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 왕초에서 악질 살인범까지 영화 외길..“부산국제영화제 관객 기립박수에 감격했다”

Interview / 박세호 / 2012-01-09 10:3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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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인터뷰] 50년 관록국민배우 안성기의 영화 같은 인생스토리


[일요주간=박세호 기자] 한국 영화계를 수놓은 기라성 같은 명 배우들을 우리는 늘 기억하고 그들에게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곤 한다. 아래의 인물도 그 반열에 속한 인기 배우 중 한명이다.

데뷔 50여년이 되면서도 아직까지 왕성한 활동의 현역 배우, 노소 선악 빈부 직업과 이념 차이 등에 불구하고 인물과 성격(캐릭터)의 스펙트럼이 무한정으로 넓은 배우, 겹치기 출연을 하지 않는 배우, 그러면서도 수십년간 꾸준히 수준 급 작품만으로 평균 3편 이상의 작품활동을 현재 이 시간까지 꾸준히 이어온 배우, 크고 작은 스캔덜이 없는 배우, 자신의 출연료를 조정하면서까지 영화산업 전반의 생존 문제를 고민하는 배우, 정치권을 비롯한 세상의 많은 명예와 성공의 초청장을 사양하고 영화에만 승부를 거는 배우, 흥행과 작품성이 대립되지 않고 공집합을 이루는 배우, 의식 있는 감독들이 상상의 날개를 펼치게 하는 특별한 능력의 배우, 사회발전과 공헌에 무심하지 않는 배우 등이다. 그가 누구일까?


지난 4일 오후 새해 첫 인터뷰 주인공 영화배우 안성기를 만났다.


영화에서의 심통 부리고, 해학적이고 장난스럽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그를 한참 주시하면서 어떤 단서를 찾거나 상상력을 동원해보려 해도 가능하지 않았다


약간 자연스럽게 코디한 의상이긴 해도 단정한 정장 차림새에서 위엄과 단정함이 풍겼다. 저런 반듯한 얼굴 어디에서 거지왕초나 악질 살인범이나 시시껄렁한 한량이나 여자를 후리는 건달, ‘돈 먹는’ 경찰관 또는 피 튀기는 전사 등등 그 수많은 기막힌 배역들이 나올 수 있었단 말인가? 오직 배우의 변신이 경탄스럽다는 느낌뿐이었다.


개성이 강한 배우라고 해서 칼날 같은 마스크와 ‘인상을 쓰는’ 배우가 다가 아니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안성기의 경우에는 자신의 취향에 따라 배역을 결정하고, 맡은 이후에는 대본과 함께 배역에 대한 철저한 연구로 작품 속 인물의 성격을 창조하는 까닭에 그 수많은 독특한 캐릭터의 인물들이 명멸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안성기 본인의 말로는 앞으로도 어떤 또 다른 관심가고 흥미 있는 인물형과 비중 있는 작품들을 만나서 작업을 할 수 있을 것인지 기대되고 즐겁다는 것이다. 여기에 그는 “올인”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답변 내내 그는 습관적이거나 무심코 대답하지를 않고 조금 시간이 걸리고 분위기가 뜨더라도 짧고 간결한 표현이지만 정확히 답변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문: 연초 바쁜 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최근 활동상황은 어떠하십니까? 설 연휴를 장식할 두 영화가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설 연휴 시즌을 겨냥하여“안성기 독주할까?”그런 언론 제목도 있습니다.


답: 두 영화 모두 시나리오를 보고 마음에 들었습니다. '부러진 화살'은 '석궁테러사건' 실화에 근거를 둔 내용으로 영화적 완성도가 높았습니다. 저에게는 출연하느냐 마느냐의 결정만 남은 것인데 참여하는 쪽으로 확실히 결정을 내렸습니다.


정통 법정 극대로 법리를 다투는 것이 아니라 사회부조리와 모순을 지적하는 작중 인물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것입니다. 재미도 있었습니다. 남부군의 정지영감독과 정말 오랜 만에 만나서 호흡을 나눈 사회극입니다.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쇼에서 이 작품 상영이 끝난 후 오래 동안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나는 기대를 않았는데 놀랐고 바로 앞에서 팬들의 호응을 받으니 참 기뻤습니다.

