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VD 플레이어의 경우 정보를 읽기 위해서 디스크에 쏘는 편광을 나선형으로 움직이게 변환한 다음 다시 직선 형태로 변환해야만 한다. 하지만 DVD 플레이어가 붉은빛만 변환하고 고화질 플레이어가 파란빛만 변환하는데 반해 갯가재의 경우는 거의 모든 색깔의 빛을 변환시킬 수 있다. 실제로 보면 놀랄 만큼 단순한 이 갯가재의 눈을 통해 우리는 신의 섭리를 느낄 수 있다.
난 이외에도 수많은 자연의 신비를 보며 세상이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는 내게 양심이 있고 사고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광주에는 웃음을 파는 식당이 있다. 식당에 들어서면 주인이 자리를 안내한 다음 유머가 이어진다. "네 분이네요.1인분에 7천만 원이니까 2억8천만 원입니다." "그렇게 비싸요? 자, 3억 드립니다. 하하하!" "통이 크십니다. 잔돈 2천만 원 받으세요. 비싼 음식이니 마음껏 드십시오."
또 다른 손님이 식당에 들어서자, 주인이 자리를 안내하며 묻는다. "혹시 목사님이세요?" "아닌데요." "우리 가게는 목사님과 성직자에 한해 천원을 할인해 드리거든요. 점잖고 품위가 있으셔서 목사님인 줄 알았어요." 주인은 손님을 귀하게 대접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손님의 기분을 살핀다. 자연히 손님은 귀한 서비스를 받고 있다고 여기게 된다.
이곳 만의 특별함이 있다면 식당 전체를 웃음으로 인테리어했다는 것이다. 한쪽 벽면에 '고객의 웃음판'이라 해서 손님들의 웃음 사진을 꽃아 놓았다. 식당 곳곳에는 '일주일 내내 웃고 사는 법' 등 웃음에 관한 글귀가 붙어 있고 식사를 마치고 나가는 손님에게는 유머 쪽지를 나눠준다. 이렇게 웃음을 파는 식당은 단골 손님으로 넘칠 수밖에 없다. 이렇듯 사람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는 말들은 가치가 있다.
모두가 신이 우리를 따뜻하고 정감있고 기쁨을 느끼고 또 나누는 마음을 주신 덕분이다.
타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유혹이다. 유혹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는데 첫째, 자신의 어떤 점이 사람들을 유혹할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고 둘째는 상대방을 무너뜨리기 위한 전략과 행동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사람들은 얘기한다. "그래서 내게 돌아오는 게 뭔데?" 마케팅의 경우 고객이 상품을 사야 하는 이유보다는 구입함으로써 얻는 이익을 설명함으로써 상대를 유혹할 수 있다. 결론보다는 행동을 촉구할 수 있어야 하고 논리보다는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책의 경우 '30일 완성'이라는 제목을 다는 것은 숫자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경우이다. 하루하루 일자별로 뭔가를 익히다 보면 어느덧 그 분야의 귀재가 되어 있을 것 같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게 또 현실이다. 하지만 그것에 마음을 어느 정도 연 사람은 그 책을 사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
그래도 그것을 믿는 자는 꿈을 가지게 될 것이고 되어질 미래를 생각하고 마음으로 즐거워 할 것이다. 이렇듯 인간은 꿈을 통해 미래를 만들어가고 그것을 통해 기쁨도 누리게 된다.
아이들에게 멋있는 옷을 입히는 부모들이 많다. 하지만 멋있고 좋은 옷을 입은 아이들은 활동범위가 좁아져서 혼자 놀게 되고 또래 친구들하고 어울리기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서양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허름하고 질긴 옷을 입혀서 유치원이나 학교에 보낸다. 부담 없는 옷을 입은 아이들은 남녀 구분 없이 나무 위에 올라가 놀거나 마음 놓고 잔디밭에서 뒹굴며 노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즉, 어떤 옷을 입히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활동량이 결정되는 셈이다. 서양에서는 교사들도 언제든 아이들과 뒹굴며 놀 수 있도록 작업복을 많이 입는다.
사람은 행동에 제한을 받으면 생각이 제한되고 당연히 말도 제한을 받게 된다. 세상에는 말만 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혀로 일을 꾸미기만 할 뿐 그것을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하는 무리들이다. 항상 말로 모든 수고를 대신하려고만 한다.
그들이 만들고 기획한 꿈은 그래서 가치가 없다. 그들은 폼만 잡다 시간을 허비할 뿐이기 때문이다. 한번도 제대로 허름한 옷을 입고 실컷 놀아본 적도 없는 이들일지 모른다.
그들은 예측이 빗나가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항상 말로 해결을 했기 때문에 자신들은 입안만 했다고 말하며 그것을 시행하는 이들이 잘못했다고 탓할 것이다. 우리는 그런 이들을 신뢰할 수 없다. 함께 꿈꾸지 않은 자들이 어찌 그 꿈을 거론하며 또 그 꿈을 제대로 실현할 수나 있겠는가? 난 정약용 선생님의 기획력을 책으로 읽으며 백성을 위해 함께 고민한 흔적을 읽어낼 수 있었다. 이 시대의 지도자는 바로 그런 인물들이었으면 좋겠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시민과 공감하는 언론 일요주간에 제보하시면 뉴스가 됩니다'
▷ [전화] 02–862-1888
▷ [메일] ilyoweekly@daum.net
[ⓒ 일요주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