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병은 충격기-갈등기-체념기-증상기의 네 단계를 밟아 진행된다고 한다.
1) 충격기
이것은 화가 날 충격을 받은 급성기를 말한다. 이때는 아마 화라기보다 ‘격한 분노’로 표현함이 옳다. 상대에 대한 배신감, 증오심 등이 분노에 앞서 격하게 일어나서 심지어는 살의까지도 품게 되는 극한의 감정상태로 된다. 이러한 분노를 처리하는 데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경우는,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여 때로는 파괴적으로도 되며, 나아가서는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경우, 이런 <표현파>는 가족이나 친지들도 동원하는 등 부산을 떨기도 한다.
둘째 경우는, 감정의 표현이 직선적이 못 되고, 억지로 병원에 실려와도 모든 걸 덮어 두려는 경향이 뚜렷하다. 그래서 문제의 근본적 해결에도 소극적이다.
2) 갈등기
급성 충격기를 지나 격한 감정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되고 이성을 회복하기 시작하면 비로소 그들은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오래가지 않는다. 이들은 체면을 중시하고, 또 사회윤리 의식이 강하기 때문에 감히 이혼하거나 사직하는 등 과감한 행동을 할 수는 없다. 그래서 괴로워도 참고 견딜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렇다고 화가 해소된 것도 아니고, 화날 일이 해결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심각한 갈등에 빠진다. 이러한 시기에 전형적인 불안증이 나타난다. 사실 이들은 화가 나도 이것을 다른 방향으로 해소할 수 있는 성격상의 융통성이 없다. 취미도, 사회활동도 별로 없어서 집에만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또, 이들의 심리적 방어기제도 아주 단순해서 격한 분노도 <억제>하는 것만으로 버텨 나간다.
3) 체념기
이 시기가 되면 환자들은 근본적인 문제해결보다는 차츰 자신의 불행을 그런 대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된다. 즉, 운명이다, 팔자소관이다 등으로 자기의 불행을 초자연에 투사함으로써 화를 중화시키는 체념 상태로 된다. 그렇다고 상대를 용서하는 그러한 관용은 잘 볼 수 없고, 다만 체념을 통해 그와는 감정적 관계를 맺지 않는 상태로 된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는 감정의 억제도 강력히 작용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억제와 체념의 기전이 잘 성립되면 마치 환자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담담한 표정으로 되며, 우울증에 빠진 사람 같아 보인다. 체념이란 심리기제는 격한 감정을 중화시켜 어려운 환경에 적응하게 할 수 있는 유용한 방어기제이다.
4) 증상기
이 시기는 신체적인 증상을 주된 증상으로 호소하는 환자들이 대부분이다. 억제와 체념으로만 쌓인 화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 자체가 스트레스로 되어 만성 스트레스 반응의 형태로서 신체적 증상이 생긴다. 또 다른 기전으로서는 마음의 고통이 너무 커서 받아들이기 어려울 땐 이를 신체로 투사하여, <마음의 고통은 곧 몸이 아프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하는 정신기제에도 연유한다. 따라서 체념기에 들어오면서 우울증이 차츰 현저하다가도 신체화과정으로 들어가면 오히려 우울증이 호전되는 경향은 흥미롭다. 즉 신체화는 환자로 하여금 더 심각한 우울증으로 빠지지 않게끔 하는 방어작용이 있다.
화병에 잘 걸리는 사람들의 특징을 심리적으로 살펴보면, 참기(나는 잘 참는 사람이다. 내 주장을 못한다. 누군가 접근하면 몹시 부끄러워한다. 섹스에 대해 부끄러워한다.), 억제(경쟁이 힘들면 중간에 그만둔다. 감정을 밖으로 표현함으로 내가 손해를 본다면 본인의 감정에 대해 참고 웃을 수 있다.), 고립(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등이 과도하다는 점이다. 실제 화병 환자들은 스스로 발병 경위에 대해 “참고 참다가 쌓여서”라고 표현할 때가 많다. 대응 전략 면에서도 참기(꾹 참는다.) 등 억제/부인이 빈번한 것으로 제시되고 있다.
꾹 참으면서 억제에 억제를 거듭한다 하더라도 사람인 이상, 그 억제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보다 자극을 덜 받기 위해 다른 심리적 대응전략이 필요한 경우가 생기는데, 이러한 필요에서 사용되는 것이 위축, 퇴행(스트레스가 있으면 무기력해진다.), 공상, 자극감소, 긴장감소, 고립, 최소화, 순응 등이다. 화병 환자들이 보이는 문제에 대한 ‘회피’로 요약된다고 본다. 그리고 불완전한 억제 때문에, 그 분노가 외부화하여 그대로 행동화(화풀이, 무모한 쇼핑)로 표현될 수도 있다.
화병은 주위 사람들에 대해 자신의 처지를 이해시키고 알리는 방편, 즉 하소연 내지 하나의 도움요청 행동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러한 요소는 불평(아무리 불평해도 만족스러운 반응을 얻지 못한다. 의사는 내 문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친밀화(기분이 나쁠 때, 누군가와 같이 있고 싶다.), 걱정 공유(자신의 고통에 대해 다른 사람과 이야기한다.), 반복된 걱정 등으로 나타난다.
이를 정리해 보면, 화병 환자는 억제하고 참고 위축되어 순응하고 지내면서 ‘허허’라고 웃어넘기기도 하고, 문제에 직면하지 않고 걱정만 하거나, 퇴행성을 보이고 남의 탓으로 돌리고 남들이 날 이해하고 도와주지 않는다고 분해하기도 하며, 순간적 화풀이 행동을 보이기도 하고, 남의 탓으로 한을 품으며, 스스로에게 깊은 연민을 가지기도 하며, 그리고 결국에는 우울증, 불안 그리고 신체증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칼럼에서 권한 화병 예방수칙을 지켰더라도 이미 너무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로 화병이 생기거나 화병 진단을 받았다면 다음과 같은 태도를 갖도록 권한다.
첫째, 화병이라고 느껴질 때는 진실한 대화자를 만드는 것이 좋다. 가족이든 아니든, 마음을 트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상대가 필요하다.
둘째, 깊은 심호흡으로 정신과 근육의 긴장을 풀어주는 연습이 필요하다. 명상이나 참선을 매일 30분간 하도록 한다.
셋째, 규칙적인 생활로 생체리듬이 깨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넷째, 일과중에 전신에 땀이 나도록 30분~1시간의 운동을 하도록 한다. 그러면 평화와 안정을 일으키는 엔돌핀같은 호르몬이 증가한다.
다섯째, 열등감을 극복하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자신을 타이르고 이를 반복하도록 한다. 모든 스트레스의 근본원인은 "열등감"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여섯째, 긍정적인 사고로 전환한다. 참을 수 없는 성격, 끝까지 부정적이고 편협한 생각을 가지면 화병의 굴레를 벗어나기 힘들다.
마지막으로 가족의 협조가 필요하다. 고통을 이해하고 나누어 가지려는 가족과 동료, 친구들의 따뜻한 사랑의 마음과 실질적인 역할 분담이 화병의 치료에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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