‘페이스메이커’는 자신이 스스로 대회에 승부를 거는 마라토너가 아니라 국가대표 선수의 연습 시 컨디션을 조절하기 위해 전체 코스 중 30km까지 페이스를 끌어주고 완주는 하지 않는 대표선수 역할을 말합니다. 김명민, 고아라 그리고 본인 안성기가 나옵니다. 나는 국가대표팀을 이끄는 박 감독 역할을 맡아 몸을 많이 움직이며 열심히 했습니다. 가족과 함께 보러오세요.


문: 영화인들 중 배우로서 감독이나 제작자가 된 분도 있고 정치계로 나가서 성공한 분들도 있습니다. 혹시 감독이나 제작과 같은 다른 계획은 없으신가요?


답: 감독이나 제작은 섣불리 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래 영화에서 배우 일을 잘하고 싶습니다. 아직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할 부분도 많고요. 중요한 것은 순수하게 영화 그 자체만을 생각하는 것이며 영화만 하고 집중하는 것이다. 추구해야 할 것이 명예나 돈 같은 것은 더욱 아니다 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좋았던 것이 연구하고 영화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목표와 과정이 있어서 그것을 진행하는 것에 만족을 느낍니다. 어려서부터 영화계의 움직임을 보고 늘 친근함을 느꼈습니다.
방송 분야에는 연륜이 많으신 이순재 선배님 같으신 분이 참 잘하고 계시잖아요. 영화 쪽은 조금 더 힘들고 오래 연기하시는 분들이 적습니다.


문: 유니세프(UNICEF) 대사로 어린이들을 돕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답: 유니세프는 아시아나항공에서 동전 모으기와 함께 시작했습니다. 재작년 집계해보니 50억 원이 걷혔습니다. 쓰다가 남은 돈을 모아 동전을 넣으라 했는데 지폐가 많았습니다. 일부러 도와주시려 그런 것 같습니다.


유니세프 활동은 세계 각국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활동하는 유엔 산하기구인데 봉사활동의 연장으로 12개국을 방문했습니다. 최근 미얀마를 다녀왔는데 어린이들이 말라리아와 에이즈에 크게 감염되고 있었습니다. 도우러 갔던 나는 건강의 소중함을 알았고 가족의 소중함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더 열심히 봉사할 수 있는 마음가짐도 갖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는 더 고생스럽고 여건이 안 좋겠지요. 동남아에도 5시간 이상 비행기로 가서 또 더 들어갑니다. 험한 환경이었지만 그래도 내가 거기서 느낀 결론은 이만큼 받은 나는 참 행복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봉사하는 마음으로 갔으면서도 내가 오히려 더 큰 도움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문: 존경하는 배우, 감독이 있으신지요. 답: 한국영화에 좋으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 오래 명맥을 유지하실 환경이 못 되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김승호” “허장강” 이 분들은 제가 어릴 때 뵈었던 분들이라 더 생각이 납니다. 그 당시 이름만 들어도 정말 연기를 잘 하시던 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래 뵙지 못했습니다. 지금 현재의 저에게도 많은 귀감이 되시는 분들입니다.




한국에서 가장 의욕이 있고 훌륭하신 감독님들과 좋은 영화를 만들었고 모두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이장호 감독과 "바람불어 좋은 날"로 제 영화와 연기 인생의 새로운 장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희로애락을 나누며 배창호감독과는 철인들, 꼬방동네 사람들, 깊고 푸른 밤 등 많은 문제작, 화제작 등으로 보람을 나눴습니다.


문 영화계 후배들의 진출에 대해서 어떤 기대를 가지고 계신가요?
답: 요즘은 여러 가지로 환경이 좋습니다. 그러나 경쟁이 더 심하여지기 때문에 정말 열심히 하지 않고는 안 됩니다. 그래서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합니다. 정서적이고 감성적인 면은 이전 세대가 훌륭합니다. 그러나 신세대들이 노력을 많이 하고 실력도 월등합니다. 기대가 큽니다.


