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2일부터 14일까지 최대 전력수요가 사상 최대인 8000만kw를 돌파해 예비전력이 100만~200만kw 사이인 전력수급경보 '경계'가 예보됐다. 대위기에는 지구촌을 휩쓸고 있는 미증유 폭서가 그 주범이다.영남 지방에는 보름 이상 폭염 경보가 내려졌고, 대부분 지역에도 폭염 특보가 계속되었다.
이례적 폭염으로 지난 사흘간, 단전사태의 촉발이 아니냐는 우려가 컸지만 이제 한풀 꺾인듯하여 안도감이 역력하다. 전력당국은 총력전을 펼쳤고 국민들의 적극적 절전 동참으로 최악의 상황을 모면했다. 한여름 폭염에도 공공기관은 물론 민간 건물까지 냉방을 멈췄고 일부 공장은 일손을 놓았다.
최근 적색경보음이 울린 전력대란은 뜻밖의 천재일까? 아니면 인재일까? 정답은 유일하다. 매년 가파른 상승세의 기상이변에 따른 전력 수요의 폭증은 이미 예고된 터였다. 마치 정부가 대홍수의 임박을 사전에 감지하면서 제방관리에 손을 놓고 있었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일단 전략생산의 최대 공급원인 원전이 절름발이 신세이다. 현재 원전 23기 중 6기가 멈춰서 있다. 특히 원전 부품 시험성적 조작사건으로 인해 신고리 1ㆍ2호기와 신월성 1호기의 가동중단에 약300만㎾에 달하는 공급량 증발은 금번 전략난의 핵심 사안이다. 더욱이 지난 11일과 12일 충남 당진화력과 서천화력의 발전소가 이상 징후로 잇따라 멈춘 것은 긴박감을 더하였다.
금번, 정부 당국은 국가의 중추신경계인 ‘전력대책’의 근원을 단기 미봉책으로 대처하는 미숙함을 여실히 보여줬다. 물론 무책일 수는 없다. 사전에 약정한 기업체의 조업시간을 조정하는 ‘주간예고’, 민간 자가 발전기 가동, 산업체의 휴가 분산으로 전력소비를 줄이는 ‘지정기간’, 수요입찰·지능형 수요조정 등등 가용수단을 총동원했다. 전력위기 탈출에 효자역할 수행은 분명하지만, 여기에 소요된 ‘전력산업기반기금’은 전기요금에 3.7%를 부가하여 조성된바, 결국 국민과 기업이 부담한 재원이다.
● 전력수급 예측모델 여전히 후진적
정부가 우려했던 최악의 시나리오는 ‘블랙아웃’(black out)이다. 한국은 2011년 9월 15일 ‘순환정전’으로 국민들을 화들짝 놀라게 한 적이 있다. 당시 발생한 경제적 손실만도 630억 원으로 추산된다.
현실적으로 발발 가능성이 희박하다고는 하나, 정부의 전력정책에 일관상이 부재하면서 난맥상을 거듭 노정시킨다 하면 간단치 않는 돌발사태가 분명 초래될 수 있다. 현재의 전력수급정책에는 생산 못지않게 전력의 유통 시스템에도 경보음이 연신 감지되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블랙아웃’은 2003년 8월 14일 오후 4시 美 북동부와 중서부, 캐나다에서 발생한 대규모 정전 사태다. 당시 뉴욕, 뉴저지, 오하이오 등 중서부 지역, 캐나다 온타리오 주(州)가 일순간 암흑으로 뒤덮였다. 공항의 기능은 폐쇄됐다. 교통 기능이 일제히 스톱되면서 사람들은 걸어서 귀가했다. 수돗물은 단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전력이 끊긴 냉장고의 음식물은 악취가 나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과 캐나다의 블랙아웃은 3일 만에 완전 복구됐지만, 경제적 손실만 60억 달러에 달했다. 무려 5천만 명이 큰 고통을 겪었다. 미국·캐나다 합동조사단은 대정전이 북미 지역의 전력망 노후화가 결정타임을 밝혀냈다.
정부는 한국의 2011년 9.15 사태를 교훈삼아 사전 대비책에 골몰하여 왔다. 수급예측 정확도 향상, 공급능력 관리 강화, 수요관리 강화, 비상대응체제 개편, 언론·대국민예고 강화 등 5대 분야 14개 세부과제를 개선하면서 동·하계 전력수급 대책마련에 절치부심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나름대로의 방책이 수요예측의 정교화에서 초등수준이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전력수요 급증으로 예비력이 100만kw대까지 떨어질 거란 우려는 빗나갔다. 산업체 수요 관리만으로 대응이 충분했을 텐데, 온 국민을 불안에 떨게 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바로 우리의 전력계통운영시스템(EMS) 문제이다. 전문가들은 전력거래소가 전국 송전·발전 상태를 실시간 감시해 전력계통 붕괴를 제어하는 EMS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전력예비력을 주먹구구식으로 산정하고 있다고 말한다.
