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주간=박봉민 기자]“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누구나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할 보편의 자유와 권리를 가진다”. 지극히 당연하고 마땅한 이것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 있다. 누구에게나 평범할 것 같은 그 자유와 인권이 평생의 소원인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 그것을 찾아 정든 고향,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험 속에 남겨두고 떠난 이들이 있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행동하게 하였을까? 그들이 가족까지 위험 속에 남겨둔 채 그토록 갈망하던 자유란 무엇일까?
5월의 첫날. 노동자의 권리를 생각하는 그날에 ‘프롤레타리아의 지상 낙원’이라고 자랑하는 북한을 떠나 온 김태진 (사)북한민주화운동본부-북한정치범수용소해체본부 대표를 만났다. 김 대표는 북에 부모와 자식들, 가족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자유를 찾아 북한을 탈출 했다고 한다. 그가 겪은 북한에는 자유라는 것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북한은 독재 사회가 아니라 노예집단, 한 명의 노예주에 속한 노예들만이 존재하는 이상한 집단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우리 민족을 수치스럽다고 했다. 하지만 또한 북한을 동포애적인 입장에서 대해야 한다고도 했다.
지난 1일 <일요주간>은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북한 내 정치범 수용소와 북한의 인권 실태에 대해 들어봤다.
-‘(사)북한민주화운동본부-북한정치범수용소해체본부’는 어떤 단체입니까.
▲저희 단체는 2003년에 설립됐습니다. 당시 북한 정치범 수용소 생존자들이 그곳의 실체와 상황을 알리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처음 만들어질 당시에는 <북한정치범수용소해체운동본부>라는 이름으로 시작을 하게 됩니다. 그해 12월에 통일부 산하의 법인을 신청하려고 추진을 하는 과정에서 당시 통일부의 입장은 <정치범 수용소>라는 이름을 가진 법인 단체를 승인해 줄 수가 없다고 해서 <북한민주화운동본부>라는 이름으로 사단법인 등록을 마쳤죠.
그런데 사실 단체든 사람이든 이름에 모든 정체성이 있는데 우리는 아주 정체성이 모호한 단체로 출범을 할 수 밖에 없었죠.
그래서 그 이후에 한국 내에서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대한 모든 자료나 정보는 저희 단체에서 모두 나갔어요. 왜냐하면 생존자들은 여기 밖에 없거든요. 다른 단체에 소속되어 있거나 하지 않거든요. 하지만 정치범 수용소에 대해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면 우리 단체보다 다른 단체들이 더 많이 떠요. 그러니까 어제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오늘은 좀 더 사람들의 관심을 유발하기 위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지겨워하든, 듣지 않든 상관없이 어제한 얘기 오늘 또 하는거죠.
왜냐하면 우리는 ‘증인’이니까요. 그렇게 우리의 역할을 해오던 중에 이 <북한정치범 수용소>라는 것이 잘 알려지지 않고 또 다른 단체 사람들이 우리 이야기를 가지고 분석해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잘 안되는 부분이 있더라구요. 그래서 “아 <북한 정치범 수용소 해체본부>라는 이름을 가지고 일을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법인명은 우리가 바꿀 수가 없으니까 별도의 독립단체 형태로써 <북한 정치범 수용소 해체 본부>라는 단체를 새롭게 구성을 하게 된거죠.
그래서 <북한민주화운동본부> 인사들이 <북한 정치범 수용소 해체본부>에 많이 참여를 하고 있죠. 저 같은 경우에도 <사단법인 북한민주화 운동본부> 법인 대표이면서 동시에 <북한 정치범 수용소 해체 본부>라는 단체의 대표도 함께 역임하고 있는 거죠.
-그럼 대표님께서도 탈북을 하신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 해체본부> 대표는 북한 출신이면서 정치범 수용소에 다녀온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도 1985년에 처음 탈북을 해서 우여곡절 끝에 1986년 3월부터 중국에 정착을 했었죠. 그런데 16개월 정도 살다가 중국 공안에 의해 체포되어 강제북송 돼서 요덕 수용소에 1988년 3월 30일에 들어가게 되죠.
그곳에서 4년간 있다가 1992년에 나오고 그 후로 1994년에 김일성이 사망하면서 식량사정 등으로 인해 저에 대한 집중감시 같은 게 이루어질 수가 없는 상황이 됐죠. 그래서 그 혼란한 틈을 타서 1997년에 다시 탈북을 했죠. 그리고 중국에서 오랫동안 머물다가 2001년도에 한국에 입국을 했죠.
-현재 북한 내 정치범 수용소의 현황과 실태는 어떤가요.
▲현재 본부에는 14호, 15호, 16호, 22호, 25호 이런 곳의 관계자들이 있어요. 그곳에서 탈출해 나온 사람들이죠. 그 사람들이 자기들이 있던 구역의 단위가 있잖아요.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 한 작업반에 몇 명이 있었는지 등의 증언을 토대로 추정을 해보는 거죠. 완벽한 숫자는 알 수가 없고...
