절의 행복을 누려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결국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으니까요. 저는 주변의 과분한 사랑을 받았음에도 시를 쓴다는 이유로 자주 그러한 의무를 저버리게 되어요. <만종>은 시에 대한 기도입니다. 그러한 시선과 기도가 제 주변을 이루고 있는 사물들의 입을 빌려 발화된 것 같습니다.


Q. 그중에서 선생님께 가장 애틋하게 느껴지는 존재가 있다면, 그 이유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 유실물 보관함입니다. 제 시를 읽는 독자분들이 시 속에서 잃어버렸던 어떤 파장 하나를 되찾아 가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읽는 이에 따라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각자의 슬픔과 각자의 기도, 각자의 용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날에는 그 모든 것에서 놓여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할 것이고요, 제 시가 독자분들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났으면 좋겠어요. 코트 안주머니에서 문득 잊고 있던 지폐나 친구의 편지를 발견하게 될 때의 기쁨 같은 것이, 제 시를 읽을 때도 독자분들을 찾아가길 바라요.


Q. 두 시집을 통해 하고 싶은 가장 핵심적인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 모두가 느슨하지만 연결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결국 어떤 슬픔도, 기쁨도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또 무너진 일상을 재건하는 기도나 힘, 노동도요. 12.3 계엄과 무안 항공 참사를 지나며 느꼈던 돌봄의 힘에 오래 생각했습니다. 오로지 사람의 손으로만 이뤄낼 수 있는 노동과 연대의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시를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게 있다면요?

곡진함인 것 같아요. 무언가를 비는 마음으로 시를 쓰게 되어요. 저는 제가 겪어본 것들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몸과 마음으로 겪어낸 일들이 잘 여물기를 기다립니다. 잘 탈곡된 쌀알 같은 시가 아니라, 분분히 공중을 배회하는 쌀겨 같은 시를 쓰고 싶습니다. 한껏 울고, 한껏 웃고 난 이루의 곡진하고 가뿐한 기분으로 시를 쓰게 됩니다.


Q. 독자들의 반응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게 있나요? 이어 요즘 젊은 독자들이 선생님 시에 반응하는 이유가 뭘까요?

▶ 좋은 시는 시를 쓰고 싶게 하는 시인 것 같아요. 제 시를 읽고 시를 쓰고 싶어져서 수업을 찾아주신 독자분이 있었어요. 그때 시가 통했다고 느꼈습니다. 종교를 떠나 모두가 마음속에 작은 기도를 품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 기도의 무늬를 잠깐씩 덧대어 볼 수 있는 순간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떤 독자분은 그것은 ‘공명한다’하고 말해주셨는데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Q. 끝으로 다음 시집에서는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와 세계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 무너짐의 순간에도 인간에게는 사랑이 있을 거라는 신뢰를 저버리고 싶지 않아요. 앞으로는 그러한 돌봄의 순간, 부드러움의 순간을 좀 더 자주 포착하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 귀한 시간 내어 깊이 있는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시가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공명의 순간을 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선생님의 언어가 우리 시대에 어떤 울림을 만들어갈지 『일요주간』 독자분들과 함께 기대하겠습니다.

 

 

▲ 이은화 시인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일요주간 문화예술 전문 주필위원.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cactus681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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