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 위의 사람들(13) - 사필귀정

People / 이호준 / 2012-05-23 14:4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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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이란다고 저 자슥이 아...악~.........저 자슥이 반성이라도 할 것 같나” 1. 응징

“동생아, 이제 어떻게 해야 되겠노?”
두 경찰관의 배웅을 마치고 온 동근, 상념[想念]에 젖어 경찰관들 뒤꽁무닐 쫓는 준에게 할 일을 가르쳐달란 표정이다.
“뭘? ”
“...............”
“아~ 예! 일단 구경꾼들 보내고 보죠.”

준의 단호한 의견, 동근이 사방을 앉아있는 구경꾼들을 향해 위협적인 손가락질 동원한 침 튀기는 악다구니를 친다. 이에 두 명의 노숙부랑인들이 합세한다.

“다들 안가나. 이제 고마 가봐라.”
“자! 그만들 가보이소.”
“이제 다 끝났심더, 그만들 가보이소.”

나서기 좋아하는 노숙부랑인들인데, 그렇다고 뭐라 불만이나 유감을 토로(吐露)하는 구경꾼들은 없다. 다만 여름날 새벽 최면에서 깨어난 것을 아쉬워하며 서둘러 동행들과 짐을 챙길 뿐이다. 벌써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모든 상황들을 가로수벤치에 앉자 지켜보던 준이 몸을 일으킨다. 이에 노숙부랑인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양쪽으로 비켜선다. 툭 터진 시야 속으로 그로테스크[grotesque]하게 교체되는 풍경들, 지훈이 좌우를 휘둘러보며 강자로서 아량을 베풀어 주길?바라는 애원을 해 본다.

“쭈..쭌이 행님, 아파 죽겠심더. 병원에 좀 가게 해 주이소.”

더 이상 어떻게 해볼 수 없다는 좌절감이다. 그런데 이를 조롱하듯 한 사내가 병풍처럼 둘러 싼 노숙부랑인들을 거칠게 헤치며 튀어나온다.

“뭐 쌔꺄, 병원?”

퀭하게 충혈 된 눈, 흥분과 후덥지근한 날씨가 범벅이 되어 흐르는 땀, 술에 찌든 냄새, 준의 새벽단잠을 깨웠던 명우다. 개봉하지 않은 소주병을 거꾸로 쥔 채 애원하는 지훈의 옆구리를 찬다.

“해...행님! 맹우 행님!”
“행님 같은 소리하고 있네.”

골대를 향해 회심에 슛을 날리는 축구선수 폼, 지훈이 “훅~” 맥없는 숨을 내뱉으며 강타당한 옆구리를 부여안고 몸을 둥글게 만다.

“쇼를 해라! 쇼를 해!”

양육강식의 거리, 명우는 지훈이란 이름만 떠올려도 두려움에 치를 떨어야했었다. 그런 지난날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르자 치받치는 울분을 주체할 수 없다. 힘껏 뛰어올라 악몽을 떨치듯 내려찍는다. 한번, 두 번, 세 번..... 결국 중심을 잃고 쓰러지지만, 두 팔을 뒤로 벌려 상체를 고정시킨 채 계속되는 발길질을 날린다.

“내 살려 달라 할 땐 어떡했노!”
퍽,

“어떻했노.”
퍽, 퍽........

흥분을 주체 못해 방황하는 고함소리, 폭력이란 야만성에?부서지는 비명소리, 비상식적인 동의와 합의다. 그래서 모여 있는 노숙부랑인들은 유쾌 통쾌의 절정이다. 사회적 편견, 정치적 방관, 종교적 천박함, 경제적 오만 등의 이해관계들을 차고 밟고 싶은 소외자들의 본능인 것이다. 그렇게 발길질을 멈추지 않던 명우가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쓰러지면서도 악착같이 쥐고 있던 소주병을 치켜든다. 이에 아스팔트 바닥을 허우적대던 지훈이 종잡을 수 없는 일자 눈을 키우며 치켜든 두 손으로 소주병을 가려본다.

“그래 이 개 자슥~, 니 오늘 죽어 불끼다.”
“해.. 행님.”
부질없는 짓임을 알면서도 인간이기에 포기를 모르는 본능을 발휘하는 것인데, 준이 소주병을 치켜든 명우의 손목을 낚아챈다.
“이게 미쳤나? 그만해라.”

준이 명우가 튀어나와 발길질을 날릴 때도 “참~”하는 코웃음을 치며 한발 물러서는 전형적인 방관자(傍觀者)의 모습을 택했던 건 그동안 당했을 명우의 고통을 알기에 어느 정도 지켜볼 심산이었다. 그런데 신나게 차고 밟으며 응징을 가하던 명우가 아스팔트 바닥을 허우적대는 지훈의 머리를 소주병으로 내려치려는 것이다. 더 이상 두고 봤다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란 생각에 소주병을 치켜든 명우의 손목을 잡아챈 것이다. 명우가 퉁명스런 내뱉음으로 준을 쏘아보며 일어난다.

