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들 위해 충실히 길 닦아 놓을 것

People / 최영화 / 2011-02-28 13:5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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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현지 서울대 건축환경공학부 대학원생

“대세를 따라가는 것보다는 제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찰랑찰랑한 긴 머리에 170cm에 가까운 큰 기, 미니스커트에 검은색 가죽부츠. 이른바 ‘공대 여대생’이라 불리는 이현지(26) 양의 첫 인상이다. 서울대학교에 있는 그의 연구실을 찾은 19일, 공대생에 대한 선입견은 그렇게 한 방에 무너졌다.


이 양은 현재 대학에서 ‘도시설계’를 전공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빈 공간에 무언가를 짓고,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는 이 양은 자신의 손을 거쳐 ‘뚝딱’ 하고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웠다고 한다.


남성들의 전문 분야로 여겨졌던 이공계에 최근 들어 여학생의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남학생이 태반인 분야에서 이 양처럼 자신의 재능을 발견했다는 경우를 만나기란 흔치 않은 일이다.


더욱이, 의대 같은 특정 학과를 제외하고는 이공계 소외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러나 이 양의 생각은 달랐다. “저를 필요로 하는 분야가 반드시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의대 같은 인기학과는 저란 사람이 없어도 충분히 톱니바퀴가 굴러갈 수 있는 곳이거든요. 제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를 끊임없이 갈구해왔지요.”


‘도시개발’ 그 가능성에 눈 뜨다


어느 날 책을 읽다가 ‘도시설계’라는 것에 눈이 가더라고요. 도시설계라는 건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을 창조해나가는 작업이잖아요. 목동, 일산 같이 저와 저의 친구들이 살고 있는 신도시도 다 사람이 창조해낸 것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리더라고요.”


그래서 학부 전공도 도시설계를 배울 수 있는 ‘건축 환경공학’으로 택했다는 그는 공부를 하면서 자신의 선택에 대한 확신이 더욱 굳어졌다고 한다. “국내 건설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에요. 중국의 열악한 지역이나 베트남 같은 개발도상국에서 그 판로를 찾고 있는데, 한국의 ‘신도시 수출’은 확대 추세거든요.”


도시개발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에 매력을 느꼈다는 이 양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다만, 도시개발 전문가들이 국내에서 유독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학 때 5개월간 중국 칭화대에 교환학생으로 다녀온 경험을 떠올렸다. “칭화대는 외국학생들의 비율이 굉장히 높은 편이에요. 우리나라가 도시설계 쪽에서 더 많은 발전을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배우러 오는 학생이 적은 것과는 대조적이지요. 그만큼 외국인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 아직은 부족한 것 같아요.”


꿈 크게 가지면 기회 오게 마련


이 양은 지난 12일, 여성가족부가 선정한 국제전문여성인턴에 선발됐다. 정부가 국제기구 진출에 관심이 있는 여성인재를 뽑아 교육하고, 인턴 기회를 부여하는 프로그램인데, 여기에는 경찰행정학, 언어병리학, 건설 환경공학 등 특별한 전공을 한 여학생들이 대거 선발됐다.


이 양은 인턴에 선발되기 전 이미 국내의 한 공기업으로부터 합격통보도 받은 상태였다. 부모님도 딸이 안정적인 길을 가기를 권했다. 그러나 그가 택한 건 국제인턴 경험이었다. 공대생에게 흔히 주어지지 않는 기회인 데다 ‘지금 하지 않으면 나중에 분명히 후회할 것 같다.’는 느낌이 밀려왔다고 한다.


“꿈을 크게 가지면 기회는 언제든 오게 마련이라고 생각해요. 문제는 자유롭게 생각하고 크게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거죠.”


그런 그의 꿈은 ‘도시개발 프로젝트 매니저’가 되는 것이다. 단순히 도시설계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실생활과 문화까지 면밀히 들여다보고, 삶의 질을 고려할 줄 아는 전문가가 되기를 꿈꾼다.


이 양은 지금부터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아나갈 생각이다. “일단, ‘월드뱅크’에 가서 인턴 경험을 쌓고 싶어요. 그 뒤 베트남 같은 개발도상국가의 도시개발 프로젝트에 뛰어들고 싶어요. 그 나라 특유의 전통문화를 고려해줄 수 있는 도시개발을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의 꿈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궁극적인 목표는 이 길(도시개발)에 들어서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손을 내밀 수 있는 멘토가 되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선 제가 길을 충실히 닦아놔야 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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