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법원장은 임명식사에서 ‘법관의 독립’에 대해 8회, ‘사법부 독립’ 4회, ‘사법권 독립’ 3회, ‘재판의 독립’ 1회 등 무려 16회에 걸쳐 법관과 사법부의 독립을 강조하며 정치권에 의한 사법개혁에 강한 경계심을 내비 춘 것.
통상 신임법관 임명식에서 의례적으로 사법부 독립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무엇보다 ‘올바른 법관의 자세와 역할’을 강조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이 대법원장은 처음부터 대법관 증원, 법관인사위원회에 법무부장관이 추천하는 인사 2명 참여, 대법원 산하 양형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두자는 법원제도개선안을 내놓은 한나라당을 정조준했다.
먼저 “해방 이후 사법부가 출범한 지 60여년이 되는 동안 사법권 독립은 끊임없이 위협받아 왔다”며 “권위주의 시대를 지나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정착된 현재까지도 사법부는 사법권 독립을 지켜낸다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계속 경험하고 있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어 “선배 법관들은 좌절을 겪기도 했고, 온몸으로 맞서 싸우기도 했다”며 “여러분이 법관으로서 새 출발을 하게 된 이 시점에서 이러한 사법의 역사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헌법이 사법권의 행사를 법원에 위임하면서 법관의 독립을 보장한 의미를 되새겨 봐야 한다”며 “법관 개개인의 안위를 위하거나 법관이 자의적으로 재판권을 행사하라고 법관의 독립을 보장한 것이 아니라, 법관으로 하여금 공정하고 투명한 재판을 해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라고 상기시켰다.
이 대법원장은 “법관이 공정하고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재판을 하려면 법관의 독립은 반드시 확보돼야 한다”며 “법관의 독립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는 올바른 재판을 할 수 없고, 국민의 신뢰도 얻을 수 없다”고 위기감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헌법에 법관의 독립을 규정하고 있다고 해서 사법부의 독립이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누가 나서서 지켜주는 것도 아니다”며 “사법부의 독립을 지키겠다는 법관 개개인의 굳은 의지와 헌신적인 노력이 없다면 그 길은 멀고도 험하다”고 법관 스스로 법관의 독립과 사법부 독립을 위협하는 ‘외풍’에 맞서야 함을 강조했다.
또 “법관의 독립을 지켜내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최우선의 일은 재판을 잘하는 것”이라며 “재판을 잘하는 것만이 법관의 독립에 이를 수 있는 최선의 지름길로, 법관은 공정하고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재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법원장은 “법관이 재판을 하면서 외부의 압력에 굴하지 말아야 함은 물론 일시적인 여론에 좌우되어서도 안 되고, 자신의 양심을 굳게 지켜야 한다”며 “양심을 팔거나 양보해 재판의 독립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고 최근 편향 판결 시비에 좌고우면하지 말고 재판의 독립을 지킬 것을 당부했다.
◆ “법관 개인의 주관적인 가치관을 재판에 투영하려 해선 안 돼”
이 대법원장은 그러면서도 법관으로서 주의할 점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법관이 재판을 하면서 자신의 주관적인 가치관을 재판에 투영하려 해서는 안 된다”며 “재판의 기준이 되는 법과 양심은 어느 누구에게나 보편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객관적인 것이어야 하고, 법관이 법복을 입고 재판하는 의미를 잘 깨달아야 한다”고 지적한 것.
그는 “재판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법관 개개인의 독립을 위협할 여지를 제공하게 되고 끝내는 사법부의 독립까지 위태롭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역사에서 경험한 바 있다”며 “법관 스스로가 사법부의 독립을 위협할 요인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법관이 재판을 잘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또 “법관은 무엇보다도 청렴해야 하고, 청렴성에 조그마한 의심이라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외관이나 상황을 만들어서도 안 된다”며 “공적인 업무를 할 때는 물론이고 사적으로 사람을 만나거나 일을 할 때도 항상 자신을 경계해야 하고, 청렴하지 않은 법관이 재판을 잘할 리 없고, 사법권의 독립을 지켜낼 수도 없다”고 당부했다.
나아가 “법관의 재판은 당사자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분쟁에서 법과 정의가 무엇인지를 선언하고 그 다툼을 해결하는 것”이라며 “재판을 받는 당사자들은 모두 자신의 사건을 목숨과 같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큼 법관은 자신이 최종 분쟁 해결자라는 생각을 갖고 당사자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그 상처를 치유해 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그래야만 당사자가 그 재판에 마음으로부터 승복할 것”이라며 “상급심이 있다고 하여 법관이 사건을 자기 면전에서 떠나보내는 사무처리 기능만을 한다면 그러한 사람을 재판을 하는 판사라고 말할 수 없다”고 주지시켰다.
아울러 “법관은 우리 사회 소수자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하고, 이들의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할 곳은 법원밖에 없다”며 “여러분은 편견 없이 진실된 마음으로 이들의 얘기를 들어줘야 하고 그 아픔과 고통을 어루만져 줘야 한다. 재판의 승패를 떠나 이들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풀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국민들은 법관과 법관이 하는 재판을 늘 주시하고 있다”며 “국민들의 기대에 걸맞은 좋은 재판을 해야만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고 우리가 그토록 염원하는 법의 지배가 이 땅에 뿌리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 법관모임 ‘도’ 지나치면 안 돼…재판 정당성 의심받아
이와 함께 연구하는 법관상도 제시했다. 그는 “근래에 사회경험이 부족하고 연소한 사람이 법관이 되는 데 대한 비판이 많다”며 “여러분이 지난 3년간 군대 또는 공공기관의 법조직역에 종사하면서 여러 경험을 했다고 하더라도, 비교적 젊은 나이에 법관이 된 여러분은 사회의 다양하고 복잡한 현상을 이해하는 데는 부족하다”고 비판을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법학 이외의 다양한 분야의 서적도 폭넓게 읽어야 하고 사회현상에도 항상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인간과 사회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해야 한다”며 “선배 법관들로부터도 법관의 올바른 자세나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지혜를 배워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합리적 균형감각과 사회를 보는 안목을 키워야 좋은 법관이 될 수 있고 좋은 재판을 할 수 있다”고 당부했다.
또 “사회가 복잡화ㆍ다양화 되면서 분쟁 또한 어렵고 복잡해지고 있어 사법연수원에서 배웠던 이론이나 법리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사건이 너무 많다”며 “기존 법리의 타당성 여부에 관하여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최신 이론이나 법리 연구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연소한 법관으로부터 재판을 받는다고 걱정하는 국민의 불안을 해소할 수 있도록 하루속히 품위 있는 법관으로서의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최근 법관 연구모임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듯 “법관으로서의 인품과 실력 배양은 법관들 간의 학술단체나 모임을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고, 이러한 활동은 법률적 소양을 높이고 법관들 간의 의사소통을 원활히 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이러한 활동이 도를 지나쳐서 법관의 독립성, 공정성 또는 청렴성을 해하거나 일반 국민에게 그러한 인상으로 비치게 해서는 안 된다”며 “이로 인해 여러분이 맡은 재판의 정당성에도 의심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의를 당부했다.
끝으로 “법관직은 한없이 어깨가 무겁고 막중한 자리”라며 “여러분 앞에 어려운 과제들이 많이 놓여 있으나, 여러분이 갖고 있는 지혜와 용기를 잘 활용한다면 그 어떤 것도 극복할 수 있고, 국민들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는 법원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음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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