그것을 통해 보면 현재 5~6개의 수용소가 있는 것으로 추정이 되고 여기에 15~20만명에 이르는 수감자들이 있을 것으로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인원적으로 보면 남한에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수준을 훨씬 능가하는 것 같은데요.
▲그렇죠. 많을 수밖에 없죠. 왜냐하면 한사람이 잘못하면 3대를 잡아갑니다. 그러다 보니 인원이 많을 수밖에 없죠.
-실제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서의 가슴 아픔 사연이나 사례들이 있나요.
▲저는 솔직한 말로 “좋았던 것이 무엇이냐” 이렇게 물어봐 줬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그곳에 갇혀 있는 자체가 고통이었거든요. 왜냐하면 저는 재판을 받고 간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나에 대해서 세상에 알려져 있질 안잖아요. 죽으면 그대로 묻혀버리고 마는 거죠. 우리부모나 가족들이 내가 수용소에 갔는지 조차 모르는 거죠. 그런 상태에서 갔기 때문에 굉장히 두렵죠.
그리고 그곳에 갇혀 있는 동안 늘 희망이 없기 때문에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뎌 나가다 보니까 자존감이랄까 이런 것들이 심하게 상처를 받는 거죠. 그런데도 어디 가서 항변할 수도 없고 그냥 묵묵히 노예가 돼서 복종을 해야 하는 그런 부분들이 가장 아팠죠. 어떻게 보면 맞거나 이런 것에 대해서는 “아! 이 정도는...”하는 생각으로 감수를 하고 살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별로 아픈 상처가 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가장 안타까웠던 사연이 있다면.
▲제가 볼 때 안타까웠던 사실들은 김일성에게 정말 충성을 다했던 사람들이예요. 그곳에 들어와서도 날마다 “수령님! 수령님!”하는 사람들이 그곳에 잡혀 들어온 거예요. 그런걸 보면서 참 기가 막히고 답답하죠. ‘저건 뭐하는 짓이지’ 하는 생각도 들고 그렇죠. 그리고 갇혀 있으면서도 황당한 일들은 할아버지 얼굴도 잘 모르고 이런 어린 애들이 그곳에 잡혀 들어와요. 공부하고 그래야할 그 애들이 강제노동을 해야 하는 그런 부분들이 무척 마음이 아프죠.
-그렇다면 북한 내에서 민주화 투쟁이랄까 하는 민주화를 위한 움직임들이 실제 있는 건가요.
▲그것은 어떻게 생각을 하시면 되냐 하면 이제 북한 사회라는 곳이 지금 현재 가장 국민을 위한 정책을 하달하고 집행하는 그런 국가로 모든 사람들에게 인식되어 있어요. 그렇게 돼있기 때문에 만약에 데모라도 일으키면 “우리 인민의 행복을 빼앗아갈려고 하는 미국이나 남조선 간첩들의 짓이다”라고 규정이 되는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 앞에서 처결을 해도 사람들이 “맞아. 저건 마땅히 죽어야 할 놈들이야” 모든 국민들이 이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어져 있는 사회이기 때문에 제가 나올 당시까지만 해도 불가능했다고 봐야죠.
지금은 외부의 소식 같은 것들이 많이 들어가고 해서 약간의 변화가 있다는 정보들이 나오고 있긴 하지만 제가 1997년에 나올 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아 이건 정말로 나쁜 사회구나. 데모를 해서 김정일을 타도해야 하겠구나’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사실 별로 없었어요.
-그렇다면 지금은 접하신 정보들로 봤을 때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이나 학생운동과 같은 그러한 움직임들이 있다고 보십니까.
▲한마디로 없습니다. 그게 왜 없느냐면 북한에서는 기본적으로 김일성이가, 김정일이가, 요즘은 김정은이 되겠죠. 이들이 승인한 것 이외의 단체를 만들 수가 없어요. 어릴 때부터, 10~11살 정도 되면 소년단이라는 조직에 가입을 해야 돼요. 자기가 들고 싶다고 들고 들기 싫다고 안 드는 그런 게 아니라 무조건이죠.
그리고 조금 더 크면 사노총이라는 조직을 만들고, 그 이후에는 당에 입당 못하면 직맹이나 여맹이라는 조직을 만들어서 다 규합을 시켜요. 그러한 조직들을 통해서 필요한 계급 교양이라든가 하는 것들을 끊임없이 계속하죠.
그리고 북한은 현재 일체 외부에서 들어오는 모든 것들을 다 통제하고 있잖아요. 다 막고 자기들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 한국 사람들은 제가 이렇게 얘기해도 그곳에서 실제 살아보질 않았기 때문에 이해가 아마 힘들 거예요.
그래서 이제 너무 어려운 문제들을 가지고 우리가 이야기를 해야 하고 납득시키기가 힘든 그런 상황인데...제가 그곳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어떤 부분이냐 하면 막말로 눈알을 파냈다든지 손톱을 뽑았다든지 하는 그런 것만 고문으로 생각하는데 그게 고문의 전부가 아니거든요. 어떨 때는 ‘나는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굉장히 많거든요. 왜냐하면 삶에 대한 의욕이 없으니까... 그리고 북한에는 사적인 소유가 일체 허락이 안 돼 있거든요.
