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고 빽 없는 죽음에 믿음.사랑.소망은 침묵의 서약일 뿐

문화 / 이호준 / 2010-05-06 13:5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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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소설(2) 길 위에 사람들

오랜 망설임 끝에 노크를 잃어버린 차가운 촉감을 확인하며 조심스레 문손잡이를 비트는 명우다.
그리고 열리는 문을 방패처럼 의지한 채 멍들어 붓고 터진 얼굴을 들이민다.
“끼이익~”


테이블에는 악보들이 널려있고 3인용 소파엔 놀란 눈을 한 사내가 앉자있다.
그의 어깨엔 손 때 묻어 낡은 붉은색기타가 작정하고 애정을 과시하려는 애인처럼 비스듬히 기대여 있다.
부산역 광장에서 공연할 때 쓸 악보를 연습 삼아 정리하고 있던 준이다.


그런데 염탐하듯 조심스럽게 행동하던 명우가 문을 열어 활짝 재치는 너스레를 떨며 준의 맞은편 소파에 몸을 던진다.
“있었네. 연습했었나? 와! 에어컨, 무지무지 시원하다.”


2평도 안 되는 공간엔 위기감을 토해내는 낡은 소파의 삐거덕, 풀썩거림과 노크를 잊어버린 쑥스러움을 감추기 위한 궁색한 인사만이 호들갑스럽다.


자신의 일 거수 일 투족에 번들거리는 준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손 부채질에 얼굴을 찡그리며 일어난 준이 창문을 열어 제친다.


그때까지도 명우의 갑작스런 등장에 놀란 마음을 추스르기 보단 멍한 시선을 고정시킨 채 앉아 있던 준이다.
“야~ 씨이, 노크 좀, 아니 이거 무슨 냄새냐? 드르륵~ 탁, 야~ 진짜,”


태양 볕에 만개한 민들레의 몸부림처럼 눈부시게 피어오르는 창틀의 먼지들이다.
준은 창틀 밑 선반위에 있는 수건과 옷가지들을 챙기며 시각적인 호흡곤란을 느껴본다.
“후우~ 야~ 인사는 됐고, 자 이거, 일단 씻고 나서 얘기하자.”
“헤헤헤... 냄새 많이 나제.”


자신의 양쪽 어깨에 코를 번갈라 갖다대며 흥흥거리더니 알겠다는 듯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는 명우다.
그리고 준이 깊은 숨을 내쉬며 건네는 옷가지를 받아들고 사무실?밖 옆의 주방으로 들어가 언제 씻었는지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어보는 요란법석이다.

청결주의

노숙부랑인들에게 술 못지않게 심각한 것은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청결주의다.
밥 한술을 빌어먹더라도 밥주걱을 휘두르는 복음을 강요하는 청결주의의 세뇌를 견뎌 내야하기 때문이다.
때에 따라선 밥 한 그릇, 떡국 한 그릇, 라면 한 그릇이 영생이고 구원이며 죄수복 같은 잠바, 럭키치약, 칫솔, 인삼비누 한 개가 축복이다.


필요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거룩한 소통, 신의 이름으로 구어 먹었는지 삶아먹었는지 흔적도 없다.
길거리에 나앉기 전에 믿었던 종교는 온대간대 없고 입맛대로 수정, 분리하려는 비계 덩어리들의 주절거림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돈 없고 빽 없는 죽음에 믿음, 사랑, 소망은 침묵의 서약일 뿐이다.

침묵은 가해자 없는 살인.

등장인물.
1.노숙인, 2.종교인, 3.정치인, 4.자본가, 5.일반인, 6.배금주의

버러지 같은 노숙인들, 대책으로 일관하는 정치적 방관, 자본우선주의에 잘 적응한 종교적 오만, 박쥐같은 자본가들의 이중성, 이기적 배금주의와 편리주의에 편견과 판단......


미래를 꿈꾸는 것 자체가 죄가 되는 매너리즘의 스펙터클,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교묘한 투정이며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한탄해봐야 귀 기울이는 사람 없는 세상, 억울해서 죽을 수도 없다.
그래서 앉은 자리에서 눈을 뜨면 술이요, 세상 천대에 지치면 보약 같은 잠을 잔다.
배고프면?게걸스런 식당이요,?깨달음의 경지에 들면 배설의 판타스틱이다.


복음주의를 맹신하는 청결한 세상은 무일푼들에겐 존엄에?무덤이며?이해와 배려에는 우선권을 주지 않는 우선주의의 이중성인 것이다.


그런 종교는 청결의 바로미터를 들이대고 정치와 자본은 대책이란 교묘함 뒤에서 방임과 방관으로 일관하며 우리들은 사회적 청산을 요구하는 손가락질을 한다.
그리고 주저하거나 놓아주질 않는다.


노숙자는 목적을 위한 적당한 도구였으며 좋은 자본적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자본우선주의 사회에서 가난이란?


인간의 존엄성을 포기해야하는 의지박약에 길들여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없는 천박한 냉소주의인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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