“뭐꼬? 이거?”
충혈 된 눈빛이 붉게 달아올라 땀범벅인 야윈 얼굴과 겹쳐 섬뜩하다. 하지만 소주병을 자유의 여신상의 횃불인 양 들고 있어야하는 불편함에 잡힌 손목을 비틀어본다.?
“놔라. 어차피 이 개 자슥, 이렇게 보내면 안 된다 아니가!”
“알았다! 알았으니까! 이거 놓고 이야기하자.”
그런 명우를 좋게 타이르는가 싶던 준이 잡고 있던 손목에 오른손을 합류시켜 상체를 오른쪽으로 돌려 인사하듯 90도로 숙인다. 그러자 명우의 오른쪽 어깨가 준의 왼쪽옆구리에 자연스럽게 끼인 꼴이다. 어떡하든 버티겠단 의지[意志]로 몸을 비틀어보지만, 그럴수록 참기 힘든 통증에 팔이 빠질지도 모른단 불안감이다. 결국 하던 말을 다 끝맺지도 못하고, 비명을 토하며 바통터치하다 균형을 잃은 릴레이주자처럼 준에게 소주병을 넘긴다. 그리고 원망 섞인 눈으로 못한 말을 이으며 꺾였던 어깨를 ‘주물럭주물럭’ 준을 지나 노숙부랑인들 틈으로 합류한다.

“니가 이란다고 저 자슥이 아...악~.........저 자슥이 반성이라도 할 것 같나.”
준은 무슨 소릴 하든 상관없다는 듯 빼앗은 소주병을 스테인리스휴지통을 향해 ‘흔들흔들’ “터~ㅇ" 가늠한 덕분인지 군더더기 없는 골인이다.

2. 쇼는 모든 걸 마비시킨다.

정신없이 차이고 밟히다 소주병에 맞을 뻔한 지훈은 아픔과 공포로 얼룩진 아스팔트바닥을 더듬기 바쁘다. 리얼리즘[realism] 철학이 절절한 팬터마임[pantomime]을 보는 듯하다. 사실을 밝혀보겠다고 나섰다 치도곤[治盜棍]을 당했던 덩치들 또한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어깨를 움츠린 채 눈치 살피기 바쁘다. 그런데 갑자기 한 덩치가 자신의 결백을 애원하며 준에게 무릎걸음이다.

“행님예. 지희는 지훈이 행님 따라온 죄밖에 없십더. 용서하이소.”
지훈의 모습은 조금 있으면 자신이 당해야 할 현실이기에 비슷한 포즈로 서있는 동료와 눈빛을 교환하는 최소한의 동의나 합의도 없는 일단 제 한 몸 건사하고 보잔 발 빠른 연출인 것이다. 이에 홀로 남은 덩치 또한 준을 향해 때늦은 무릎을 끈다.

그러나 한쪽에 서서 ‘주물럭주물럭’ 어깨 통증을 삭히던 명우는 치밀어오는 분을 주체할 수 없다. 통증이고 뭐고 튀어나가 뒤늦게 서야 무릎을 끌던 덩치가슴팍을 향해 발바닥을 쭉 뻗는 발길질을 내지른다.

“뭐! 이 새끼들아!”
“욱~”

계약서확인란에 도장을 찍듯 신발자국이 선명한 덩치의 가슴팍, 아픔보다 공포에 질린 얼굴을 찡그리며 두 팔을 휘돌리는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뒤로 무너지는 중심엔?의리고 뭐고 없다. 등짝이 유난히 넓어 보이는 눈앞의 동료 옷섶을 붙잡고, 사이좋게 후방낙법을 펼치며 나동그라진 것이다.

“저 개새끼가 시킨다고 나를 묶어 놓고, 담뱃불로 지지고.......”

그런 두 덩치들의 모습에 지난날의 치 떨림이 오버랩 되어 말끝을 흐린 명우, 바닥을 뒹구는 덩치들을 사정없이 밟고 바닥을 쓸듯 차는 발길질을 날린다.

“예이, 호로 새끼들아!”
“욱”
“용서! ” “훅~” “용서! ” “훅~” “용서!” “훅~”
“용서! 용서만해주면 돼제.”
“잘못 했심더. 행님, 잘못했심더.”?