음... “북한은 전체적으로 노예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그렇게 설정을 해 놓고 이해를 하면 쉽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최근 중국으로 탈북하는 동포들의 강제 북송에 대한 논란이 뜨겁습니다. 이들을 위해 대한민국 정부가 어떤 입장과 노력을 기울여야한다고 보십니까.
▲저는 첫째로 풀어야할 부분이 중국이라고 생각해요. 왜냐면 중국을 통해서 탈북자들이 나오잖아요.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좀 과감하게 중국과 마주앉아서 “좋다. 우리가 이제 탈북자들이 중국을 통해서 나온다든가 하는 등등으로 당신들을 자극하거나 국제 사회에 여론화를 시키지 않겠다”고 접근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을 것이고, 그래서 우리 당국자들이 중국에 가서 탈북자들이 나왔는데 정말 그 사람들이 어려운 상황을 견디다 못해 나온 사람들인지를 확인하고 그 사람들이 제3국행을 원한다고 하면 그곳에서 1차적인 심사를 통해서 그들이 안정된 곳으로 나와서 좀 더 심화 시켜서 이 사람이 정말 북한 주민인지, 외국인인지, 간첩인지, 아닌지를 엄격하게 심사해서 한국으로 데리고 들어오는 이런 식의 좀 적극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렇게 되면 중국 같은 경우에도 국제여론화를 시키지 않고 조용히 하겠다고 하면 싫어하진 않을 것 같아요. 그들도 자꾸 대사관에 뛰어들고 소리를 내고 하니까 자기들로서도 입장이 곤란하잖아요. 그런데 이제 우리 정부가 그렇게까지 할 의지까지는 없지 않느냐 이런 생각들을 하게되요. 그리고 이제 탈북자 문제 뿐만 아니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야기를 하는데 그게 잘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우리 민족은 지금 무지 잘난 것처럼 하고 으스대며 돌아다니고 있는데 우리 민족은 사실 무지 수치스러운 민족이에요. 왜냐하면 우리는 아직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그것은 나라가 없을 때예요. 하지만 지금은 북한이나 한국이나 서로가 잘났다고 소리치고 못사는 나라 나가면 으스대는 그런 상황인데 현재도 15만명에 이르는 우리 한민족의 여성들이 중국에 팔려나가고 있는 상황이예요. 돈에 의해서 말이죠.
지금 한국 사회에 있는 다문화 가족들처럼 국제결혼을 통해서 중국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돈에 의해서 팔려 나가고 있어요. 그런데 아직 그런 문제들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있는데 대한민국 국민은, 우리 한민족은 수치스러운 민족이라는 것을 좀 알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에 문제는 없을까요.
▲대북정책은 지금 현재 잘하고 있지 않느냐 하는 생각도 들어요. 어떤 분들은 “모든 채널을 다 만들어 놨더니 지금 그걸 다 막아버렸다”고 하는데 그러면 전 이렇게 얘기하고 싶어요. “우리 46명의 천암함 용사의 유가족들이나 금강산에서 피격 당한 박왕자씨의 유가족들이 사과를 받았느냐”는 거죠. 아직 받지 못하고 있거든요. 잘못을 인정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계속 특정기업의 손을 들어줘서 금강산 관광을 지속한다고 하면 결국은 대기업들의 편을 들어서 그들의 배만 불리는 일에 정부가 참여한 것이라고 지탄하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우리 민족 모든 사람들, 100%의 사람들을 다 만족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을 해요. 우리 민족을, 우리 국민의 권익을 책임진 대통령이 그렇게 물러 터져서 쏴 죽이고 폭파해 죽이고 하는데도 아무런 대책이 없다면 그런 사람 대통령 세워둔 우리 민족도 슬퍼지는거죠. 이제 걔네가 그렇게 나오면 우리도 강하게 나가고...
하지만 “이런 것도 있다. 너네들 한테 당근도 있다. 그게 뭐냐. 너네들 자꾸 식량이 모자란다고 하는데 그게 10년 세월이 넘어갔다. 그렇다면 뭔가 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 한 번 좀 보자. 우리가 지금 주는 쌀 가져다가 이 사람들이 소화를 시키는지 적정한 영양소를 제공할 수 있는지 모니터링 좀 하자” 이렇게 접근할 수도 있잖아요. “너네 군대준다” 이런 으로 예민하게 걸고 넘어 지지 않고...그런데 얘네는 무조건 들어온다고 하면 안 받고 그건 싫다고 하는 건 뭐냐 하면 잘못된 곳에 쓰이고 있다는 걸 반증하는 것이거든요.
저는 우리 국민들이 이런 것도 좀 생각을 하고 이야기를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도 그곳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우리 가족들에게 가는 식량을 제가 반대할 이유가 없잖아요. 하지만 가지를 않으니까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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