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도르는 지난 13일 미국 뉴저지주 이조드센터에서 열린 ‘스트라이크포스 31’에서 안토니오 실바에게 힘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치욕적인 패배를 기록하며 은퇴를 예고했다. 이번 실바와의 경기는 시작 전부터 표도르의 압도적인 우세가 예상됐던 만큼 패배의 충격은 두배로 다가왔다.
예상과는 달리 1라운드 경기가 시작되자 표도르는 예전의 빠른 몸놀림은 전혀 보이지 못한채 실바에게 여러차례 묵직한 펀치를 허용당하면서 패배를 예상케 했으며 2라운드가 시작된지 얼마되지 않아 풀마운트 포지션을 실바에게 허용하며 얼굴에 펀치를 난타당해 닥터스톱 TKO로 무너졌다.
결국 표도르는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피투성이가 되어 고개를 떨궜으며 경기 후 “그간 스포츠와 함께 해 위대하고 아름다운 시간을 보냈다”며 “모든게 신의 뜻인 것 같고 나를 사랑해 준 팬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뭔가 잘못되어 간다는 걸 느꼈다. 이전처럼 몸을 만드는데 실패했다”며 “이제는 떠나야할 때”라고 언급하면서 실질적인 은퇴를 선언했다.
표도르가 공개적으로 은퇴를 밝힌 것은 아니지만 그의 이 한마디가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오면서 팬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그의 은퇴시기를 놓고 설전이 벌어지고 있다. 그만큼 그의 존재는 종합격투기계에서 단연 으뜸이다.

표도르는 지난해 6월 세계주짓수챔피언 출신이자 크로캅의 주짓수 스승으로 유명한 파브리시오 베우둠에게 패배를 당하면서 27연승 행진을 마감했다. 당시만 해도 표도르의 패배가 은퇴까지 연결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았고 단지 운이 없는 경기로만 치부됐다.
그러나 이번 실바와의 경기에서 맥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자 팬들은 지난 경기와 연계하여 표도르가 은퇴할 때가 됐음을 감지했다.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연이은 패배는 표도르 스스로도 믿을 수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가 패배 후 바로 은퇴를 시사한 점도 스스로의 한계를 감지하고 이번 경기의 승패로 은퇴여부를 결정지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나이 탓 VS 선수 기량평준화에 팬들...설왕설래
지난해 표도르의 연승행진이 마감되면서 어느 정도 은퇴를 예상하는 팬들도 있었지만 이번 실바와의 경기는 몸놀림을 비롯해 경기력 등 모든 면에서 예전의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면서 은퇴를 앞당기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표도르는 현재 31승 3패 1무효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가지고 있다. 10년이라는 세월동안 단 3패의 기록은 대단하다 못해 경이적이라고 까지 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연이은 패배는 많은 점을 시사한다.
10년 동안 프라이드 시절 최강자로 군림했고, 프라이드가 무너진 이후 미르코 크로캅 등 한 시대를 군림했던 강자들이 UFC 진출 후 지는 해가 되는 동안에도 표도르는 60억분의 1이라는 칭호를 증명이라도 하듯 연승가도를 달리며 굳건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번 패배로 아무리 강한 선수도 한때라는 것을 증명하고 말았다. 그의 장기인 빠른 스피드와 화려하던 테크닉이 없어졌다는 점이 가장 아쉬움으로 남는다. 예전의 정확한 타격 등 위력적인 모습을 둘째치더라도 핸드 스피드와 꺾기 기술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은 세월 때문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실제로 이번 경기에서 표도르는 최고참 선수로 경기에 출전했다.
일각에서는 랜디 커투어(48)등 더 나이 많은 선수들이 현역에서 활동하는 것을 예로 들며 선수들 기량 평준화로 뒤쳐진다는 시선도 있지만 표도르는 경우는 다르다.