아스팔트바닥을 허우적대는 두 덩치들은 분기 가득한 발길질을 피해볼 요량이지만, 그런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쫓아다니는 명우의 발길질에 번들번들한 눈빛이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을 기세[氣勢]다. 결국 두 덩치들이 쥐며느리처럼 얼굴을 무릎에 파묻고, 두 팔로 옆구리를 감싼다.

패배자로서 관용[寬容]을 바라는 의사표현[意思表現]이며 최후의 방어수단인 것이다. 이에 준이 그런 두 덩치들에게서 명우의 옆구리를 낚아채 떨어트려 놓는다.

“그만해라. 사람 잡겠다.”
그러나 이미 광기로 해답을 찾는 사이코패스처럼 폭력의 짜릿함을 탐닉한 명우다. 내뱉는 목소리가 건조하다 못해 갈라지는 것이 자신을 주체할 수 없다는 것인데, 준의 목소리는 단호하다.
“니. 와~ 또 이라는데? 비키라.”
“그만하라니까.”
“................”
그렇게 서로를 노려보는 찰나 지켜보고 있던 노숙부랑인들이 아우성을 친다.
“쭌이 니는 나와라. 그 자슥들은 콱~ 죽이삐리야 된다.”
“아니, 아니다. 평생 꼬지하라꼬 다리 하나씩만 끊어삘자.”
“맞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사람을 죽여야 쓰겠나. 그냥 다리 하나만 끊어삘자. 누가 할 끼고?”
“그래! 맞다. 누가, 누가 할 끼가?”
“누가 할낀데?”

소외당하고 핍박당한 자들의 이심전심[以心傳心]인 것이다. 그러나 준은 난감하다. 행여 112신고로 경찰관이 다시 출동한다면 십중팔구 주모자[主謀者]로 쇠고랑을 차야 될 상황, 어찌됐던 자신으로 인해 벌어진 폭력사태이기 때문이다. 명우를 아우성으로 흥청거리는 노숙부랑인들에게 밀치며 거친 속내를 털어놓는다.

“아~ 참, 나도 말 좀 합시다.”

빤한 속내를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한 것으로 온 몸을 써가며 긴 머리를 흩트리는 고함질이다. 이에 놀란 명우의 표정은 노르웨이 출신 표현주의 화가 '뭉크(Edvard Munch)'의 절규를 보는 것 같고, 명우를 받은 노숙부랑인들은 벌어진 상황을 이해하기위해 퀭한 눈빛을 반짝이며 서로들 쳐다보기 바쁠 뿐이다.

매일 매일을 술 한 잔, 밥 한술, 등 부빌 잠자리에 투쟁을 해야 하는 막장인생들, 민주주의[民主主義]를 사기 쳐 떼부자가 된 자본우선주의[資本于先主義]에 철저하게 이용, 왜곡, 소외당해야했던 인생들,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단 무언의 합의이며 동의인 것이다.

3. 같잖은 족속들

대한민국의 근대화는 화합이 아닌 나라를 송두리째 팔아먹은 파멸의 시작, 국민적 자존[自尊]보다는 세계열강들에게 간, 쓸개를 빼주며 일신의 영달[榮達]을 꿈꾼 대가[代價]였다. 그러나 영원불변[永遠不變]이란 없는 법, 대한민국 또한 36년간의 침략에서 타는 목마름으로 외쳤던 독립을 한다.

하지만 제국주의[帝國主義]에 철저하게 길들여지고 망가져 자주성이 결여된 독립은 가늠키 힘든 분열을 예고했는데, 그것은 친미반공, 친소공산 등의 계파적 헤게모니[Hegemonie]가 뒤섞인 혼란이었다. 그러나 피를 토하며 꺼꾸러져야 할 친일종교주의자, 친일예술가,.....친일자본가들에겐 대한민국을 제 입맛대로 수정, 분리, 착취할 수 있는 절호에 기회이기도 했다.

특히 백의민족[白衣民族]을 거부한 종교주의자들은 친일파들의 탄탄한자본경제력과 결탁해 주체성이 모호한 정치, 사회적 배경을 조장, 친일반공주의를 탄생시켰다. 그 결과 친일파들이 대한민국의 열악한 정치, 경제, 교육, 문화를 비롯해 사회전반에 재진출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일제국주의 철학과 사상적 체계를 조상의 은덕[恩德]인양 추앙[推仰]하고 주입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외쳐 된 것이 용서와 화합과 자본을 앞세운 이데올로기[Ideologie]였다. 그러나 그들의 용서와 화합에는 반성이 없었고, 자본에는 근본이 없었다. 독립한 대한민국에서도 일신의 영달을 위한 기득권 확보와 유지가 유일한 목적이요,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혼란 속에서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 6.25사변은 대한제국의 반역자들에게는 천하를 도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고, 결국 종교적 팽창주의에서 시대적 이데올로기로 바꿔 타기를 성공한 친일자본과 근본을 찾아볼 수 없는 문화적 방아쇠효과[trigger effect]는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의 군사쿠데타정권을 세웠다. 그리고 창출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친일을 두뇌로, 자금줄로, 동업자로 내세워 듣도 보도 못한 정통보수로 탈바꿈 시켜, 개발우선을 외치며 위안부여성들의 자존심과 36년의 민족유린을 팔아 얻은 밀가루, 설탕가루, 시멘트 포대로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고, 공포를 조정[調整]했다.