문: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배역이 있으신지요?
답: 특별히 어떤 역이라기보다는 앞으로도 다양한 인물의 배역을 연기하되 영화라는 한 길로 매진하고 싶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제가 우리 영화계에도 정년을 없애고 열심히 일하는 전통을 만들고 싶습니다.


문: 지나온 내력을 보면 영화를 하시기 위해 태어나신 분 같습니다. 아역배우로 영화계에 데뷔해 두각을 나타내신 일이나 또 베트남 공부를 하셔서 베트남에 진출하려 했으나 경기가 끝난 일 등 모두가 그런 것 같습니다.
답: 장교로서 임관될 때 월남전은 이미 끝났습니다. 그래서 이런 계기가 오히려 배우로서 길을 찾게 된 것이니 더 도움이 되었다고 할까요. 이 분야에서 일하는 것이 참 좋습니다. 늘 새로우니까 끝이 없는 일이니 더 나은 결과를 내기위해 열심히 노력하게 됩니다.


참고로 안성기는 1957년 5세로 아역배우로 진출해 호평을 받았고, 이후 <10대의 반항>으로 샌프란시스코 영화제 특별상을 받았다. 많은 영화에서 각광을 받았으나 학업을 위해 매진하다가 대학 졸업 및 장교로 군복무를 필한 후 운명처럼 영화계에 신인배우로서 구도자의 길을 시작하여 성공적인 오늘에 이른 것이다.


문: 대통령 역할도 연기한 국민배우 안성기입니다, 그동안 정치권에서 숱한 러브콜을 받으신 것으로 압니다.
답: 90년대에서부터 여러 번 있었는데 단호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오로지 영화 쪽에서 잘하겠다. 다른 분야의 진출은 않겠다고요.


문: 행정부 쪽에도 문화부장관 제의를 받으셨는데, 거절하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답: 제게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하마평이 나올 때 누군가 추측으로 올린 것이 소문으로 커진 것 같습니다.


문: 부인과 안다빈, 안필립 등 가족자랑 좀 해 주세요. 특히 부인과는 너무 사이가 좋으셔서 부부싸움 한 번도 안하셨을 듯합니다.
답: 부부간에 의견 다툼이 없을 수 있나요? 그러나 저는 하루가 지나지 않고 이를 푸는 것을 원칙으로 해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가정의 화목함을 이끄는 비결이라고나 할까요.
큰 아들은 조각을 하고 작은 아들(안 필립)은 사진을 전공해서 지금 미국에 가 공부를 합니다. 큰 아들 (안)다빈이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중앙대에서 공부한 후 군대를 다녀왔습니다. 바로 얼마 전에 함께 다들 모였습니다. 가족들이 저에게 즐거움을 주고 힘을 줍니다.


문: 민주화 이전 그 시절에 작품 활동을 하면서 어려운 일을 겪지는 않았나요.
답: 왜요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작품의 제목이나 내용이 비판적이거나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 같이 논난이 된 작품 같은 것은 내용과 표현 등에 있어서 서로 다른 여기저기서 각종 지적을 받기도 했습니다


영화에서 안성기가 눈물 흘릴 때 관객들이 웃었다. 안성기가 웃을 때 관객들은 눈물을 흘렸다. 안성기는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었던 과거 경직된 한 시대를 살면서 그래도 대 사회적인 발언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자신의 역할을 해낸 정직한 예술가였다.


그의 영화 출연 연보를 보면 매년 한국영화가 고비고비 변화를 겪어가며 행진하는 모퉁이마다 표지석 혹은 이정표의 역할을 하는 듯 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부분적으로는 그의 작품 이력이 곧 한국영화사가 되기도 하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아역배우에서부터 우리 곁에 있었던 영원한 배우 안성기에게 가슴을 크게 펴고 큰 박수를 보내자. 그가 우리의 인생이며 우리 사회를 비추는 깨끗한 거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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