● 한국의 전기료 싸고 과소비 국인가?
한국의 전기료가 너무 저렴하기에전기 수요를 급증시키고 있는 주범이라는 정부의 주장은 단골 메뉴이다. 과연 얼마나 신빙성과 진실성이 내재되어 있을까? 진정 우리 국민들이 유난히 전기를 펑펑 쓰는 부류일까? 동일 사안을 입체 조망 하에 분석하면서 총괄 결론의 제시가 진실의 실체를 왜곡시키지 않는 것이다.
먼저, 우리의 가정용 전력요금이 프랑스의 47.6%, 독일의 25.3%, 일본의 34.1%, 영국의 42.2%, 미국의 75.4%에 불과하다는 것을 일단 인정한다 치자. 또한 2000년에서 2011년까지 한국의 전력 연평균 최종소비증가율은 6.0%에 달해 이 기간 석탄(3.6%), 석유(0.7%), 열(3.6%)에 비해 높은 증가세란 것 역시 무조건 눈감을 필요 없다.
그렇다면 선진국들의 전략소비 수준에 한국은 이에 필적하거나 능가한 것일까? 냉철하게 결론을 말하자면, 우리 국민들이 직장이 아닌 집에서 소비한 전력은 OECD 평균보다 적고, 북미의 4분의 1수준에 불과하다.
2007년 OECD 자료를 보면 국가별 1인당 전력소비량(단위 kWh)은 한국이 7691, 미국이 12417, 일본이 7678, 프랑스가 6803, 독일이 6385로 나타난다. 그러나 1인당 가정용 전력소비량을 비교하면 다른 이야기이다. 한국은 1088, 미국은 4508, 일본은 2189, 프랑스는 2326, 캐나다는 4522이다. 더욱이 한국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누진세로 인해 결코 싼 가격이 아니며, 실상은 산업용 전기에 비해 2~6배 비싸다.
값싸게 전기를 사용하는 업종의 전력효율화와 전력낭비를 꼬집지 않고 산업용전기 소비량(사용요금)을 가정용 전기 소비량(사용요금)에 은근슬쩍 플러스하여 산정한 평균 통계치로 작금의 전력난을 국민들 탓으로 우롱하는 처사는 곰씹어 볼일이다. 우리나라 전체 전력소비량에서 가정이 차지하는 소비율은 겨우 14%선이다. 전력소비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싼 전기요금에 보조금 혜택까지 과한 대접을 받고 있는 산업체에 대한 절전대안을 세우는 것이 필히 선결돼야 한다.
다음으로, 전력난의 실체를 공급의 부족으로만 몰아가는 경향이 있다. 실질적으로 위험 가능성이 농후한 송전선 포화 문제는 활발하게 거론되지 않는다. 수요 증가와 발전소 확대로 전기 생산량은 늘었지만, 생산된 전력을 유통하는 전력 '고속도로'는 협소하기 그지없다. 송전시설망 확충은 해당지역민들의 거센 반발로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2024년이면 대부분 송전설비 용량이 가득 차 발전소를 짓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사태가 닥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송전선의 과부하는 바로 전력계통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 12년 사이 전력수요와 설비용량은 2배 가까이 급증에 비해 송전선 용량은 겨우 20% 늘었을 뿐이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2011년 3월 11일 일본의 대강진에 후쿠시마 원전의 대재앙은 원전시설의 확충에 결정적 걸림돌로 작용한다.
이제 정부는 중단기적 대책을 주도면밀하게 내놓아야 한다. 한국 기업의 자가발전 비중은 전체 전력량의 4.9%로 일본의 19.1%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안정적 제품 생산이 차질을 빚지 않으려면 기업 자가발전 확대가 절대적이다.
에너지절약 못지않게 국민의 생활수준과 문화가 발전함에 따라 전력사용 수요증가가 불가피한 만큼, 만성 전력난에 대비하여 ‘신재생에너지 육성’에 한층 가속도를 내야한다. 2011년 국제에너지기구는 신재생에너지 비율은 덴마크가 25.5%, 독일 12.6%에 비해 한국은 2.75%에 불과하다는 것을 적시하고 있다. 부가하여 신재생에너지 효율을 담보할 에너지 저장장치인 ‘ESS’의 기술력 발전에도 과감한 투자를 아끼질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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