다른 나이 많은 선수들이 표도르와 같은 전적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들은 혹시 지더라도 팬들에게 다가오는 여파가 적다고 할 수 있다. 10년간 왕좌를 지켜온 이와 한 두 시즌에서 잠깐 우승을 했던 것은 당연히 차이가 있다. 그것이 전적의 차이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태산이 무너졌기에 그것도 두 번이나 연속하여 패했기 때문에 선수들의 기량 평준화라고 하기에는 어패가 있다. 스스로도 대회를 준비하면서 떨어진 체력을 실감했을 것이 분명하다. 아마도 다시 도전 하더라도 승패를 장담할 수 없기에 은퇴를 결심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표도르의 경우 큰 체격이 절대 아니다. 헤비급파이터로서는 외소하다고까지 할 수 있다. 그는 대신 상대를 제압할 빠른 스피드와 화려한 테크닉으로 격투기계의 왕으로써 군림해왔다.
다른 스포츠를 보더라도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스피드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단편적인 예로 한국야구계의 대들보인 이종범 선수를 보더라도 현역시절에는 ‘바람의 아들’이라고까지 불리며 빠른 스피드로 그라운드를 누볐지만 3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부터 스피드가 많이 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표도르도 그런 점을 극복하기 위해 무구한 노력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안되는 이유는 흐르는 세월에 무릎 꿇었다고 밖에 할 수 없다.
표도르가 격투기의 발전에 적응하지 못한 것을 연패의 원인으로 꼽는 시선도 있다. 예전에는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한 가지 기술로만 승부를 했다면 현재의 선수들은 타격과 그라운드 기술을 완벽하게 접목한 멀티플레이를 펼치다보니 표도르처럼 러시안 삼보에만 의존하는 선수는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표도르의 패배를 나이 탓이라고만 치부할 수도 없다.
표도르 은퇴 격투기 침체로 이어지나
표도르의 은퇴는 격투기 전체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그의 기량이 예전만 못하다고 하더라도, 그의 가치는 기량부족을 충분히 뛰어넘는다. 최강의 사나이로 군림하는 동안 무패의 연속이었고 이 속에서 기억에 남는 많은 명승부로 팬들을 매료시켰다.
이런 점에서 표도르 같은 대형스타가 은퇴를 하게 된다면 생각지도 못하게 격투기가 침체기를 맞을 위험도 내포되어 있다. 표도르는 그만큼 다른 선수들과는 차원을 달리 하는 스타다.
전적만큼 험난한 인생 불우한 환경 격투계 입문 계기
표도르는 화려한 전적만큼 험난한 인생을 걸어왔다. 1997년 군 전역 후 곧바로 삼보 마스터 자격을 따낸 뒤 각종 대회서 우승경력을 쌓았으며, 2000년 일본 격투단체인 링스를 시작으로 프라이드까지 휩쓸며 ‘영장류 최강의 사나이’, ‘격투황제’, ‘60억분의 1의 사나이’란 칭호를 거머쥐며 종합격투계의 최강으로 불려왔다. KO나 서브미션승리는 31승 중 23번으로 70%이상의 확률을 가지고 있다.
1976년 우크라이나 르간스크주 르베지노에시에서 태어난 표도르는 삼보와 유도로 스포츠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며 2년간의 군 생활 후 1997년 유도 국제토너먼트에서 우승하며 본격적으로 격투가의 길에 접어든다.
그는 어려운 가정환경 덕에 상업성이 있는 격투계로 접어들었다.
그는 한 인터뷰를 통해 “내가 스포츠 지도자로 일했을 때 우리 가족은 먹을 것이 거의 없었다. 지금은 훨씬 더 많은 돈을 번다. 나는 모든 상대 선수를 내 인생의 가난했던 시절로 되돌려 보내려고 하는 사람으로 본다. 제거해야만 하는 사람”이라며 강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한 것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결국 종합격투기는 표도르에게 세계적인 명성과 남부럽지 않은 부를 누릴수 있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아마도 이번 패배는 그의 승리에 목말라했던 팬들에게도 아쉬웠지만 스스로에게 더 많은 씁쓸함을 남긴 경기라고 할 수 있다. 60억분의 1이라는 칭호를 얻기까지 그가 걸어온 발자취를 보더라도 결코 쉽게 무너져서는 안됐기에 충격은 더 컸을 것이 분명하다. 그가 돌연 은퇴를 예고하면서 다음 경기에 나설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팬들은 분명 그의 새로운 기록행진을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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