그런 청결치 못한 자본의 스펙터클[spectacle]효과와 공포정치의 결탁은 개발독점재벌들을 탄생시켰으며 이 기형적 집단들은 대한민국근대사에서 빼도 박도 못하는 친일반공주의에 개가 되어 대한민국사회를 독식, 재편, 착취하는데, 때로는 앞장서고 뒤에서 조정하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힘을 발휘했다.

하지만 그렇게 얼굴을 바꿔가며 팽창을 거듭하던 친일반공주의와 자본을 앞세워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역사의 질곡을 헤쳐 나왔던 재벌들도 IMF의 논리 앞에선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일단 살고보자는 식으로 직장을 패쇠하고, 져야 될 책임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하며 국민들을 자살, 마약, 도박, 실업, 빈곤, 전과자, 가정파괴, 알콜중독자, 노숙인 등의 현상들에 쑤셔 담는데, 권위와 권력의 지엄함을 보여줬다.

그들은 자본가들과 위정자[爲政者]들의 영원한 화수분인 99%의 국민들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99%국민들의 버팀목[shoring]이기 보단 원리원칙을 무시한 채 외형적성장만을 거듭한 1%의 재벌들과 종교, 정치권력의 부도수표였을 뿐이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정치는 대책이란 교묘한 술수 뒤에 숨어버렸고, 기업가들은 비정규직이니, 계약직이니 하며 분배보다는 착취를 위한 판을 짰다. 그렇게 직장을 잃고, 가족을 잃고 길거리에 나앉은 노동자서민들을 창의, 창조적 사회일원으로 만들어보겠다던 종교주의는 부와명예의 축적수단으로 관리, 사육했다.

자본과 권력의 달콤함에 맞들인 기득권과 비호세력들의 꿍짝이 노숙자란 ‘무뇌인간’을 생산해내는데 잘 맞아 떨어진 결과인 것이다.

“국민의 보편적 존엄성, 인권, 웃기지마라. 세금 잘 내고, 투표할 때나 필요한 구호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정치, 종교, 교육, 기업에는 인간미보다는 이기적 냉소주의(冷笑主義)와 자본을 우선으로 하는 보신과 편리주의(便利主義)만 있을 뿐이다. 특히 경제적위선과 자본의 오만에 의한 도덕적 상실은 알콜중독자, 정신병자, 범법자, 독거노인, 가출청소년 등을 끊임없이 양산해내고 있지만, 불리한 통계는 편집, 왜곡가능한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 대한민국의 1%는 여전히 상관하지 않는다.

“국민의 보편적 존엄성, 인권, 웃기지마라. 돈 많은 1%의 국가보다 돈 없고 빽 없는 국민들이 죄다.”

그 말도 안 되는 현상에서 국민들을 지켜줘야 할 정치, 언론, 예술, 사회단체들은 방임과 방관으로 일관했고, 지식은 좀비주의가 되어 사회를 화석화[化石化]하는데 앞장섰다. 그래서 세상은 보편과 진리보다는 보이는 것으로 더 풍요를 누리고,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이익을 위해 떠벌리는 권모술수[權謀術數]가 더 믿음직스러운 세상이 되어버렸다.

이른 아침부터 부산역광장에 모여 우격다짐으로 현상을 만들고 있는 이들은 대한민국헌법이 보장한 국민으로 태어나 법과제도에 쫓기고, 종교에 갈기갈기 찢겨 이제 인간으로서 형체만 유지하고 있는 노숙부랑인들이다. 존엄의 권리조차 저당 잡힌 채 눈 뜬 봉사처럼 살아가야하는 자본우선주의에 개량종자[改良種子]들인 것이다.

이들의 울분에 옮고 그름이 존재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죽든 살든 계획된 이속이나 챙기겠다는 지적[知的]인 비열함이며 무책임한 신봉이다. 그래서 나눠먹기 좋아하고 아픈 사람 있으면 구걸을 해서라도 약을 사먹였던 명우의 우격다짐에 노숙부랑인들이 분기탱천 한 것이다.


<이호준 약력>

전라북도 정읍 출생
작사,작곡가, 거리음악가
문화복지 여섯줄사랑회: 회장
실직노숙인조합: 위원장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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